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 55분. 강아지 세 마리와 그동안 인듀어런스 호의 마스코트였던 고양이 ‘치피 여사‘ 를 크린이 총으로 쐈다. 한 번도 썰매를 끌어본 적이 없는 강아지 시리우스의 처리는 맥클린에게 맡겨졌다. 시리우스는 총구를 빤히 쳐다보며 맥클린의 손을 핥았고, 맥클린은 손을 너무 떠는 바람에 총알을 두 방이나 쏘아야 했다. 총소리가 얼음 위로 울려퍼지며 모두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 P81

"배가 가라앉는다!"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온 대원들은 높은 망루 위에 서서 인듀어런스 호의 최후를 말없이 지켜보았다. 뱃고물이 하늘 높이 치솟더니 곧 이어 뱃머리부터 서서히 물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대원들을 태우고 처녀 항해에 나섰던, 헐리에 의하면  ‘바다의 신부‘였던 인듀어런스 호가 마침내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모두들 아무 말도 못하고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베이크웰은 그날의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나는 목구멍에 무엇인가 걸린 것 같았는데 삼길 수가 없었다 •••••• 이제 우리는 완벽하게 외로운 처지가 되고 말았다."
섀클턴은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오후 5시에 인듀어런스 호는 머리부터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가장 상처를 많이 받은 뱃고물이 맨 마지막으로 물 속에 들어갔다 •••••• 도저히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 P94

가장 심각한 것은 식량 문제였다. 주변에는 사냥할 만한 물개가 흔치 않았으며, 오션 캠프에서 가져 온 고기와 고래기름도 점점 바닥나고 있었다.
1월 14일, 와일드, 크런, 맥클로이, 마흔이 맡고 있던 개 27마리가 모두 총을 맞았다.
더 이상 필요할 것 같지도 않았고, 개들이 먹어치우는 식량의 양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개에게 줄 먹이는 이제 히기에 지친 대원들의 식량이 되었다.
"이 임무가 나에게 떨어졌는데, 내 생애 가장 끔찍한 일이었다." 와일드는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적었다. 이 어쩔 수없는 사태는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으며, 맥니쉬의 표현대로
"고향을 떠나 온 이래 가장 슬픈 사건" 이었다. 그날 밤, 헐리와 맥클린은 오션 캠프에 다녀오는 위험한 임무를 맡았다. 다음날 그들은 400kg이나 되는 물품들을 썰매에 싣고 돌아왔는데, 헐리의 개가 썰매를 끈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오후에 와일드가 내 개들을 총으로 쏘아 죽였다." 헐리는 자기가 좋아했던 개들의 명복을 오랫동안 빌었다. "개들의 우두머리였던 늙은 셰익스피어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두려움을 모르고 충직하며 부지런했던 나의 사랑스런 개들을 항상 기억할 것이다."
••••••
3월30일, 마지막 개를 죽이고 어린 강아지를 먹었다. 이제 대원들 사이에는 딱히 슬퍼하는 기색도 없었다. 그저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묵묵히 인정하며 ‘예상치 못한 고기 맛을즐길 뿐이었다. 대원들은 2주 만에 처음으로 배불리 먹었다.  - P96

4월 20일. 섀클턴이 대원들을 모아 놓고 중대 발표를 했다. 그의 지휘 아래 몇몇 대원들이 제임스 커드 호를 타고 사우스 조지아 섬에 있는 포경기지로 간다는 것이었다. 이제 막 엘리펀트 섬에 도착한 처지에서 그건 실로 엄청난 계획이었다.
여기에서 사우스조지아 섬까지는 무려 1,000km. 지금까지 온 거리의 10배가 넘는다. 그토록 멀고 까마득한 곳을, 겨우 6m 길이의 갑판도 없는 배를 타고, 지구에서 가장 험난한 바다 위로, 그것도 겨울에 지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 바다에는 시속 100km의 바람이 불고 20m 높이의 거대한 파도가 기다리고 있다. 운이 따르지 않으면 훨씬 심한 상황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육분의와 크로노미터만을갖고 중간에 육지가 전혀 없는 바다를 지나 그 작은 섬을 향해 가야 한다. 게다가 날씨 또한 항해에 적당하지 않다. 이 계획은 만만찮은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원들 중 선원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듯이 "도저히 불가능했다." - P112

하지만 정부 역시 구조작업을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영국은 여전히 전쟁중이었고, 남는 배는 단 한 척도 없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남극 바다의 얼음을 헤쳐나갈 크고 튼튼한 배를 구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스콧이 탔던 디스커버리 호가 유일한 대안이었지만, 그 배 역시 10월이나 되어야 항해에 나설 수 있었다.
섀클턴이 배를 찾아 여기저기 헤매는 동안 영국 외무성은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칠레 정부에 긴급한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6월 10일에 우루과이 정부가 작은 탐사선인
‘인스티투토 드 페스카 1호‘ 와 선원들을 무료로 보내왔다. 하지만 이 배 역시 엘리펀트섬 부근에서 얼음에 의해 심한 손상을 입은 채 뱃머리를 돌려야 했다.
세 번째 시도는 푼타아레나스(칠레 남단의 항구도시-역주)에서 영국협회가 지원해 준 ‘엠마‘ 호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배마저 기상악화로 인해 엘리펀트 섬을 150km앞둔 지점에서 되돌아오고 말았다. 몇 주면 된다고 생각했던 일이 몇 달째 실패를 거듭하자섀클턴은 필사적으로 다른 배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이때의 심정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워슬리는 이렇게 적었다. "섀클턴은 거의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얼굴엔 날마다 주름이 새로 늘어났고, 검고 두껍던 머리카락은 차츰 흰색이 되어갔다. 맨 처음 구조작업을 시작했을 때 그에게는 회색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세 번째 구조작업을 나서는 그의 머리는 완전한 회색이었다."
섀클턴이 느꼈던 초조함은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션 캠프에서 헐리가 찍은 사진을 보면 섀클턴은 무표정하게 얼음 위에 앉아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명랑한 느낌을준다. 그러나 이 시기의 사진에서는 과거의 얼굴을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다. 긴장의 나날을 보내는 동안 그의 얼굴은 몰라볼 정도로 늙어버렸다. 때는 8월 중순, 제임스커드호가 출발한 지 벌써 4개월이 지난 뒤였다. - P144

"습지에 불이 난 것 같은 강한 향기가 퍼졌다." 헐리는 이렇게 적었다. "만일 먹을 것과 담배가 풍족했다면, 우리의 정신상태는 아주 위태로워졌을 것이다. 이런저런 궁리와 실험이 없었다면 우리의 사기는 심각하게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이 실험은 실패로 끝났지만 어쨌든 베이크웰의 생각은 훌륭한 것이었다.
사라진 즐거움은 담배만이 아니었다. 대원들이 별 생각 없이 자기 몫의 설탕을 오늘리의 다른 물건들과 교환하고 오들리가 그 설탕을 모아 두는 사태가 벌어지자, 와일드는음식물 교환 자체를 아예 금지시켜 버렸다. 설탕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탄수화물공급원이라는 경고와 함께.
7월에는 술을 만들어 마시는 일이 늘어났다. 그러나 술을 만들 재료 역시 떨어져 갔고, 더 중요한 비스킷과 귀중한 닛푸드도 바닥이 났다. 분말 우유도 모두 바닥났다. 이제먹을 것이라고는 오직 펭귄이나 물개밖에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끊임없이 모진 ‘학살자‘ 가 되어야 했다. - P156

8월 30일 새벽은 맑고 추웠다. 눈 치우는 작업을 마친 대원들은 조개를 잡기 위해 설물 시간인 오전 11시쯤 바다로 나갔다. 12시 45분. 대부분의 대원들이 돌아와 점심 식사를 했고, 마층과 헐리는 밖에서 조개를 다듬고 있었다.
와일드는 밖에서 마츤이 허겁지겁 달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관심을 기울이는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단지 식사시간에 늦어서 뛰어오고 있을 뿐이니까. 잠시 후,
마츤이 벽을 뚫어버릴 듯한 기세로 오두막에 머리를 들이밀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배가 왔어요!"
그리고 이어지는 얘기.
"연기로 신호를 올려야 하지 않을까요?"
오두막 안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
"미처 대답할 겨를도 없이 대원들은 엎치락뒤치락 서로 엎어지고 국그릇을 뒤엎으며 출입구로 한꺼번에 달려갔다. 출입구를 가린 천이 찢어졌고, 그리로 나가지 못한 대원들을 부수고 밖으로 몰려나갔다."
오들리는 이렇게 적었다.
밖에 있던 헐리가 파라핀, 고래 기름, 말린 풀을 섞어서 황급히 불을 붙였다. 연기가끝나지 않았지만 상관없는 일이었다. 배는 불과 1.5km 떨어진 곳에 있었으니까. 그리고정확히 해변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맥클린이 깃대에 바바리 재킷을 달아 높이 흔들었다. 오두막 안에 혼자 누워 있던 블레보로를 허드슨과 오들리가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대원들은 그 신비의 배에서 칠레 해군의 깃발을 보고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배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흥분을 이기지 못한 대원들이 일제히 발을 구르며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해안으로부터 150m 떨어진 곳에 배가 멎었고, 작은 보트가 내려졌다. 섀클턴이 거기에 타고 있었다. 크린의 모습도 보였다.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다. 몇 분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와일드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베이크웰은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다"라고 적었다.
대원들은 숨을 멈추고 섀클턴이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서로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거리가 되자 그들은 일제히 한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무사합니다!" - P158

모험이 끝나자 지나간 일들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엘리펀트섬에서의 일상은 절망적이기보다 그저 조금 불편한 정도에 불과한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절대 감정적이지 않다 ••••••." 헐리는 이렇게 적었다. "그러나 안개 속으로 섬의 봉우리가 사라져 가는 순간, 우리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주었던 저 땅을 영원히 떠난다는 슬픔이 밀려왔다. 우리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일한 흔적인 오두막을 이제는 펭귄들이 드나들며 둘러볼 것이다. 이제는 저 멀리 사라진 엘리펀트 섬."
당시 섀클턴의 심정은 푼타아레나스에 도착하여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나있다.
"드디어 해냈소•••••• 한 사람도 잃지 않고, 우리는 지옥을 헤쳐나왔소"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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