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걸려버렸다 - 불안과 혐오의 경계, 50일간의 기록
김지호 지음 / 더난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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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1일 14시 46분. '동일본대지진'이라고 부르는 지진이 일본에서 일어났다. 과거 제국주의의 앙금이 남아 있다는 증오의 표현은 쉽게 입 박에 내뱉지 못했다. TV에서는 일본의 한 소도시를 쓸어가는 대재앙에 대해 연거푸 방송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십시일반하여 이웃국가에 인도적인 구호활동과 모금운동을 벌였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일본인들에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일본을 응원했다. TV에서는 한 순간에 집과 가정, 생활공간을 모두 잃은 피난민들을 방송했다. 나 또한 그들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1만 4천명이라는 엄청난 사망자를 낸 사건을 누구도 쉽게 정치나 역사를 앞 세우려하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구호활동을 위해 파견된 우리 구조대와 구호 물품에 대한 일본 측의 결례가 방송으로 소개되었다. 후진국의 피해복구 금액에 비해 지나치게 큰 금액을 자국보다 선진국이자 강국인 곳으로 보내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일부 생겨나기 시작했다. 또한 이를 모금하는 과정에서의 불합리성에 대한 불만도 일부 터져나왔다.

그러다 3월 12일 후쿠시마 원전 1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났었다는 이슈가 일부 사람들에게 지진보다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 이슈를 몰던 사람들은 곧 이어 일본의 피해 상황을 생중계하는 사람들에 의해 인도적이지 못한 그들의 의심을 비난했다. 초기의 우리는 뜨거운 감성을 가지고 사건을 바라보았다. 다시 15일이 되자 2호기와 4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났다. 이로인해 폐연료봉을 냉각하던 수조에 화재가 일어나 일부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누출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지진으로 마음 아픔을 겪는 이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몰상식적인 가십거리를 생산한다고 비난 했다. 지잔이 일어나고 수 일이 지나 19일에 5호기와 6호기의 냉각 기능이 완전히 정상이되고 그 다음날 1호기와 2호기의 전력 복구가 완료 됐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1만 4천명이란 피해자가 나온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에 다른 시선을 두고 있던 사람들의 비난은 끝맞음 지어 지지는 듯 했다.

이제 하지만 냉각장치가 고장나 바닷물을 대신 뿌렸던 일은 오염수가 누출되면서 고방사성 액체가 문제가 됐다. 3월 24일 터빈 주변에서 원자로 노심보다 1만배나 높은 방사성 물질이 발견되었고, 그로부터 한달 이상이 흐르고, 콘크리트외벽의 폭발, 사용후 핵연료 저장 시설의 화재, 방사성 물질의 유출, 농심용융 발생, 오염물질 바다 방류 등의 원자력 발전소의 문제가 계속해서 커져나갔다. 사람들의 신경이 동일본대지진의 수재민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옮겨 예민해졌다. 주변국인 한국은 물론 세계 여러나라들은 일본을 도와야할 대상에서 적으로 두기 시작했다. 이재민의 문제는 더이상 우리의 알 바가 아니였다. 커다랗게 전 지구적 위협을 생산해 낸 일본 정부와 국민에 대한 분노가 시작되기 시작했다.

당시 뉴질랜드에서 유학 막바지였던 나의 플랫메이트는 일본친구였다. 지진이 났던 첫 날, 일본에서 발생한 쓰나미가 뉴질랜드까지 덮쳐올거라는 루머가 현지친구들 사이에서 번졌다. 얼핏 일본인인지 한국인지 구분되지 않던 나를 보던 현지인들은 "너희 나라 괜찮아?"를 물어보고 "이제 뉴질랜드로 쓰나미가 오고 있어, 대피해"라는 다소 진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내심 정말 뉴질랜드로 쓰나미가 몰려 오진 않을지, 반지하 클럽에서 새벽부터 아침까지 일하던 나는 걱정이 되었다. 그 첫날이 지나고 나 또한 일본 친구를 위로해 주었다. 다시 얼마지나지 않고 나는 일본인을 만날때, 후쿠시마 근처면 약간 색안경을 끼고보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사람이란 그렇게 간사한 듯 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처음 우한에서 바이러스가 전파된다고 뉴스를 통해 전달될 때가 또렷하게 기억난다. 마치 영화의 어느 한 장면을 보는 듯 했지만, 중국의 우한이 어디에 있는 곳인지는 관심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중국인 확진자가 어느정도가 늘자, 중국인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지 않아도 미중 갈등으로 많은 중국인들이 힘들어 하고 있는데 안타까운 생명이 죽어간다고 생각하니, 중국이라는 나라에 동정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다시 얼마지나지 않아 확진자는 수 만이 되어져갔다. 도시를 봉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며, TV에서는 한국인 확진자에 대한 이야기도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코 앞에 있는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저렇게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는데 과연 우리나라는 괜찮을까 싶었다. 한국인 확진자는 시간문제였다. 내가 제일 먼저 했던 행동은 코스닥 종목 중 진단키트를 개발하는 업체를 찾아 주식을 매입하는 일이었다. 그 때까지도 우리나라 진단 키트 업체들은 조용했다. 주식 게시판에서는 당연히 중국 우한의 바이러스를 '호재'로 평가하며 자신의 주식이 뻠핑 받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최초 한국인 확진자가 발생했다. 어김없이 주식은 반응하기 시작했다.

기분을 좋아해야할지, 나빠해야할지, 마음 속 속물과 같은 일면과 인도적으로 양심이라 불리는 다른 일면이 부딪쳤다. 한국인 확진자가 발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확진자가 늘어났다. 꾸준하게 늘어나던 확진자에 주가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 때까지 바이러스에 대한 관심이 없이 지냈다. 그러다 최초의 한국인 바이러스 사망자가 발생했다. 문뜩 등골이 오싹해졌다. 영화에서나 보던 일들이 우리 생활권에 미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됐다. 하지만 그럴리 없다고 생각했다. 사스나 메르스도 분명 위험했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전파되고 말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한국인 사망자가 발표되자 뒤늦게 예전에 묻어두었던 주식이 생각났다. 게시판을 들어가봤다.

사람이 죽었는데 게시판은 축제 분위기였다. 주가를 살펴보니 역시나 주가그래프가 급등하고 있었다. 그 뒤로 꾸준하게 사망자가 나오고 치료개발에 관한 뉴스가 번갈아가며 나왔다. 게시판의 사람들은 사망자가 늘어날수록 기뻐했고, 치료개발에 관한 뉴스가 나오면 관련 내용을 저주했다. 비인간적인 그들의 글을 보며 욕하면서도 마음에는 갈등이 일어났다. 좋지만 좋지않은 감정, 나쁘지만 나쁘지 않은 감정이 내 마음 속을 어지럽게 했다. '아무리 돈이 좋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가지고 있는 주식을 모두 시장가로 던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분명 누군가에게 이득을 가져다준다. 이는 어떤 이들에게 일생일대의 기회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포스트 코로나에 관한 관심을 항상 갖고, 지금 이 순간에도 확진자와 사망자가 늘어나지만서도 나의 내일을 위해 코로나 이후룰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그 문제는 코로나가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때나 가능했다. 당장 내가 노년의 나이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될 경우, 나의 생존 가능성은 30%다. 내가 노년의 나이가 아니고, 내가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는 더 이상 내 일이 아니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같은 상황에 나이만 달라졌다 해도 내 일생일대의 기회와 생명을 맞바꾸는 도박을 벌이는 일일지도 모른다.

사실 나의 주변에도 코로나 바이러스를 걸렸던 사람이 없다. 그런 안일한 마음 때문에,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나는 아닐 것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지도 모른다. 최근 얼마 전, 코로나 바이러스가 조작이라고 말하던 한 외국인이 가족을 잃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다. 사실 나도 그와 같았는지도 모른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조작이고, 국제적 혹은 국내적 정치와 경제에 득실을 얻는 누군가와 다른 누군가의 작전과도 같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어김 없이, 일정한 기간이 되면 돼지 바이러스나 조류독감이 창궐하여, 방역 주식이나 가공육 업체들의 주식이 등락이 심하게 발생하는 주식세계를 오래 바라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자본주의는 국경을 초월하지만 더욱 무서운 것이 인간다움을 초월한다는 사실들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할수록 더 높은 주식 차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을 기대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 증권가로 몰려들었고, 실제로 해당 주식들은 비정상적일 만큼 폭등하고 있다. 우리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희생자에 대한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과 동시에 그 가면의 뒤로 반대의 주식에 돈을 집어 넣으며 이전의 나와 같이 내적 갈등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리다.

이 책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격은 한 젊은이의 기록이다. 내가 소개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꽤나 유명한 모양이다.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을 봤던 여동생이 지나가면서 이야기를 할 정도니 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그저 글과 영상으로만 겪었던 나와 다수의 사람들이 실제로 겪어보지 못한 공포와 감정들을 이 책은 담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렇게 창궐하니 '작가'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자는 작가는 아니(?)지만 어쨌건 작가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런 류의 사람을 훑고 지나감으로 우리는 이런 글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하멜표류기가 회사에게 근로비를 받기 위해 썼던 일종의 레포트였다고 했던가. 원래 문학은 그런 것이다. 하멜은 그저 상선의 말단 직원이었지만 우리는 하멜 표류기라는 기록을 통해 그를 기억한다. 그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작가이다. 시대 상황을 보여주었고 조선인들이 기록하지 않던 거의 모든 것들을 기록했다. 세대가 한참을 지나고 나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역사가 되었을 때, 그의 글은 다시 문학이 될 것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꾸밈없이 쓰여진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필요한 미사여구도 없고 솔직 담백하게 자신이 보고 느낀 이야기를 자신의 나이에 맞게 가감없이 작성했다. 분명한 시대의 반영을 하고 있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알지 못했던 내용들을 알 수 있다. 책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 후 치료과정을 설명하기도 했지만 마지막에는 그 이후에 관해 설명했다. 바이러스가 훑거지나간 자리에 남은 의심과 불신의 후유중은 우리 사회에 곳곳에 남아 있을 것이다. 몇 일 전, 이마트를 방문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자, 입을 막고 있는 마스크를 내리고 다시 한 번 따끔하게 일러두었다. 그 때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갑자기 나를 보면서 마스크를 쓰라고 눈빛과 손짓을 하며 말을 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다소 불쾌했다. '무슨 상관이야?'라는 생각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몇 걸음을 걷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스크를 쓰라고 해서 버스기사를 폭행했다는 손님의 이야기 말이다. 그 기사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욕했지만, 나 또한 욕했다. 잠시 스치고 지나간 아주머니를 보고 잽싸게 마스크를 썼지만 순간 불쾌한 감정이 들었던 나 또한 반드시 반성해야한다.

과연 나만의 갖는 감정이 아닐 것이다. 동일본대지진에 관한 이야기, 주식에 관한 이야기, 마스크에 관한 이야기. 이처럼 우리는 처음 걸어보는 길에서 갖게되는 여러가지 모순의 감정을 갖게 살아간다.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억지로 웃어지었던 입술의 윗꼬리를 이제는 너무 당연히 움직이지 않는다. 어차피 보이지 않을 표정따위...

어쩌면 우리는 모순을 만들어가는 사회에서 자신을 제외한 타인의 모순에만 관대하지 않은 건 아닐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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