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힘든 이야기를 풀어 놓으면,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그건 어려운 것도 아니야. 나는 더 심한 적도 많았어.' 사실 이런류의 위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래, 니 잘났다. 근데, 니가 힘들다고 내가 힘든게 없어지는 건 아니야.' 속으로 그렇게 한 바탕 욕을 하던 기억이 난다. 얼핏 비슷한 류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듣고서는 위안은 크게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차원이 다른 이야기를 듣고나니 머리가 '띵~'하다. 이 책은 '리즈 머리'의 글이다. 그녀의 나이는 1980년 대 생으로, 그렇게 많지는 않다.
내가 시골에서 살았기 때문에, 항상 아침부터 밭 일은 나가시고, 해가 지시면 돌아오는 부모님 곁에서 자랐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부모님은 항상 바쁘게 일하고 다니셨기 때문에, 나와 동생은 언제나 사촌들의 집에 맡겨져야 했다. 그런 어린시절이 불우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어린시절을 어떻게 보냈느냐의 질문에는 꼭 남들에 비해 할 말이 하나 정도 더 있다고 생각했다. 리즈 머리는 뉴옥 브롱크스에서 태어났다. 시골에 태어난 '내'가 출생지에 대한 열등감을 갖고 있었던 것에 비해 그녀의 출생지는 어쨌던 뉴욕이다.
'뉴욕에서 태어났구만. 뭐'
책을 읽기 전, 그녀에 대한 프로필을 보고서 들었던 생각이다. 참 어리석었다. 그녀가 태어난 곳은 브롱크스로 위험한 빈민가에 속한다.
항상 바쁘시고 열심히 일하셨던 근면하신 우리 부모님 밑에서 자란 사실이 참으로 천운이라고 할 만큼, 그녀의 가족사는 일반적이지 못하다. 그녀의 부모는 모두 마약 부모 사이에서 자랐다. 빈민가를 다니다 겨우 일을 하거나 구걸하거나 복지국에서 받는 일정의 돈으로 다시 마약을 사는 악순환을 그녀는 지켜보고 자랐다. 우리 아이가 유튜브를 보면 나중에 커서 머리가 나빠지진 않을까? 부모의 역할은 무엇인가. 아이에게 어떤 걸 먹어야 하고, 어떤 걸 입혀야 하는지 따위의 사소한 고민들로 나의 아이들을 대하는 어리석음을 배웠다.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아주 상세하게도 불우한 과거를 묘사했지만, 그녀는 스스로가 불행하다거나 특별하다는 식의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덤덤하게 자신의 머릿 속 기억들을 차분하게 꺼내 놓을 뿐이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경의로움이 느껴질 만하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굶주림에 먹을 것을 찾아 다닐 만큼 힘든 생활을 했다. 밤새 추위와 싸우기도하고 위험한 거리에 내던져 지기도 한다. 그런 일은 자신의 언니와 소소한 장난을 치는 다른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비중으로 다룬다. 그것이 내공으로 느껴진다.
머리에 이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그 몰입감이 최고였다. 마치 어린 시절, 구멍난 양말을 신고 학교를 갔을 때, 친구에게 들키지 않고 한시간, 한시간을 보내던 내 어린시절의 향수도 떠올랐다. 그녀의 일생이 그렇게 마무리된다면,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서 아무것도 위로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거리를 전전해가며 열심히 공부를 하고 고등학교 4년을 2년만에 마친다. 그리고 뉴욕 타임즈 장학금을 받고서 하버드 대학교에 입한하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대단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월 수백만원의 사교육을 쏟아 부어도 입학하기 쉽지 않은 하버드 대학교를 입학한 한 사람의 어린 시절이라고 보기에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아이에게 좋다는 것을 먹이고, 좋은 것을 입히고, 좋은 교육을 시키면 좋은 대학에 입학하여 좋은 사람이 될 거라는 모난 교육 철학의 뒷통수를 크게 후려 쳤다. 아이에게 야단을 치지 말라고 웃으며 훈육하라거나, 결코 때리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이에게 좋다고 하는 다른 육아 서적보다 훨씬 더 좋은 이야기를 남긴다. 요즘 부모는 아이가 먹는 이유식에 들어갈 물의 온도도 1도까지 맞춘다고 한다. 아이가 먹는 물의 종류도 나누기도 하고 아이가 밥먹는 시간도 맞춘다. 그것이 과연 좋은 양육이었을까?
이렇게 마약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도 이처럼 훌륭한 어른이 된다. 사실 고양이나 강아지도 자신의 자식이 잘못되길 바라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고양이나 강아지가 자신의 자녀에게 어떤 행동을 해야 좋은 양육이고 어떤 걸 하지 않아야 좋은 양육인지 가리지 않는다. 다른 포유류들도 자신의 밥그릇을 넘 볼 때, 자기 새끼라 하더라도 무섭게 으르렁 거린다. 아무리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고 하지만 우리는 동물과 완전하게 떨어져 나온 객체가 아니다. 우리가 쉬운 일을 욕심이라는 과정을 덧붙이면서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자신의 밥그릇을 넘보면 으르렁 거리는 어미 고양이나 강아지라 하더라도 자신의 새끼가 어릴 때는 외부로 부터 철저하게 보호한다. 그것이 사실은 제일 중요한 양육이었다. 리즈 머리의 부모는 코카인에 상당히 심각하게 중독된 중독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녀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했다. 비록 자신의 마약을 사기 위해, 딸의 생일 선물로 받은 5불 짜리 지폐를 갖고 나가면서도 그 마음으로는 항상 자녀를 걱정하고 있었다. 이렇게 자녀가 살아갈 공간을 마련해 주는 역할만으로도 자녀와 부모 간의 애정은 충분하다.
그녀가 하버드를 입학하고 지금은 매니페스트링이라는 회사를 창업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재료로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연설과 워크숍을 개회한다. 그깟 학생 시절 공부해서 대학을 간게 무슨 대단한 업적이라도 되느냐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노력에서 그것이 일류라면 그 목표는 반드시 박수 받아야 한다. 이는 공부를 잘해야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어떤 강의 보다 효과적인 듯하다.
내가 유학하던 시기, 유급을 당하면 2400불이라는 학비가 날라갔었다. 그 뿐만 아니라 유학 기간이 늘어나면서 더 오래 거주하고 돈을 써야 했다.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돌아갈 비행기표를 살 돈이 없었다. 사람은 마지막이 되서야 초능력이 나온다. 뒤로 물러설 곳이 없을 때, 자신의 내부를 모두 태울만한 열정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나도 유학시절 이틀에 다섯시간 정도만 자면서 1년 이상 살았던 기억이 있다. 물론 지금은 하라고 하면 결코 할 수 없다. 뒤로 물러설 곳이 없을 때서야 초능력이 나온다는 말에 나는 절박하게 공감한다. 한때 내가 밑으로 가라앉기만 하면서 다시 떠오를 기미가 없는 하루 하루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아직 살만 했기 때문에 더 가라앉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유학하던 시절, 절망적이던 하루 하루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2불짜리 동전이라도 주울까봐 일부러 바나 클럽 주위를 빙글 빙글 땅만 보고 돌아다니던 시절, 주급이 나오면 받은 돈을 들고 맥도날드로 뛰어가 하늘이 노래지기 직전에 빵을 입속으로 쑤셔 넣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오늘 일하지 않으면 내일을 굶게 되고, 오늘 공부하지 않으면 당장 허기를 채울 수 없을 정도의 절박함이 있을 때, 사람은 욕심이 생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공신 강성태 님이 강력 추천했다고 하는 책이다. 사실 나는 강성태 님과 대화방식이나 코드가 맞을 것 같진 않지만, 개인적으로 이분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가 권했던 책인만큼 나도 내 제자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우리가 흔히 겪어보지 못할 불운을 이렇게 앉아서 주말 2일간 겪어본다는 것은 하늘이 우리에게 준 축복이나 다름없다. 다시 한번 독서의 위대함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다만 책이 총 500쪽이고 글자 수도 많아서 다소 분량의 압박은 있다. 나는 주말 2일 간, 모두를 투자해서 읽었지만 그래서 그런지 이번 주말은 아이들과 많이 놀아주지는 못한듯 하다. 어쨌거나, 이 책은 모두가 다 알만한 책이지만, 그래도 강력 추천한다. 지금 힘들더라도, 아직은 살만하다고 이 책의 스토리가 역설해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