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7월에 엔도 정무총감은 몽양을 다시 불렀다. 보호관찰소장 나가사키와 백윤화 판사가 동석하였다. 엔도는 지난 문제에 대한 모양의 의견을 듣고, 다음으로 조선의 치안과 학생 사상격화에 대한 대책을 물으며 치안유지에 나서달라고 강청했다. 몽양은 성의 있는 답변으로 그들의 감정을늦춰주며, 공정한 이론으로 그들이 더 강요하지 못하게 누르면서 우선 치안에 대하여 대답했다.
"치안은 여운형이나 누구나 개인적으로 할 수 없다. 조선인이 다 움직여주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공격은 전문적군대가 하는 일이지마는 방위는 소인(人)인 본토 거주민이 하는 것이니, 각자 자기의 처자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향토를 지키라는 명령 일하에 일치단결하여 위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방위를 위하여서는 본토 거주민이무장을 하는 것이 전쟁상 예가 많다. 독소전쟁에서 스탈린그라드 시민의 활동은 정규군보다 뛰어났었다. 조선에서도조선인 청년부대를 무장시키고, 지휘자로부터 병졸까지 순수한 조선인으로 편성하는 동시에 조선인을 참모로 하고, 육군사관학교 출신과 만주국 내 조선인 장교로 지휘케 하고, 조선인 가운데 사회 유력자를 선발하여 조선방위위원회를 조직하고 전 책임을 지우면 좋을 것이다. 조선인들의 사상을 의심만 하고 실행을 주저하는 것은 정치역량의 약한면만을 드러내게 되는 결과를 빚는다." - P347

몽양은 일본의 패망에 따르는 과도정권 수립을 구상했다.
과도정권 수립은 동서고금을 통해 볼 때 독립운동단체와 독립투쟁 공로자들이 상의해서 세우는 것이 역사상 통례다.
몽양은 이런 원칙적 생각을 가지고 먼저 국내의 독립운동동지들을 규합하여 준비하고 해외의 애국투사들을 맞아들여 혼연일체의 과도정권을 세울 계획이었다.
그런데 당시 국내에는 ‘건국동맹‘ 이외의 다른 단체는 조직이 파괴되어 일부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지하운동을 하든가 혹은 투옥 중에 있든가 또는 운동을 중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하여 조직체를 잃은 개인 독립운동가들 가운데에는 몽양 산하에 들어와서 활동한 사람도 몇몇 있었다. 몽양은 ‘건국동맹‘이 발기자가 되어 동맹강령대로 각층 각파를망라한 임시과도정부 수립을 구상했다. - P349

몽양은 연합군이 서울에 들어왔을 때 제시할 4가지 제안을 8월 11일경에 이만규에게 말했다. 4가지 조건은 다음과같다.

(1) 조선의 해방은 연합군의 선전의 결과라고 보아 감사한다. 그런데 조선민족 자체도 합병 전후부터 금일까지 맹렬히 싸워온 것을 해내 · 해외 독립운동의 예를 들어 말하고, 조선인 자체의 피흘린 공이 큰 것을 저들에게 인식시켜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겠다.
(2) 독립정권 수립에 내정간섭을 하지 말고 엄정중립을지켜 방관하는 자세를 취하여 달라고 주장하겠다.
(3) 국내 각 공장 시설은 일본인 것이라 하여 적산으로돌려서는 안 된다. 우리 노동자의 피땀과 직접 · 간접으로조선인의 부담으로 성립된 것이므로 당연히 조선인의 재산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겠다.
(4) 치안은 조선인에게 맡겨달라고 주장하겠다.

이렇게 몽양은 첫 외교의 강령을 구상해두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의 자주적 역량과 자존심을 보이고, 사대적이고 아첨하며 비굴한 외교의 민족적 과오를 범하지 않으려는 몽양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 P350

모양은 엔도를 만난 경위를 이렇게 설명했다. 엔도가 비장한 어조로 "일본은 패배했다. 오늘이나 내일 중 공식으로발표될 것이다. 여 선생은 치안을 맡아달라. 이제부터 우리의 생명은 그대에게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몽양은 다섯 가지 조건을 제시하였다.
(1) 전 조선의 정치범 · 경제범을 즉시 석방하라.
(2) 집단 생활지인 경성의 3개월분(8~10월) 식량을 확보하라.
(3) 치안유지와 건설사업에 아무런 구속과 간섭을 하지말라.
(4) 조선의 추진력인 학생의 훈련과 청년의 조직화에간섭하지 말라.
(5) 조선 내 각 사업장에 있는 일본 노무자들을 우리의 건설사업에 협력케 하라. - P357

16일 오후 모양의 얼굴이라도 보겠다는 학생·청년, 기타군중 수천 명이 휘문중학교 운동장에 모여 몽양을 청하는것이었다. 모양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휘문중학교 운동장으로 나갔다. 우레 같은 열광적 박수 속에 몽양은 군중을 격려하는 유명한 연설을 했다.
"조선민족의 해방의 날은 왔다. 어제 15일에 엔도가 나를불러가지고 ‘과거 두 민족이 합하였던 것이 조선에게 잘못됐던가는 다시 말하고 싶지 않다. 오늘날 나누는 때에 서로좋게 나누는 것이 좋겠다. 오해로 피를 흘리고 불상사를 일으키지 않도록 민중을 지도하여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나는 다섯 가지 조건을 요구하였다. 우리 민족해방의 제일보를 내딛게 되었으니 우리가 지난날의 아프고 쓰리던 것을이 자리에서 다 잊어버리고 이 땅에다 합리적 · 이상적 낙원을 건설하여야 한다. 이때는 개인적 영웅주의는 단연 없애고 끝까지 집단적으로 일사불란의 단결로 나아가자! 머지않아 연합군 군대가 입성할 터이며, 그들이 오면 우리 민족의 모양을 그대로 보게 될 터이니 우리들의 태도는 조금도 부끄럼이 없이 하자. 세계 각국은 우리들을 주시할 것이다. 그리고 백기를 든 일본의 심흉을 잘 살펴자. 물론 우리는 통쾌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에 대하여 우리들의 아랑을 보이자 세계문화 건설에 백두산 밑에서 자라난 우리민족의 힘을 바치자. 이미 전문·대학·중학생의 경비대원이 배치되었다. 이제 곧 여러 곳으로부터 훌륭한 지도자가 들어오게 될 터이니 그들이 올 때까지 우리들의 힘은 적으나마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P368

8월 16일 오후 3시, 휘문중학교 강당에서 일반체육 무도계 대표 시내 중학교 이상 체육교사와 학도대표들로 ‘건국치안대‘를 조직하고 풍문학교에 총사령부를 두고, 대장에장권, 사무국장에 정상윤, 총무부장에 송병무 등 각 부서와책임자를 결정하였다.
건국치안대의 임무수행의 개황을 보면,
1. 청년 학생 2천여 명을 동원하여 서울의 치안확보에진력하도록 하고,
2. 지역별 직장별 치안대를 조직하여 각각 치안을 유지4하고, 중요 자재와 기관을 확보케 하며 특히 수원지를 보호하고,
3. 전기회사 · 철도국과 긴밀히 연락하여 생산과 교통원활에 노력하고,
4. 전문 · 대학생을 선발해 각 지방에 파견하여 지방치안대를 조직케 하는 것이었다.
한편 연합군의 진주가 예상 외로 늦어짐에 따라 일본인들은 반동화하여 그들의 지배하에 있던 모든 물자를 소각 · 파괴 · 분산 · 매각하는 등 경제혼란을 야기시키고 있었다. 또한 일본인들은 친일파와 악질배들을 적극 원조하고 그들에게 무기를 공급하여 치안과 국내 통일을 방해하였다. 여기에 대하여 치안대는 몸에 촌철을 지니지 않고 다만 애국열성만으로 일본인과 악질배들의 음모와 파괴를 분쇄하여 미군이 진주할 때까지 국내 치안을 담당하였다. - P372

다년간 중국에 있었고 [중국의 붉은 별]이라는 소설을 지어 작가로 이름난 미국인 신문기자 에드거 스노(Edga Snow)는 해방 후 조선에 와서 2개월간 머무르면서 정세를 알아보고 귀국한 후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지에 다음과 같은글을 게재했다.

미국은 아무 준비가 없이 조선에 상륙하였다. 그러나 조선에는 건국준비위원회가 있었다. 곧 정치적 준비가 있었다. 미국인이 만일 건국준비위원회를 살렸더라면 조선의 건설은 더 신속하고 유리하였을 것이다.

외국인에게 비친 건국준비위원회의 존재였다. - P376

이번에는 몽양이 직접 송진우를 찾아갔다.
"그대 보기에 나의 출발에 잘못된 점이 있더라도 국가의 큰일이니 허심탄회하게 나와서 대중의 신망을 두텁게 하고 대사에 차질이 없게 하자"는 모양의 말에도 고하는 "경거망동을 삼가라, 중경 임시정부를 지지하여야 한다"고 고집할뿐이었다.
이때 일부 청년층에서는 "민족적 대사업에 합작을 거절하고 분열을 꾀하는 고하와 왜 타협을 억지로 하려는가?" 하며 고하의 존재를 몽양이 너무 과대시한다고 비난하는 소리도 일어났다. 그러나 몽양은 대동일치를 위하여서는 내 성의를 다하겠다고 하며 노력하였다.
몽양은 처음부터 좌우익의 분열을 방지하려고 노력하였다. 국제적으로 눈이 어두운 극우지사들과 과격한 좌익운동가들 사이에는 사상의 거리가 너무 멀었고, 또 개인적으로도 접촉이 없었다. 만나기 전에 불신과 의심만을 가졌기 때문에 이들이 합작하기란 퍽이나 어려웠다. 그러나 몽양은 이의 중간사역(中間使役)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공산당원 중에는 몽양이 걷는 노선을 잘 이해하고 협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일부 극우세력은 임정 운운하며 비타협적으로 나왔다. - P379

‘건준‘이 개편된 지 불과 이틀 후인 9월 6일, 난데없이 ‘조선인민공화국‘이라는 것이 등장함으로써 ‘건준‘은 그 다음날인 9월 7일 부득불 해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몽양은 외교적관계로 보아서는 ‘건준‘을 존속시켜 그를 중심으로 외교를하는 것이 유리하리라고 보았지만 다수의 의견에 따라 해체하고 말았다.
‘건준‘이 불과 20여일의 단명으로 끝나기는 하였지만, 해방 직후 극도로 혼란한 시기에 처하여 치안유지와 민심안정에 이바지했다는 사실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건준‘이 숨쉰 잠깐은 이보다도 더 근원적인 중요한 의의가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그것은 한국 민족이 자치할 수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과 그 능력의 표시가 강압적이거나 타율적이 아닌 자발적이요 자율적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 P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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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눈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홍채 속의 멜라닌은 일종의 주머니 같은 구조물인 멜라닌 과립 속에 존재하는데, 파란 눈을 가진 사람은 멜라닌 과립 속에 멜라닌이 거의 들어 있지 않아 멜라닌에 의한 색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빛이 홍채에 유입되는 경우, 멜라닌 과립의 미세한 구조에 의해 파란빛이 더 많이 산란되어 눈이 파랗게보이는 것이다. 백인들 중에는 종종 어릴 때 파란 눈이었다가 커서는 갈색 눈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어릴 때는 멜라닌 세포의 기능이 활발하지 못해 홍채 속의 멜라닌 과립이 비어 있어서 파랗게 보이다가 성장하면서 멜라닌이 채워져 눈 색깔이 갈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 P123

홍채, 눈의 조리개
홍채의 1차적 역할은 동공의 크기를 적절히 조절하고 눈 안으로 들어가는 광량을 조절해 우리가 제대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홍채가만들어낸 구멍, 즉 동공은 눈 내부로 빛이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이다. 눈의 내부로 들어가는 빛이 너무 약하면 사물을 구별할 수 없고, 반대로 빛이 너무 강하면 눈이 부셔서 역시나 사물 구별이 힘들다. 따라서 빛이 약하면 홍채를 열어 동공을 크게 하고, 빛이 강하면 홍채를 닫아 동공을줄여야 눈이 본래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 P124

이처럼 홍채가 중요한 것은 동공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동공의 색은 누구나 검다. 정확히 말하면 동공 그 자체는 원래 투명하지만, 눈 내부는 일종의 암흑상자이기 때문에 내부의 어두운 그림자 때문에 검게 보이는 것이다. 고유한 눈 색을 만드는 것이 동공을 제외한 홍채라는 것은컬러 렌즈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컬러 렌즈라고 해서 모두 색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동공이 위치한 가운데 부분은 투명하고 가장자리 부위만 색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파란색 컬러 렌즈를 착용하더라도 세상이 파랗게 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투명해서 내부가 비치는 동공의 이런 특징은 순식간에 귀여운 아기를 사탄처럼 보이게 만드는 적목현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는 어두운 곳에서 플래쉬를 터트려 사진을 찍을 경우, 이미 열려있던 동공 안쪽에 순간적으로 강한 빛이 들어오면서 투명한 동공을 통해 눈 내부의 혈관이 직접 비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때의 붉은 눈은 눈동자 가운데에 동그랗게 만들어진다. 사람의 눈은 홍채 주름이 원형으로 배치되어있어 동공이 동그란 모양을 띠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고양이의 경우에는 세로로 길쭉한 동공을 가지지만, 양이나 염소의경우 가로로 째진 동공을 가지기 때문이다 - P125

동공의 모양은 동물의 습성과 관계가 있다. 미국과 영국의 연구팀은 동물 214종의 동공을 분석한 결과 양이나 소, 말 등 초식동물은 좌우의 시야를 넓혀 사냥꾼을 감시하고 눈부심을 방지하고자 가로로 길게 째진 동공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발표했다. 초식동물의 가로 눈이 정찰용이라면, 고양이의 세로로 길쭉한 동공은 감시용이다. 고양이는 세로로 긴 동공을 가지고 있다. 아주 어두운 곳에서는 이 동공을 크게 확장시켜 눈동자 전체가 동공으로 보일만큼 크게 확장시킬 수도 있고, 빛이 있는 곳에서는 가늘게 좁혀서 초점을 맞추기 용의하다. 게다가 세로형 동공과 가로형 눈꺼풀의 조합은 눈꺼풀을 내리는 위치를 조절하여 아주 세밀하게 빛의 유입을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다. 거의 눈을 감고 있는 듯한 경우에도 동공이 완전히 덮이지 않아 움직임을 감시하는 데 매우 유리한 눈이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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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국동맹 건설

이로부터 며칠 후인 8월 10일, 경성 경운정 삼광한의원의 현우현(玄又玄) 집에 여운형 · 조동호 · 현우현·김진우(金振雨• 이석구李錫玖) 등이 모여 비밀결사인 ‘조선건국동맹‘
을 정식으로 창건했다. 백발이 성성한 노장들은 희생적 결사와 승리의 희망에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이날 그들은, 불명(不名,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불거(不居, 거처를 말하지 않는다), 불문(不文, 문서를 남기지 않는다)의 3불맹서(三不盟誓)를 철칙으로 삼고 나아가기로 했다. 일부 희생이 생겨도 연루의 피해가 없게끔 체제를 갖추도록 하고, 친일분자와 민족을 반역한 자만을 제외하고 민족적 양심이 있는 인사를 총망라하여 회사 · 학교 · 대중단체 · 농촌 · 공장 등에 하부조직을 두기로 했다.
그런데 이 역사적 출발에서 최초의 모임에는 노장들뿐으로 소장들은 한 사람도 끼여 있지 않았다. 또 몽양과 깊은관계에 있는 이임수도 빠져 있었다. 이유인즉, 만에 하나라도 비밀이 탄로나는 경우 희생자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소장들은 앞날을 위해 아끼고 보호하자는 몽양의 원대한 조직적 배려 때문이었다. - P327

강령은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 1) 각인 각파를 대동단결하여 거국일치로 일본 제국주의 세력을 구축하고 조선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할 일
(2) 반추축 제국과 협력하여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조선의 완전한 독립을 저해하는 일체 반동세력을 박멸할 일
(3) 건설부 면에서 일체 시위(施爲)를 민주주의적 원칙에 의거하고 특히 노동대중의 해방에 치중할 일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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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상당히 많은 뇌의 영역들이 오로지 시각이라는 감각 하나에 할당되어 있음에도 세상은 워낙 변화무쌍한지라 뇌는 눈에서 오는 모든정보들을 빠짐없이 처리하기 어렵다. 그래서 뇌가 선택한 전략은 선택과 집중, 적당한 무시와 엄청난 융통성이다. 우리는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것은 눈에 뻔히 보여도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칠 수 있으며, 쥐꼬리만 봐도 벽 뒤에 숨은 쥐의 전체 모습을 그릴 수 있고, 빨간색과 파란색이 주는 색의 스펙트럼에서 그 색이 주는 이미지와 의미도 읽어낼 수 있다. 우리의 눈은 때론 부분에서 전체를 볼 수 있을 만큼 뛰어나기도 하지만, 종종 눈 앞에 뻔히 있음에도 집중하지 않으면 못 볼 만큼 멍청하기도 하다는 뜻이다.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정보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제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서 편식하는 것은 뇌의 보편적인 특성으로, 다른 감각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엄마의 잔소리를 코앞에서 흘려듣는 십대 아이의 귀에 달린 엄청난 필터링 능력은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눈앞에서 딴전을 피우는 애들의 귀에, 아니 뇌에 소리를 흘려 넣고 싶다면 일단은 그들의 귀에 달콤한 말로 먼저 시작하는 것이 그나마 효과적이다. 눈앞에 뻔히 보이는 고릴라를 보지 못했던 사람은 ‘눈이 삐거나‘ 얼빠진 사람이 아니라, 하기 싫은 숙제를 슬쩍 미뤄버리는 아이처럼 중요하지 않은 시각적 정보는 은근슬쩍 뭉개버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뇌활동 결과이다. - P71

원뿔세포가 색을 보게 만들어준다는 의미는 뒤집어 말하면, 원뿔세포가 아예 없거나 혹은 있더라도 제 기능을 못하면 색을 볼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이런 경우를 ‘색각이상"이라고 한다. 만약 원뿔세포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면 색을 전혀 구분할 수 없어 세상이 온통 흑백 TV처럼 보이는 완전색각이상(전색맹)이 나타난다. 이는 매우 드물게 나타나고, 대개는 극도의 시력 저하와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서, 색각이상 이전에 저시력으로 인해 더 큰 고통을 받곤 한다.
이보다 흔히 나타나는 것은 이색형 색각이상으로 삼색 중 하나를인식하는 원뿔세포가 문제가 있어 세상을 두 가지 색의 혼합으로만 인식하는 증상을 말한다. 이는 다시 인식하지 못하는 색에 따라 제1 색각이상(적색원뿔세포 결함, 적색맹), 제2색각이상(녹색원뿔세포 결함, 녹색맹), 제3색각이상(청색원뿔세포 결함, 청색맹)으로 나뉜다. 이 밖에도 세 가지 원뿔세포가 모두 존재하고는 있지만, 한 가지 원뿔세포가 다른 것들에 비해 민감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아예 해당 빛의 색을 볼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세심한 색의 구별은 되지 않는 이상 삼색형 색각도 있다. 이들 역시도 민감도가 떨어지는 종류에 따라 제1색약(적색약), 제2색약(녹색약), 제3색약(청색약) 등으로 나뉜다 - P82

극히 드물긴 해도 4종류의 원뿔세포를 가진 사람들도 세상에는 존재한다. 이들을 ‘사색형 색각tetrachromacy‘이라고 하는데, 이들의 눈은 보통 사람들이 7가지로 인식하는 무지개에서 10가지 색깔을 보며, 1억 가지의 색을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세상은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찬란하고 복잡할 듯싶다. 참고로 현재까지알려진 사색형 색각을 가진 이들은 모두 여성이다. 이는 대부분의 색각이상이 남성에게 나타난다는 것과 함께 성별에 따라 다르게 유전되는 반성 유전의 특성인 것으로 추측된다. - P83

1990년대 초반, 이들 연구자들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여느 때처럼 원숭이들의 신경 반응을 살피던 연구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한 원숭이의 5 영역에 꽂힌 전극이 반응하고 있었다. 이 신호에 따르면 원숭이는 지금 손을 움직이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 원숭이는 우리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원숭이 뇌의 F5 영역은 운동 피질이기 때문에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신호가 발생하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장치가고장난 것일까, 이상하게 생각한 연구자들은 원숭이를 관찰하다가 원숭이의 시선에서 해답을 찾았다.
원숭이는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었지만, 두 눈동자는 건너편 우리에서 땅콩 그릇을 향해 허우적대는 다른 원숭이의 손동작에 고정되어 있었다. 실제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움직이는 것을 보고만 있는데도 운동 피질의 신경이 활성화된다니, 시각적 정보와 운동 피질이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시각과 운동 사이의 비밀스러운 연결의 열쇠는 나와 다른 개체의 행동을 ‘보고‘ 이를 모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거울 신경세포‘가 쥐고 있었다.
이후 원숭이를 이용한 몇 번의 실험 끝에, 연구자들은 원숭이의 뇌속에는 타자의 행동을 보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끼는 신경세포가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이런 신경세포에 ‘거울 신경세포 mirror neuron‘ 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거울을 보고 얼굴을 찌푸리면 거울 속의 내 모습 역시도 똑같이 찌푸린 얼굴로 응수하는 것처럼, 타자의 행동이나 감정을 보는 것을 통해 이를 내가 겪는 일처럼 공감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신경세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 P92

눈이 마음의 창이라면 각막은 그 창의 유리와 같은 기관으로 눈의 가장바깥쪽에서 눈을 감싸고 있는 외피의 일종이다. 하지만 대개의 창이 외벽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지 않듯 눈의 외피인 각막 역시 안구 앞쪽의 1/6 만을 차지하며, 나머지 5/6은 공막이라고 불린다. 공막은 치밀한 섬유조직으로 흰색을 띄는데, 홍채를 제외한 눈의 대부분이 흰색으로 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 공막이 흰색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유해보면 눈은 공막이라는 흰 벽에 뚫린 투명한 각막의 창으로 세상과 연결된 셈이다.
각막은 눈이라는 창의 유리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좋은 유리창의 특성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첫 번째, 유리창은 외부를 잘 내다볼수 있도록 맑고 깨끗해야 한다. 적어도 각막은 첫 번째 조건만큼은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각막은 우리 몸에서 가장 투명한 조직이다. 각막이 이렇게 투명한 것은 각막을 이루는 성분들의 구조가 균일하고 혈관이 없기 때문이다. 눈을 자세히 살펴보면 흰자에서는 붉은 실핏줄을 찾는 것이 어렵지않지만, 눈동자 부분에서는 혈관이 보이지 않는다. 검은색이어서 가려져서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각막에 혈관이 존재한다면 혈관 내부의 적혈구나 혈관 자체가 시야를 가릴 수 있지만 그런 것이 없기에 우리는 붉은색 필터나 검은 그림자 없이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각막이 투명한 시야 확보를 위해 혈관을 포기한 것은 각막의 다양한 특성들의 바탕이 되었다. 각막은 살아 있는 신체의 일부이므로 제기능을 하기 위해 끊임없는 영양분과 산소의 공급이 필요하다. 보통의 신체에서는 혈액이 이 기능을 담당해주지만, 혈관이 없는 각막은 이것이불가능하다. 따라서 각막은 공막과 연결된 가장자리 부위에 풍부하게 분포된 혈관과 눈물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고, 각막 표면과 맞닿은 대기중에서 직접적으로 산소를 추출해 생존을 이어간다. 이런 각막의 특성은콘택트렌즈를 사용하는 경우 쉽게 눈이 피로해지고 충혈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한다.
렌즈가 각막을 덮어버리면 세상은 좀 더 또렷하게 보이겠지만, 각막이 늘 접하고 있던 대기와 눈물과의 접촉이 차단되어 산소를 충분히 흡수하거나 영양분을 추가로 공급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렇게 숨쉬기 힘들고 배고파진 각막은 당연히 쉽게 피로해지고 공막은 책임감을 느끼고 각막에게 영양분을 더 공급하기 위해 모세혈관을 확장시키므로 이는 눈의 충혈로 이어진다.  - P109

각막에 혈관이 없다는 것은 역으로 각막 이식을 받아야 할 때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혈관이 없기 때문에 이식 시 면역학적 거부반응도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 것과 네 것을 가리지 않는 각막의 이런 까다롭지 않은 특성으로 인해 각막이식은 신체 이식 중 가장 최초로 성공한 이식이며, 1904년 첫 성공을 거둔 이래 수많은 사람들을 어둠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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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에게는 매우 보편적인 밤길의 공포를 보통의 남성들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들을 키우면서 여러번 느꼈다. 밤늦게 다니지 말라고 잔소리할 때마다 "네네 어머님" 하며 농담으로 받던 아들이 어느 날은 엉뚱한 질문을 했다. "엄만 밤길이 그렇게 걱정돼? 내가 길이라도 잃어버릴까봐?" 여자인 엄마가 평생에 걸쳐 느껴왔던 공포심을 아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통의 남성이 밤길을 두려워하지 않는것은 (성)폭력의 공포를 상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것은 성별 상상력의 차이가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위험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명확히 말할 필요가 있겠다. 언젠가 선배 언니의 20대 딸이 이런 말을 했다. "카페에서 잠깐 자리를비울 때 비싼 노트북도 그냥 펼쳐두고 나가잖아요. 절도 피해를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 더이상 아니니까요. 그런데 왜 여성들은 늘 범죄 피해를 걱정하며 살아야 하죠? 내가 노트북만큼도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P207

한 나라의 인권의 수준을 가늠하는 다양한 지표들이 있다.
미국 서부의 한 도시는 강물로 회귀하는 연어의 수를 인권의 지표로 삼는다고 한다. 연어가 회귀할 수 있는 강이 있는 도시라면 사람이 살기도 좋은 인권 도시가 분명할 것이다. 나에게 인권 지표를 개발하라고 한다면, 숙식 문제를 걱정하지 않는 시인의 수와 막춤일망정 일주일에 한번 이상 춤을 추는 사람들의 숫자를 여기에 포함시키고 싶다. 이러한 권리를 ‘표현의 자유‘라든지 ‘문화 향유권‘ 같은 거창한 말로 설명하지 않고 ‘걱정 없이 춤추고 시 쓰며 살 권리‘라고 표현한다면 인권이 얼마나 쉽고도 다정하게 들릴까? 인권위법의 인권의 정의 역시 이렇게쉽게 고치고 싶다.
"시를 쓰는 것이 인권이다. 춤출 수 있어야 인권이다." - P226

나는 생각해본다. 그 존엄을 위한 투쟁이 이제 인간이 아닌다른 동물의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하는 때가 아닌가. 20년 가까이 인권으로 밥벌이해오면서도 동물의 고통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었다. 온 마음을 다해 나를 사랑해준 한 동물로 인해 겨우 알아차리게 되었다. 독일의 철학자 페터 비에리가 삶의 격』에서 말한 것처럼 존엄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남을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나에게 어떻게 대하는가의 문제라면, 그것은 반드시 사람과 사람 사이의관계 맺음에 한정될 수 없고 사람과 다른 동물, 자연과의 관계맺음을 통해 확장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인간을 넘어 좋은 동물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삶을 가장 존엄하게 살아가는방법이 아닐까. - P235

점심 무렵 인권위옆 작은 공원에 비둘기 밥을 주는 여인이나타난다. 비둘기들은 횡단보도 너머에 여자가 서 있을 때부터구구구 소리를 내며 공원 앞으로 모여들었다. 평화의 상징에서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존재가 된 비둘기들, 나는 아무 감정 없이 새들을 지나치곤 했는데, 어느 날 뜨거운 아스팔트 위의 그 붉은 발을 보고 말았다. 발톱이 뜯겨나가 상처투성이가 된 비둘기의 붉은 발은 자동차 타이어도 녹일 듯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서 차와 인파를 피해 먹이를 찾다가 잠시 쉴 곳을 찾아 날아올랐다. 우리가 그러하듯,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은 온힘을 내서 살아간다. 비둘기의 붉은 발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우리는 다른 동물과 자매가 되는 존재일 수 없을까?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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