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온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아우성은 나에게 소문일 뿐이었다. 꾹꾹 찍히는 눈 위의 발자국도, 눈오리도, 거대하고 괴이한 눈사람들도 모두 과거의 기억에 불과했다. 눈이 오면 고요에 휩싸였던 풍경을 아직은 잊지 않았다. 


눈이 오지 않아도 적막한 공간에서 호수같이 고요한 바다를 내내 바라본다. 분명한 다른, 우유를 부어놓은 것 같은 아침바다를 봤다. 서늘하게 쨍한 파란빛이었던 바닷물이 파스텔톤의 하늘과 색을 맞춘 듯 하나로 보였다. 구름을 바닷물에 담가놓은 듯 부드러워진 바다는 점점 부옇게 부옇게 하늘과 닮아갔다. 그리고 솜털같은 눈이 바람과 함께 창문 틈으로 날아들었다. 바람을 타는 눈의 양이 점점 늘어 거대한 스노우볼 형상이었다. 내리는 눈이 아닌 날리는 눈을 목격하며 즐겼던 건 순간이었다. 스노우볼을 잠깐 흔들어 내려놓았을 때처럼, 짧은 축제는 금세 끝이났다. 흔적을 남기지 않은 첫눈의 축제. 목격하지 못한 사람은 믿지 않을 소문같은 눈을 봤다. 

눈이 귀한 바다에서 나는 눈을 기다렸던가. 한국이지만 좀처럼 눈이 내리지 않아 타국에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즐기고 있었던가. 어쩌면 오늘의 짧은 만남은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을 비밀이 될지도 모르는 일. 감쪽같이 고요한 스노우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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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의 계보학 -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만든 서사들 메두사의 시선 4
실라 미요시 야거 지음, 조고은 옮김, 정희진 시리즈기획.감수 / 나무연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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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과거가 아니다˝ 라는 발터 벤야민의 ‘몽타주‘ 개념으로 연결된 이야기들이다. 삶이 연속적으로 진보한다는 건 환상이다. 조각조각 알고 있던 사실들이 연결되어 그려진 그림의 형체에 수긍했다. 역사를 보는 방법론을 알려줄 뿐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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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도대체 모르겠다는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다시 읽으니 너무나 알게 되어버린 이야기. 

누구의 손이 불쑥 튀어나오는지 

그게 살리는 손인지 죽이는 손인지

누가 침묵처럼 조용히 죽어가는지

운 좋게 살아남는지

꿈처럼 이어지게 되는 삶의 연속

이제는 사라진 사람들과의 결속

의지와 상관없이 물을 따라 떠내려온대로 살던 자리마다 자국이 있었다

그래서 잊을 수 밖에 없었던

이제서야 내 손에 잡힐 듯한 아직은 막연한

의문으로 이어질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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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캄포 베르텐데스 카투아이 허니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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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이상한가? 브라질 원두는 피해야겠다. 올해 최악의 원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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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도서관의 얼룩진 소파에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시집을 읽었다. 


공백이 더 많은 페이지마다 갈 곳 잃은 눈동자를 굴리면서 어렴풋이 시인의 마음을 나도 알지, 다 그럴지도 모르지, 생각했고.

나는 도저히 어떤 단어도 문장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를 둘러싼 풍경을 좀더 사랑해야겠다, 그와 비슷한 마음의 모양이 명확해진 순간으로 남았다.



그래서 썼다. 




오늘 나의 용기들을 까만 바다에 씻는다

창문 크기의 바다

까맣게 채워진 네모

비릿하지도 않은 

낮 동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인

까만 물에 오늘의 흔적을 지운다


태풍을 견디고 창문만한 바다에 내일을 씻으면

의문 후에 남은 것들은 더 단단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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