우리는 책 읽는 가족입니다
정미숙 지음 / 미다스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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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루는 데 늦은 나이란 없다. 대니얼 디포는 59세에 최초로 장편 소설 '로빈슨 크루소'를 출간했다. 찰스 부코스키는 장편 데뷔작 '우체국'을 51세에 출간했다. 30세 이전까지 한 번도 글을 써본 적 없는 마크 트웨인은 41세에 '톰소여의 모험'을 출간했다.'

-P.68

사실 대단해 보이는 일은 대단해 '보이는' 일일 뿐, 대단한 일인 경우가 많이 없다. 세상에는 대단한 일보다는 일상의 연속이 지속될 뿐이며, 크게 '대단한'사람의 일상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사람들은 대단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그저 글쓰는 사람일 뿐이다. 글을 읽고자 하는 사람에게 읽을 거리를 제공하는 제공자일 뿐이다. 마찮가지 '가수'는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음악'을 제공하는 사람일 분이며, '선생'은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학습을 제공하는 이에 불과하다. 거기에는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철학을 부여할 뿐, 그저 자신의 행위를 타인에게 제공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글을 쓰는 행위는 누구라도 할 수 있다. 노트북이나 핸드폰만 있어도 가능하고 연필과 종이만 있어도 언제 어디서든 가능하다.

하지만 '출판'한 사람과 '출판'하지 않은 사람을 나누는 '작가'라는 타이틀이 존재한다는 것을 봐서는 '작가'라는 것 또한 대단한 일종의 기득권들의 소유물처럼 느껴진다. 오래 앉아서, 많이 생각하고 쏟아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중노동과 같은 효율적이지 못한 노동력을 활용하는 일이다. 다만 거기에 삶과 경험, 기억 그리고 읽었던 '책'과 들었던 이야기들이 녹아가며 다른 결과값을 제공할 뿐이다. 몇 만 년 전, 젖은 흙을 아무렇게나 빚었던 흉측한 모양의 유물에 우리는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치 그것이 엄청난 철학이 담겨진 예술품인냥 진열해 놓는다. 모든 것은 창조한 이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가치가 정해진다.

'살인의 추억'을 감독한 봉준호 감독은 영화 말미에 배우 송강호가 박해일을 바라보며 '밥은 먹고다니냐?'라는 질문에 모호한 대답을 내놓았다. 사실 그 영화는 대사를 했던 송강호도, 감독을 맡은 봉준호도, 그 말을 듣고 있는 박해일에게도 모호할 수 밖에 없는 말이다. 그 이야기에 대한 해답이 '관객'에게 던져졌기 때문에 영화는 아주 섬세한 연출을 하면서도 여백의 미를 가진 명작이 되었다. 이은성 작가의 '소설 동의보감'이 미완성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 대한 여운을 남기며 더 많은 상상력을 갖게 되었다. 사실 어떤 대상이던 작가 위에 독자가 있다. 목욕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유레카'를 외치며 깨닳은 아르키메데스를 가르친 것은 목욕물이 아니라, 그걸 바라보던 스스로이다.

결국 독서의 큰 가치는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동화책을 읽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곱씹는 것이 독서의 정도다. 정미숙 작가는 책을 꾸준히 읽어가면서 이제는 행복한 삶을 꿈꾸게 되었다. 그가 읽었던 책이 무엇일까. 그가 읽었던 책을 읽는다면 우리도 행복해질까? 독서의 매력은 스스로 찾는 것이다. 책이 그녀를 바꾸기도 했지만 그녀가 읽어 넘긴 페이지들은 그녀로 하여금 다른 의미로 재창조되어 생명을 가졌다. 이제는 책을 읽는 것에 대해 많은 영향력을 펼치치는 강연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의 책을 읽으며 나 또한 여러가지 방향으로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내가 초등학교가 되던 시기, '아이엠 샘'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너무 보고 싶었지만 '촌'에서 나고 자란 나로써는 개봉하는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일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나이가 꽤나 되고 성인이 되고 그 영화를 우연하게 다시 접했다. 영화는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아버지가 정상인 딸을 키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아버지의 정신연령이 7살에 멈춰 있다보니, 아이가 성장해감에 따라 아이는 아버지의 정신연령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말이 모두 정답이라고 믿고 살아가던 '딸'은 어느 순간, 자신의 아버지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 그리고 아이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 읽기' 숙제를 버거워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는 언제나 나의 자식이 나보다 열등하다는 착각을 하고 산다. 그들이 내린 결정이 바보 같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인류는 단 한번도 자녀보다 열등했던 적이 없다. 생물학적으로의 진화를 떠나, 불과 100년 전 까지 없던 여성참정권을 반대하는 기득권을 물리치고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갔으며,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더 많은 권리와 자유를 얻어갔다. 우리가 아이에게 가르치던 것들이 앞서 말한 영화의 '샘'처럼 멈춰져 있는 지능 따위라고 봤을 때, 우리는 더이상 교육의 '몫'을 언제까지나 맡아줄 수는 없다. 정답은 '책'에 있다. 아무리 성장해도 더 높은 '성장단계에 있는 교육자'를 찾을 수 있는 곳이 책이다.

나의 정신연령은 정확하지 않은 어느부분에 멈춰져 있다. 우리 아이에게 내가 아는 것을 교육하는 일은 아이의 가능성을 내 수준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그 경계선을 무너뜨리는 일은 '독서'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다. 나를 넘어서고 그 다음 자신이 썼던 작가를 넘어선다면, 그 도움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글을 남겨 누군가를 끌어줄 것이다. 이렇게 서로 끌어주고 당겨주는 독서가의 삶의 연결고리에 내 아이를 던져 넣는 것이 수 십 만원짜라 영어, 수학 학원에 아이를 던져 놓는 것보다 백 만 배는 효과적인 교육법이다.

'우리는 책 읽는 가족입니다.' 단순히 제목만으로도 그 모든 철학을 읽을 수 있다. 가끔 재밌는 예능 프로를 보며 웃을 때가 있다. TV프로그램이 끝나고 TV전원을 껐더니, 고요한 방에는 '나' 혼자 앉아 있었다. 결국 남들이 주고 받는 농담따먹기를 혼자구경하며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삶의 행복'이라고 생각해버리던 습관은 이제 십 수 년이 넘었다. 나는 TV도 보지 않고 핸드폰도 가급적 줄이려고 노력한다. 스티브잡스가 자신의 자녀에게 핸드폰을 주지 않았다는 일화가 유명한 것은 우리에게 매우 알려져 있다. 비싸고 고급진 장난감을 선물해 준 것은 '사랑'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그 가볍게 선물한 장난감에서 아이는 '온갖 폭력'을 학습하고 '중독'과 '따돌림', '몰입의 방해'를 접한다. 결국 우리는 그런 오물들이 가득한 한 보따리를 '스마트폰' 속에 넣어 선물하는 꼴이다.

공부를 잘할 필요는 없다. 좋은 대학을 갈 필요도 없다. 하지만 책을 읽는 습관을 갖는 다는 것은 이미 그 모든 것보다 초월한 일이다. 빌게이츠는 하버드대 졸업장보다 중요한 것이 독서하는 습관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하버드 대학교 법학과 졸업을 얼마 앞두고 자퇴를 선택했다. 독서를 이미 습관화하고 있는 사람에게 하버드 졸업장 따위는 대수도 아니다. 우리가 아이에게 선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또한 우리 스스로를 밀어 넣는 것들은 또 무엇일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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