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자 조한혜정은 "공략하기보다 낙후시켜라"라며 대안 운동의 방향을 정의한 바 있다. 그러나 ‘낙후된 곳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남아 있다. 그들은 계속 ‘낙후‘시킨다 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혁신과 창조에 대해 고민하고, 원천 기술을 축적하고자 한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산업도시 거제가 제조업의 실리콘밸리가 될 수 있도록 고민하는것이다. 몰락한 제조업 도시의 대표격인 러스트 벨트Lust Belt 가아니라, 젊은 엔지니어들이 다양한 워크숍을 통해 빚어내는배움과 성장이 산업과 자연스레 연결되어 혁신을 만들어내는새로운 산업도시로 전환되어야 한다. 또한 이 산업 혁신의 에너지가 다시 사람들을 소생시키는 사회 혁신의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표지판은 러스트 벨트로 향하는 길을가리키고 있는 듯하다. - P165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여전히 낙관론을 말한다. 크게두 가지 버전의 낙관론이 떠돌고 있다. 업계 애널리스트들의버전이 그중 하나다. 앞으로 환경 규제가 강화될 것이기 때문에 친환경 선박에 대한 수요가 늘고, 이에 따라 중국에 비해기술력이 좋은 한국 조선산업에 다시금 호재가 올 것이라는분석이다. 두번째 버전은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현재의 규모를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나중에 시장이 살아났을 때 설비가 축소되어 수주를 충분히 할 수 없는 문제가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 P173
우선 첫 번째 버전부터 검토해보자. 2017년 9월 8일UN 산하 국제해사기구(IMO, 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는 선박 환경규제를 강화한다는 기조 발표를 내놓았다. 선박평형수 주입 및 배출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생물 등으로인한 생태계 교란을 막기 위해 살균처리설비 설치를 강제하는 ‘선박 평형수 관리 협약‘을 발효한 것이다. 이제 새로 건조되는 선박은 선박 평형수 처리 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한다. 그러나 협약 발효 전 건조된 선박의 설치 기한은 2024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또한 국제해사기구는 2020년까지 선박에서 배출되는 배기가스로 인한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선박 연료유의 황산화물 함량을 현행 3.5%에서 0.5% 이하로강화하기로 했다. 선주는 스크러버 설치, 기존 연료 가격보다50% 비싼 저유황유 사용, 액화천연가스LNG 연료 선박으로의교체라는 세 가지 대안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 P174
하지만 이 주장은 위기의 뿌리를 모조리 외부에서 찾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말하자면 ‘조선산업은 노동자들의 피땀과 엔지니어들의 노력으로 흥하게 되었지만, 선수금환급보증(RG, 수출입은행이나 시중 은행이 발행)을 제대로 발급해주지않은 선박금융, 인적 자원과 설비 축소만 진행하고 있는 산업은행식 구조조정 때문에 망했다‘는 식이다. 그러나 한국 조선산업이 불황도 없이 2010년대 초반까지 성공신화를 쌓을 수있었던 데에는 사실상 시장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중국 시장이 팽창하면서 만들어놓은 ‘슈퍼 사이클‘이 한국 조선 산업에한 줄기 빛을 가져다준 것이다. 또한 2008년 금융 위기로 슈퍼 사이클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그것을 구제해준 것도 역시나 유가 상승과 심해 유전을 개발하겠다는 오일 메이저들의계획으로 발생했던 ‘해양플랜트 붐‘이었다. 이들의 입장대로라면, 지금 국가가 할 수 있는 것은 극도로 노동집약적인 조선산업에 세금으로 공적자금을 지원하면서, ‘고도‘를 기다리듯좋은 시황이 올 날만을 기다리는 일뿐이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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