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만에 잠잠해진 바다가 낯선 아침이었다. 잦아든 파도가 따뜻함의 징표가 아니었다. 나에게 가까운 바닷물은 꽁꽁 언 하얀 얼굴이었다. 밤새 식었던 방안의 온기는 쉬이 돌아오지 않았다. 차갑게 돌아선 이가 돌아보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란 걸 아는 마음 한구석을 무용하게 헤집어보는 시간을 보냈다. 짠 바닷물이 얼 정도로 추운 날이다. 어제까지 찢어질 듯 펄럭이던 깃발도 얼어버린 듯 움직임이 없다. 요란하고 소란했던 바람소리와 파도의 난리법석이 끝난 후엔 얼어붙은 고요가 도착한 것이다. 온기일 줄 알았는데 잔인한 차가움이었다. 차가운 바닥에 미동 없이 누워있는 길고양이의 죽은 몸을 본 오늘 밤 밝은 달 주위에서도 반짝이는 많은 별들이 내 눈에 박혔다. 차마 보지 못한 얼굴, 다시는 보지 못할 것들은 결국 별이 되길 바란다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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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온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아우성은 나에게 소문일 뿐이었다. 꾹꾹 찍히는 눈 위의 발자국도, 눈오리도, 거대하고 괴이한 눈사람들도 모두 과거의 기억에 불과했다. 눈이 오면 고요에 휩싸였던 풍경을 아직은 잊지 않았다. 


눈이 오지 않아도 적막한 공간에서 호수같이 고요한 바다를 내내 바라본다. 분명한 다른, 우유를 부어놓은 것 같은 아침바다를 봤다. 서늘하게 쨍한 파란빛이었던 바닷물이 파스텔톤의 하늘과 색을 맞춘 듯 하나로 보였다. 구름을 바닷물에 담가놓은 듯 부드러워진 바다는 점점 부옇게 부옇게 하늘과 닮아갔다. 그리고 솜털같은 눈이 바람과 함께 창문 틈으로 날아들었다. 바람을 타는 눈의 양이 점점 늘어 거대한 스노우볼 형상이었다. 내리는 눈이 아닌 날리는 눈을 목격하며 즐겼던 건 순간이었다. 스노우볼을 잠깐 흔들어 내려놓았을 때처럼, 짧은 축제는 금세 끝이났다. 흔적을 남기지 않은 첫눈의 축제. 목격하지 못한 사람은 믿지 않을 소문같은 눈을 봤다. 

눈이 귀한 바다에서 나는 눈을 기다렸던가. 한국이지만 좀처럼 눈이 내리지 않아 타국에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즐기고 있었던가. 어쩌면 오늘의 짧은 만남은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을 비밀이 될지도 모르는 일. 감쪽같이 고요한 스노우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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