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지던 때에 나는 겨우 열두살이었다.
어려서는 청진에 살았다. 우리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바지의 단독주택에 살았다. 봄이면 마을 빈터의 마른 잡초들사이에서 한무리의 진달래들이 이 묶음 저 묶음 다투어 피어나 아침저녁 노을에 더욱 붉게 타오르고 드높은 동편 하늘가에 아직도 눈을 하얗게 얹은 관모산이 아랫도리를 안개 속에감추고 떠 있었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크고 둔해 보이는 철선들이 정박해 있었고 그 주위로 작은 고깃배가 아련하게 통탕대는 발동소리를 내면서 느릿느릿 헤엄쳐다녔다. 그리고 갈매기들이 생선비늘처럼 반짝이는 바다물결 위의 햇빛을 사방으로 흐트러뜨리며 역광 속으로 힘차게 날아갔다. 나는 항구의 사무실에서 돌아올 아버지를 기다리거나 장에 간 어머니를기다렸다. 길을 벗어나 제법 가파른 언덕의 끝까지 나아가 쪼그려앉아 있던 것은 두 사람을 기다릴 겸하여 그냥 바다를 내다보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 P7

 사람의 마음도 밥과 같아서 오래가면 쉬게 마련이라 자꾸 폐를 끼치면 나중에 정말 도움이 긴요할 때는 냉정하게 돌아선다고 아버지는 말했고 할머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 P74

산불이 일어나도 인근 마을에는 불을 끌 인력조차 제대로남지 않았다. 산불이 한번 번지면 일대의 산들이 모두 탈 때까지 사나흘 또는 닷새 이상 방치되었다. 울창한 숲들이 잿더미가 되고 나면 제각기 앞다투어 산에 올라가 제 땅 표시로 말뚝을 박고 타다 남은 나무등걸을 파헤치고 널따란 밭을 만들었다. 거기다 강냉이 감자나 콩을 심었다. 그렇게 화전갈이를 한사람들은 이듬해부터 살아남았다.
나는 두만강을 건너 내가 떠나왔던 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높은 곳에 올라서면 뒤를 돌아보았고, 멀고 가까운 산들이 연기를 올리며 타는 모양을 보았다. 그것은 망망대해에서 외딴섬에 갇힌 사람들이 멀리 지나가는 배나 다른 땅에 구조를 해달라고 조난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연기는 적막한 하늘로 조용하고 불길하게 뭉게뭉게 피어올랐지만 저 한밤의 헛것들이 몰려다닐 때 들리던 우웅우웅하던 소리가 온 대지에 깔려 있는 듯했다. - P9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인류학자 조한혜정은 "공략하기보다 낙후시켜라"라며 대안 운동의 방향을 정의한 바 있다. 그러나 ‘낙후된 곳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남아 있다. 그들은 계속 ‘낙후‘시킨다 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혁신과 창조에 대해 고민하고, 원천 기술을 축적하고자 한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산업도시 거제가 제조업의 실리콘밸리가 될 수 있도록 고민하는것이다. 몰락한 제조업 도시의 대표격인 러스트 벨트Lust Belt 가아니라, 젊은 엔지니어들이 다양한 워크숍을 통해 빚어내는배움과 성장이 산업과 자연스레 연결되어 혁신을 만들어내는새로운 산업도시로 전환되어야 한다. 또한 이 산업 혁신의 에너지가 다시 사람들을 소생시키는 사회 혁신의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표지판은 러스트 벨트로 향하는 길을가리키고 있는 듯하다. - P165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여전히 낙관론을 말한다. 크게두 가지 버전의 낙관론이 떠돌고 있다. 업계 애널리스트들의버전이 그중 하나다. 앞으로 환경 규제가 강화될 것이기 때문에 친환경 선박에 대한 수요가 늘고, 이에 따라 중국에 비해기술력이 좋은 한국 조선산업에 다시금 호재가 올 것이라는분석이다. 두번째 버전은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현재의 규모를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나중에 시장이 살아났을 때 설비가 축소되어 수주를 충분히 할 수 없는 문제가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 P173

우선 첫 번째 버전부터 검토해보자. 2017년 9월 8일UN 산하 국제해사기구(IMO, 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는 선박 환경규제를 강화한다는 기조 발표를 내놓았다.
선박평형수 주입 및 배출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생물 등으로인한 생태계 교란을 막기 위해 살균처리설비 설치를 강제하는 ‘선박 평형수 관리 협약‘을 발효한 것이다. 이제 새로 건조되는 선박은 선박 평형수 처리 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한다. 그러나 협약 발효 전 건조된 선박의 설치 기한은 2024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또한 국제해사기구는 2020년까지 선박에서 배출되는 배기가스로 인한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선박 연료유의 황산화물 함량을 현행 3.5%에서 0.5% 이하로강화하기로 했다. 선주는 스크러버 설치, 기존 연료 가격보다50% 비싼 저유황유 사용, 액화천연가스LNG 연료 선박으로의교체라는 세 가지 대안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 P174

하지만 이 주장은 위기의 뿌리를 모조리 외부에서 찾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말하자면 ‘조선산업은 노동자들의 피땀과 엔지니어들의 노력으로 흥하게 되었지만, 선수금환급보증(RG, 수출입은행이나 시중 은행이 발행)을 제대로 발급해주지않은 선박금융, 인적 자원과 설비 축소만 진행하고 있는 산업은행식 구조조정 때문에 망했다‘는 식이다. 그러나 한국 조선산업이 불황도 없이 2010년대 초반까지 성공신화를 쌓을 수있었던 데에는 사실상 시장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중국 시장이 팽창하면서 만들어놓은 ‘슈퍼 사이클‘이 한국 조선 산업에한 줄기 빛을 가져다준 것이다. 또한 2008년 금융 위기로 슈퍼 사이클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그것을 구제해준 것도 역시나 유가 상승과 심해 유전을 개발하겠다는 오일 메이저들의계획으로 발생했던 ‘해양플랜트 붐‘이었다. 이들의 입장대로라면, 지금 국가가 할 수 있는 것은 극도로 노동집약적인 조선산업에 세금으로 공적자금을 지원하면서, ‘고도‘를 기다리듯좋은 시황이 올 날만을 기다리는 일뿐이다. - P1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인류학자 조한혜정은 "공략하기보다 낙후시켜라"라며 대안 운동의 방향을 정의한 바 있다. 그러나 ‘낙후된 곳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남아있다. 그들은 계속 ‘낙후‘시킨다 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혁신과 창조에 대해 고민하고, 원천기술을 축적하고자 한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산업도시 거제가 제조업의 실리콘밸리가 될 수 있도록 고민하는Belt 가것이다. 몰락한 제조업 도시의 대표격인 러스트 벨트 Lust아니라, 젊은 엔지니어들이 다양한 워크숍을 통해 빚어내는배움과 성장이 산업과 자연스레 연결되어 혁신을 만들어내는새로운 산업도시로 전환되어야 한다. 또한 이산업 혁신의 에너지가 다시 사람들을 소생시키는 사회 혁신의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표지판은 러스트 벨트로 향하는 길을가리키고 있는 듯하다. - P1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짧은 시간에 꾸며 내야 했던 것을 생각하면 훌륭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커다란 결점이 있었다. 진은 그 결점을 탐지했다.
"한 친구? 그래, 자네의 많은 친구들 중 한 명 말이지. 나를 불렀어야지."
"왜?"
"이 사진을 누가 찍었다고 생각하나?"
당연하다. 누군가는 그 사진을 찍어야 했다. 너무 놀라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나만 부외자였어. 유전학 강사. 대단한 밤이었지. 모든 사람이퍼마셨고, 모두 파트너가 없었어. 도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자리였어."
진은 사진에서 얼굴 하나를 가리켰다. 나는 늘 남성들에게 집중했고, 로지의 어머니를 찾아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진이 그녀를 가리켜 주자 알아보기 쉬웠다. 머리 색깔은 로지가 더 인상적이었지만, 붉은 머리를 포함해 닮은 점이 명백했다.
그녀는 아이작 에슬러와 제프리 케이스 사이에 서 있었다. 아이작 에슬러의 결혼식 사진에서처럼, 케이스는 활짝 미소 짓고 있었다.
"버나뎃 오코너."
진은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아일랜드 인이었지." - P3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1부에서 언급했듯,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방침에 힘입어 조선산업 외에도 기계공업, 자동차공업 단지들이 ‘부울경‘(부산, 울산, 경남) 지역에 들어섰다. 박정희정권 초기였던 1960년대의 산업 정책은 경공업 활성화를 통해 자립 경제를 수립하는 것을 방향으로 삼았다. 이른바 수입대체 산업화로, 삼성이 초창기에 영위했던 비료, 섬유 등의 산업이 당시 주력 산업이었다. 국내 수요를 수입이 아닌 국산품제조를 통해 맞추면서 산업을 발전시키는 방식이다. 하지만IMF나 IBRD(국제부흥개발은행) 등을 통해 자금을 원조받다가상업 ‘차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면서 외화자금으로 원리금을 상환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또한 경공업은 해외에서 자재를 수입해야만 했기 때문에 외화유출이 많았다.
국민국가의 재정 측면에서도 외환보유고를 늘리기 위해 좀더 적극적으로 수출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닉슨 독트린 등으로 인해 더 이상 미국의 지원을 받는 것도 어려워져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했다. 그 돌파구로 마련한 것이 바로 1973년의 중화학공업화 선언이었다. 정부는 철강·비철금속·기계·조선·전자·화학 산업 등 총 6개 산업을 통해 중화학공업 중심의 수출주도형 경제를 수립해 수출액 연간 100만달성을 목표하겠다고 선언했다. - P119

앞서 ‘암묵지‘와 ‘형식지‘에 대해 잠시 이야기했다. 작업장 엔지니어의 설계와 선박에 대한 지식은 주로 ‘암묵지‘,
즉 선배에게 전수받은 노하우에 가까웠다. 사내 교육훈련을통해 도면을 그리는 방법, 배의 특성에 대해 배웠지만 그것들을 자신의 새로운 지식으로 축적하고 이론적으로 검증하는것보다는 선배가 하는 방식을 보고 따라 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여겨졌다. 그것이 하나의 문화였던 셈이다. 하지만 랩실 엔지니어들은 공학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설계를 생각했다. 비록 맨땅에 헤딩하는 방법으로 해양플랜트 설계를 익히고 있었지만, 그들은 프로젝트를 마칠 때마다 정확한 ‘히스토리‘를 구축해 ‘백서‘로 만들고싶어 했다. 백서를 토대로 다음번에는시행착오를 방지하고자 했다. 모든 지식을 사내에 축적할 수있는 인프라가 충분히 갖추어져 있었음에도 실제 기록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를테면 후배들은 MSPMS Project나 프리마베라 Primavera 등의 스케줄링 프로그램을 통한 촘촘한 관리를 기대했으나, 그런 관리 방식은 모든 직무와 계층에 전파되기 힘들었다.
해양플랜트 프로젝트 한 기가 끝나갈 때가 되면 엔지니어들은 또 다른 프로젝트에 복수로 투입되었다. A 드릴십공정이 90% 정도 완료될 때쯤에, B 리그선 담당자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모든 호선의 일정이 촉박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이런 방침은 엔지니어들을 이전 작업에서 익힌 모든 것들을 잊어버릴 수밖에 없는 악순환으로몰아넣었다. 기록화는 흐지부지되기 일쑤였고, 신입사원이 다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선배의 경험이라는 암묵지뿐이었다. - P145

조선 3사의 서울 진출은 바로 이런 ‘인재‘들을 데려오기 위한 것으로, ‘인력 유출‘에 대한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방지책 정도로 볼 수 있다. 거제도 근무를 시켜도 거제도 사람이 되지 않고 기어이 셔틀버스를 타고 매주 상경하는 일만 없었어도 이런 방법까지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선박 설계전성기, 특히나 중형 선박 전성기 때만 해도 딱히 그렇게 할필요는 없었다. 현장에서 기술을 숙련하는 것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보다 중요했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LNGC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처럼 연구개발과 정교한 기본설계가 필요한 선박이 등장하면서부터 ‘똑똑한 엔지니어‘에 대한 수요는 점점 증가했다. 해양플랜트에 집중하던 시절에는 아예 조선 3사 사이에 우수한 공대 출신을 ‘입도선매하려는 경쟁이불불을 지경이었다. - P1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