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우리는 더 물러나고, 혼자라도 완벽하게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그날 달리면서 나는 생각했다. ‘봤지? 난 이렇게 내 개와 함께 숲속을 달리고 있어. 즐겁고 건전한 활동, 내가 행복하게 독립적인 상태라는 걸 보여주는 증거야‘ 우리는 달리고 또 달렸다. 엔도르핀의 도시를 그러다가 속도를 줄여 느긋하게 걸으며, 호숫가에서 어슬렁거렸다. 나는 작대기를 집어서 던졌고, 개가 그걸 물고 헤엄쳐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서 미소 지었다. 기분이 밝아지고, 빛이 돌아왔다. 차로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난 할 수 있어. 이렇게 내내 혼자 지내면서도 이 시간을 즐길수 있어. 그리고 내 손을 내려다본 순간, 내가 어디선가 열쇠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인간의 궤도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면 꼭 이렇다. 시각이 왜곡되고, 방향을 잃은 듯한, 내 나름의 방식으로 살짝 미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나는 달리는 동안 손에 열쇠들을 쥐고 있었는데, 멍하니 넋이 나간 상태에서, 슬금슬금의기소침해지는 상태에서, 그것들을 그냥 떨어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차 열쇠, 집 열쇠, 모든 열쇠를 찾는 걸 도와줄 사람은아무도 없었다. 여벌 열쇠를 갖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거기 혼자 있었다.
고독의 즐거움과 고립의 절망감. 이 이미지는 며칠 동안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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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시간

속삭임은 두 주째, 혹은 세 주째쯤에 시작된다.
처음에는 이렇게 지적한다. ‘너 요즘 혼자 보내는 시간이 엄청 많구나. 안 그래?‘
그러고는 이렇게 말한다. ‘맘 편한 일이야. 그렇지? 보호받는느낌. 안전한 느낌이 들잖아.‘
마지막으로 이렇게 유혹한다. ‘더 이 편안하고 고독한 상태를더 이어가자. 바깥세상은 무섭고 위험이 가득해. 그러니까 그냥 여기 있자. 혼자서 안전한 곳에‘
이것은 고립의 목소리, 설득력 있고 음흉한 목소리다.
나는 이 목소리를 많이 듣는다. - P15

우리는 고립을 지리와 상황의 결과로 여기곤 한다. 혼자가 된과부, 남편은 죽고 아이들은 다 자란 여자, 그는 고립된 사람이다.
늙고 쇠약한 사람, 아예 물리적으로 바깥세상에 나갈 수 없는 사람, 그들은 고립된 사람이다. 하지만 고립은 또한 마음의 상태일수 있고, 실제로 종종 그렇다. 칩거해야 한다는 생각이 선택을 결정짓는 상태인 것이다. 마치 당신이 심연으로 추락하는 것처럼, 나는 고립으로 추락한다. 어둡고 비자발적인 추락은 가속이 붙어, 내가 저지하기 거의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나는 혼자 있기를 선택하고, 그 선택을 연속 열 번이나 열다섯 번이나 스무 번쯤 하고 나면, 더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 P16

지금 마흔여섯인 그레이스는 여전히 금요일 밤에 혼자 닭 요리로 저녁을 먹고 TV를 보면서 보내는 날이 많다. 하지만 걱정은누그러졌다. 그를 은둔으로 몰아넣었던 두려움,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무방비 상태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누그러들었기 때문이다. 그레이스는 예전보다 더 바람직하고 더 풍요로운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흥미로운 데다가 생계가 되어주는 일을 갖고 있다. 좋은 심리치료사 덕분에 자신을 훨씬 더 잘 인식하게 되었고, 자신에게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필요할 뿐 아니라 그것을 자신이 즐긴다는 사실도 더 또렷하게 느끼게 되었으며, 그 시간에서공허함이 아니라 뿌듯함을 느끼는 능력도 더 기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고독과 고립의 차이다. 고독은 차분하고 고요하지만, 고립은 무섭다. 고독은 우리가 만족스럽게 쬐는 것이지만, 고립은 우리가 하릴없이 빠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차이가 늘 분명하거나 선명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두 상태가 늘 배타적인 것도 아니다. 고독은, 내 경험상, 자칫하면 미끄러지는 경사로다. 처음에는 안락하게 느껴지지만, 종종 아무런 경고도 자각도 없이 훨씬 더 어두운 것으로 변신할 수있는 상태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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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고르기, 눈길 맞추기, 평화 협정, 중재 등을 생각하면 화해라는 주요 테마가 우리의 큰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런 행동이 갖는 사회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믿는다. 그것은분명 집단생활을 파괴할 우려가 있는 여러 세력에 대한 건설적인 균형추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까지 화해 행동에 관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1960~1970년대에 걸쳐 인간이나 동물의 공격적인 행위에 대한 연구에는 막대한 연구비가 투여되었지만 그 행위가 어떤 식으로 종결되는지에 대한 연구에는 무심했다.
나는 침팬지 간의 화해에 있어 한 가지 측면에 대해서는 아직 언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에룬과 라윗이 벌인 주도권 다툼의 종결과 밀접하게 관계되기 때문이다. 바로 화해의 전주로서 양자에 의해 행해지는 공동 과시(joint displaying)라는 현상이다. 우열관계의 상태를 테스트하는 방법인 공동 과시 현상은 특별한 의의를 가진다. 라윗은 몇 주 동안이나 이에룬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으며 상황이 어느 쪽으로 전개될지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즉, 그와 같이 복종적인 행동을 않는다는 사실은 역으로 우위를 나타내는 셈이었다.  - P171

라윗이 처음으로 허세 부리기에 성공한 것은 49일째였다. 그 뒤로는 이런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지만 그런 역전극은 아주 서서히 진행된 과정이었다. 이에룬과 라윗은 몇 주에 걸쳐 서로가 서로에 대해 허세를부렸다. 그들은 모두 굴욕적인 낮은 지위에서 벗어나고 싶어했고, 그 결과 종종 화해 과정이 아슬아슬하게 굴러갔다. 한번은 라윗이 이에룬의 정면으로 다가가자 이에룬은 박치기로 라윗의 가슴을 강하게 들이받으면서 대결의 불문율을 짓밟아버린 적이 있었다. 라윗은 이에 항의하는 괴성을 지르면서 도망쳤다. 반면 어떤 때에는 라윗이 규칙을 어기기도했다. 이에룬이 접근해오자 라윗은 뒷걸음질치며 멀리 떨어졌고, 그러자 이에룬은 깽깽 소리를 지르며 가장 가까이에 있는 다른 놈에게 달려가 짧은 포옹으로 안도감을 회복한 뒤 라윗 쪽으로 돌아왔다.
라윗이 점차 우위적인 행동을 하게 된 전체 과정의 마지막 주에 드디어 이에룬이 굴욕적인 행동을 보였고, 결국 갈등의 종지부를 찍었다.
이것 또한 화해의 맥락 속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새로운 진척 상황을 많이 관찰했다. 즉, 싸움의 말단부에서 접촉을 시도하는 쪽은 늘 이에룬이었다. 라윗은 이에룬과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않았다. 이는 곧 라윗이 화해의 제안을 수용할 준비를 하기 전에 이에룬이 몇 가지 노력들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때면 이에룬은 라윗 쪽을 향해 보통의 ‘인사‘하는 소리와 아주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더욱 부드러운 소리로 혼자 웅얼거렸다. 그 당시에 나는 이 세 가지 현상, 즉 접촉이 필요한 쪽과 접촉을 거부하는 쪽, 그리고 혼자 웅얼거리는 ‘인사‘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들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있다는 느낌이 든 것은 그들의 갈등 후반부를 면밀히 검토한 다음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화해 교섭의 개시는 이런 부드러운 ‘인사‘를 수반하지 않으면 도저히 성공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이런 마지막 국면에서 패한 쪽은 접촉에 대한 필요성이 너무 커서, 이긴 쪽은 패한 쪽을 상대로 거드름을 필 수 있었다. 승자는 존경을 표하는 헐떡거림 (웅얼거리는 부드러운 ‘인사‘)을 듣지 않으면 패자 쪽과 어떤 접촉도 일체 거부한다. - P173

공갈의 결과 최초의 모호한 ‘인사‘는 새로운 수놈 강자의 등을 향하게 마련이다. 멀리 가버리는 강자는 부드러운 헐떡거림이 들릴 때만 멈춰서 앉기 때문이다. 이처럼 적대자의 등을 향해 ‘인사‘를 하는 현상은 72일째까지 계속되었고, 그때서야 마침내 이에룬이 처음으로 라윗의 얼굴을 향해 아주 분명하게 헐떡거리는 소리를 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최초의 진정한 ‘인사‘라고 여겼고, 우위를 다투는 지루한 과정의 마침표였다.
그 후로 라윗과 이에룬 사이의 충돌과 과시 행위는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또한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이 집단은 보기 드문 평화를 만끽했다. 2주일이 지나자 어제의 라이벌이었던 이들은 석 달 만에 다시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함께 노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니키, 단디, 마마, 거기에 파위스트나 이미도 주변에서 즐거운 표정으로 노닥거렸다. 어른 암놈들이 좀처럼 즐거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이는 아주 낯선 풍경이었다. - P174

하지만 언제나 이런 공평한 개입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한놈, 혹은 어느 집단의 편을 드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다시 한번 라윗의 정책은 달라졌다. 그는 ‘승자의 지지자‘가 아니라 ‘패자의 지원자‘가 되었던 것이다. ‘패자의 지원자‘란 가만 두면 질 게 뻔한 놈의 편을 드는 제3자를 뜻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니키가 암버르를 공격하면 라윗이 끼어들어서 암버르가 니키를 쫓아버리도록 도왔다. 라윗의 지원이 없었다면 암버르는 결코 니키를 물리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라윗의 개입이 별 뜻 없이 아무렇게나 이뤄졌다면, 당연히 절반은 패자를 돕고 절반은 승자를 도왔을 것이다. 그러나 라윗은 1인자 자리에 오른 뒤에는 약자 쪽과의 결속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집단의 두목이 되기전에는 35퍼센트만 패자를 지원했지만 왕좌를 차지한 뒤로는 이 수치가 69퍼센트로 증가했던 것이다. 이런 대조는 라윗의 태도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게다가 1년 뒤에는 패자에 대한 라윗의 지원이 86퍼센트에 달할 정도로 늘어났다.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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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5월 14일 김근태와 닌청련 회원들은 광주항쟁 4주년을 앞두고 버스 두 대로 광주로 내려가 오후 2시 망월동 묘소에 분향하고 추모식을 거행했다. 김근태는 「오! 영원한 민주화의 불꽃이여!」라는 추모사를낭독했다.
추도식을 마친 일행은 광주 금남로에서 스크럼을 짜고 <5월의 노래>를 부르면서 가두시위를 벌였다. 많은 광주시민들이 지켜본 이날의 시위는 이후 광주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운동에 새로운 불씨를 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민청련은 서울로 올라와 5월 19일 오후 서울 홍사단에서 ‘5월과 민족의 혼‘이라는 주제로 광주민주화운동 추모식을 거행했다.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진혼굿과 더불어 광주항쟁의 사진·판화전도 열었다. 또 광주시민 학살 사진과 함께 수기와 일지 등을담은 자료집 <광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를 제작 배포했다. 광주학살 사진 전시와 자료집 발간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날 추모식이 끝난뒤 경찰이 들이닥쳐 폭력을 휘두르는 바람에 30여 명의 참석자가 부상을 당했다. - P86

김근태는 이 성명에서도 밝혔듯이 민주화운동 조직과 단체가 "특정개인에게 귀속되는 것을 극력 반대했다. 개인 우상화를 철저하게 반대한 것이다. 그는 5공 시대 최초로 공개적인 반정부 단체를 이끌면서, 청년민주화운동의 리더로 자리 잡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특정 개인의 명망에 단체가 귀속되는 것을 한사코 막았고, 그 전범을 보였다. 그리고민주화운동가들의 겸손한 처신을 강조했다.
실제로 1985년 2월 12일 제12대 총선이 실시될 때 민추협 공동의장인 김영삼이 민청련의 투쟁 성과를 높이 평가하여 김근태 의장에게 종로 출마를 종용했는데, 김근태는 민청련의 성과를 자기 혼자서 차지할수 없다는 것과, 아직 청년운동의 역할이 남았다는 이유를 들어 고사하기도 했다. 그의 언행일치와 겸손함이 묻어나는 ‘비화‘다 - P91

민청련은 80년대 초기 민주화운동의 전초기지가 되었고, 김근태와간부, 회원들은 전위 역할을 톡톡히 했다. 민청련의 투쟁이 강화될수록 정부의 탄압도 가중되었다. 김근태를 비롯하여 집행부의 연행 횟수가 늘어나고, 사무실을 압수 수색하는 경우도 잦았다. 정부는 각 부문운동 단체들과 연대투쟁의 발원지가 민청련이라는 사실을 알고 강도높은 탄압을 자행했다.
1985년 10월 14일 민청련 지도위원(계훈제 · 백기완 • 이우정• 고은·김병걸 등 32인)들은 ‘민청련은 우리 민족의 희망이다 모든 민주 세력과 더불어 민청련 파괴음모를 저지할 것을 결의하며‘라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정부의 민청련 탄압· 파괴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우리 지도위원들은 전두환 정권에게 엄숙히 경고한다.
민청련을 비롯한 애국적인 학생. 노동자들에 대한 모든 폭력적 이데올로기적 탄압을 즉각 중지하라. 학생들의 정당한 주장 중 극히 일부분만을뽑아서 용공으로 매도하고, 그것도 모자라 지난 2년여 동안 공개적으로 활동해온 민청련을 학생들의 배후로 조작하여 탄압하려는 한심스런 작태에 우리는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배후 및 용공조작이 애국적인 청년·학생들을 탄압하려는 명분의 조작일 뿐 아니라, 모든 민주화운동 세력을 단계적으로 분리, 탄압하려는 간교한 술책임을 직시한다. 따라서 우리는 민청련에 대한 탄압이 계속될 경우 그것은 전체 민주화운동권에 대한 군사독재정권의 전면적 파괴공작의 명백한 신호로 간주하고 즉각적이고도 단호한 공동대처를 모색할 것임을 천명한다.
이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전두환 정권에게 간곡히 충고한다.
민청련을 비롯한 모든 민주화운동 세력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지하고 광주민중학살을 비롯한 자신의 과오를 분명히 시인하면서 스스로 퇴진하는 길만이 민족사에 속죄하는 유일한 길임을 깊이 깨닫기 바란다. - P99

김근태가 주도하는 민청련은 그동안 금기시되어 그 누구도 꺼내지못했던 문제를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광주학살 진상규명과 전두환 책임 추궁‘을 이슈화한 것이다. 그리고 겸양과 포용 정신으로각급 부문운동 그룹과 연대하여 5공 정권과 대결하면서 전두환 세력을코너로 몰았다. 그렇지 않아도 2.12 총선과 제12대 국회에서 야당의활동으로 전두환 정권은 점차 궁지에 몰리고 있던 참이었다. 그들은 청년학생들의 반독재 투쟁의 배후 조종자로 김근태를 찍었다.

총선의 패배로 휘청거리던 5공 정권은 점차 활성화되어가는 학생, 재야, 민중운동의 도전에 위기의식을 느끼며 다시 탄압해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첫 타깃은 학생운동과 재야운동의 연결고리인 민청련이었다. ‘학원안정법‘을 통과시키려다가 국내의 반발과 미국의 불승인으로 철회돼, 정치적 위신이 실추된 전두환 정권은 그 제물로 민청련과 김근태를 선택한 것이다.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은 김근태 전 의장을 서부경찰서에서 구류 만기일인 9월 4일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 참혹한 고문을 했다." - P100

뒷날 김근태는 자신을 체포해온 이 자들에 대해 "무슨 열정에 불타오르는 모습도 아니고 눈빛에도 오직 회색빛의 냉담함,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더군"이라고 회상했다. 그만큼 이들은 외견상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다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그는 순수하다는인간의 본성을 믿었다. ‘수심(獸心)을 간직한 인면(人面)‘만 본 것이다.

백남은은 김영두, 정현규, 최상남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내 옷을 벗기라고요. 처음에는 약간 저항을 하였으나, 몰려서이기도 하지만 아직 살아남은 오기가 발동하여 스스로 옷을 벗었습니다. 팬티만 남기고 모두 벗었습니다. 초라함, 빈약함이 덮쳐오더군요. 추워지기도 하고요. 아직 한참 남은 더운 여름이고 더구나 골방에 갇혀 있어 절대로 추울 수가 없는데도,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데도, 가슴의 한기가 온몸에 퍼져버렸습니다.
발가벗었을 때 오는 당황함과 이 한기가 뒤섞여 몸을 오그라들게 하더군요. 이 사람들은 분주하게 들락날락했습니다. 6시 반쯤, 정리된 것처럼 조용해지면서 위험이 닥쳐오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김수현이 들어와서 "진술 거부를 잘한다지, 여기서도 할 거야? 경찰과는 달라." 이어 본인에게
"당신 몸이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어디가 아픈가?"라고 물었습니다. "피로의 누적이다. 또 방금 구류 살고 나오는 길이어서 더욱 그렇다. 민청련대표직을 그만두어서 어디 휴양지로 가서 몇 달 쉬려고 하였다" 하자 "그렇다면 그 몸으로 견딜 수가 있겠는가. 당신 많이 깨져야겠구먼" 하였습니다. "내 의지가 살아 있는 한 진술을 거부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
"늦가을 초겨울 문턱에서 바싹 마른 낙엽들이 바람에 휘날려 올라가다가 아스팔트 위에 떨어져 발자국에 밟혀서 바스러지는 것이 자주 어른거리기도 했고", 김근태는 고문이 시작될 순간의 심경을 이렇게 그렸다. 그는 낭만파 시인이었다. 그리고 순간, 아우슈비츠, 나치 수용소에 갇혀 고문당한 유대인들을 떠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 P110

나치 독일의 비밀경찰이 유대인과 사회주의자들을 고문하고 집단학살하면서 고전음악을 듣거나, 일요일에는 오페라 구경을 가자고 가족과 약속했듯이, 한국의 고문 기술자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라디오에서 왈츠를 듣거나, 군대 간 아들 걱정, 박봉에 대한 불평, 대학 진학을앞둔 자녀 문제 등을 화제로 대화를 나누는 등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정치사상가로 평가받는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6백만 명의 학살 책임자 아이히만이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던 자"였다는 점에서 ‘악의 평범성‘을 지적했다. ‘악의 평범성‘은 히틀러 독일에서만이 아니라 박정희·전두환 시대의 한국에서도 벌어진 현상이었다.
김근태는 1985년 9월 4일부터 22일 동안 10차례에 걸쳐 상상하기어려운 고문을 당했다. 김근태를 고문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는 그로부터 2년이 채 안 되는 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21세) 군을 고문으로 죽였다. 수사요원 조한경 경위와 강진규 경사 등이 고문살해범이다. 김근태가 그 끔찍한 고문을 당한 뒤에라도 야수적인 고문이 근절되었다면 박종철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 P111

격렬한 전기고문을 길게, 아주 길게 가하여 온몸이 고문대 위에서 오그라들어버리는 것 같았고 핏줄은 물론 모든 살이 마침내 다 타버려 누리끼리한 살가죽과 뼈만 남아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쉬지 않고, 조금도 쉬지 않고 이튿날 새벽 1시경까지 계속했습니다.
고통을 못 이겨 소리소리 질러 목 안에서는 피 냄새가 역하게 올라오고 콧속에서는 단내가 계속 피어올랐습니다. 물고문으로 인해 속이 빈 위는계속 헛구역질을 해대고, 처음에 나는 저항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결과는 예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고문자들의 요구에 굴복하는 것 그것뿐입니다. 이들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각오하고 저항을 하지만 고통과 공포에 짓눌리게 되면 곧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하는 내면의 외침에, 이것은 고문자들의 또 다른 협박이며 유혹이 내면화된 것이지만 부딪히게 됩니다. 아,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원통해서 이렇게 개죽음을 할 수는없다. 내가 저항을 하면 이들은 정말 죽일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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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둘은 이미 이에룬의 지위를 시험해보기 시작한 듯했다. 왜냐하면 암놈들에 대한 그들의 공격이 위험할 정도로 이에룬과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보호를 받으려고 이에룬에게 도망쳐서 그를 포옹한 암놈들조차 니키와 라윗의 공격으로부터 늘 안전하지는 못했다. 그런상황에서도 이에룬이 강력하게 반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다른 두 수놈의 판단에 중요한 지표가 됐을지도 모른다. 자기의 부하를 지키는 것을 머뭇거리는 리더는 자신을 지켜내는 데에도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 P151

라윗과 이에룬이 공공연하게 충돌을 거듭하던 당시, 니키가 두 라이벌의 대결에 직접 개입한 것은 단 한 차례뿐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때 니키는 라윗에게 맞섰다. 이 사건은 권력투쟁의 초기, 즉 라윗이 니키와 스핀이 사랑 행위를 나누는 것을 무력으로 중단시키고 나서 10분쯤뒤에 벌어졌다. 이는 대단히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라윗이 니키와 직접 싸울 만큼의 여유가 없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첫날에도이와 매우 흡사하지만 그리 명확치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도 성적경쟁심이 원인이었다. 라윗에게 혼쭐난 니키는 비명을 지르면서 이에룬에게 다가가 연대를 형성하며 라윗을 위협했다. 라윗은 서둘러 사육장 반대편으로 도망쳤다. 두 사건은 라윗이 왜 니키와 적이 되는 것을일부러 피했는지를 설명해준다. 니키가 자신에게 대항하지 않게 하려면 라윗은 관용적인 태도를 취해야만 했다. 니키의 원조가 절실히 필요했던 라윗은 그와 소원해질 위험을 피하려고 했을 것이다.
니키가 공개적으로 라윗에게 대든 적은 딱 한 번뿐이다. 오히려 그는 이에룬의 지지자들인 암놈들을 물리침으로써 간접적으로 라윗의 편을 들었다. 니키의 도움이 없었다면 라윗은 어떤 수를 쓴다 해도 이에문을 물리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사회적 상호작용의 통상적 패턴은 다음과 같다. 라윗이 이에룬의 주변에서 위협 과시를 시작하면 이를 더이상 묵과하지 못한 이에룬은 도움을 청하려고 비명을 지른다. 이에룬은 암놈들에게 도움을 간청하든가 아니면 직접 가서 암놈들을 끌고 온다. 이에룬과 그 지지자들이 라윗에게 접근하면 그때부터 니키가 나서서 이에룬 지지자들 가운데 한 놈, 특히 마마나 호릴라 가운데 어느 한쪽을 겨냥해서 공격한다. 이런 개입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효과를 불러온다. 즉, 이에룬과 라윗 사이의 충돌이 계속되는 동안 암놈들은 연합해서 니키에 대항하는 것이다. 이에룬과 라윗 사이의 싸움은 대개 마른 떡갈나무 가지 위에서 종료된다. 거기에서 라윗은 자기 과시를 하고, 이에룬은 비명을 지르며 아래에 있는 암놈 지지자들을 향해 한 손을 뻗는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다. 나무 밑의 암놈들은 지칠 줄 모르는 니키를 상대하는 것만도 벅찼기 때문이다. - P151

그러나 니키는 손과 발만을 사용해 싸울 뿐, 결코 송곳니로 물지 않는다는 규칙을철저하게 지켰다. 수놈들이 간혹 암놈을 무는 경우가 있지만 앞니만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커다란 송곳니를 가지지 못한 암놈들의경우에는 다른 암놈과 싸울 때나 수놈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할 때 수놈들보다 신중하지 못하게 이빨을 사용하기도 한다.  - P154

이후에 관찰되는 패자의 ‘떼쓰기‘ 행동은 종말의 시작을 고하는 또하나의 특징적 현상이다. 충돌이 있은 후 대략 한 달 정도 지나자 이에룬이 떼를 쓰기 시작했다. 라윗이 위협 과시를 하는 동안, 그는 놀랄 만한 연기력을 발휘해서 마치 썩은 사과가 떨어지듯 나무에서 떨어지더니 금속성 비명을 지르면서 땅바닥을 뒹구는 것이었다. 이런 신경질적인 감정 폭발은 흡사 절망감과 굴욕감이 억제되지 못한 채 표출된 듯한인상을 주었다. 이에룬은 어느 정도 기분을 회복하자 암놈들을 향해 깽깽 소리를 내며 다가갔다. 그리고 몇 미터 정도 떨어진 땅바닥에 드러누워 암놈들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이것은 동정을 구하는 몸짓이라기보다는 거의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수준이었다. 만약 암놈들이 도움을거부하거나 피해서 돌아서버리면 이에룬은 또다시 겁에 질려 떼를 썼다. 그럴 때면 그는 불쌍하게 비명을 지르면서 자기 근육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듯 뭍으로 올라온 물고기처럼 몸부림쳤다.
만약 암놈들이 도와줄 기색을 보이면 이에룬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벌떡 일어나서 암놈들을 포옹한 다음에 자기 등 뒤로 암놈들을 - P157

떼쓰기에 관해 흥미로운 사실은 이미 30대의 성숙한 이에룬이 마치 어린애 같은, 아니 완전히 유치한 퇴행적인 행동으로 다른 침팬지들의 주목을 끌고 동정을 얻으려 한 점이다. 그것은 젖 먹는 아기 때나 볼수 있는 모습이다. 어린 새끼들은 어미에게 거부당했다고 느끼면, 다시 안아줄 때까지 울거나 발길질을 해댄다. 어미가 받아주면 놀랍게도(그리고 수상쩍게도) 금세 떼쓰기를 그만둔다. 이에룬이 자신을 지도자 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 하는 라윗의 책동에 겁을 먹어 불안과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아기와 똑같은 행동을 연출했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모른다. 말하자면 이에룬은 권력의 젖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 P158

침팬지를 제외한 다른 대형 유인원의 경우, 어른 수놈들 사이에서는 관용을 찾기 힘들며, 기껏해야 신경질적이며 비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할 뿐이다. 오랑우탄 수놈들은 다른 수놈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우림속의 넓은 세력권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다. 같은 집단 내에서 생활은 하지만 암놈들을 독점하려 드는 것이 보통인 고릴라 수놈은 침입자를 죽음으로 몰고 갈 정도로 격한 싸움을 벌인다. 보노보 수놈은 함께생활은 하지만 매우 경쟁적이다. 그들은 침팬지 수놈들처럼 함께 사냥을 하지도 않으며, 정치적 동맹을 형성하거나 함께 세력권을 방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보노보 수놈들은 자신들의 어미를 따라 숲을 떠돌고어미에게 의지해 그들의 지위를 누린다. 어른 보노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높은 지위에 있는 어미를 둔 자식이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보노보 사회는 암놈끼리의 동맹에 의해, 또 암놈의 지배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이다. 이는 그 자체로는 흥미롭지만 침팬지사회처럼 수놈 간의 복잡한 관계를 살피는 데는 적당치 않은 모델이다.
침팬지 수놈은 다른 동물들의 수놈 사이에서 나타나는 경쟁적인경향을 극복하고 높은 수준의 협력을 달성한다는 점에서 친척뻘인 다른 유인원들에 비해 독보적이다. 공동의 적에 대항해서 연합을 유지하면서도 동료들과 끊임없이 경쟁하는 인간들처럼, 수놈 침팬지 역시 그들의 이웃에 대항해 공동연대를 형성할 필요성 때문에 경쟁심을 삭이고 의식화한다. 비록 아른험에는 대항해야 할 이웃 집단이 존재하지는않았지만, 몇백만 년 동안 자연 서식지에서 집단 간의 투쟁을 벌이면서형성된 수놈 침팬지들의 심리에는 경쟁과 협동 모두 겸비되어 있다. 그들 사이의 경쟁이 어떤 수준에서 일어나든 간에 수놈들은 외부 침입자에 대항해 서로를 의지한다. 이처럼 동료의식과 경쟁의식이 함께 존재한다는 점은 다른 대형 유인원들의 사회보다 침팬지 사회를 더 친숙하게 만든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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