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둘은 이미 이에룬의 지위를 시험해보기 시작한 듯했다. 왜냐하면 암놈들에 대한 그들의 공격이 위험할 정도로 이에룬과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보호를 받으려고 이에룬에게 도망쳐서 그를 포옹한 암놈들조차 니키와 라윗의 공격으로부터 늘 안전하지는 못했다. 그런상황에서도 이에룬이 강력하게 반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다른 두 수놈의 판단에 중요한 지표가 됐을지도 모른다. 자기의 부하를 지키는 것을 머뭇거리는 리더는 자신을 지켜내는 데에도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 P151

라윗과 이에룬이 공공연하게 충돌을 거듭하던 당시, 니키가 두 라이벌의 대결에 직접 개입한 것은 단 한 차례뿐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때 니키는 라윗에게 맞섰다. 이 사건은 권력투쟁의 초기, 즉 라윗이 니키와 스핀이 사랑 행위를 나누는 것을 무력으로 중단시키고 나서 10분쯤뒤에 벌어졌다. 이는 대단히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라윗이 니키와 직접 싸울 만큼의 여유가 없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첫날에도이와 매우 흡사하지만 그리 명확치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도 성적경쟁심이 원인이었다. 라윗에게 혼쭐난 니키는 비명을 지르면서 이에룬에게 다가가 연대를 형성하며 라윗을 위협했다. 라윗은 서둘러 사육장 반대편으로 도망쳤다. 두 사건은 라윗이 왜 니키와 적이 되는 것을일부러 피했는지를 설명해준다. 니키가 자신에게 대항하지 않게 하려면 라윗은 관용적인 태도를 취해야만 했다. 니키의 원조가 절실히 필요했던 라윗은 그와 소원해질 위험을 피하려고 했을 것이다.
니키가 공개적으로 라윗에게 대든 적은 딱 한 번뿐이다. 오히려 그는 이에룬의 지지자들인 암놈들을 물리침으로써 간접적으로 라윗의 편을 들었다. 니키의 도움이 없었다면 라윗은 어떤 수를 쓴다 해도 이에문을 물리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사회적 상호작용의 통상적 패턴은 다음과 같다. 라윗이 이에룬의 주변에서 위협 과시를 시작하면 이를 더이상 묵과하지 못한 이에룬은 도움을 청하려고 비명을 지른다. 이에룬은 암놈들에게 도움을 간청하든가 아니면 직접 가서 암놈들을 끌고 온다. 이에룬과 그 지지자들이 라윗에게 접근하면 그때부터 니키가 나서서 이에룬 지지자들 가운데 한 놈, 특히 마마나 호릴라 가운데 어느 한쪽을 겨냥해서 공격한다. 이런 개입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효과를 불러온다. 즉, 이에룬과 라윗 사이의 충돌이 계속되는 동안 암놈들은 연합해서 니키에 대항하는 것이다. 이에룬과 라윗 사이의 싸움은 대개 마른 떡갈나무 가지 위에서 종료된다. 거기에서 라윗은 자기 과시를 하고, 이에룬은 비명을 지르며 아래에 있는 암놈 지지자들을 향해 한 손을 뻗는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다. 나무 밑의 암놈들은 지칠 줄 모르는 니키를 상대하는 것만도 벅찼기 때문이다. - P151

그러나 니키는 손과 발만을 사용해 싸울 뿐, 결코 송곳니로 물지 않는다는 규칙을철저하게 지켰다. 수놈들이 간혹 암놈을 무는 경우가 있지만 앞니만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커다란 송곳니를 가지지 못한 암놈들의경우에는 다른 암놈과 싸울 때나 수놈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할 때 수놈들보다 신중하지 못하게 이빨을 사용하기도 한다.  - P154

이후에 관찰되는 패자의 ‘떼쓰기‘ 행동은 종말의 시작을 고하는 또하나의 특징적 현상이다. 충돌이 있은 후 대략 한 달 정도 지나자 이에룬이 떼를 쓰기 시작했다. 라윗이 위협 과시를 하는 동안, 그는 놀랄 만한 연기력을 발휘해서 마치 썩은 사과가 떨어지듯 나무에서 떨어지더니 금속성 비명을 지르면서 땅바닥을 뒹구는 것이었다. 이런 신경질적인 감정 폭발은 흡사 절망감과 굴욕감이 억제되지 못한 채 표출된 듯한인상을 주었다. 이에룬은 어느 정도 기분을 회복하자 암놈들을 향해 깽깽 소리를 내며 다가갔다. 그리고 몇 미터 정도 떨어진 땅바닥에 드러누워 암놈들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이것은 동정을 구하는 몸짓이라기보다는 거의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수준이었다. 만약 암놈들이 도움을거부하거나 피해서 돌아서버리면 이에룬은 또다시 겁에 질려 떼를 썼다. 그럴 때면 그는 불쌍하게 비명을 지르면서 자기 근육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듯 뭍으로 올라온 물고기처럼 몸부림쳤다.
만약 암놈들이 도와줄 기색을 보이면 이에룬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벌떡 일어나서 암놈들을 포옹한 다음에 자기 등 뒤로 암놈들을 - P157

떼쓰기에 관해 흥미로운 사실은 이미 30대의 성숙한 이에룬이 마치 어린애 같은, 아니 완전히 유치한 퇴행적인 행동으로 다른 침팬지들의 주목을 끌고 동정을 얻으려 한 점이다. 그것은 젖 먹는 아기 때나 볼수 있는 모습이다. 어린 새끼들은 어미에게 거부당했다고 느끼면, 다시 안아줄 때까지 울거나 발길질을 해댄다. 어미가 받아주면 놀랍게도(그리고 수상쩍게도) 금세 떼쓰기를 그만둔다. 이에룬이 자신을 지도자 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 하는 라윗의 책동에 겁을 먹어 불안과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아기와 똑같은 행동을 연출했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모른다. 말하자면 이에룬은 권력의 젖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 P158

침팬지를 제외한 다른 대형 유인원의 경우, 어른 수놈들 사이에서는 관용을 찾기 힘들며, 기껏해야 신경질적이며 비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할 뿐이다. 오랑우탄 수놈들은 다른 수놈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우림속의 넓은 세력권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다. 같은 집단 내에서 생활은 하지만 암놈들을 독점하려 드는 것이 보통인 고릴라 수놈은 침입자를 죽음으로 몰고 갈 정도로 격한 싸움을 벌인다. 보노보 수놈은 함께생활은 하지만 매우 경쟁적이다. 그들은 침팬지 수놈들처럼 함께 사냥을 하지도 않으며, 정치적 동맹을 형성하거나 함께 세력권을 방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보노보 수놈들은 자신들의 어미를 따라 숲을 떠돌고어미에게 의지해 그들의 지위를 누린다. 어른 보노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높은 지위에 있는 어미를 둔 자식이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보노보 사회는 암놈끼리의 동맹에 의해, 또 암놈의 지배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이다. 이는 그 자체로는 흥미롭지만 침팬지사회처럼 수놈 간의 복잡한 관계를 살피는 데는 적당치 않은 모델이다.
침팬지 수놈은 다른 동물들의 수놈 사이에서 나타나는 경쟁적인경향을 극복하고 높은 수준의 협력을 달성한다는 점에서 친척뻘인 다른 유인원들에 비해 독보적이다. 공동의 적에 대항해서 연합을 유지하면서도 동료들과 끊임없이 경쟁하는 인간들처럼, 수놈 침팬지 역시 그들의 이웃에 대항해 공동연대를 형성할 필요성 때문에 경쟁심을 삭이고 의식화한다. 비록 아른험에는 대항해야 할 이웃 집단이 존재하지는않았지만, 몇백만 년 동안 자연 서식지에서 집단 간의 투쟁을 벌이면서형성된 수놈 침팬지들의 심리에는 경쟁과 협동 모두 겸비되어 있다. 그들 사이의 경쟁이 어떤 수준에서 일어나든 간에 수놈들은 외부 침입자에 대항해 서로를 의지한다. 이처럼 동료의식과 경쟁의식이 함께 존재한다는 점은 다른 대형 유인원들의 사회보다 침팬지 사회를 더 친숙하게 만든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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