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자기를 보존하고자 하는 본능은 우리가 생각하는만큼 그렇게 우리의 무의식이 촉발하는 그런 본능은 아니다. 어쨌든 버니가 연출하는 위기는 급박하게 다가오는 그런 위기가 아니었다. 그 위기는서서히, 조용히 증폭되면서 다가왔다. 그 위기는 추상적으로나마 연기될 수도 있었고, 얼마든지 변형될 수도 있는 그런 것이었다. 약속된 시간, 약속된 장소에서까지도 손을 거두면 아무 일도 없을 터인 그 최후의 순간에도 우리에게는 상황을 재고할 여지가 있었다. 우리의 목숨에 대한 공포만으로도 버니를 교수대로 끌고 가 목에 올가미를 걸 수 있기는 했다. 그러나 버니가 딛고 선 의자를 걷어차게 하는 데는 나름의 급박한 어떤 자극이 필요했다. 버니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우리에게 계속해서 그런 자극을 공급했다. - P354
"너는 거기에서 틀리고 있어. 우리가 완벽한 논리적인 방법을 통해 어떤목적지에 이르려 하면서 일의 순서를 지나치게 꼼꼼하게 계획해둘 경우 그논리적인 방법이 우리의 방향을 일러주는 나침반이 될 수 있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성적인 사람의 눈에는 이성적으로 계획한 일의 결과는 너무나 명백하게 보인다는 말이야. 그러나 우연, 혹은 우연이 가져오는 행운은? 그건 보이지 않아. 예측 불가능, 비인위적인 것이야. 우리 입장에서 한번 따져보자. 우리가 버니를 따라다니는 게 좋겠어, 아니면 버니가 자기의 상황을 스스로 선택해주는 게 좋겠어?" 방 안은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밖에서 단조로운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P398
헨리가 그답지 않게 너스레를 떨었다. 버니는 헨리의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다가 물었다. "세상에 너희들 여기에서 뭘 하고 있어? 시체라도 파묻고 있는 거야, 뭐야?" 헨리는 웃었다. "잘 왔다. 우리는 역시 재수가 좋아." "사슴 사냥꾼들의 전당대회라도 벌어진 거야 뭐야?" "응. 그렇게 부르는 수도 있기는 해." "있기는 해? 웃기네." 버니가 헨리를 비웃었다. 헨리는 입술을 깨물면서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응, 그렇게 부르는 수도 있기는 해, 나는 그런 용어가 마음에 안 들지만말이야." 사방이, 세상 만물이 그렇게 조용할 수 없었다. 멀리서 숲 속 어딘가에서, 딱따구리의 방정맞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말해봐. 도대체 너희들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버니가 물었다. 버니는 그제야 낌새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숲이 조용해졌다. 소리라는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헨리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응, 고사리 몇 포기 캐려고." 그러고는 버니에게로 한 발 다가섰다.
2권에서 계속 - 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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