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생각하는 내 마음이 상당히 슬프긴 해도, 이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친구 관계에 작별을 고할 때를 아는 것은 계속이어갈 때를 아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나는 호프를 한때잘 작동했던 관계, 저만의 장소와 시간 안에서는 아주 아름답게 작동했던 관계라는 작지만 소중한 범주로 분류하게 될 것 같다. 한줌의 옛 직장 동료들도 이 범주에 속한다.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어깨를 걷고 싸웠던 사람들, 내가 존경하고 동경했던 사람들, 하지만 우리가 모두 전쟁터를 떠나고 나서는 관계가 끊어진 사람들. 재활원에서 만났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과 내가 공유했던 경험은 너무나 독특하고 특정 맥락에 좌우되는 것이었기에, 그 유대감은 우리가 병원에서 걸어 나오기가 무섭게 거의 즉시 사라졌다.
어쩌면 호프와 나는 서로에게 놀랍게도 앞으로 오랫동안 연락하고지낼지도 모른다. 우리의 우정이 또 다른 종류의 작지만 소중한 범주, 즉 일상적 접촉이나 지리적 근접성이 없어도 살아남는 관계라는 범주로 바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 가능성이 현실이 될 만큼 우리가 오래 알고 지내진 않았고, 공통의 역사를 충분히 쌓지도 못했다. 그러니 처음에는 상황적 친구였고 그다음에는마음의 친구였던 내 친구 호프는 이제 과거의 친구가 될 것이다.
훗날에도 내가 순수한 애정으로 똑똑히 기억할 친구가. - P71

이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어떤 우정은 반드시 끝나야 하고(술친구가 그런 예다), 어떤 우정은 그저 신상이나 환경의 변화를이겨낼 만큼 역사나 애정이 쌓이지 않았기 때문에 끝난다. 하지만또 어떤 우정들은 훨씬 더 아깝게 죽는다. 질투나 불안이나 함께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갈 마음을 내지 않은 탓에, 내 오래된 여자친구 하나가 별로 훌륭하지도 않았던 자기 남자친구와 헤어진 일을내 부모의 죽음에 비교했을 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두고 봐, 다시는 이 애한테 전화하지 않을 거야. 내가 그 다짐을 완벽하게 지키진 못했지만, 나는 그 비교를 머릿속에서 감정이입의 실패 사례 칸으로분류한 뒤 그 친구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도 처리하지 않고 그냥 손을 뗐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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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릴 보고도 여전히 위컴은 들쥐라고 말할 것인가. 나는 그게 궁금하다. 박정희 군사파쇼 시대에, 전두환의 초기에 우리는 들쥐처럼 눈을내리깔고 어깨는 축 늘어뜨린 채 그렇게 살아왔는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의 눈을 뜨게 하고 결단코 더 이상 들쥐일 수는 없게 만든 장본인이야말로 위컴이고 글라이스틴이며 그러그러한 양키들인 것이다. 1980년 서울의 봄의 좌절에서, 광주사태에서 드러났던 추악한 그들의 모습이 우리 내부의 자존심에 불을 질러버린 것이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우리는 부시방한 반대를 소리 높여 외쳤던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를 들쥐로 고정시키려는 집단이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 민중을 억누르고 빼앗는 정치군부, 특권적 관료집단이그들이다. 프란츠 파농이 비웃어주었던 검은 피부, 흰 가면과 똑같은 누런 피부, 흰 가면을 쓰고 있는 집단들이다.
이들은 일제 치하에서 자치를 구걸하고 민족개조론을 주장했던 반민족세력의 후예인 것이다. 민족의 절대독립을 외치고 실천했던 위대한 애국자와 민중을 배반했던 수치스런 매국노들의 후예이다. 현대판 민족개조론자로서 여전히 "아직 우리는 열등합니다. 제발 너그럽게 봐주십시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꼴불견을 더 이상 봐줄 수 있단 말인가. 도저히 안 될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 P197

김근태는 이 글에서 이철규 변사사건‘을 언급한다. 1989년 5월 1일조선대 교지 《민주조선> 창간호와 관련, 전남지역 합수부의 지명수배를 받아오던 교지 편집위원장 이철규(전자공학과 4년)가 광주시 북구 청옥동 제4수원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정국은 타살이냐 실족사냐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정부는 사인규명을 요구하는 시위 학생들을 대량 검거했다.

이철규 형제의 죽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또 다른 ‘죽음의 광주‘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위대한 광주, 항쟁하는 광주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를 위해서 그 죽음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플랑크톤이니 과학이니 하면서 우리에게 머뭇거림을 강제해오는 저들의 시꺼먼 의도를 단호히 거부해야 된다. 우리는 일어서야 한다. 수백 수천 명이 감옥에 갈 각오를 하면서 다시 나아가야 한다. 공장과 농촌에서 학교 · 교회 · 절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거리거리에서 광범한 대중집회와 시위를 조직해내야 한다. 특히공장과 농촌에서 또한 거리에서 노동자와 근로농민이 주동이 되어 일어서야 한다.
광주와 이철규 죽음의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그 책임자 처벌을 관철시키는 힘은 여기에 있다.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생산비 보장을 요구하는 투쟁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근원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지배권력의 탐욕과 중오심을 분쇄하는 곳에서만 승리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이것은 가능한가. 절대로 가능하다. 누가 감히 가능하지 않다고 말할 수있겠는가. 전진하고 있는 민주의 저 굳센 발자국 소리가, 우렁찬 함성이저렇게 파도 치고 있지 않은가. - P199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내키지않는 민주화의 물결에 휩쓸리게 된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대선 패배와 더불어 총선에서도 제2야당으로 밀린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제3야당에서 존재감을 잃어가던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이 공안 분위기를 틈타 야합하면서, 정계는 다시 한 번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1990년 1월 22일 이들 세 사람은 3당 야합을 통해 거대여당 민주자유당(민자당)을 창당했다. 6월항쟁으로 어렵게 돌린 역사의 물굽이가 다시 역류하는 반동이었다. 3당 야합은 정치지형의 변화뿐만 아니라 총체적인 민주화의 역류와 보수화를 불러왔다.
5공청산은 물 건너가고 부동산 가격 폭등 사태, 물가고, 증시 침체, 토지공개념 후퇴와 금융실명제 보류 등 경제난국이 가속화되었다. 거대 여당으로 변신해 오만불손해진 민자당 정권은 임시국회에서 방송법, 국군조직법, 광주관련법, 추경예산 등을 날치기로 처리하는 등 일당독재식 국정운영으로 일관했다. - P202

그래 그것은 좌절감이다. 팍팍한 거부의 손길은 마음을 아득하게 하지. 그리고 분노의 불길을 타오르게 하지. 병준아, 병민아. 사람은 화를 낼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할 때 그러지 못하는 것은 경멸받아 마땅한 노예로 전락하는 것이다. 다만 일정한 절제와 냉정한 판단을 동반하면서 그렇게 해야 하겠지. 그렇게 되면 큰힘이 거기서 솟아나게 마련이란다. 그럴 때 우리 삶 앞에 가로놓여 있는암초와 매복적 기습에 쓰러지지 않고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란다. 거기에 새로운 창조의 자리가 마련될 수 있는 것이란다.
쓰다 두었다가 며칠 후 다시 펜을 잡게 되었다. 그사이 어저께(27일) 엄마가 내려왔다 갔다. 그 편에 너희들이 흘렸던 눈물 얘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생각한다. 너희들이 흘렸던 눈물 속에는 슬픔과 절망도 있었겠지만 또한 분노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병민이의 눈물은 분함이었고병준이의 눈물은 가슴 아픔이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들은 너희들이 이미 부딪친 바 있던 어두움이었을 것이라고•••••
여기까지 내려왔던 너희들을 만나보지 못한 것이 가슴 쓰리고 또한 아쉽구나. 하지만 바로 저 담벼락 바깥에 여전히 남아 있을 너희들의 흔적과마음을 느끼고자 하며, 그로써 이 겨울 추위 속에서 가슴에 온기를 품고자 한다. - P212

멀고 험한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배에게 캄캄한 어둠 속에서 등대의 번쩍이는 불빛은 분명히 희망이겠지. 고난과 절망 속에서 한줄기 날카로운 희망일 게다. 그런데 그 희망의 불빛을 지켜주는 등대지기는 여간 외로운 것이 아니란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뚝 떨어져 참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란다.
그렇게 참으면서, 외롭게 살면서도 견뎌낼 수 있는 힘, 그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란다. 그래서 그만큼 훌륭한 일이지. 그러면 이러한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너희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사랑, 어두움 속에서 두려워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아름답고도 큰 마음에서 오는 것이지.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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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부부는 11월 20일 워싱턴에서 거행되는 시상식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김근태는 옥중에 있었고, 인제군은 노태우 정부가 여권을 발급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 해 4월 로버트 케네디 추모사업회에서 이 상을 주기 위해 방한하기로 했지만 정부는 그들의 비자 발급까지 거부해 이것도 무산되었다. 뒤늦게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것 같자 정부는 어쩔 수 없이 비자 발급을 승인할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1988년 5월 4일 가톨릭센터 강당에서 수상식이 거행되었다. 김근태는 여전히 옥중에 있었기 때문에 인재근 혼자 상을 받았다. 만감이 교차되는 수상이었다.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 수상으로 김근태는 국제적인 양심수로알려지게 되었다. 상금은 전액 인권단체에 기부했다. - P182

김근태는 민청련의 쇄락에 실망하면서도 절망하진 않았다. 새로운 희망을 걸었다. 먼저 더 이상 자신과 같은 고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고문 경찰을 찾아내 세상에 알리는 일이 시급했다.
12월 15일 서울고법에서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민가협의 현상수배 조치로 이근안 전경감이 전국에 수배되기에 이르렀다. 역시 정치지형의 변화 때문이었다.
올림픽이 끝나고 정국은 일해재단 청문회를 시작으로 5공비리 청문회로 이어졌다. 노량진 수산시장 비리 사건으로 전두환의 형 전기환과 사촌동생 그리고 전두환의 처남 이창석이 공금횡령 혐의로 각각 구속되었다. 11월 23일 전두환·이순자 부부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강원도 인제군 백담사로 유배되었다.
새로운 정치질서가 잡혀가고 전두환이 몰락하면서, 세상의 관심은 전두환의 후계자 노태우와 김대중·김영삼· 김종필의 이른바 ‘3김‘에쏠렸다. 그리고 반독재투쟁을 ‘적당히‘ 했던 운동권 출신 중에 누군가는 야당에 들어가 투사‘가 되었다. 이 무렵 김근태의 심경은 할프단 라스무센의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이라는 시의 내용 그대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고문 가해자도
다시 일어설 수 없는 몸도 아니다
죽음을 가져오는 라이플의 총신도
벽에 드리운 그림자도
땅거미 지는 저녁도 아니다
희미하게 빛나는
고통의 별들이 무수히 달려들 때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무자비하고 무감각한 세상사람들의
눈먼 냉담함이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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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기후, 문화, 변종

건축가로서 "창조적 영감은 어디에서 얻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과연 영감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에디슨은 "천재는 99퍼센트의 노력과 1퍼센트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에디슨은 누구나 노력하면 천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1퍼센트의 영감이 없기 때문에 천재가 되지못하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1퍼센트의 영감은 그만큼 중요하다. 누구나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영감을 원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잘 모른다. 영감의 원천을 설명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인은 ‘뮤즈‘라는 아홉 명의 여신이 선물로 영감을 준다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건축을 공부하다 보면 고대의 ‘알타미라 동굴‘부터 ‘피라미드‘를 거쳐서 로마의 ‘판테온‘,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두오모‘와 근대에 들어서는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빌라 사보아‘에 이르기까지 여러 천재들의 창작물을 만나게 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시대가 주는 문제를 발견하고 새로운 시각과 생각으로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시작될까?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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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9시 45분. 나는 부엌에 서서 제일 좋아하는 저녁 식사 메뉴를 만드는 중이다. 밀플레이크, 뮤즐릭스 시리얼, 건포도를 섞은 이 맛있는 음식은 내게 위안이 되어준다. 목요일이니 15분 뒤에 드라마<ER>이 방영될 테고, 시청률 조사 기간인 5월 중순이나 나는 기대감에 젖어 있다. 그렇다. 새 에피소드가 방영되는 날이다. 기분은평온하다. 나는 찢어진 레깅스, 티셔츠, 목욕 가운을 입고 있다. 내개는 거실 소파에 흡족하게 (그리고 말없이) 웅크리고 앉아 있다. 전화 자동응답기에 메시지가 몇 통 와 있다고 불이 깜박이는데, 내가 일부러 받지 않은 전화들이고 내일이 되어야 응답할 생각이다. 이때 어떤 생각 하나가 떠오른다. 단순한 사실적 진술 하나가 완전한 문장의 형태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나는 그 말을 듣는다.
나는 명랑한 은둔자야.
이것은 정말 마술적이고 변혁적인 순간이다. 이것은 일종의 만화경 같은 변화랄까, 나 자신에 대한 기정사실들이 저절로 모습을바꾸더니 새로운 질서에 따라, 놀랍고 신선한 시각에 따라 재구성되어 내 내면이 삽시간에 재편되는 듯한 순간이다. 오래된 생각이 새로운 생각으로 바뀐다. 기존의 정의가 새로운 전개를, 새로운 분위기를, 새로운 의미를 취한다.
나는 명랑한 은둔자야. 이 말을 다시 들어보라. 산뜻하고 멋지게 들리지 않는가?  - P40

나는 작지만 세심하게 키워온 사교 생활을 즐기고있다. 한 줌의 소중한 친구들이 있고, 사랑하는 언니가 있다. 그들의 존재와 지지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웬디는 조용한 삶과 공허한 삶을 잘 구별하지 못하고, 내 생활 양식이심란하다고 여긴다. 내가 주말 계획을 얼버무리면, 웬디는 마치 내가 48시간 동안 세상과 단절되어 슬프게 지낼 거라고 예상하는 듯이 은근히 불편해하는 표정을 떠올린다. 그래서 나는 웬디를 달래려고 가끔 없는 얘기를 지어낸다. 저녁 약속이 있다고 말하고, 영화를 볼 거라고 말하고, 여자친구와 쇼핑하러 갈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 웬디는 늘 한시름 놓았다는 반응을 보이는데, 꼭 엄마 같은그 태도가 나를 약간 내려다보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아, 정말잘됐네!"
나는, 홀로 걸어가며 속으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나는, ‘우리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외톨이 은둔자다.
우리라는 단어, 이것은 꽤 무거운 단어다. - P44

내 경우, 가장 중요한 과제는 고독과 고립의 경계선을 잘 유지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 둘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사회적 기술은 근육과도 같아서 위축될 수 있고, 내가 경험한 바로도 육체적 건강을유지하는 것처럼 사람과의 접촉을 유지하려고 애쓸 필요가 있다. 타인과의 접촉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지 않으면, 지극히 간단한 사회적 행동마저도 -누구를 만나서 커피를 마신다거나, 외식을 한다거나 엄청나고 무섭고 피곤한 일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프랑스까지 헤엄쳐서 가려고 시도하는 것 못지않게 버거운 일로 느껴진다. 고독은 종종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배경으로 두고즐길 때 가장 흡족하고 가장 유익하다. 적절한 균형을 지키지 못하면, 삶이 약간 비현실적인 것이 된다. TV 등장인물들을 현실의 사람들처럼 생각하게 되고, 집에 들어온 파리가 친구 삼을 만한 상대로 느껴지고, 남들은 더없이 일상적인 일로 생각하는 작은 사건들이(집에 손님이 온다거나, 추리닝 바지보다 더 점잖은 옷을 입어야 하는 상황이라거나) 기이하고 불가해한 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
그날 밤 부엌에서 켈로그 만찬을 준비하며 내 집의 단정함과조용함을 즐길 때, 그 시간이 고마운 선물이자 일종의 승리로 느껴졌다. 예전에 내가 애쓰며 괴로워했던 일들이 과거로 좀 더 멀리 물러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원래 숫기 없는 성격이다. 타인과의 소통을 늘 부담스럽게 느껴왔고, 앞으로도 아마 어느 정도는 계속 그럴 것이다. 따라서 나는 혼자 있는 걸 늘 대단히 편하게여겼지만, 그러면서도 그 상태를 만끽할 줄은 잘 몰랐다. 혼자 방에앉아 있으면서도 초조해지지 않는 것, 연애의 틀 밖에서도 안락과 위로와 인정을 얻을 수 있다고 느끼는 것, 내가 가진 자원만으로도-나라는 사람, 내가 하는 선택만으로도-고독의 어두운 복도를 끝까지 걸어서 밝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 이런 것은 잘하지 못했다.
나는 시리얼 그릇을 들고 거실로 가서 TV 앞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정말로 명랑하게. 이게 내 집이야. - P48

 꼭 우리가 서로 다른 사람이 되려고, 우리의 인생이 너무 긴밀하게 얽히는 것을 막으려고 애쓴 것처럼 느껴진다. 너는 네 영역을지켜, 나는 내 영역을 지킬 테니까. 꼭 서로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서로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진 적은 한 번도없었다. 서로의 감정적 동향을 시야에서 완전히 놓쳐본 적도 없었다. 사실은 이것도 우리가 추는 춤의 일부다. 거리를 유지하되 상대가 필요할 때 응답하지 않는 일은 없어야 하고 서로를 잇는 끈을 아예 놓아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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