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부부는 11월 20일 워싱턴에서 거행되는 시상식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김근태는 옥중에 있었고, 인제군은 노태우 정부가 여권을 발급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 해 4월 로버트 케네디 추모사업회에서 이 상을 주기 위해 방한하기로 했지만 정부는 그들의 비자 발급까지 거부해 이것도 무산되었다. 뒤늦게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것 같자 정부는 어쩔 수 없이 비자 발급을 승인할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1988년 5월 4일 가톨릭센터 강당에서 수상식이 거행되었다. 김근태는 여전히 옥중에 있었기 때문에 인재근 혼자 상을 받았다. 만감이 교차되는 수상이었다.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 수상으로 김근태는 국제적인 양심수로알려지게 되었다. 상금은 전액 인권단체에 기부했다. - P182

김근태는 민청련의 쇄락에 실망하면서도 절망하진 않았다. 새로운 희망을 걸었다. 먼저 더 이상 자신과 같은 고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고문 경찰을 찾아내 세상에 알리는 일이 시급했다.
12월 15일 서울고법에서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민가협의 현상수배 조치로 이근안 전경감이 전국에 수배되기에 이르렀다. 역시 정치지형의 변화 때문이었다.
올림픽이 끝나고 정국은 일해재단 청문회를 시작으로 5공비리 청문회로 이어졌다. 노량진 수산시장 비리 사건으로 전두환의 형 전기환과 사촌동생 그리고 전두환의 처남 이창석이 공금횡령 혐의로 각각 구속되었다. 11월 23일 전두환·이순자 부부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강원도 인제군 백담사로 유배되었다.
새로운 정치질서가 잡혀가고 전두환이 몰락하면서, 세상의 관심은 전두환의 후계자 노태우와 김대중·김영삼· 김종필의 이른바 ‘3김‘에쏠렸다. 그리고 반독재투쟁을 ‘적당히‘ 했던 운동권 출신 중에 누군가는 야당에 들어가 투사‘가 되었다. 이 무렵 김근태의 심경은 할프단 라스무센의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이라는 시의 내용 그대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고문 가해자도
다시 일어설 수 없는 몸도 아니다
죽음을 가져오는 라이플의 총신도
벽에 드리운 그림자도
땅거미 지는 저녁도 아니다
희미하게 빛나는
고통의 별들이 무수히 달려들 때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무자비하고 무감각한 세상사람들의
눈먼 냉담함이다.  - P18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