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상당히 많은 뇌의 영역들이 오로지 시각이라는 감각 하나에 할당되어 있음에도 세상은 워낙 변화무쌍한지라 뇌는 눈에서 오는 모든정보들을 빠짐없이 처리하기 어렵다. 그래서 뇌가 선택한 전략은 선택과 집중, 적당한 무시와 엄청난 융통성이다. 우리는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것은 눈에 뻔히 보여도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칠 수 있으며, 쥐꼬리만 봐도 벽 뒤에 숨은 쥐의 전체 모습을 그릴 수 있고, 빨간색과 파란색이 주는 색의 스펙트럼에서 그 색이 주는 이미지와 의미도 읽어낼 수 있다. 우리의 눈은 때론 부분에서 전체를 볼 수 있을 만큼 뛰어나기도 하지만, 종종 눈 앞에 뻔히 있음에도 집중하지 않으면 못 볼 만큼 멍청하기도 하다는 뜻이다.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정보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제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서 편식하는 것은 뇌의 보편적인 특성으로, 다른 감각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엄마의 잔소리를 코앞에서 흘려듣는 십대 아이의 귀에 달린 엄청난 필터링 능력은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눈앞에서 딴전을 피우는 애들의 귀에, 아니 뇌에 소리를 흘려 넣고 싶다면 일단은 그들의 귀에 달콤한 말로 먼저 시작하는 것이 그나마 효과적이다. 눈앞에 뻔히 보이는 고릴라를 보지 못했던 사람은 ‘눈이 삐거나‘ 얼빠진 사람이 아니라, 하기 싫은 숙제를 슬쩍 미뤄버리는 아이처럼 중요하지 않은 시각적 정보는 은근슬쩍 뭉개버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뇌활동 결과이다. - P71

원뿔세포가 색을 보게 만들어준다는 의미는 뒤집어 말하면, 원뿔세포가 아예 없거나 혹은 있더라도 제 기능을 못하면 색을 볼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이런 경우를 ‘색각이상"이라고 한다. 만약 원뿔세포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면 색을 전혀 구분할 수 없어 세상이 온통 흑백 TV처럼 보이는 완전색각이상(전색맹)이 나타난다. 이는 매우 드물게 나타나고, 대개는 극도의 시력 저하와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서, 색각이상 이전에 저시력으로 인해 더 큰 고통을 받곤 한다.
이보다 흔히 나타나는 것은 이색형 색각이상으로 삼색 중 하나를인식하는 원뿔세포가 문제가 있어 세상을 두 가지 색의 혼합으로만 인식하는 증상을 말한다. 이는 다시 인식하지 못하는 색에 따라 제1 색각이상(적색원뿔세포 결함, 적색맹), 제2색각이상(녹색원뿔세포 결함, 녹색맹), 제3색각이상(청색원뿔세포 결함, 청색맹)으로 나뉜다. 이 밖에도 세 가지 원뿔세포가 모두 존재하고는 있지만, 한 가지 원뿔세포가 다른 것들에 비해 민감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아예 해당 빛의 색을 볼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세심한 색의 구별은 되지 않는 이상 삼색형 색각도 있다. 이들 역시도 민감도가 떨어지는 종류에 따라 제1색약(적색약), 제2색약(녹색약), 제3색약(청색약) 등으로 나뉜다 - P82

극히 드물긴 해도 4종류의 원뿔세포를 가진 사람들도 세상에는 존재한다. 이들을 ‘사색형 색각tetrachromacy‘이라고 하는데, 이들의 눈은 보통 사람들이 7가지로 인식하는 무지개에서 10가지 색깔을 보며, 1억 가지의 색을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세상은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찬란하고 복잡할 듯싶다. 참고로 현재까지알려진 사색형 색각을 가진 이들은 모두 여성이다. 이는 대부분의 색각이상이 남성에게 나타난다는 것과 함께 성별에 따라 다르게 유전되는 반성 유전의 특성인 것으로 추측된다. - P83

1990년대 초반, 이들 연구자들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여느 때처럼 원숭이들의 신경 반응을 살피던 연구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한 원숭이의 5 영역에 꽂힌 전극이 반응하고 있었다. 이 신호에 따르면 원숭이는 지금 손을 움직이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 원숭이는 우리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원숭이 뇌의 F5 영역은 운동 피질이기 때문에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신호가 발생하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장치가고장난 것일까, 이상하게 생각한 연구자들은 원숭이를 관찰하다가 원숭이의 시선에서 해답을 찾았다.
원숭이는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었지만, 두 눈동자는 건너편 우리에서 땅콩 그릇을 향해 허우적대는 다른 원숭이의 손동작에 고정되어 있었다. 실제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움직이는 것을 보고만 있는데도 운동 피질의 신경이 활성화된다니, 시각적 정보와 운동 피질이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시각과 운동 사이의 비밀스러운 연결의 열쇠는 나와 다른 개체의 행동을 ‘보고‘ 이를 모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거울 신경세포‘가 쥐고 있었다.
이후 원숭이를 이용한 몇 번의 실험 끝에, 연구자들은 원숭이의 뇌속에는 타자의 행동을 보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끼는 신경세포가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이런 신경세포에 ‘거울 신경세포 mirror neuron‘ 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거울을 보고 얼굴을 찌푸리면 거울 속의 내 모습 역시도 똑같이 찌푸린 얼굴로 응수하는 것처럼, 타자의 행동이나 감정을 보는 것을 통해 이를 내가 겪는 일처럼 공감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신경세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 P92

눈이 마음의 창이라면 각막은 그 창의 유리와 같은 기관으로 눈의 가장바깥쪽에서 눈을 감싸고 있는 외피의 일종이다. 하지만 대개의 창이 외벽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지 않듯 눈의 외피인 각막 역시 안구 앞쪽의 1/6 만을 차지하며, 나머지 5/6은 공막이라고 불린다. 공막은 치밀한 섬유조직으로 흰색을 띄는데, 홍채를 제외한 눈의 대부분이 흰색으로 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 공막이 흰색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유해보면 눈은 공막이라는 흰 벽에 뚫린 투명한 각막의 창으로 세상과 연결된 셈이다.
각막은 눈이라는 창의 유리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좋은 유리창의 특성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첫 번째, 유리창은 외부를 잘 내다볼수 있도록 맑고 깨끗해야 한다. 적어도 각막은 첫 번째 조건만큼은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각막은 우리 몸에서 가장 투명한 조직이다. 각막이 이렇게 투명한 것은 각막을 이루는 성분들의 구조가 균일하고 혈관이 없기 때문이다. 눈을 자세히 살펴보면 흰자에서는 붉은 실핏줄을 찾는 것이 어렵지않지만, 눈동자 부분에서는 혈관이 보이지 않는다. 검은색이어서 가려져서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각막에 혈관이 존재한다면 혈관 내부의 적혈구나 혈관 자체가 시야를 가릴 수 있지만 그런 것이 없기에 우리는 붉은색 필터나 검은 그림자 없이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각막이 투명한 시야 확보를 위해 혈관을 포기한 것은 각막의 다양한 특성들의 바탕이 되었다. 각막은 살아 있는 신체의 일부이므로 제기능을 하기 위해 끊임없는 영양분과 산소의 공급이 필요하다. 보통의 신체에서는 혈액이 이 기능을 담당해주지만, 혈관이 없는 각막은 이것이불가능하다. 따라서 각막은 공막과 연결된 가장자리 부위에 풍부하게 분포된 혈관과 눈물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고, 각막 표면과 맞닿은 대기중에서 직접적으로 산소를 추출해 생존을 이어간다. 이런 각막의 특성은콘택트렌즈를 사용하는 경우 쉽게 눈이 피로해지고 충혈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한다.
렌즈가 각막을 덮어버리면 세상은 좀 더 또렷하게 보이겠지만, 각막이 늘 접하고 있던 대기와 눈물과의 접촉이 차단되어 산소를 충분히 흡수하거나 영양분을 추가로 공급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렇게 숨쉬기 힘들고 배고파진 각막은 당연히 쉽게 피로해지고 공막은 책임감을 느끼고 각막에게 영양분을 더 공급하기 위해 모세혈관을 확장시키므로 이는 눈의 충혈로 이어진다.  - P109

각막에 혈관이 없다는 것은 역으로 각막 이식을 받아야 할 때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혈관이 없기 때문에 이식 시 면역학적 거부반응도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 것과 네 것을 가리지 않는 각막의 이런 까다롭지 않은 특성으로 인해 각막이식은 신체 이식 중 가장 최초로 성공한 이식이며, 1904년 첫 성공을 거둔 이래 수많은 사람들을 어둠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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