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작품을 내려다보듯 시간을 두고 멀리서 조망하면 그 삶이 어떠한지 그때의 선택이 옳았는지 알 수 있겠지만, 당장의 선택을 눈앞에 둔 나는 그때그때 판단하는 대로 살아갈 뿐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내 삶의 방향을 만들어낸다.
토지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역사의 격동기에 저마다 판단과 선택을 하고 살아간다. 자기 욕망에만 충실한 인물도 있고 자기만의 기준으로 거침없이 자유롭게 사는 인물,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하며 사는 인물, 사랑으로 변화하는 인물, 부끄러움의 힘으로 삶을 견디어내는 인물도 있다. 더 좋아 보이는 사람들이 있고 닮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듯, 이들의 삶은 저마다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나와는 다르지만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래도 그건 아니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게 한다. 그것이 확장되면 타인의 삶에 대한 판단으로 이어지는 것이겠지. 토지라는 소설의 힘이기도 하고, 그것을 읽어낸 이 책 저자의 힘이기도 하리라.
그러나 생각건대 남들이 뭐래든 그때의 사정이 어떻든 내 잘못을 그 자체로 기억한다는 것, 그리고 그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을 한평생 간직한다는 것은 특별히대단한 일이라 여겨집니다. 어쩌면 두만네 내외는 자기 부끄러움을 삶의 가늠자로 삼았기에 한평생 "푼수를 알고 산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듯싶습니다. 그들 스스로는 그저 소소한 삶에 지나지 않는다고 치부했지만, 그 소소함 속에는 인간다움을 지키는 대단한 힘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대단함이 바로 자기 삶을 들여다보는 부끄러움이었던 게지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어쩌면 인간 존재는 애초부터 그 자체가 이 세계와 세상의 모는 타자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인간은 늘 외부의 공기를 호흡합니다. 외부의 것들을 받아들입니다. 밥 먹습니다. 나 혼자서 에너지를 자가발전시켜 생존할 방법은 없습니다. 외부의 것을 끌어들여 내 생명을 이어갑니다. 토지』에서 길상이는 누군가가 희생해야만 ‘생명‘이 유지된다는 비장한 말도 했지만, 약간 긍정적인 측면에서 길상이의 생각을 되짚어보면, 존재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외부와 얽혀 있는, 곧 서사적 연대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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