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고르기, 눈길 맞추기, 평화 협정, 중재 등을 생각하면 화해라는 주요 테마가 우리의 큰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런 행동이 갖는 사회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믿는다. 그것은분명 집단생활을 파괴할 우려가 있는 여러 세력에 대한 건설적인 균형추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까지 화해 행동에 관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1960~1970년대에 걸쳐 인간이나 동물의 공격적인 행위에 대한 연구에는 막대한 연구비가 투여되었지만 그 행위가 어떤 식으로 종결되는지에 대한 연구에는 무심했다.
나는 침팬지 간의 화해에 있어 한 가지 측면에 대해서는 아직 언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에룬과 라윗이 벌인 주도권 다툼의 종결과 밀접하게 관계되기 때문이다. 바로 화해의 전주로서 양자에 의해 행해지는 공동 과시(joint displaying)라는 현상이다. 우열관계의 상태를 테스트하는 방법인 공동 과시 현상은 특별한 의의를 가진다. 라윗은 몇 주 동안이나 이에룬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으며 상황이 어느 쪽으로 전개될지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즉, 그와 같이 복종적인 행동을 않는다는 사실은 역으로 우위를 나타내는 셈이었다.  - P171

라윗이 처음으로 허세 부리기에 성공한 것은 49일째였다. 그 뒤로는 이런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지만 그런 역전극은 아주 서서히 진행된 과정이었다. 이에룬과 라윗은 몇 주에 걸쳐 서로가 서로에 대해 허세를부렸다. 그들은 모두 굴욕적인 낮은 지위에서 벗어나고 싶어했고, 그 결과 종종 화해 과정이 아슬아슬하게 굴러갔다. 한번은 라윗이 이에룬의 정면으로 다가가자 이에룬은 박치기로 라윗의 가슴을 강하게 들이받으면서 대결의 불문율을 짓밟아버린 적이 있었다. 라윗은 이에 항의하는 괴성을 지르면서 도망쳤다. 반면 어떤 때에는 라윗이 규칙을 어기기도했다. 이에룬이 접근해오자 라윗은 뒷걸음질치며 멀리 떨어졌고, 그러자 이에룬은 깽깽 소리를 지르며 가장 가까이에 있는 다른 놈에게 달려가 짧은 포옹으로 안도감을 회복한 뒤 라윗 쪽으로 돌아왔다.
라윗이 점차 우위적인 행동을 하게 된 전체 과정의 마지막 주에 드디어 이에룬이 굴욕적인 행동을 보였고, 결국 갈등의 종지부를 찍었다.
이것 또한 화해의 맥락 속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새로운 진척 상황을 많이 관찰했다. 즉, 싸움의 말단부에서 접촉을 시도하는 쪽은 늘 이에룬이었다. 라윗은 이에룬과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않았다. 이는 곧 라윗이 화해의 제안을 수용할 준비를 하기 전에 이에룬이 몇 가지 노력들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때면 이에룬은 라윗 쪽을 향해 보통의 ‘인사‘하는 소리와 아주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더욱 부드러운 소리로 혼자 웅얼거렸다. 그 당시에 나는 이 세 가지 현상, 즉 접촉이 필요한 쪽과 접촉을 거부하는 쪽, 그리고 혼자 웅얼거리는 ‘인사‘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들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있다는 느낌이 든 것은 그들의 갈등 후반부를 면밀히 검토한 다음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화해 교섭의 개시는 이런 부드러운 ‘인사‘를 수반하지 않으면 도저히 성공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이런 마지막 국면에서 패한 쪽은 접촉에 대한 필요성이 너무 커서, 이긴 쪽은 패한 쪽을 상대로 거드름을 필 수 있었다. 승자는 존경을 표하는 헐떡거림 (웅얼거리는 부드러운 ‘인사‘)을 듣지 않으면 패자 쪽과 어떤 접촉도 일체 거부한다. - P173

공갈의 결과 최초의 모호한 ‘인사‘는 새로운 수놈 강자의 등을 향하게 마련이다. 멀리 가버리는 강자는 부드러운 헐떡거림이 들릴 때만 멈춰서 앉기 때문이다. 이처럼 적대자의 등을 향해 ‘인사‘를 하는 현상은 72일째까지 계속되었고, 그때서야 마침내 이에룬이 처음으로 라윗의 얼굴을 향해 아주 분명하게 헐떡거리는 소리를 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최초의 진정한 ‘인사‘라고 여겼고, 우위를 다투는 지루한 과정의 마침표였다.
그 후로 라윗과 이에룬 사이의 충돌과 과시 행위는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또한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이 집단은 보기 드문 평화를 만끽했다. 2주일이 지나자 어제의 라이벌이었던 이들은 석 달 만에 다시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함께 노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니키, 단디, 마마, 거기에 파위스트나 이미도 주변에서 즐거운 표정으로 노닥거렸다. 어른 암놈들이 좀처럼 즐거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이는 아주 낯선 풍경이었다. - P174

하지만 언제나 이런 공평한 개입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한놈, 혹은 어느 집단의 편을 드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다시 한번 라윗의 정책은 달라졌다. 그는 ‘승자의 지지자‘가 아니라 ‘패자의 지원자‘가 되었던 것이다. ‘패자의 지원자‘란 가만 두면 질 게 뻔한 놈의 편을 드는 제3자를 뜻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니키가 암버르를 공격하면 라윗이 끼어들어서 암버르가 니키를 쫓아버리도록 도왔다. 라윗의 지원이 없었다면 암버르는 결코 니키를 물리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라윗의 개입이 별 뜻 없이 아무렇게나 이뤄졌다면, 당연히 절반은 패자를 돕고 절반은 승자를 도왔을 것이다. 그러나 라윗은 1인자 자리에 오른 뒤에는 약자 쪽과의 결속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집단의 두목이 되기전에는 35퍼센트만 패자를 지원했지만 왕좌를 차지한 뒤로는 이 수치가 69퍼센트로 증가했던 것이다. 이런 대조는 라윗의 태도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게다가 1년 뒤에는 패자에 대한 라윗의 지원이 86퍼센트에 달할 정도로 늘어났다.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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