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는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나라다. 하지만, 노르웨이의 시간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흐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책가방 하나만 들쳐메고 11시간을 비행 끝에 도착한 것은 뉴질랜드다. 그 곳이 정확히 어떤 나라인지도 모르고 떠났다.
만 스물에 적당한 패기면 해외 어디를 떨궈 놓아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만 들고 그 곳에서 짧은 어학연수를 속성으로 마치고 정규유학을 시작했다. 그렇게 아무런 기대도 없이 시작했던 그 곳과의 인연이 꽤나 내 뼛속 깊은 곳 까지 침투해 있는 듯하다.
남들이 침대로 들어가 잠을 청하는 시간, 나는 검정색 셔츠를 청바지에 담아 입고 클럽으로 출근했다. 쿵쾅거리는 클럽 음악소리를 꼬박 12시간을 듣고 나면, 굿판을 마친 무당처럼 정신인지 혼인지 모를 정체를 잃어버린 듯 했다. 아침 해가 밝고 반 지하 클럽을 빠져 나오면, 오랜 기간 수감 생활을 했던 수감자처럼 두 눈을 겨우 뜨며 바깥 아침해를 맞이했다.
함께 일하던 클럽 내, 직원들이 집에서 취침을 하던 시간, 나는 주머니에서 초코렛 몇 조각을 꺼내 입에 물고서 아파트 청소를 했다. 한국에서 그곳으로 떠나던 날 메고 있던 가방만한 무게의 청소기를 들쳐 엎고 3시간을 뛰는 듯 걷는듯 12층을 오르락 내리락 한다. 그리고 계단 손잡이를 적당히 마른 수건으로 쓱~ 하고 한번 훔친다. 그렇게 하고 나면 점심식사를 할 시간이 얼추 됐다. 가방이 없어, 흰 비닐 봉투에 담아 두고 다녔던 잡동사니 사이에서 빨갛게 익은 토마토 하나를 꺼내 먹는다. 점심은 그걸로 됐다. 이제 모든 이들이 개인 시간을 한 참 즐길 시간, 나는 시내에서 40분을 걸어야하는 학교를 간다.
그곳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 곳에서 대략 학교 청소를 한다. 아파트 청소와 똑같은 루틴을 겨우 돌고 집으로 돌아온다. 담배냄새, 사람들 땀냄새, 지하의 습하고 역한 냄새와 술냄새, 누군가의 침과 땀냄새 등등을 옷 이곳 저곳과 내 피부에 뭍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원을 매일 들려야 했다.
그 공원에서는 수수하게 차려 입은 내 또래 아이들이 잔디 위에 누워 낮잠도 자고 일광욕도 즐기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있었다. 여유로운 나라에서 유독 혼자서 여유롭지 못했던 나의 유학생활은 현지취업을 성공하면서 이어졌다. 그토록 여유로운 나라에서 치열하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아무런 소음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역시나 혼자 치열한 삶을 살다, 어느 날 문뜩 바다를 본 적이 있다.
그곳에서 역시 나와 비슷한 또래의 녀석들이 잔디 위에서 시간을 죽이는 듯,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유를 즐기고 자연을 즐기는 그 모습. 그 여유로운 나라에서 거의 즐겨보지 못했다. 그곳에서도 완벽한 한국인으로 살다, 문뜩 정신을 차려보니 다시 한국이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나 혹은 나의 아이들은 그런 인생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견디길 10년이었다. 내 해외 생활은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노르웨이의 시간이라는 책은 나의 향수를 매우 강하게 자극했다. 보이는 사진이 모두 내가 봤던 이야기들이었고, 그들의 삶과 사고 방식도 그들이었다. 뉴질랜드와 노르웨이는 정확히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다. 그런 두 나라가 이토록 가깝다는 건 놀랍도록 신기했다. 내가 뉴질랜드를 갔다왔다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뉴질랜드? 풍차 있는데?' 라고 말하는 이들을 종종 만나곤 했다. 네덜란드와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간혹 어떤 사람들은 노르웨이와도 헷갈려 했다.
어쨌거나 비슷하게도 모두 여유로운 나라들이다. 여유... 잘은 모르지만 아마 우리나라의 100년 혹은 150년 그 전에는 우리도 비슷한 삶을 살았을까? 어쩌다 대한민국은 이토록 시끄럽고 바쁜 나라가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노르웨이는 석유가 나오기 60년 전인 1960년 대 까지 지금과 같은 부국으로의 위상을 떨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산유국이 되면서 그들은 엄청난 부국이 되고,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강소국이자 복지국가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길을 비추는 가로등이나 버스 정류장 혹은 여러가지 건축물들을 보면, 우리나라가 급하게 성장한 흔적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은 지금도 마찮가지다. 뉴질랜드에서는 목재나 다듬어지지 않은 돌 혹은 저렴하지만 깔끔한 인테리어 소품들로 도심을 꾸민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차갑고 정형화 된 스테인리스 재질의 소품들이 공장에서 찍어낸듯 서 있다. 성냥값처럼 아무렇게나 서 있는 높은 아파트는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갈 때마다, 개성없어 보였다. 최근에는 그런 아파트에 여러가지 그림과 문양이 그려지며 나름의 색을 입혀 가지만, 우리는 너무 실리를 챙기다 보니 심미적 충족을 잊고 사는 듯하다.
그냥 살 수만 있으면 되지, 건물을 꼭 비틀어서 지어야 하나? 그냥 한 번 세워서 오랫동안 서 있으려면, 저렴하고 오래가는 재질로 고르면 되지, 관리도 어렵고 구하기도 어려운 목재를 왜 선택해야 하나? 하는 어떤 공무직 누군가들의 생각이 나라 이곳 저곳에 심어져 있는 듯하다.
사실 도시 디자인인은 크게 어렵지 않을 수 있다. 노르웨이는 도심을 짓기 위해, 도심에 사는 시민들의 심미적 충족감을 충분하게 채워주는 일이 우선이라고 한다. 가만 보면, 뉴질랜드나 노르웨이나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보다 높은 고소득 국가들도 길가에 세워져 있는 표지판 하나, 조형물 하나도 검소한 것이 느껴진다. 또한 철학이 느껴진다. 우리나라는 철학과 인문학 보다 경영학과 회계학이 취업에 유리한 나라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인문학과 철학이 없는 무의미 하지만 가성비에서 출중한 재료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노르웨이의 시간을 읽다보면, 저자는 '책'을 읽기 좋다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들을 종종 한다. 우리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일까?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책을 읽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나라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옆나라 일본과 비교해도 부끄러울 만큼 책을 읽지 않는다.
물론 군사 독재시대, 우리나라를 교육하던 우민화 정책의 성공이라고 핑계될 수도 있다. 어찌됐건, 우리나라는 책을 읽지 않는다. 광화문 교보문고나 신논현 교보문고를 가면 그래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책을 보고 있구나 놀랍기도 하지만, 휴대폰을 들여다 볼 지언정 책장을 들여다 보는 일을 유별나게 생각하는 나라에서 인문학과 철학이 나올리가 없다.
닭이 먼저 인지 달걀이 먼저 인지는 알 수가 없다. 여유가 없어서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일까? 책을 읽지 않기 때문에 여유가 없는 것일까? 나는 나름 보통 사람들 보다 많은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명함도 꽤나 많다. 하지만 보통의 평범한 직장인들이라면 책을 볼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누구나 한달 5권 이상은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마무리로 2020년에는 총 131권의 책을 읽었다. 사실 책이란 건 그런 것 같다. 주머니 속 스마트폰 처럼, 그냥 편하게 아무때나 꺼내 읽을 수 있는 소지품이 되는지의 여부...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예전 뉴질랜드에서의 10년 간, 내가 보고 느꼈던 것들이 잘 느껴졌다. 노르웨이 참 매력적인 나라다. 좋은 사진과 좋은 글...
마냥 부러워하던 어떤 나라가, 깊이 생각해보니 내가 10년 간 살아왔던 나라와 너무나도 비슷했다. 그곳에서 나만 여유롭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여유라는 것은 여권에 찍힌 국적이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나와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면, 어쩌면 우리나라도 뉴질랜드나 노르웨이처럼 여유로운 나라가 되지 않을까?
책은 두꺼운 편이지만, 사진의 질감을 좋게 하기 위해 두꺼운 재질의 종이를 사용한 듯 했다. 페이지 수가 많지는 않고 사진도 꽤나 적절하게 들어가서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페이지 하나씩만 넘기면 누군가의 시간과 공간을 여행 할 수 있는 이런 좋은 여행 서적은 요즘과 같은 코로나19 시대에 우리를 치료해주는 치료제이지 않을까 싶다.
책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저자가 노르웨이의 계절을 불평하자, 노르웨이인이 한 말...
"나쁜 계절은 없어. 부적절한 옷차림만 있을 뿐이지."
우리는 국가만 탓해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