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방울새가 한결같은 눈을 반짝이며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나무판은 무척 작아서 내가 빌린 미술 책에 적힌 것처럼 ‘A4 용지보다 아주 조금클 뿐‘이었다. 하지만 제작 연도와 실제 치수 같은 교과서적인 죽은 정보는전혀 상관없었다. 패커스 팀이 4쿼터에서 2점 앞서고 있는데 얼음 같은 싸눈이 경기장에 쌓이기 시작하면 신문 스포츠란의 통계가 상관없어지듯이 말이다. 그림은 그림의 마법과 생생함은,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카메과에 눈송이와 푸르스름한 빛이 소용돌이치는 그 이상하고 비현실적인 순간과 같았다. 그렇게 말없이 바람이 휘몰아치는 순간이면 경기는,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지는 더 이상 아무 상관없고 그저 술만 마시고 싶어진다. 나는 그림을 보면 항상 똑같은 한 지점에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지금도 존재하고 언제까지나 존재할 쏟아지는 찰나의 햇빛이었다. 방울새의 발목에 달린 사슬이 눈에 띄는 것은, 혹은 잠깐 파닥이다가 항상 늘 같은 절망의 자리에 내려앉아야만 하는 것이 살아 있는 작은 생물에게 얼마나 잔인한 삶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주 가끔뿐이었다. - P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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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그러나 이제 자연 생태계가 너무나 많이 파괴되어 이런 미생물이 점점 많이 점점 널리 퍼지고 있다. 나무들이 벌목되고 토종 동물들이 도살될 때마다, 마치 건물을 철거할 때 먼지가 날리는 것처럼, 그들의 몸에 깃들어 살던 미생물들이 주변으로 확산된다. 밀려나고 쫓겨나 서식지를 빼앗긴 기생적 미생물 앞에는 두 가지 길이 놓여 있다. 새로운 숙주(또는 새로운 종류의 숙주를 찾든지, 멸종하는 것이다. 이들이 특별히 우리를 표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너무 많이 존재하고, 너무 주제넘게 침범하는 것이다. 질병의 역사를 연구하는 윌리엄 맥닐 William H. McNeill은 이렇게 말한다. "굶주린 바이러스, 또는 심지어 세균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더라도 수십억 인체는 기가 막힌 서식지입니다. 인구는 최근까지도 지금의 절반에 불과했지요. 약 25~27년 사이에 인류는 두 배로 증가했습니다. 그러니 인체에 침입하여 적응할 수만 있다면 기가 막힌 표적이죠." 바이러스, 특히 게놈이 DNA가 아니라 RNA로 되어 있는 바이러스는 돌연변이가 쉽게 일어나 매우 빨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 - P53

나는 단순한 정의가 좋다. 즉, 신종 전염병이란 ‘새로운 숙주 집단이 처음 노출된 후 발생률이 계속 증가하는 감염병‘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 단어는 물론 ‘감염‘, ‘증가‘, 그리고 ‘새로운 숙주‘다. 그렇다면 재유행 질병이란 ‘장기간에 걸친 역학적 변화에 따라 기존 숙주 집단에서 발생률이 증가하는 질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핵은 재유행 질병으로 특히 아프리카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결핵균이 새로운 기회를 맞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회란 에이즈에 감염되어 면역기능이 완전히 없어진 환자들이다. 황열 역시 감염된 원숭이와 감염되지 않은 사람사이에 이집트숲모기가 바이러스를 옮기는 환경이 다시 조성되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재유행한다. 야생 원숭이를 보유숙주로 모기가 옮기는 또 다른 질병인 뎅기열은 2차대전 이후 동남아시아에서 재유행했다.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도시화의 진행, 여행객의 증가, 부적절한 하수 관리, 비효율적인 모기 방제, 기타 다른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다. - P55

 더욱이 ‘신종 인수공통감염병의 71.8퍼센트는 야생동물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가축은 중요한 역할을하지 않았다. 그들은 말레이시아의 니파와 중국 남부에서 발생한 사스를 예로 들었다. 더욱 주목할 것은 가축에 의한 질병과 달리 야생동물과 관련된 발병 건수의 증가 속도가 갈수록 빨라진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야생동물에 의한 인수공통감염병은 모든 신종 전염병 중 전 세계인들의 보건에 가장 중요하고 점점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 밝혀진 사실로 볼 때, 신종 전염병의 예측 수단으로 야생동물 집단의 건강을 모니터링하고 인수공통감염을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병원체를 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합리적인 결론이다. 야생동물들을 눈여겨보자. 이들을 포위하고, 구석으로 몰고, 몰살시키고, 잡아먹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질병에 걸리는 것이다. - P57

 최종보고서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은 기나긴 동물종의 목록 외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앞으로 연구 방향을 제시하는 세 가지 중요한 가정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첫째, 그들은 초기 연구를 근거로 보유숙주가 포유동물이라고 생각했다. 둘째, 아프리카에서 에볼라 유행은 항상 울창한 숲과 관련이 있었다. 심지어 키크위트처럼 도시 지역의 유행도 숲 속에서 살았던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보유숙주는 숲 속에 사는 동물이라고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셋째, 에볼라 유행은 시간적으로 분산되어 나타났다. 한 번 유행하면 몇 년씩 잠잠하기도 했다. 이런 시간적 패턴은 보유숙주로부터 인간이 감염되는 일이 드물게 일어난다는 의미다.
이렇게 종간전파가 드물다는 사실로부터 다시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즉, 보유숙주 자체가 드문 동물종이거나, 사람과의 접촉이 드물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키크위트 팀이 아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권위있게 서술한 그들의 논문은 1999년 《감염병 저널> 특집 증보판에 여러 편의 에볼라 관련 논문들과 함께 발표되었다. 23년이 지난 지금도 보유숙주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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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넌 어떨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착한 사람들 같더라, 아는 것도아주 많고, 아일랜드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은 이런 사건을 많이 봤다. 영국과 파리 공항의 여행 가방 폭탄 사건이랑 탕헤르 노천카페 사건에 대해서 얘기해주더라. 너도 알지, 수십 명이 죽었는데 폭탄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은 하나도 안 다쳤던 거. 그 사람 말로는 꽤 이상한 현상들이 있었다나 봐. 특히 낡은 건물에서는 폐쇄된 공간, 울퉁불퉁한 표면, 반사물질 - 예측하기가 정말 힘들지. 음향학이랑 똑같대. 폭발파는 음파와 같아서 튀고 굴절한다더군. 때로는 몇 킬로미터나 떨어진 가게 창문이 깨지기도 하고. 아니면-" 호비가 손목으로 눈앞을 가린 머리카락을 넘겼다. "때로는 가까운 곳에, 그 사람 말로는 방패 효과라는 게 생긴대. 폭발 지점과 아주 가까운 것들은 무사한 거지. IRA가 숨어 있는 시골집이 폭발로 날아가도 찻잔은 깨지지 않는다거나, 너 같은 상황 말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날아온 유리 조각이나 잔해에 맞아서 죽지. 아주 멀리까지 날아갈 때도 있다더구나.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유리 조각이나 돌멩이는 총알만큼이나 강력하지." - P178

"기분이 왜 나아졌는지 알겠니?"
"아뇨, 별로요" 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아졌다‘는 말이 적당한 표현도 아니었다. 내 기분을 나타낼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오히려 말할 거리도안 되는 사소한 일들-학교 복도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 과학 실험 시간에 수조 안을 재빨리 기어가는 도마뱀붙이- 때문에 순간적으로 즐거워졌다가 금방 울고 싶어진다는 것이 맞는 말이었다. 러시아워의 차들이 줄어들면서 밤이 다가오고 도시는 점차 한석해지면 가끔 모래를 실은 축축한 바람이 창문을 통해 파크가에서 불어 들어왔다. 비가 오고 나무에는 잎이 났고 봄이 깊어져 여름이 되어갔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경적의 쓸쓸한 울음소리와 젖은 보도의 축축한 냄새에는 강렬한 느낌이 있었다. 인파 속 포장음식을 든 뚱뚱한 남자들과 조용하고 외로운 비서들이 지나가고 있을 것같았다. 살아가기 위해서 억지로 고군분투하는 존재의 초라한 슬픔이 사방에 있었다. 몇 주 동안 나는 얼어붙은 채 봉인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샤워를하면서 물을 최대한 세게 틀고 소리 없이 울부짖었다. 모든 것이 아프고 고통스럽고 혼란스럽고 부당하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얼음같이 차가운 물속에서 얼음이 깨진 틈으로 끌려나와 햇볕과 불타는 추위를 마주한 것 같았다. - P198

피파가 고개를 돌려 이어폰 한쪽을 빼서 나에게 주었다. "너도 같이 듣자고"
나는 침대 위 피파 옆에 앉아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천상의 화음, 천국에서 보내온 라디오 신호인 것처럼 인간의 것 같지 않고 가슴을 꿰뚫는 소리였다.
우리는 마주 보았다. "이게 뭐야?" 내가 말했다.
"으음-"피파가 아이팟을 보았다. "팔레스트리나."
"아."하지만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내가 음악을 듣는 것은 순전히 비 오는 날의 어둑한 빛, 창가의 하얀 나무, 천둥, 피파 때문이었다. - P208

 그리고 피파의 입맞춤의 맛ㅡ달곰씁쓸하고 낯선맛은 흔들흔들 버스를 타고 졸면서 돌아오는 내내 나를 떠나지 않았고, 슬픔과 사랑스러움과 함께 녹아들어서 반짝이는 아픔이 되어 바람이 휩쓰는 도시 높이, 나를 연처럼 날렸다. 내 머리는 비구름 속에, 내 마음은 하늘에 있었다. - P213

스완슨 선생님이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러고는 숄이 걸쳐진의자에 기대어 앉으며 말했다. "시오, 작고 일상적인 일들이 우리를 절망에서 건져낼 수 있다는 걸 알면 넌 아마 놀랄 거야. 하지만 누구도 대신 해줄수는 없어 열린 문을 찾아야 하는 사람은 바로 너야."
선생님이 좋은 의도였다는 것은 알지만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사무실에서 나왔고 분노의 눈물 때문에 눈이 따끔거렸다. 저 늙다리가 뭘 안다는 거야? 스완슨 선생님에게는 가족이 정말 많았다. 벽에 걸린 사진을 보면 자식이 열 명에 손자가 서른 명이었다. 스완슨 선생님은 센트럴파크웨스트에 커다란 아파트가 있고 코네티컷에 집이 한 채 있었기 때문에 의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지지대가 부러져서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 어떤느낌인지 전혀 몰랐다. 스완슨 선생님이 히피 느낌이 나는 팔걸이의자에기대어 앉아서 과외활동과 열린 문에 대해서 중얼거리기란 정말 쉬웠다.
하지만 뜻밖에도 문이 정말로 열렸다. 그것도 정말 생각지 못했던 호비아저씨의 작업장에서 의자 수리를 돕는 것(기본적으로 아저씨가 좌석을 뜯어서 벌레가 갉아 먹은 부분, 성급하게 수리한 부분, 덮개 아래 숨겨진 그밖의 여러 끔찍함을 보여주는 동안 옆에 서 있는 것이었다)‘은 곧 일주일에 사나흘 정도 학교가 끝난 오후에 내가 이상할 만큼 몰입하는 두세 시간이되었다. 나는 병에 라벨을 붙이고, 토끼 가죽 아교를 혼합하고, 서랍 부품들(성가신 조각들을 정리하고, 때로는 호비 아저씨가 선반기로 의자 다리 다듬는 모습을 구경만 했다. 철문을 닫아두어서 가게는 늘 어두웠지만 가게 뒤의 가게에서는 괘종시계가 똑딱거리고 마호가니가 빛나고 식탁 위로빛이 들어와 금빛 연못을 만들었고, 진귀한 동물원 같은 아래층의 삶은 계속되었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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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헨드라Hendra 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그 바이러스가 무시무시한 신종 병원체 가운데 처음으로 발견된 것은 아니다. 가장 두려운 존재도 아니다. 다른 병원체와 비교할 때 오히려 사소해 보일 정도다. 숫자로 본다면 이 바이러스의 사망률은 처음에도 낮았고, 지금도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지리적 분포 또한 좁은 지역에 국한되었고, 나중에발생한 증례들도 넓은 지역으로 확산되지는 않았다. 처음 등장한 곳은 1994년 오스트레일리아 브리즈번Brisbane 이었다. 증례는 2건이었고 그중 1건만 치명적이었다. 잠깐만,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2건의 인간증례와 1건의 인간 사망자가 발생했다. 병을 앓다 죽은 증례가 10건을훌쩍 넘지만 희생된 것은 모두 말이었다. 물론 말에 대해서도 알아볼 것이다. 차차 얘기하겠지만 동물의 질병이라는 주제와 인간의 질병이라는 주제는 서로 꼬여 하나의 실로 얽힌 두 가닥의 섬유라고 할수 있기 때문이다. - P17

인수공통감염병이란 사람에게 전염되는 동물의 감염병을 가리키는말이다. 이런 병은 생각보다 많다. 우선 에이즈 AIDS가 있다. 독감은 또하나의 큰 범주다. 이런 질병들을 하나로 묶어 생각해보면 인류도 동물종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다윈주의의 오래된 진실(그가 말한 진실 가운데 가장 어둡고 가장 잘 알려졌지만 끊임없이 망각되는), 즉 인류의 기원과 혈통과 질병과 건강은 다른 동물종과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진실을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된다.  - P19

신종 바이러스를 찾는 일은 질병을 보다 넓은 맥락에서 이해하는데는 물론, 헨드라에서 벌어진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해결하는 데도 첫 단추를 꿴 것에 불과했다. 두 번째 단추는 바이러스의 기원을 추적하는 일이었다. 세상을 활보하며 말과 사람들을 죽이기 전에 바이러스는 어디에 있었을까? 세 번째 단추는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것이었다. 바이러스는 어떻게 해서 은밀한 서식처로부터 세상에 나왔을까? 왜 하필 헨드라였을까? 왜 지금인가? - P25

포식자란 외부로부터 먹잇감을 찾아 잡아먹는 비교적 큰 맹수들이다. 반면 병원체(바이러스 등 질병을 일으키는 매개체)는 내부로부터 먹잇감을 찾아 잡아먹는 비교적 작은 맹수들이다. 감염병이라고하면 처참하고 무서운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상적인 조건에서그것은 사자가 영양이나 임팔라를 잡아먹거나, 올빼미가 쥐를 잡아먹는 것과 한치도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상황이 항상 일상적인 것은 아니다.
포식자가 익숙한 먹잇감, 즉 특별히 선호하는 표적이 있듯이 병원체도 마찬가지다. 또한 사자가 때로는 정상적인 행동에서 벗어나 영양 대신 소를, 임팔라 대신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있듯이 병원체또한 새로운 표적으로 옮겨가는 일이 있다. 사고는 생기게 마련이다. 일탈은 항상 일어난다. 상황은 늘 변하며 상황이 바뀌면 위기와 기회도 변한다. 병원체가 공격 목표를 동물에서 사람으로 바꾸고, 사람의 몸속에 자리잡는 데 성공하는 경우 때로는 질병이나 죽음이 우리를 찾아온다. 이런 과정을 인수공통감염병이라고 한다. - P26

반면, 천연두는 인수공통감염병이 아니다. 천연두 바이러스는 자연적인 조건에서 오직 인간에게만 감염을 일으킨다. (실험실적 조건은 또 다른 문제다. 백신을 연구하는 실험실에서는 때때로 영장류나 다른 동물종을 의도적으로 감염시키기도 한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국제보건기구WHO에서 전 세계적으로 전개한 천연두 퇴치 운동이 1979년에 성공을 거둔 이유다. 천연두 바이러스는 인간의 몸(또는 세심하게관찰 중인 실험동물) 외에는 어디서도 살거나 번식할 수 없으므로 숨을 곳이 없었던 것이다. 수천 년간 인간을 괴롭히며 특히 20세기 전반에 유럽과 북미에서 무시무시한 유행을 일으켰던 소아마비도 마찬가지다(위생이 개선되어 어린이들이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시기가 늦어졌다는 사실과 모순된다).  - P28

회의 중 한가지 아이디어가 나왔다. 생물지리학을 고려하자는 것이었다. 보유숙주(또는 숙주가 어떤 동물(들)이든 반드시 맥케이와 캐논 힐 양쪽에존재해야 했다. 일년 내내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8월과 9월을 포함하는 기간 중에는 존재해야 했다. 그렇다면 그 동물은 퀸즐랜드 내넓은지역에 분포하거나 넓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살 터였다. 브레인스토밍에 참여한 사람들은 두 번째 가능성 쪽으로 기울었다(지역별로 특정바이러스 균주가 분포하지 않는다는, 즉 바이러스가 이동하면서 서로 섞인다는 유전학적 증거도 한몫했다). 보유숙주는 이동성이 뛰어나 퀸즐랜드 해안을 따라 수백 킬로미터를 돌아다닐 수 있는 동물이라야했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용의자는 조류와... 박쥐로 좁혀졌다.
필드와 동료들은 두 가지 이유로 일단 조류 가설을 기각했다. 첫째, 조류에서 종간장벽을 뛰어넘어 인간을 감염시키는 파라믹소바이러스는 알려진 바 없었다. 둘째, 바이러스가 인간과 말을 감염시킨 것으로보아 포유동물이 보유숙주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생각했다. 숙주가 유사한 동물종일수록 병원체가 종간장벽을 뛰어넘기가 쉽기 때문이다. 물론 박쥐는 포유동물이다. 넓은 지역을 돌아다닌다. 더욱이 이미적어도 한 가지의 무시무시한 바이러스를 옮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바로 광견병 바이러스다. 당시 오스트레일리아는 광견병이 없는 지역으로 간주되긴 했지만 말이다(이후 많은 박쥐-바이러스-인간 연결관계가 밝혀졌고, 그중 일부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발견되었다. 하지만 1996년 당시에는 이런 연결고리가 뚜렷하지 않았다). 회의가 끝난 후필드는 새로운 임무를 지니고 돌아갔다. 박쥐를 주목하라! - P39

증식숙주란 몸속에서 바이러스나 기타 병원체가 대량 증식한 후 엄청난 양으로 외부에 방출되는 동물종을 말한다. 이렇게 병원체에게 우호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숙주의 생리적 기능, 면역계, 오랜 진화과정속에서 특정 병원체와 상호작용해 온 역사, 기타 많은 인자들이 작용한 결과다. 증식숙주는 보유숙주와 불운한 희생자 사이에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최종적으로 다른 동물종을 감염시키려면 훨씬 많은 병원체나 훨씬 밀접한 접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문턱값(역)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증식숙주는 감염에 대한 문턱값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몸속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바이러스를 만들어 쏟아낸다 그 양이 너무나 엄청나기 때문에 문턱값이 훨씬 다른 동물종을 감염시틸 수 있는 것이다. - P46

그건 그렇다 치고 왜 하필 말이었을까? 왜 캥거루나, 웜뱃이나 코알라나 포토루potorao * 가 아니었을까? 말이 증식숙주 역할을 했다면 분명한 사실 하나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말은 오스트레일리아 토종 동물이 아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동물이다. 겨우 두 세기 전 유럽인들이정착하면서 데리고 들어온 외래종이다. 분자진화학자들이 게놈을 분석하여 얻은 진화상의 흔적에 의하면 헨드라는 오래된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높다. 먼 옛날 사촌 격인 모빌리바이러스에서 갈라져나와 장구한 세월 동안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그저 조용히 살았을 것이다. 박쥐 또한 오래 전부터 그 땅에서 살았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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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들 내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만큼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었을까? 나는 엄마가 너무 그리워서 죽고 싶었다. 물에 빠져 공기를 갈망할 때처럼 맹렬하고 육체적인 갈망이었다. 나는 잠 못 이룬 채 침대에 누워 제일 좋았던 엄마 기억을 떠올리려고, 엄마를 잊지 않도록 마음속에 박제해두려고 애를 썼지만 생일이나 행복했던 때보다는 엄마가 죽기 며칠 전에 밖으로 나가던 나를 불러 세워서 교복 재킷에 묻은 실밥을 떼어주었던 일 같은 것만 계속 생각났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가장 뚜렷하게 남은 엄마의 기억이었다. 찌푸린 눈썹, 나를 향해 다가오는 손이 정확히 어떻게 움직였는지, 그 모든 것이 말이다. 또 나는 꿈과 잠 사이를 불안하게 떠다니다가 갑자기 머릿속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서 벌떡 일어나 앉은 적도여러 번 있었다. 사과 하나만 던져 줄래?라든지 이건 단추가 앞에 오는 걸까, 뒤에 오는 걸까?라든지 소파 상태가 정말 엉망이야처럼 언젠가 엄마가 했을 법하지만 실제로 기억에는 없는 그런 말이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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