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흐르는 강물처럼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류는 단 한 명도 빠짐없이 하나의 종,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에 속합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속한 호모속에는 현재 다른 어떤 종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람같이 생긴 동물은 모두 호모 사피엔스입니다. 사람 비슷하게 생겼으나 딱히 사람은 아닌 종, 호모속에 속한 다른 종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호모 사피엔스, 즉 사람은 외둥이인 셈입니다. - P6

인류의 진화는 마치 정권을 이양하듯, 왕조가 바뀌듯 하나의 계통에서 다른 계통으로 바뀌며 진행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계통에서 두 개의계통으로 갈라지며 진행되었다는 생각이 20세기 후반에 자리 잡았습니다. 계단이 아닌 나뭇가지처럼 뻗어 나가는 모습이 20세기 후반에 자리 잡은 인류의 진화에 대한 이미지입니다. 나무 모양이 만들어 낸 인류의 진화에는 다양한 고인류 계통이 등장합니다. 공통의 조상 계통에서 두 개의 계통으로 갈라져 나가기를 반복하면서 아름드리나무가 만들어졌습니다. 인류 화석종의 이름도 늘어났습니다.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 Sabetanthropus ichadensis, 오로린 투게넨시스 Orrorin ugenensis.
아르디피테쿠스 라미스 Ardipitbecus ramidus,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 Australopithectus garht,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 Australopitbecussediba,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 Paranthropus botset, 파란트로푸스 로부스투스Parantbropus robustus, 호모 루돌펜시스Homo rudolfensis, 호모에르가스테르Homo ergaster, 호모 안테세소르 Homo antecessor,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Homo neandertbalensis 등 수없이 많은 화석종이 발표되었고 지금도 발표되고 있습니다. 한번 갈라져 나간 나뭇가지가 다시 만나지 않듯이 두 계통으로 분화된 인류는 각자 나름의 진화 역사를 만들며 새로운 종이 되어 다시는 만나지 않게 됩니다. 수없이 많은 화석종 중현재의 인류로 이어져 온 ‘정통‘의 가지가 있고 나머지는 ‘곁‘가지라는생각이 자리 잡았습니다. 곁가지는 막다른 골목길에 마주친 것처럼 더이상 진화하지 못하고 인류의 진화 무대에서 사라지고 마는 ‘루저‘의 역할입니다. 호모 사피엔스처럼 성공한 자손에게 유전자를 물려주지못했다고 생각했죠. 네안데르탈인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 다시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서로 유전자 교환을 하지 않았어야 할 종끼리 유전자 교환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고유전학의 발달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 P8

20세기 전반 우리의 생각을 지배했던 계단식 진화, 20세기 후반 우리의 생각을 지배했던 나무식 진화, 이 둘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을 표현하기에는 모자라는 은유였습니다. 인류의 진화는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앞으로 행진하는 모습도 곁가지와 본가지로 갈라져서 울창한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뻗어가는 모습도 아닙니다. 차라리 갈라졌다가 다시 만나고 다시 갈라지는 강줄기의 모습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많은 물줄기를 이루었던 인류 계통의 다양성은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작은 물줄기에서 큰 물줄기로 모여 지구 전체를 덮고 있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다양한 집단의 다양한 기원이 만들어 낸 모습입니다. - P10

종Species-속Genus-과 Family-목Order-강Class-문Phylum-계Kingdom 가 그것입니다. 비슷한 생물체들을 같은 종으로 묶고, 비슷한 종들은 같은 속으로 묶고, 비슷한 속들은 같은 과로 묶었습니다. 종은 가장 기본적인 생물 분류 단위가 되었습니다. 린네의 이명법에 따라종명은 속명 generic name과 종소명 specific name 의 두 이름으로 이루어집니다. 속명은 대문자로 시작하고 종소명은 소문자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종명은 반드시 이탤릭체로 쓰거나 밑줄을 쳐서 종명이라는 것을 나다냅니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중 호모 Homo는 속명이고 사피엔스sapiens는 종소명입니다.
두 단어가 아닌 세 단어로 학명을 나타낼 때도 있습니다. 그 경우 세번째 단어가 소문자로 시작하면 종보다 하위 개념인 아종 혹은 변종을의미합니다. 가령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는 호모사피엔스의 아종입니다. 한편 세 번째 단어가 대문자로 시작하면 종명을 붙인 사람의 이름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Homo sapiens Linne라고 쓰면 호모 사피엔스 종의 이름을 붙인 사람이 린네라는 뜻이 됩니다.
린네는 일견 혼란스럽고 복잡해 보이는 생물계에 체계적인 질서를 보여줌으로써 자연에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사실 린네가 생물계의 자연 법칙을 보여준 이유는 이 세상이 신이 계획한 대로질서 정연하고 완벽하게 짜여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그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어째서일까요? 바로 사람에게도 종명을 붙였기 때문입니다. - P18

사람과 유인원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혈청 단백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라 사람과 유인원은 1,000만 년 전이 아니라 불과 수백만 년 전에 갈라졌다는 가설이 등장했습니다. 충격적이었습니다. 유전학의 발달로 사람뿐만 아니라 침팬지와 고릴라의 유전자 자료까지 모이기 시작하면서 사람, 침팬지, 고릴라 세 계통 중 사람과 침팬지가 가장 가깝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사람과 침팬지가 유전적으로 비슷한 정도는 사람과 고릴라가 비슷한 정도, 침팬지와 고릴라가 비슷한 정도보다 분명히 컸습니다.
사람과 침팬지가 서로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이야기는, 달리 말하면 사람과 침팬지 계통은 서로 갈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우리‘와 침팬지가 유전자의 98.5퍼센트를 공유한다는 것이 밝혀지고 이것이 후속 연구로 계속 뒷받침되자 충격은 학계 전반으로 퍼졌습니다. - P21

독일의 생물학자인 에른스트 마이어 Ernst Mayr는 종을 1) 서로 생식이 가능하고 2) 자발적으로 서로 간에 생식 활동을 하며 3) 그렇게 해서 나온 자손이 생식 능력을 가지고 있는 무리라고 정의했습니다. 서로 생식이 가능했던 하나의 종種, species에서 서로 생식이 불가능한 다른 종으로 갈라지는 과정은 역동적입니다. 어느 순간 칼로 두부를 가르듯 하나였다가 둘로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차츰 유전자를 섞지 않게 되면서 서로 다른 점을 쌓아가게 됩니다. 처음 갈라졌을 때는 당연히 서로 유전자를 섞을 수 있지만 점차 차이가 커지면서 서로 유전자를 섞을 수 없게됩니다. 종이 완전히 갈라지는 겁니다. - P24

결국 1990년대를 마무리하면서 학계는 아파렌시스가 두 발로 걸었고 나무 타기에 적응하지 않았으며 남녀 간의 몸집 차가 큰 화석이라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했습니다. 최초의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유인원과 별반 다름없지만 사람과 같이 (직립보행 외에 다른 방식으로는 움직이지 않는) 의무적 직립보행을 했던 것으로 학계 전체가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직립보행을 했다는 것이 유일한 사람다운 특징이었습니다. 두뇌는 침팬지 정도로 작고, 몸집은 현생인류의 유치원생 정도였고, 치아는 컸습니다. 만약 그들이 도구를 만들어 썼다면 치아가 작아졌을 것인데 그렇지는 않았던 겁니다. 하지만 여느 유인원의 이빨처럼 무시무시하게 크지는 않았습니다. 침팬지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침팬지의 조상이 아니라 인류의 조상이라고 결론지어진 이유는 인류의 특징인 의무적인 직립보행을 했다는증거 때문이었습니다. - P33

그리고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가 발견되었습니다. 1993년에 발견되어 2009년에야 상세한 내용이 발표된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는440만 년 전의 고인류 화석종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보다 100만 년 일찍 등장했습니다. 작은 머리와 작은 몸집은 우리가 알고있는 초기 인류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획기적으로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일명 아르디라고 불리게된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의 엄지발가락은 의무적 직립보행을 했던 발가락의 모습이 아닙니다. 아르디의 엄지발가락은 우리의 엄지손가락처럼 옆으로 나 있어서 다른 발가락과 맞닿을 수 있는 모습입니다. 나뭇가지를 움켜잡고 나무를 탈 수 있는 모습의 발을 가진 아르디는 나무를 탔을까요? 유인원과 별다르지 않지만 단지 의무적 직립보행을 했기 때문에 인류 계통에 속하게 된 아르디가 나무 타기에 적응했다는 가설은충격을 주었습니다. 인류가 기원한 것으로 알려진 사바나 초지에서 그렇게 탈 만한 나무가 많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치아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치아를 이루는 물질의 동위원소를 분석하면 주로 어떤 잎사귀를 먹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숲에서 나뭇잎을 주로 먹었는지, 초지에서 풀잎을 주로 먹었는지알 수 있죠. 그런데 아르디의 치아를 분석해 보니 나뭇잎을 주로 먹었음이 밝혀졌습니다. 나뭇잎이 많은 지역에 살았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초기 인류가 사바나의 너른 초원에서 사람다운 두 발 걷기와 함께 시작했다는 가설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 P34

초기 인류가 사람과 같이 두 발 걷기만을 할 수 있도록 적응했다는 가설이 조금씩 깨지고 있습니다. 인류는 다른 어떤 특징보다도 직립보행을 함으로써 인류다워졌다는 정설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300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하나뿐이 아니었습니다. 직립보행을 하는 방법은 하나뿐이 아니었습니다.
아파렌시스가 살았던 동아프리카에는 엄지손가락같이 생긴 엄지발가락으로 두 발 걷기를 하던 의문의 고인류가 함께 있었습니다. 이들은 아파렌시스와 만났을까요?
고인류의 시작이 당당한 두 발 걷기에서 시작했다는 가설이 주류가설로 받아들여지기까지 20~30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440만 년 전 아르디와 같이 두 발로 (당당하게) 땅 위를 걷고 나무도 탈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춘 고인류가 366만 년 전 동아프리카에서 아파렌시스와같은 지역을 걸었다는 놀라운 가설이 제시되었습니다. 이 가설은 앞으로 좀 더 많은 자료의 검증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단지 루시와같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다른 고인류와 함께 따뜻한 화산재를 밟으면서 걸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 P38

사람의 엄지손가락은 보통의 영장류 엄지손가락처럼 다른 손가락을마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엄지손가락에게는 특별한 능력이있습니다. 엄지손가락이 다른 손가락과 마주 볼 뿐 아니라 엄지손가락의 끝이 다른 손가락의 끝과 맞닿을 수 있습니다. 오케이 사인을 만들수 있고 바늘을 잡을 수 있습니다. 사람 이외 영장류의 엄지손가락은 다른 손가락을 마주 볼 수 있지만 짧아서 손가락 끝끼리 맞닿지는 않습니다. 다른 손가락과 맞닿을 수 있도록 생긴 엄지손가락은 도구를 만드는데 중요한 조건이 됩니다. 가령 석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돌을 붙잡고 깰수 있을 만큼의 강한 엄지손가락과 아귀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루이스 리키가 호모 하빌리스의 손뼈 화석을 보고 그런 이름을 붙였던것입니다.
그렇지만 최초의 도구는 최초의 도구 제작자로 알려진 호모 하빌리스의 화석과 함께 발견되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의 도구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것은 석기, 즉 돌로 만든 도구입니다. 최초의 도구는 최초의 석기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단지 석기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최초의 도구는 돌이 아닌 다른 재료, 예를 들면 나무, 가죽, 뼈 등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니, 사람이 사용한 대부분의 도구는 돌이 아닌 재료로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레이먼드 다트 Raymond Dart는 최초의 도구를 뼈-이빨-가죽 문화osteodontokeratic culture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렇지만 돌로 만들어진 도구가 아니면 대부분 썩어 사라지고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돌로 만든 도구는 몇백만 년 뒤에도 남아 있을수 있습니다. - P41

 석기와 함께 발견된 고인류에 대한 해석은 까다롭습니다. 석기와 함께 동물 뼈가 발견되었다면 우리는 고인류가 석기를 사용해서 동물 뼈를 처리했다고 봅니다. 석기와 함께 사람 뼈가 발견되었다면 우리는 사람이 사용하던 석기라고 봅니다.그러나 석기와 함께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과연 석기를 만들어 사용한 쪽인지, 아니면 동물처럼 도축된 쪽인지는 쉽게 알 수 없습니다. 석기를 만들어 쓴 고인류가 호모일것이라는 가설에서 본다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석기를 쓴 주체가 아니라 호모가 석기를 사용해서 도축한 대상이 됩니다. 이 해석은 도구를 처음 만든 고인류가 누구였는지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최초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 고인류는 호모 하빌리스라는 가설이 오랫동안 정설이었기 때문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함께 발견된 석기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만들어 쓴 석기일 수 있다는 가능성은 그다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 P44

그런데 1996년 약 250만 년 전에 살았던 고인류 화석종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가 동물 뼈와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가르히와 함께발견된 동물 뼈에는 칼자국이 나 있었습니다. 가르히가 석기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석기를 사용해서 남긴 동물 뼈의 흔적은 고인류학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도구를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도구를 사용했다는 뜻이었기때문입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석기를 사용했다면 석기를 제작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게 됩니다.
칼자국이 난 동물 뼈는 계속 발견되었습니다. 340만 년 전 에티오피아의 디키카Dikika 유적에서 발견된 동물 뼈에 남겨진 칼자국은 분명히 호모속이 아닌 고인류가 도구를 써서 동물 뼈를 처리했다는 자료입니다. 340만 년 전에는 호모속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330만 년 전숲이 우거진 케냐의 롬퀴 Lomekwi 유적에서 발견된 석기는 최초의 석기인 올도완 석기를 만드는 방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돌을 깨서 날을 세운찍개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석기를 만든 고인류는 누구였을까요?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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