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온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아우성은 나에게 소문일 뿐이었다. 꾹꾹 찍히는 눈 위의 발자국도, 눈오리도, 거대하고 괴이한 눈사람들도 모두 과거의 기억에 불과했다. 눈이 오면 고요에 휩싸였던 풍경을 아직은 잊지 않았다.
눈이 오지 않아도 적막한 공간에서 호수같이 고요한 바다를 내내 바라본다. 분명한 다른, 우유를 부어놓은 것 같은 아침바다를 봤다. 서늘하게 쨍한 파란빛이었던 바닷물이 파스텔톤의 하늘과 색을 맞춘 듯 하나로 보였다. 구름을 바닷물에 담가놓은 듯 부드러워진 바다는 점점 부옇게 부옇게 하늘과 닮아갔다. 그리고 솜털같은 눈이 바람과 함께 창문 틈으로 날아들었다. 바람을 타는 눈의 양이 점점 늘어 거대한 스노우볼 형상이었다. 내리는 눈이 아닌 날리는 눈을 목격하며 즐겼던 건 순간이었다. 스노우볼을 잠깐 흔들어 내려놓았을 때처럼, 짧은 축제는 금세 끝이났다. 흔적을 남기지 않은 첫눈의 축제. 목격하지 못한 사람은 믿지 않을 소문같은 눈을 봤다.
눈이 귀한 바다에서 나는 눈을 기다렸던가. 한국이지만 좀처럼 눈이 내리지 않아 타국에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즐기고 있었던가. 어쩌면 오늘의 짧은 만남은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을 비밀이 될지도 모르는 일. 감쪽같이 고요한 스노우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