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분명히 말해두는데, 나는 나 자신을 사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이렇게 말하니 정말 살인자 같다!) 신문에서 살인사건 관련 기사를 읽을 때마다 나는, 주 경계선을 넘어 다른 주로 도망 다니는 자들, 마약에 중독된 소아과 의사들, 범죄 혐의를 받는 인격 파탄자들이 자기네들이 나쁜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데, 심지어는 짐짓 자기 자랑까지하는 데 충격을 받고는 한다.
"나는 본바탕이 아주 좋은 사람이다."
이것은 얼마 전에 텍사스 주에서 여섯 명의 간호사를 도끼로 쳐 죽인 연쇄살인범 - 보도에 따르면 전기의자에 앉게 된- 의 말이다. 나는 이 사건의 보도를 흥미롭게 눈여겨본 적이 있다.
나는 스스로를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나쁜 놈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우리의 텍사스 친구가 보여주듯이, 자신을 아주 공정하게 평가하기는 불가능한 모양이다.  - P9

얼마나 빠른 속도로 떨어졌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이 필름을 천천히 틀어놓고, 한 장면 한 장면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 눈에는 그때의 광경이, 사고로 위장된 상황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그 일의 장면장면이 보이곤 한다. 소나기처럼 떨어지던 자갈, 풍차처럼 돌아가던 버니의팔, 나무뿌리를 잡으려다 하릴없이 허공만 그러쥐던 버니의 손 소리에 놀라 관목 숲 속에서 날아와서는 까옥까옥거리며 컴컴한 하늘로 날아오르던 까마귀 떼, 카메라가 헨리에게로 넘어가면.... 벼랑에서 한 발 물러서는......헨리. 바로 이 순간에 필름이 영사기 안에서 헛돌면서 스크린은 암흑이 된다. 다 끝났다(Consummaturn est).
밤에 침대에 누울 때마다 나는 이 지겨운 소형 다큐멘터리 영화의 관객이 되어야 한다(눈을 뜨면 영화 장면은 온데간데없어진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처음부터 다시 돌아간다). 나는 이 영화가 개인의 견해를 무시한 충실한 다큐멘터리인 데, 섬세한 장면까지 남김없이 담고 있는 데, 감정이 깡그리 배제되어 있는 데 자주 놀라고 한다. 바로 이런 식으로, 내 머릿속의이 영화는, 내가 체험한 것을 독자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자세하게 거울에 되비쳐내고는 한다. 시간의 흐름과, 되풀이되는 상영은 기억에다 원래의 경험에는 없었던 위험한 요소를 덧붙여서 경험을 살찌운다. 나는 그날의 그 일을 냉정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바라보았다(공포, 연민도 없었다. 나에게 있었던 것은 오로지 호기심뿐이었다). 그래서 그 사건의 인상은 내 시신경 안에서 맹렬하게 타오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 가슴속에서는 그렇지 않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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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기를 보존하고자 하는 본능은 우리가 생각하는만큼 그렇게 우리의 무의식이 촉발하는 그런 본능은 아니다. 어쨌든 버니가 연출하는 위기는 급박하게 다가오는 그런 위기가 아니었다. 그 위기는서서히, 조용히 증폭되면서 다가왔다. 그 위기는 추상적으로나마 연기될 수도 있었고, 얼마든지 변형될 수도 있는 그런 것이었다. 약속된 시간, 약속된 장소에서까지도 손을 거두면 아무 일도 없을 터인 그 최후의 순간에도 우리에게는 상황을 재고할 여지가 있었다. 우리의 목숨에 대한 공포만으로도 버니를 교수대로 끌고 가 목에 올가미를 걸 수 있기는 했다. 그러나 버니가 딛고 선 의자를 걷어차게 하는 데는 나름의 급박한 어떤 자극이 필요했다.
버니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우리에게 계속해서 그런 자극을 공급했다. - P354

"너는 거기에서 틀리고 있어. 우리가 완벽한 논리적인 방법을 통해 어떤목적지에 이르려 하면서 일의 순서를 지나치게 꼼꼼하게 계획해둘 경우 그논리적인 방법이 우리의 방향을 일러주는 나침반이 될 수 있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성적인 사람의 눈에는 이성적으로 계획한 일의 결과는 너무나 명백하게 보인다는 말이야. 그러나 우연, 혹은 우연이 가져오는 행운은? 그건 보이지 않아. 예측 불가능, 비인위적인 것이야. 우리 입장에서 한번 따져보자. 우리가 버니를 따라다니는 게 좋겠어, 아니면 버니가 자기의 상황을 스스로 선택해주는 게 좋겠어?"
방 안은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밖에서 단조로운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P398

헨리가 그답지 않게 너스레를 떨었다.
버니는 헨리의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다가 물었다.
"세상에 너희들 여기에서 뭘 하고 있어? 시체라도 파묻고 있는 거야, 뭐야?"
헨리는 웃었다.
"잘 왔다. 우리는 역시 재수가 좋아."
"사슴 사냥꾼들의 전당대회라도 벌어진 거야 뭐야?"
"응. 그렇게 부르는 수도 있기는 해."
"있기는 해? 웃기네."
버니가 헨리를 비웃었다.
헨리는 입술을 깨물면서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응, 그렇게 부르는 수도 있기는 해, 나는 그런 용어가 마음에 안 들지만말이야."
사방이, 세상 만물이 그렇게 조용할 수 없었다. 멀리서 숲 속 어딘가에서,
딱따구리의 방정맞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말해봐. 도대체 너희들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버니가 물었다. 버니는 그제야 낌새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숲이 조용해졌다. 소리라는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헨리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응, 고사리 몇 포기 캐려고."
그러고는 버니에게로 한 발 다가섰다.

2권에서 계속 - 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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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잘못된 행성〉이 어떻게 그렇게 빠른 지지를 얻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알렉스는 이렇게설명했다. "온라인에서는 (아스퍼거인들이 말하는 방식이나 틀에 박힌 버릇에 대한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채팅할 수 있기때문이죠." 사회적 압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스퍼거 증후군과 관련된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눈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눈썹을 치켜세운다든지, 억양을 미묘하게 변화시키는등 순간순간의 비언어적 소통도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아스퍼거공동체에 속한 사람에게 그런 식의 소통은 항상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2005년경에 이르러 인터넷에서 하나의 표현양식으로 자리잡은 텍스트를 통한 대화는 <잘못된 행성> 사용자들을 완전히 해방시켰다. 표정과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신호에 애를 먹었던 사람에게 인터넷은 해방구였다. 채팅창에서는 누가 아스퍼거인인지 전혀할 수 없었다. - P700

<잘못된 행성>의 구독자 수가 치솟기 시작할 무렵 아스퍼거 증후군을 둘러싸고 형성된 정체성은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공공정책과 정치 영역에서 중요한 의제로 다루어진 것은물론, 할리우드에서는 "아스퍼거적" 인물이 나오는 쇼를 기획하고 온라인 액세서리 샵에서는 "아스피의 자부심Aspie Pricle "이란 주제로커피컵, 머리띠, 커튼, 토트백, 티셔츠 등 온갖 물건을 팔았다. 당시인기를 끈 티셔츠에는 이런 문구가 적혔다. "사회적으로 서투르지만, 지적으로는 뛰어나다네.socially awkward intellectually advanced."
"누구나 때때로 자폐인 비슷할 때가 있지 않나요?" 우타 프리스는 물었다. "저 역시 가끔은 약간 자폐 끼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요." 실제로 아스퍼거 증후군이 "정상"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은 너무나 널리 퍼져 정확한 구분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개념은 사람들에게 쉽게 먹혀 들었다. 누구나 스펙트럼이라는 냇물에 발을 담가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이 우습다고 생각하는 농담이 전혀 우습지 않다거나, 규칙을 너무 곧이곧대로 지킨다고 놀림을 당한다거나, 그저 친구를 사귀기 어려운 사람도 자신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누구나 한두 가지씩 지니고 있는 성향을 버젓이 DSM에 승인된 진단명과 연결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에게 일말의 안도감과, 심지어 약간의 만족감까지 선사했다. - P704

이런 생각은 일부 "아스피"들이 특정한 우월성을 주장하며 장애라는 개념을 완전히 뒤집으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템플 그랜딘은 "다른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는 동안 혼자 바위를 깎아내는 데 몰두했던 아스피가 인류 최초로 돌로 된 창을 발명했을 것이라고 했다. 약간의 자폐적 성향은 멋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폐인이 그녀 혼자만은 아니다. 그들의 시각에서 볼 때 자폐인의 뇌는 창조적 사고를 할수 있는 독특한 능력과 세상을 바꿔놓을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필요한 인내심을 갖고 있다. 자기를 아스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이런 생각을 점점 발전시켜 인류의 지식과 문화에 큰 공헌을 한 인물 중 자폐인이었으리라 짐작되는 사람의 이름을 대는 일종의 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아이작 뉴턴, 에밀리 디킨슨, 에이브러햄 링컨, 미켈란젤로, 모짜르트, 반 고흐 등이 흔히 언급되었다. 템플그랜딘이 서문을 쓴 놈 레전Norm Ledgin 의 《제퍼슨 진단하기 Diagnosing Jefferson)는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이 아스퍼거 증후군이었음을 입증하는 데 책 한 권을 통째로 바친 후, 그것이 "제퍼슨의특이한 점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 P705

 1960년대부터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자폐인이 지적으로도 장애 상태라는 데 확고한 의견일치를 보았다. 몇몇 연구 데이터를 근거로 한 결론이었다. 자폐인 중 70~80퍼센트가 "평균 미만" 수준의 지능을 나타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폐 스펙트럼이란 개념이 생기기 전, 정의 자체가 달랐던 시대의 연구들이었다. 2010년, 진실의 추는 반대 방향으로, 그것도 급격히 기울었다. 그해에 CDC는 자폐증으로 진단받은 사람의 거의 절반이 높은 수준의 지능을 나타낸다고 보고했다. 자폐 스펙트럼에 훨씬 많은 사람을포함시킴으로써 나타난 "인구학적 변동"으로 인해 유병률이 상승한 동시에 사회적으로 깊은 수준의 변화들이 뒤따랐다. 소위 고기능 자폐인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가 제공해야 할서비스의 종류가 확실히 달라지자 새로운 활동 영역이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변동과 함께 자폐증의 정치학을 영원히 바꿀 훨씬 급진적인 개념이 탄생했다.
바로 "신경다양성"이라는 새로운 철학이다. 그 개념은 자폐공동체 내에서 많은 사람의 환영을 받았지만, 동시에 일부 자폐 부모는 새로운 적수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것은 자폐인들 자신이었다. - P712

짐 싱클레어를 비롯한 사람들이 신경다양성이란 철학을 설파하면서 반박하고자 한 것은 바로 이런 생각이었다. 중심원리는 자폐증을 갖고 사는 것(신경다양성 지지자들이 선호하는 표현으로는 "자폐인으로 존재한다는 것") 역시 인간으로 존재하는 또 한가지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런 각도에서 보면 매우 건전하고 아무런 논란의 여지가 없는 생각이다. 하지만 논리적 귀결은 훨씬 논쟁적이다. 인간으로 존재하는 데 무슨 완치가 필요한가? 그러니 자폐증 역시 완치 따위는필요 없다. 자폐인은 구원받을 필요가 없다. 자폐를 없애기 위한 어떤 노력도 기울여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은가? - P718

스스로 자폐인이었기 때문에 네이만은 적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에 대해 정치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공개적으로 그에게 맞서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네이만이 논쟁에서 조금도 기가 죽지않는 타입이기도 했지만, 자폐인이란 사실을 명예로운 훈장처럼 여기고 자신과 동료들이 심한 편견의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대놓고 논쟁을 벌여서 이로울 것은 없었다. 네이만은 딱 맞는 시점에 ASAN을 출범시킨 셈이었다. 자폐증을 단순한 발달장애가 아니라신경학적 차이로 봐야 하며, 따라서 "모든 자폐인은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독특한 존재"라는 주장은 성적 정체성의 폭넓은 차이를 인정하기 시작한 문화 속에서 훨씬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신경다양성이라는 관점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종종 성소수자 권리옹호 캠페인과의 유사성을 지적하며 네이만과 자신이 자폐인임을 밝힌 지지자들을 "개방적 자폐인"이라고 불렀다. 그 말에는 네이만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은 속이 좁고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란 뜻이 숨어 있었다. 네이만이 종종 논쟁에서 일방적인 승리를거둔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명망있는 단체는 공연히 그와 논쟁을 벌여 무지몽매하다는 인상을 줄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다. 인터넷 채팅방과 블로그를 통해 많은 사람이 그를 깎아내린 것도 사실이지만, 정작 네이만의 가장 큰 표적인 오티즘 스피크스는 다소 방관적인 태도를 취하며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응수하지 않았다. - P729

하지만 "치료하지 말라"는 전혀 다른 얘기였다. 벨은 이 부분이 청중, 특히 주지사처럼 실질적인 권력을 지닌 외부인에게 깊은인상을 주지 않기를 바랐다. 이 특이한 대학생이 모든 자폐인을 대변한다고 판단하지 않아야 했다. 사실 네이처럼 재능있고 말 잘하며 설득력을 지닌 활동가들이 자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내세울수록 점점 많은 사람이 심한 장애를 겪는 자폐인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 같았다. 벨은 말이라고는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들, 밤중에 나가 돌아다니다 강이나 이웃집 수영장에 빠져 익사하지 않도록 24시간 눈길을 뗄 수 없는 사람들, 성인이 된 후에도 하루에 두 번 이상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엄연히 자폐공동체의 일원이지만 인터뷰 따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는 결코 저녁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 결국 대중은 자폐증이 얼마나 심한 장애일 수 있는지, 삶을 누릴 기회를 얼마나 많이 박탈하는지, 신경다양성 운동의 주장에 코웃음을 치는 일부 가족이 "진짜 자폐증"이라고 부르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 P731

네이만은 정중한 태도로 귀를 기울였지만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또한 벨에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통찰을 남기기도 했다. 활동가로서 그의 투지와 진실성이 난공불락이라 할 정도로 견고하다는 점이었다. 그는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빙빙 돌려 말하거나, 사실을 지어내거나, 술수를 부리지 않았다. 자녀를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자녀의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극도로 절망하는 자폐인의 어머니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때도 조금도 타협하려고 하지 않았다. 움츠러들거나, 동정을 표시하거나, 어조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벨은 네이만이 진정으로 자폐 장애인인지진지하게 의심하는 사람들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의 전혀 흔들리지 않는 태도는 확신을 나타내주기도 했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의관점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녀는 그런태도가 사이먼 배런코언이 "심맹"이라고 일컬었던 고전적 자폐성향으로 간주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역시 배런-코언이 제안한 "필연적 결과 이론"에 따르면 이런 인지 방식은 남에게 공감을 느끼는 경험을 저해한다. 이런 개념은 논란이 있으며 아스퍼거인에게 모욕적일 수도 있다. 실제로 아스퍼거인들은 공감 "결손"을 시사한 연구들이 과장되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역의 장애가 실제로 존재하며, 그 때문에 아스퍼거인이 "신경정상자들"의 세계에서 살기가 그토록 어렵다고 마지못해 인정하는 사람도 있다. - P733

오래도록 부모들이 변화를 주도했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자폐증에 관한 대화는 어린이에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애초에 레오카너가 창안했던 "유아자폐증"이란 진단명에서 이바 로바스의ABA 치료, 공교육 편입을 위한 투쟁, 백신을 둘러싼 논란에 이르기까지 자폐증에서 주목받은 부분은 항상 어린이의 장애라는 측면이었다. 물론 예외는 있다. <레인 맨>에서 그려낸 레이먼드나 템플 그랜딘은 자폐증을 겪는 성인의 모습을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사회적인 차원에서 자폐증을 생각할 때는 누구나 어린이들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피트 게르하르트는 스펙트럼의 "성인 쪽에는 전문가들 사이의 경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유명한 성인 자폐증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고 농담을 하곤 한다. 그는 동료들이 어린이 쪽을선호하는 이유를 이해한다. 어린이가 성인보다 훨씬 귀엽고 신체의크기나 오래도록 굳어진 습관이라는 면에서도 도움을 주기가 쉽다는 것이다. 그가 성인을 전공하겠다고 했을 때 "앞날이 밝은 선택"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P763

자폐 성인들의 환경을 보다 좋은 쪽으로 바꿔나가려는 노력은 적어도 두 가지 공통점을 갖는 경향이 있다. 첫째는 아직까지 소규모실험에 그친다는 점이며, 둘째는 자녀의 가장 중요한 옹호자이면서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나이든 자녀의 삶을 염려하는 부모들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꼭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자폐적 ‘다름‘에 대한 인식이 계속 확산되면서 이들을 돌보는 것이 모든 사람이 공유해야 할 책임이란 생각이 널리 퍼진다면, 거기서 영감을 얻은 다양한 공동체에서 언어능력과 언론에서 다루기 좋아하는 특별한 재능과 기술을 겸비한 자폐인뿐만 아니라 모든 자폐인에게 살아갈 공간을 마련하는 데 발벗고 나설 수 있을 것이다.  - P768

야, 너 왜그래? 이 자식아!
게르하르트에게 이 말은 위협적으로 들렸다. 그는 버스 앞쪽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기 전에 니콜라스를 보호해야 했다.
갑자기 다른 승객이 일어나 앞을 가로막았다. 게르하르트는 그가누군지 몰랐지만, 분명 이전에 본 적이 있었다. 몇 주간 니콜라스와함께 같은 노선의 버스를 타고 다니며 눈에 익은 사람이었다. 게르하르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소년을 괴롭히는 승객들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얘가 왜그러냐구? 얘는 자폐인이요 이제 당신들이왜 그러는지 말해봐요. 아니면 입 닥치고 조용히 가든지."
긴장 어린 정적이 흘렀다. 금방이라도 주먹다짐이 벌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두 남성은 버스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니콜라스 편이란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더 이상 니콜라스를 건드리지 않았다. 게르하르트는 어안이 벙벙했다. 동시에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솟아올랐다. 그는 그 버스가 즉흥적으로 자신이 평생 그려왔던 공동체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서로 정식으로 인사를 주고받은 것도 아니었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노선을 달리는 버스를 타고 다녔던 십여 명의 승객 사이에 일종의 친근감이 생겨났던 것이다. 미시시피주 포레스트처럼 이웃들은 어딘지 다른 그 소년이 사실은 "우리 중 하나", 공동체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일은 뉴저지주의 한 버스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어디서든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 P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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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백신법정은 정당성을 입증할 기회를 제공했다. 청구인이 백신에 의해 상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타당성있게 입증하면 정당한 법적 절차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었다. 실제로 백신법정은 일부 유형의 상해에 대해서는 백신이 문제란 사실이 충분히 입증되었으므로 생물학적 기전에 대해 논쟁할 필요가 없다고 인정했다. 예컨대 매우 드물지만 소아마비 백신은 실제로 소아마비를 일으킬 수 있으며, DTP 백신은 아나필락시스쇼크를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자폐증은 사전 인정된 부작용에 해당되지 않았다. 변호사가 의뢰인을위해 보상을 받아내려면 자폐증이 백신과 관련이 있다는 이론과, 그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제시하고 소송의 주인공인 어린이가백신 접종으로 인해 자폐증이 생겼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했다. 결코 만만한 장애물이 아니었다. - P669

최근 몇 년간 캘리포니아주의 자폐증 발생률을 추적해보는 것이었다.자폐증 발생률이 떨어지고 있다면 티메로살 이론이 맞는 것이었다.
2000년대 초부터 백신 제조사들은 대부분의 어린이용 백신에 티메로살을 사용하지 않았다. 새로운 밀레니엄에 태어난 어린이들은 백신을 통한 메틸수은 노출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자폐증 역시 줄었을것이었다. 커비는 자칭 시민 케인Crizen Cam 이라는 블로거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2007년까지 3~5세 어린이 중 자폐증 진단이 감소하지 않는다면 자폐증-티메로살 가설에 치명타가 되겠지요." 마침내 마감 시점인 2007년이 되었지만 캘리포니아주의 자폐증 유병률은 떨어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올라갔다. 다시 일년이 지나자 유병률은 더욱 높아졌다.
이런 식으로 백신이 문제라는 주장은 끊임없이 반박당했다. 결국백신 반대 진영의 가장 큰 성취조차 서서히 해체되었다. 항상 주변부를 맴돌던 백신에 대한 불신은 자폐증이란 호재를 만나 주류 문화 속으로 급부상했다. 변화를 부채질한 것은 주류 언론이었다. 종종 과학자들과 백신에 반대하는 부모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식으로 과학과 근거없는 믿음이 거의 동등한 것처럼 보도했던 것이다. 이런 관행은 과학적 데이터가 쌓이면서 백신의 양면성이란 서사가 약화되기 시작한 2007년과 2008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퇴조했다.  - P671

백신 논란의 와중에 오티즘 스피크스는 아무도 소외시키지 않는다는 선한 원칙과 과학의 충돌을 겪었다. 양극단의 지지층 사이에가로놓인 거대한 격차를 좁히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예방접종의 "입증된 효과"를 지지한다는 강령을 지닌 그들은 어느 누구의 비위도 거스르지 않으려고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했다. 동시에 백신이 혹시라도 유해할지 모를 가능성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천명했다. 어느 쪽도 소외시키지 않으려는 태도가 양쪽을 모두 소외시키는 결과를 빚었던 것이다. - P683

백신이론을 믿고 오랫동안 지지해온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매우 이례적으로 헤이스팅스는 판결문의 한두 문장을 할애하여 세디요 가족을 비롯한 자폐 가족들이 그런 이론을 확신하도록 부추긴 사람들을 꾸짖었다. 그는 다시 기울임체를 써가며 그들이 "매우 잘못된" 조언을 한 의사들과 다른 전문가들의 말을 믿었다고 썼다. "세디요 가족은 잘못된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고 지적하며 그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개인적 견해로는 그 의사들이야말로 전반적으로 그릇된 의학적 판단을 내린 데 대해 유죄를 선고받아야 할 것이다." 통렬하고도 가혹한 일침이었다. 백신이론은 또 실패한 것이다.
나머지 가족들도 차례차례 패소했다. 항소했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다. 2010년 여름 마지막 항소 건이 기각되었다. 미쉘 세디요 가족이었다. 부모들을 부추겨 소송을 시작했던 변호사들은 한 푼도 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바로 흥미를 잃어버렸다. 과학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 P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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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는 우리가 교재로 쓰던 칼리마코스의 풍자시에 대한 두 페이지짜리 에세이를 쓰는 것이었다. 되어 있는 것은 한 페이지뿐이었다. 나는 시간에 쫓기면서 서둘러 편법으로 쓸 수밖에 없었다. 편법이란, 일단 영어로 써놓고 이것을 그리스어로 번역하는 방법이었다. 이 편법은, 줄리언이 절대로 써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 방법이기도 했다. 줄리언에 따르면 그리스어산문 작법 공부의 진정한 가치는 사람들에게 언어를 실용적으로 쓰게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어 산문 작법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쉽게 언어를 숙달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어를 이용한 사고법이다. 그의 지론에 따르면, 그리스어를 다른 언어의 경직되고 부자연스러운 개념으로 억지로 번역함으로써 그 의미를 한정해버리면, 사고의 패턴이 전혀 달라져버린다. 결국 상당히 평이하고 일반적인 개념이 엉뚱한 개념으로 바뀌는가 하면, 그 개념과 상관없는 전혀 다른 개념이 생생하게 살아나 완전히 새로운 의미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그리스어 개념을 영어로 설명하려고 할 때마다 곤란을 겪고는 한다. 불을 뜻하는 라틴어의 인켄디움(incendium)은 프랑스 사람들이 담배에다 붙이는 퍼(feu)와는 다르다. 이 둘은 불은 불이라도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는 무정하고 흉폭한 퓌르(pur)와도 다르다. 그리스어로 퓌르(pur)라고 할 경우, 이불은 일리온(트로이아-옮긴이) 성 위로 오르는 불길, 바람이 휘몰아치는 한적한 해변에서 파트로클로스의 화장단솟아오르는 불길을 말한다. - P314

어떤 의미에서 내가 고전어과 동아리에 친밀감을 느끼는 까닭도 여기에있다. 고전과 동아리 역시 수세기 동안 사멸의 길을 걸어온 이 그리스어가그려내는 끝없이 아름답고 끝없이 처절한 풍경을 이해한다. 그들 역시 5세기적인 눈으로 그리스어 책을 펼치고는 어쩐지 타향을 대할 때처럼 세계가 서먹서먹하고 낯설게 보이던 경험을 지니고 있다. 내가 줄리언을, 특히 헨리를존경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들의 이성, 그들의 눈, 그들의 귀는 그 엄격한 고대의 리듬에 고착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 그 세계는 그들의 고향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그 세계라는 것에 의하면 그랬다. 그러나 내가 그세계를 흠모하는 관광객이었던 반면, 그들은 자신들을 정기적인 방문자를넘어 영주권자로 생각하기까지 했다.  - P315

시간이 갈수록 버니에 대한 나의 증오는 자라갔다. 사냥개처럼 그는 재빨리 본능의 코로, 내가 가장 감추고 싶어하던 나의 취약한 부분, 나에게 수많은 불면의 밤을 안기던 약점의 냄새를 맡아나갔다. 그가 나를 상대로 되풀이해서 벌인 이 기묘한 장난은 대단히 가학적이었다. 그는 교묘한 방법으로 나에게 거짓말을 하게 했다. 어느 날 그는 나의 넥타이를 보면서 이런말을 했다.
"멋진 넥타이다. 에르메스 같은데, 그렇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그의 손이 식탁 위를 건너와 나의 넥타이를 뒤집었다. 물론 싸구려 넥타이에 에르메스 상표가 붙어있을리 만무했다. - P343

그러나 이런 불쾌한 기억이 늘 나를 괴롭히기는 했어도 버니에게 그런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정반대되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나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버니를 사랑했다. 어쩌다 버니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휘파람을 불면서 낡은 보도를 깐닥거리며 지나가는 것을 볼 때면 나는 애중이 착잡하게 뒤엉킨 감정으로 괴로워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있었다. 수백 번이라도 용서할 수 있었다. 모습, 몸짓, 머릿속에 든 것 때문에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버니라는인간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럴 경우에는 버니가 무슨 짓을 하건 화를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는전과 다름없이 정답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앉아서 이야기를 하다가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태도를 바꾸고는 했다. 그러니까 여느 때처럼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의자 등받이에 턱 기대면서부터는 태연하게 악담을 퍼붓고는했다. 그의 악담은 지극히 질이 낮았지만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나로서는 대답할 말이 없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럴 때마다 나는, 결코, 결코버니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나자신에게 맹세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약속을 수없이 깨뜨려야 했다. 나는 여기에서 약속이라는 말을 쓰면서, 내가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하는 최종적 약속이라는 의미를 담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본심이 아니다. 오늘날까지도 나는 버니에게 느꼈던 것만큼의 처절한 분노는 경험한 적이 없다. 지금이라도 버니가 김이 잔뜩 낀 안경을 쓰고 쉰 냄새를 풍기면서 내 방으로 들어와 늙은 개처럼 머리에 앉은 빗방울을 털어내고는, "이봐요, 목마른 늙은이를 위해 마실 것 좀 내놔봐요" 한다고 해도 예전의 그 애정은 되살아날 것 같지 않다.
혹자는,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Amor vincit omnia)라는 옛말을 상기시키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짧고 서글픈 인생을 통해 내가 확실하게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런 옛말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이라고 해도 모든 것을 이기지는 못한다. 이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보이기가 쉽다.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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