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는 우리가 교재로 쓰던 칼리마코스의 풍자시에 대한 두 페이지짜리 에세이를 쓰는 것이었다. 되어 있는 것은 한 페이지뿐이었다. 나는 시간에 쫓기면서 서둘러 편법으로 쓸 수밖에 없었다. 편법이란, 일단 영어로 써놓고 이것을 그리스어로 번역하는 방법이었다. 이 편법은, 줄리언이 절대로 써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 방법이기도 했다. 줄리언에 따르면 그리스어산문 작법 공부의 진정한 가치는 사람들에게 언어를 실용적으로 쓰게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어 산문 작법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쉽게 언어를 숙달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어를 이용한 사고법이다. 그의 지론에 따르면, 그리스어를 다른 언어의 경직되고 부자연스러운 개념으로 억지로 번역함으로써 그 의미를 한정해버리면, 사고의 패턴이 전혀 달라져버린다. 결국 상당히 평이하고 일반적인 개념이 엉뚱한 개념으로 바뀌는가 하면, 그 개념과 상관없는 전혀 다른 개념이 생생하게 살아나 완전히 새로운 의미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그리스어 개념을 영어로 설명하려고 할 때마다 곤란을 겪고는 한다. 불을 뜻하는 라틴어의 인켄디움(incendium)은 프랑스 사람들이 담배에다 붙이는 퍼(feu)와는 다르다. 이 둘은 불은 불이라도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는 무정하고 흉폭한 퓌르(pur)와도 다르다. 그리스어로 퓌르(pur)라고 할 경우, 이불은 일리온(트로이아-옮긴이) 성 위로 오르는 불길, 바람이 휘몰아치는 한적한 해변에서 파트로클로스의 화장단솟아오르는 불길을 말한다. - P314

어떤 의미에서 내가 고전어과 동아리에 친밀감을 느끼는 까닭도 여기에있다. 고전과 동아리 역시 수세기 동안 사멸의 길을 걸어온 이 그리스어가그려내는 끝없이 아름답고 끝없이 처절한 풍경을 이해한다. 그들 역시 5세기적인 눈으로 그리스어 책을 펼치고는 어쩐지 타향을 대할 때처럼 세계가 서먹서먹하고 낯설게 보이던 경험을 지니고 있다. 내가 줄리언을, 특히 헨리를존경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들의 이성, 그들의 눈, 그들의 귀는 그 엄격한 고대의 리듬에 고착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 그 세계는 그들의 고향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그 세계라는 것에 의하면 그랬다. 그러나 내가 그세계를 흠모하는 관광객이었던 반면, 그들은 자신들을 정기적인 방문자를넘어 영주권자로 생각하기까지 했다.  - P315

시간이 갈수록 버니에 대한 나의 증오는 자라갔다. 사냥개처럼 그는 재빨리 본능의 코로, 내가 가장 감추고 싶어하던 나의 취약한 부분, 나에게 수많은 불면의 밤을 안기던 약점의 냄새를 맡아나갔다. 그가 나를 상대로 되풀이해서 벌인 이 기묘한 장난은 대단히 가학적이었다. 그는 교묘한 방법으로 나에게 거짓말을 하게 했다. 어느 날 그는 나의 넥타이를 보면서 이런말을 했다.
"멋진 넥타이다. 에르메스 같은데, 그렇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그의 손이 식탁 위를 건너와 나의 넥타이를 뒤집었다. 물론 싸구려 넥타이에 에르메스 상표가 붙어있을리 만무했다. - P343

그러나 이런 불쾌한 기억이 늘 나를 괴롭히기는 했어도 버니에게 그런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정반대되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나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버니를 사랑했다. 어쩌다 버니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휘파람을 불면서 낡은 보도를 깐닥거리며 지나가는 것을 볼 때면 나는 애중이 착잡하게 뒤엉킨 감정으로 괴로워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있었다. 수백 번이라도 용서할 수 있었다. 모습, 몸짓, 머릿속에 든 것 때문에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버니라는인간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럴 경우에는 버니가 무슨 짓을 하건 화를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는전과 다름없이 정답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앉아서 이야기를 하다가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태도를 바꾸고는 했다. 그러니까 여느 때처럼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의자 등받이에 턱 기대면서부터는 태연하게 악담을 퍼붓고는했다. 그의 악담은 지극히 질이 낮았지만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나로서는 대답할 말이 없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럴 때마다 나는, 결코, 결코버니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나자신에게 맹세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약속을 수없이 깨뜨려야 했다. 나는 여기에서 약속이라는 말을 쓰면서, 내가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하는 최종적 약속이라는 의미를 담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본심이 아니다. 오늘날까지도 나는 버니에게 느꼈던 것만큼의 처절한 분노는 경험한 적이 없다. 지금이라도 버니가 김이 잔뜩 낀 안경을 쓰고 쉰 냄새를 풍기면서 내 방으로 들어와 늙은 개처럼 머리에 앉은 빗방울을 털어내고는, "이봐요, 목마른 늙은이를 위해 마실 것 좀 내놔봐요" 한다고 해도 예전의 그 애정은 되살아날 것 같지 않다.
혹자는,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Amor vincit omnia)라는 옛말을 상기시키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짧고 서글픈 인생을 통해 내가 확실하게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런 옛말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이라고 해도 모든 것을 이기지는 못한다. 이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보이기가 쉽다.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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