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머니에게 대답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줄곧 원해 온 것은 글쓰기였고, 오직 그것만을 하고 싶다고, 그것만을, 그녀는 질투하고 있었다. 아무 대답 없이 흘깃 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리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잊을 수 없는 그 몸짓, 내가 맨 먼저 떠나가게 될 것이다. 어쨌든그녀가 나를 잃기에는, 여기 있는 이 아이를 잃기에는 아직 몇 년이 남아 있다. 아들들의 경우에는 두려워해야 할것이 없다. 그러나 이 딸애는 어느 날엔가는 떠날 것이며,
데이트도 하게 될 것이다. 어머니는 그런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프랑스어 과목 일등. 담임이 그녀에게 말했다. 부인, 부인의 따님이 프랑스어 과목에서 일등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안 했다. 한마디도 전혀 만족한 기색이 아니었다. 프랑스어 과목에서 일등을 한 것이 아들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듣기가 싫어서 어머니는 이렇게 물었다. 언제 수학에서도 그럴 때가 올까요? 담임의 대답, 아직 그렇게는 못 되지만 그럴 때가 오겠지요. 어머니가 물었다. 그때가 언제일까요? 담임의 대답. 따님이 수학 일등을 원할 때겠지요. 부인. - P30

그 남성용 모자에는 가난과의 인연이 담겨 있었다. 머잖아 집안에 돈이 들어와야 할 때가 닥쳐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수입이 있어야 했다. 어머니 주위는 온통 사막과 같았다. 아들들이 바로 그 사막이었다. 그들은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터무니없이 비싼 땅값도 역시암담했다. 돈이 바닥나면 모든 게 끝장이었다. 유일하게 남은 것은 나날이 커가는 딸뿐이었다. 그 애는 언젠가는 이집안의 돈이 어떻게 해서 벌어들여진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딸애는 그 사실을 모르지만, 어머니는 딸이 나이 어린 창녀 같은 옷차림으로 외출하는것을 허락한 것이다. 그래서 딸애는 벌써부터 그런 몸치장을 할 줄 아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사람들이 그 소녀에게 갖게 될 관심을 그녀가 돈을 벌 수 있는 쪽으로 돌리기에충분한 것이었다. 그런 사실이 어머니를 미소 짓게 했다. - P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들어가며 :흐르는 강물처럼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류는 단 한 명도 빠짐없이 하나의 종,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에 속합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속한 호모속에는 현재 다른 어떤 종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람같이 생긴 동물은 모두 호모 사피엔스입니다. 사람 비슷하게 생겼으나 딱히 사람은 아닌 종, 호모속에 속한 다른 종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호모 사피엔스, 즉 사람은 외둥이인 셈입니다. - P6

인류의 진화는 마치 정권을 이양하듯, 왕조가 바뀌듯 하나의 계통에서 다른 계통으로 바뀌며 진행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계통에서 두 개의계통으로 갈라지며 진행되었다는 생각이 20세기 후반에 자리 잡았습니다. 계단이 아닌 나뭇가지처럼 뻗어 나가는 모습이 20세기 후반에 자리 잡은 인류의 진화에 대한 이미지입니다. 나무 모양이 만들어 낸 인류의 진화에는 다양한 고인류 계통이 등장합니다. 공통의 조상 계통에서 두 개의 계통으로 갈라져 나가기를 반복하면서 아름드리나무가 만들어졌습니다. 인류 화석종의 이름도 늘어났습니다.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 Sabetanthropus ichadensis, 오로린 투게넨시스 Orrorin ugenensis.
아르디피테쿠스 라미스 Ardipitbecus ramidus,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 Australopithectus garht,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 Australopitbecussediba,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 Paranthropus botset, 파란트로푸스 로부스투스Parantbropus robustus, 호모 루돌펜시스Homo rudolfensis, 호모에르가스테르Homo ergaster, 호모 안테세소르 Homo antecessor,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Homo neandertbalensis 등 수없이 많은 화석종이 발표되었고 지금도 발표되고 있습니다. 한번 갈라져 나간 나뭇가지가 다시 만나지 않듯이 두 계통으로 분화된 인류는 각자 나름의 진화 역사를 만들며 새로운 종이 되어 다시는 만나지 않게 됩니다. 수없이 많은 화석종 중현재의 인류로 이어져 온 ‘정통‘의 가지가 있고 나머지는 ‘곁‘가지라는생각이 자리 잡았습니다. 곁가지는 막다른 골목길에 마주친 것처럼 더이상 진화하지 못하고 인류의 진화 무대에서 사라지고 마는 ‘루저‘의 역할입니다. 호모 사피엔스처럼 성공한 자손에게 유전자를 물려주지못했다고 생각했죠. 네안데르탈인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 다시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서로 유전자 교환을 하지 않았어야 할 종끼리 유전자 교환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고유전학의 발달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 P8

20세기 전반 우리의 생각을 지배했던 계단식 진화, 20세기 후반 우리의 생각을 지배했던 나무식 진화, 이 둘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을 표현하기에는 모자라는 은유였습니다. 인류의 진화는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앞으로 행진하는 모습도 곁가지와 본가지로 갈라져서 울창한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뻗어가는 모습도 아닙니다. 차라리 갈라졌다가 다시 만나고 다시 갈라지는 강줄기의 모습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많은 물줄기를 이루었던 인류 계통의 다양성은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작은 물줄기에서 큰 물줄기로 모여 지구 전체를 덮고 있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다양한 집단의 다양한 기원이 만들어 낸 모습입니다. - P10

종Species-속Genus-과 Family-목Order-강Class-문Phylum-계Kingdom 가 그것입니다. 비슷한 생물체들을 같은 종으로 묶고, 비슷한 종들은 같은 속으로 묶고, 비슷한 속들은 같은 과로 묶었습니다. 종은 가장 기본적인 생물 분류 단위가 되었습니다. 린네의 이명법에 따라종명은 속명 generic name과 종소명 specific name 의 두 이름으로 이루어집니다. 속명은 대문자로 시작하고 종소명은 소문자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종명은 반드시 이탤릭체로 쓰거나 밑줄을 쳐서 종명이라는 것을 나다냅니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중 호모 Homo는 속명이고 사피엔스sapiens는 종소명입니다.
두 단어가 아닌 세 단어로 학명을 나타낼 때도 있습니다. 그 경우 세번째 단어가 소문자로 시작하면 종보다 하위 개념인 아종 혹은 변종을의미합니다. 가령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는 호모사피엔스의 아종입니다. 한편 세 번째 단어가 대문자로 시작하면 종명을 붙인 사람의 이름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Homo sapiens Linne라고 쓰면 호모 사피엔스 종의 이름을 붙인 사람이 린네라는 뜻이 됩니다.
린네는 일견 혼란스럽고 복잡해 보이는 생물계에 체계적인 질서를 보여줌으로써 자연에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사실 린네가 생물계의 자연 법칙을 보여준 이유는 이 세상이 신이 계획한 대로질서 정연하고 완벽하게 짜여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그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어째서일까요? 바로 사람에게도 종명을 붙였기 때문입니다. - P18

사람과 유인원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혈청 단백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라 사람과 유인원은 1,000만 년 전이 아니라 불과 수백만 년 전에 갈라졌다는 가설이 등장했습니다. 충격적이었습니다. 유전학의 발달로 사람뿐만 아니라 침팬지와 고릴라의 유전자 자료까지 모이기 시작하면서 사람, 침팬지, 고릴라 세 계통 중 사람과 침팬지가 가장 가깝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사람과 침팬지가 유전적으로 비슷한 정도는 사람과 고릴라가 비슷한 정도, 침팬지와 고릴라가 비슷한 정도보다 분명히 컸습니다.
사람과 침팬지가 서로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이야기는, 달리 말하면 사람과 침팬지 계통은 서로 갈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우리‘와 침팬지가 유전자의 98.5퍼센트를 공유한다는 것이 밝혀지고 이것이 후속 연구로 계속 뒷받침되자 충격은 학계 전반으로 퍼졌습니다. - P21

독일의 생물학자인 에른스트 마이어 Ernst Mayr는 종을 1) 서로 생식이 가능하고 2) 자발적으로 서로 간에 생식 활동을 하며 3) 그렇게 해서 나온 자손이 생식 능력을 가지고 있는 무리라고 정의했습니다. 서로 생식이 가능했던 하나의 종種, species에서 서로 생식이 불가능한 다른 종으로 갈라지는 과정은 역동적입니다. 어느 순간 칼로 두부를 가르듯 하나였다가 둘로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차츰 유전자를 섞지 않게 되면서 서로 다른 점을 쌓아가게 됩니다. 처음 갈라졌을 때는 당연히 서로 유전자를 섞을 수 있지만 점차 차이가 커지면서 서로 유전자를 섞을 수 없게됩니다. 종이 완전히 갈라지는 겁니다. - P24

결국 1990년대를 마무리하면서 학계는 아파렌시스가 두 발로 걸었고 나무 타기에 적응하지 않았으며 남녀 간의 몸집 차가 큰 화석이라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했습니다. 최초의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유인원과 별반 다름없지만 사람과 같이 (직립보행 외에 다른 방식으로는 움직이지 않는) 의무적 직립보행을 했던 것으로 학계 전체가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직립보행을 했다는 것이 유일한 사람다운 특징이었습니다. 두뇌는 침팬지 정도로 작고, 몸집은 현생인류의 유치원생 정도였고, 치아는 컸습니다. 만약 그들이 도구를 만들어 썼다면 치아가 작아졌을 것인데 그렇지는 않았던 겁니다. 하지만 여느 유인원의 이빨처럼 무시무시하게 크지는 않았습니다. 침팬지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침팬지의 조상이 아니라 인류의 조상이라고 결론지어진 이유는 인류의 특징인 의무적인 직립보행을 했다는증거 때문이었습니다. - P33

그리고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가 발견되었습니다. 1993년에 발견되어 2009년에야 상세한 내용이 발표된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는440만 년 전의 고인류 화석종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보다 100만 년 일찍 등장했습니다. 작은 머리와 작은 몸집은 우리가 알고있는 초기 인류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획기적으로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일명 아르디라고 불리게된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의 엄지발가락은 의무적 직립보행을 했던 발가락의 모습이 아닙니다. 아르디의 엄지발가락은 우리의 엄지손가락처럼 옆으로 나 있어서 다른 발가락과 맞닿을 수 있는 모습입니다. 나뭇가지를 움켜잡고 나무를 탈 수 있는 모습의 발을 가진 아르디는 나무를 탔을까요? 유인원과 별다르지 않지만 단지 의무적 직립보행을 했기 때문에 인류 계통에 속하게 된 아르디가 나무 타기에 적응했다는 가설은충격을 주었습니다. 인류가 기원한 것으로 알려진 사바나 초지에서 그렇게 탈 만한 나무가 많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치아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치아를 이루는 물질의 동위원소를 분석하면 주로 어떤 잎사귀를 먹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숲에서 나뭇잎을 주로 먹었는지, 초지에서 풀잎을 주로 먹었는지알 수 있죠. 그런데 아르디의 치아를 분석해 보니 나뭇잎을 주로 먹었음이 밝혀졌습니다. 나뭇잎이 많은 지역에 살았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초기 인류가 사바나의 너른 초원에서 사람다운 두 발 걷기와 함께 시작했다는 가설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 P34

초기 인류가 사람과 같이 두 발 걷기만을 할 수 있도록 적응했다는 가설이 조금씩 깨지고 있습니다. 인류는 다른 어떤 특징보다도 직립보행을 함으로써 인류다워졌다는 정설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300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하나뿐이 아니었습니다. 직립보행을 하는 방법은 하나뿐이 아니었습니다.
아파렌시스가 살았던 동아프리카에는 엄지손가락같이 생긴 엄지발가락으로 두 발 걷기를 하던 의문의 고인류가 함께 있었습니다. 이들은 아파렌시스와 만났을까요?
고인류의 시작이 당당한 두 발 걷기에서 시작했다는 가설이 주류가설로 받아들여지기까지 20~30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440만 년 전 아르디와 같이 두 발로 (당당하게) 땅 위를 걷고 나무도 탈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춘 고인류가 366만 년 전 동아프리카에서 아파렌시스와같은 지역을 걸었다는 놀라운 가설이 제시되었습니다. 이 가설은 앞으로 좀 더 많은 자료의 검증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단지 루시와같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다른 고인류와 함께 따뜻한 화산재를 밟으면서 걸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 P38

사람의 엄지손가락은 보통의 영장류 엄지손가락처럼 다른 손가락을마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엄지손가락에게는 특별한 능력이있습니다. 엄지손가락이 다른 손가락과 마주 볼 뿐 아니라 엄지손가락의 끝이 다른 손가락의 끝과 맞닿을 수 있습니다. 오케이 사인을 만들수 있고 바늘을 잡을 수 있습니다. 사람 이외 영장류의 엄지손가락은 다른 손가락을 마주 볼 수 있지만 짧아서 손가락 끝끼리 맞닿지는 않습니다. 다른 손가락과 맞닿을 수 있도록 생긴 엄지손가락은 도구를 만드는데 중요한 조건이 됩니다. 가령 석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돌을 붙잡고 깰수 있을 만큼의 강한 엄지손가락과 아귀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루이스 리키가 호모 하빌리스의 손뼈 화석을 보고 그런 이름을 붙였던것입니다.
그렇지만 최초의 도구는 최초의 도구 제작자로 알려진 호모 하빌리스의 화석과 함께 발견되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의 도구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것은 석기, 즉 돌로 만든 도구입니다. 최초의 도구는 최초의 석기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단지 석기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최초의 도구는 돌이 아닌 다른 재료, 예를 들면 나무, 가죽, 뼈 등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니, 사람이 사용한 대부분의 도구는 돌이 아닌 재료로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레이먼드 다트 Raymond Dart는 최초의 도구를 뼈-이빨-가죽 문화osteodontokeratic culture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렇지만 돌로 만들어진 도구가 아니면 대부분 썩어 사라지고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돌로 만든 도구는 몇백만 년 뒤에도 남아 있을수 있습니다. - P41

 석기와 함께 발견된 고인류에 대한 해석은 까다롭습니다. 석기와 함께 동물 뼈가 발견되었다면 우리는 고인류가 석기를 사용해서 동물 뼈를 처리했다고 봅니다. 석기와 함께 사람 뼈가 발견되었다면 우리는 사람이 사용하던 석기라고 봅니다.그러나 석기와 함께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과연 석기를 만들어 사용한 쪽인지, 아니면 동물처럼 도축된 쪽인지는 쉽게 알 수 없습니다. 석기를 만들어 쓴 고인류가 호모일것이라는 가설에서 본다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석기를 쓴 주체가 아니라 호모가 석기를 사용해서 도축한 대상이 됩니다. 이 해석은 도구를 처음 만든 고인류가 누구였는지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최초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 고인류는 호모 하빌리스라는 가설이 오랫동안 정설이었기 때문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함께 발견된 석기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만들어 쓴 석기일 수 있다는 가능성은 그다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 P44

그런데 1996년 약 250만 년 전에 살았던 고인류 화석종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가 동물 뼈와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가르히와 함께발견된 동물 뼈에는 칼자국이 나 있었습니다. 가르히가 석기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석기를 사용해서 남긴 동물 뼈의 흔적은 고인류학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도구를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도구를 사용했다는 뜻이었기때문입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석기를 사용했다면 석기를 제작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게 됩니다.
칼자국이 난 동물 뼈는 계속 발견되었습니다. 340만 년 전 에티오피아의 디키카Dikika 유적에서 발견된 동물 뼈에 남겨진 칼자국은 분명히 호모속이 아닌 고인류가 도구를 써서 동물 뼈를 처리했다는 자료입니다. 340만 년 전에는 호모속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330만 년 전숲이 우거진 케냐의 롬퀴 Lomekwi 유적에서 발견된 석기는 최초의 석기인 올도완 석기를 만드는 방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돌을 깨서 날을 세운찍개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석기를 만든 고인류는 누구였을까요?  - P4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글을 시작하며

나의 삶, 나의 기도

참으로 먼 길을 걸어왔다.
나는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 강산을 침탈하던 때에 태어나 해방과 분단,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젊은 날을 보냈다. 상처받고 신음하는 가난한 조국의 딸로 생명을 받았지만, 그래도 꿈을 보듬으면서 학창과 유학 시절을 싱그럽게 보낼 수 있었다. 유복한 가정과 배움의 기회를 부여받은 건 참으로 행운이었다.
1962년 남편 김대중과 결혼하면서 내 삶은 길고 험난한 여정을 시작했다. 남편은 수차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어둡고 쓸쓸한 감옥과 연금의 긴 나날들, 이국에서의 망명 생활 등은 신산하고 고통스러운 세월이었다. 남편이 차디찬 감방에 있는 기간에 홀로 기도하고 눈물로 지새운 밤도많았다. 독재는 잔혹했고, 정치의 뒤안길은 참으로 무상했다.
하지만 유신 통치와 제5공화국이 지속되는 고통의 심연 속에서 지순한 아름다움을 목격하기도 했다. 민주주의라는 우리의 ‘공동선‘을 실현하기위해 숱한 젊음이 스스로 고난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수없이 많은 이의 거룩한 죽음과 투옥이 연이었다. 어떠한 억압과 시련 속에서도 의義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은 결코 절멸하지 않음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토록 수많은 국민의 소망이 헛되지 않아서 민주주의는 점차로 결실을 맺었다. - P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오후 2시 55분. 강아지 세 마리와 그동안 인듀어런스 호의 마스코트였던 고양이 ‘치피 여사‘ 를 크린이 총으로 쐈다. 한 번도 썰매를 끌어본 적이 없는 강아지 시리우스의 처리는 맥클린에게 맡겨졌다. 시리우스는 총구를 빤히 쳐다보며 맥클린의 손을 핥았고, 맥클린은 손을 너무 떠는 바람에 총알을 두 방이나 쏘아야 했다. 총소리가 얼음 위로 울려퍼지며 모두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 P81

"배가 가라앉는다!"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온 대원들은 높은 망루 위에 서서 인듀어런스 호의 최후를 말없이 지켜보았다. 뱃고물이 하늘 높이 치솟더니 곧 이어 뱃머리부터 서서히 물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대원들을 태우고 처녀 항해에 나섰던, 헐리에 의하면  ‘바다의 신부‘였던 인듀어런스 호가 마침내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모두들 아무 말도 못하고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베이크웰은 그날의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나는 목구멍에 무엇인가 걸린 것 같았는데 삼길 수가 없었다 •••••• 이제 우리는 완벽하게 외로운 처지가 되고 말았다."
섀클턴은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오후 5시에 인듀어런스 호는 머리부터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가장 상처를 많이 받은 뱃고물이 맨 마지막으로 물 속에 들어갔다 •••••• 도저히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 P94

가장 심각한 것은 식량 문제였다. 주변에는 사냥할 만한 물개가 흔치 않았으며, 오션 캠프에서 가져 온 고기와 고래기름도 점점 바닥나고 있었다.
1월 14일, 와일드, 크런, 맥클로이, 마흔이 맡고 있던 개 27마리가 모두 총을 맞았다.
더 이상 필요할 것 같지도 않았고, 개들이 먹어치우는 식량의 양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개에게 줄 먹이는 이제 히기에 지친 대원들의 식량이 되었다.
"이 임무가 나에게 떨어졌는데, 내 생애 가장 끔찍한 일이었다." 와일드는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적었다. 이 어쩔 수없는 사태는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으며, 맥니쉬의 표현대로
"고향을 떠나 온 이래 가장 슬픈 사건" 이었다. 그날 밤, 헐리와 맥클린은 오션 캠프에 다녀오는 위험한 임무를 맡았다. 다음날 그들은 400kg이나 되는 물품들을 썰매에 싣고 돌아왔는데, 헐리의 개가 썰매를 끈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오후에 와일드가 내 개들을 총으로 쏘아 죽였다." 헐리는 자기가 좋아했던 개들의 명복을 오랫동안 빌었다. "개들의 우두머리였던 늙은 셰익스피어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두려움을 모르고 충직하며 부지런했던 나의 사랑스런 개들을 항상 기억할 것이다."
••••••
3월30일, 마지막 개를 죽이고 어린 강아지를 먹었다. 이제 대원들 사이에는 딱히 슬퍼하는 기색도 없었다. 그저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묵묵히 인정하며 ‘예상치 못한 고기 맛을즐길 뿐이었다. 대원들은 2주 만에 처음으로 배불리 먹었다.  - P96

4월 20일. 섀클턴이 대원들을 모아 놓고 중대 발표를 했다. 그의 지휘 아래 몇몇 대원들이 제임스 커드 호를 타고 사우스 조지아 섬에 있는 포경기지로 간다는 것이었다. 이제 막 엘리펀트 섬에 도착한 처지에서 그건 실로 엄청난 계획이었다.
여기에서 사우스조지아 섬까지는 무려 1,000km. 지금까지 온 거리의 10배가 넘는다. 그토록 멀고 까마득한 곳을, 겨우 6m 길이의 갑판도 없는 배를 타고, 지구에서 가장 험난한 바다 위로, 그것도 겨울에 지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 바다에는 시속 100km의 바람이 불고 20m 높이의 거대한 파도가 기다리고 있다. 운이 따르지 않으면 훨씬 심한 상황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육분의와 크로노미터만을갖고 중간에 육지가 전혀 없는 바다를 지나 그 작은 섬을 향해 가야 한다. 게다가 날씨 또한 항해에 적당하지 않다. 이 계획은 만만찮은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원들 중 선원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듯이 "도저히 불가능했다." - P112

하지만 정부 역시 구조작업을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영국은 여전히 전쟁중이었고, 남는 배는 단 한 척도 없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남극 바다의 얼음을 헤쳐나갈 크고 튼튼한 배를 구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스콧이 탔던 디스커버리 호가 유일한 대안이었지만, 그 배 역시 10월이나 되어야 항해에 나설 수 있었다.
섀클턴이 배를 찾아 여기저기 헤매는 동안 영국 외무성은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칠레 정부에 긴급한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6월 10일에 우루과이 정부가 작은 탐사선인
‘인스티투토 드 페스카 1호‘ 와 선원들을 무료로 보내왔다. 하지만 이 배 역시 엘리펀트섬 부근에서 얼음에 의해 심한 손상을 입은 채 뱃머리를 돌려야 했다.
세 번째 시도는 푼타아레나스(칠레 남단의 항구도시-역주)에서 영국협회가 지원해 준 ‘엠마‘ 호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배마저 기상악화로 인해 엘리펀트 섬을 150km앞둔 지점에서 되돌아오고 말았다. 몇 주면 된다고 생각했던 일이 몇 달째 실패를 거듭하자섀클턴은 필사적으로 다른 배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이때의 심정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워슬리는 이렇게 적었다. "섀클턴은 거의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얼굴엔 날마다 주름이 새로 늘어났고, 검고 두껍던 머리카락은 차츰 흰색이 되어갔다. 맨 처음 구조작업을 시작했을 때 그에게는 회색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세 번째 구조작업을 나서는 그의 머리는 완전한 회색이었다."
섀클턴이 느꼈던 초조함은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션 캠프에서 헐리가 찍은 사진을 보면 섀클턴은 무표정하게 얼음 위에 앉아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명랑한 느낌을준다. 그러나 이 시기의 사진에서는 과거의 얼굴을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다. 긴장의 나날을 보내는 동안 그의 얼굴은 몰라볼 정도로 늙어버렸다. 때는 8월 중순, 제임스커드호가 출발한 지 벌써 4개월이 지난 뒤였다. - P144

"습지에 불이 난 것 같은 강한 향기가 퍼졌다." 헐리는 이렇게 적었다. "만일 먹을 것과 담배가 풍족했다면, 우리의 정신상태는 아주 위태로워졌을 것이다. 이런저런 궁리와 실험이 없었다면 우리의 사기는 심각하게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이 실험은 실패로 끝났지만 어쨌든 베이크웰의 생각은 훌륭한 것이었다.
사라진 즐거움은 담배만이 아니었다. 대원들이 별 생각 없이 자기 몫의 설탕을 오늘리의 다른 물건들과 교환하고 오들리가 그 설탕을 모아 두는 사태가 벌어지자, 와일드는음식물 교환 자체를 아예 금지시켜 버렸다. 설탕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탄수화물공급원이라는 경고와 함께.
7월에는 술을 만들어 마시는 일이 늘어났다. 그러나 술을 만들 재료 역시 떨어져 갔고, 더 중요한 비스킷과 귀중한 닛푸드도 바닥이 났다. 분말 우유도 모두 바닥났다. 이제먹을 것이라고는 오직 펭귄이나 물개밖에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끊임없이 모진 ‘학살자‘ 가 되어야 했다. - P156

8월 30일 새벽은 맑고 추웠다. 눈 치우는 작업을 마친 대원들은 조개를 잡기 위해 설물 시간인 오전 11시쯤 바다로 나갔다. 12시 45분. 대부분의 대원들이 돌아와 점심 식사를 했고, 마층과 헐리는 밖에서 조개를 다듬고 있었다.
와일드는 밖에서 마츤이 허겁지겁 달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관심을 기울이는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단지 식사시간에 늦어서 뛰어오고 있을 뿐이니까. 잠시 후,
마츤이 벽을 뚫어버릴 듯한 기세로 오두막에 머리를 들이밀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배가 왔어요!"
그리고 이어지는 얘기.
"연기로 신호를 올려야 하지 않을까요?"
오두막 안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
"미처 대답할 겨를도 없이 대원들은 엎치락뒤치락 서로 엎어지고 국그릇을 뒤엎으며 출입구로 한꺼번에 달려갔다. 출입구를 가린 천이 찢어졌고, 그리로 나가지 못한 대원들을 부수고 밖으로 몰려나갔다."
오들리는 이렇게 적었다.
밖에 있던 헐리가 파라핀, 고래 기름, 말린 풀을 섞어서 황급히 불을 붙였다. 연기가끝나지 않았지만 상관없는 일이었다. 배는 불과 1.5km 떨어진 곳에 있었으니까. 그리고정확히 해변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맥클린이 깃대에 바바리 재킷을 달아 높이 흔들었다. 오두막 안에 혼자 누워 있던 블레보로를 허드슨과 오들리가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대원들은 그 신비의 배에서 칠레 해군의 깃발을 보고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배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흥분을 이기지 못한 대원들이 일제히 발을 구르며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해안으로부터 150m 떨어진 곳에 배가 멎었고, 작은 보트가 내려졌다. 섀클턴이 거기에 타고 있었다. 크린의 모습도 보였다.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다. 몇 분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와일드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베이크웰은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다"라고 적었다.
대원들은 숨을 멈추고 섀클턴이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서로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거리가 되자 그들은 일제히 한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무사합니다!" - P158

모험이 끝나자 지나간 일들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엘리펀트섬에서의 일상은 절망적이기보다 그저 조금 불편한 정도에 불과한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절대 감정적이지 않다 ••••••." 헐리는 이렇게 적었다. "그러나 안개 속으로 섬의 봉우리가 사라져 가는 순간, 우리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주었던 저 땅을 영원히 떠난다는 슬픔이 밀려왔다. 우리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일한 흔적인 오두막을 이제는 펭귄들이 드나들며 둘러볼 것이다. 이제는 저 멀리 사라진 엘리펀트 섬."
당시 섀클턴의 심정은 푼타아레나스에 도착하여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나있다.
"드디어 해냈소•••••• 한 사람도 잃지 않고, 우리는 지옥을 헤쳐나왔소" - P1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날마다 그랬다. 그 점만은 분명하다. 격렬해지는 때도 있었을 것이다. 날마다 거의 일정한 시각에 절망이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그러면 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잠도 잘 수 없었고, 때로는 그 어떤 일도 불가능했다. 아니면 때로는 정반대로 집을 사거나, 이사를 하거나, 전혀 예기치 않게 기분이 들뜨다가도 좌절하거나, 그도 아니면 때로는 여왕이라도 된 듯 우리가 어머니에게 요구하는것, 그녀에게 제안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었다. 아버지가 죽어 가는데도 아무 이유 없이 사들인 ‘작은 호수‘ 위의 그 집, 딸이 원하니까 사준 남성용 중절모, 금박으로 장식된 하이힐 등. 아니면 아무것도 안 하거나, 자거나, 죽은 듯 있기도 했다. - P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