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우릴 보고도 여전히 위컴은 들쥐라고 말할 것인가. 나는 그게 궁금하다. 박정희 군사파쇼 시대에, 전두환의 초기에 우리는 들쥐처럼 눈을내리깔고 어깨는 축 늘어뜨린 채 그렇게 살아왔는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의 눈을 뜨게 하고 결단코 더 이상 들쥐일 수는 없게 만든 장본인이야말로 위컴이고 글라이스틴이며 그러그러한 양키들인 것이다. 1980년 서울의 봄의 좌절에서, 광주사태에서 드러났던 추악한 그들의 모습이 우리 내부의 자존심에 불을 질러버린 것이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우리는 부시방한 반대를 소리 높여 외쳤던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를 들쥐로 고정시키려는 집단이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 민중을 억누르고 빼앗는 정치군부, 특권적 관료집단이그들이다. 프란츠 파농이 비웃어주었던 검은 피부, 흰 가면과 똑같은 누런 피부, 흰 가면을 쓰고 있는 집단들이다.
이들은 일제 치하에서 자치를 구걸하고 민족개조론을 주장했던 반민족세력의 후예인 것이다. 민족의 절대독립을 외치고 실천했던 위대한 애국자와 민중을 배반했던 수치스런 매국노들의 후예이다. 현대판 민족개조론자로서 여전히 "아직 우리는 열등합니다. 제발 너그럽게 봐주십시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꼴불견을 더 이상 봐줄 수 있단 말인가. 도저히 안 될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 P197

김근태는 이 글에서 이철규 변사사건‘을 언급한다. 1989년 5월 1일조선대 교지 《민주조선> 창간호와 관련, 전남지역 합수부의 지명수배를 받아오던 교지 편집위원장 이철규(전자공학과 4년)가 광주시 북구 청옥동 제4수원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정국은 타살이냐 실족사냐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정부는 사인규명을 요구하는 시위 학생들을 대량 검거했다.

이철규 형제의 죽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또 다른 ‘죽음의 광주‘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위대한 광주, 항쟁하는 광주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를 위해서 그 죽음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플랑크톤이니 과학이니 하면서 우리에게 머뭇거림을 강제해오는 저들의 시꺼먼 의도를 단호히 거부해야 된다. 우리는 일어서야 한다. 수백 수천 명이 감옥에 갈 각오를 하면서 다시 나아가야 한다. 공장과 농촌에서 학교 · 교회 · 절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거리거리에서 광범한 대중집회와 시위를 조직해내야 한다. 특히공장과 농촌에서 또한 거리에서 노동자와 근로농민이 주동이 되어 일어서야 한다.
광주와 이철규 죽음의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그 책임자 처벌을 관철시키는 힘은 여기에 있다.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생산비 보장을 요구하는 투쟁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근원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지배권력의 탐욕과 중오심을 분쇄하는 곳에서만 승리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이것은 가능한가. 절대로 가능하다. 누가 감히 가능하지 않다고 말할 수있겠는가. 전진하고 있는 민주의 저 굳센 발자국 소리가, 우렁찬 함성이저렇게 파도 치고 있지 않은가. - P199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내키지않는 민주화의 물결에 휩쓸리게 된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대선 패배와 더불어 총선에서도 제2야당으로 밀린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제3야당에서 존재감을 잃어가던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이 공안 분위기를 틈타 야합하면서, 정계는 다시 한 번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1990년 1월 22일 이들 세 사람은 3당 야합을 통해 거대여당 민주자유당(민자당)을 창당했다. 6월항쟁으로 어렵게 돌린 역사의 물굽이가 다시 역류하는 반동이었다. 3당 야합은 정치지형의 변화뿐만 아니라 총체적인 민주화의 역류와 보수화를 불러왔다.
5공청산은 물 건너가고 부동산 가격 폭등 사태, 물가고, 증시 침체, 토지공개념 후퇴와 금융실명제 보류 등 경제난국이 가속화되었다. 거대 여당으로 변신해 오만불손해진 민자당 정권은 임시국회에서 방송법, 국군조직법, 광주관련법, 추경예산 등을 날치기로 처리하는 등 일당독재식 국정운영으로 일관했다. - P202

그래 그것은 좌절감이다. 팍팍한 거부의 손길은 마음을 아득하게 하지. 그리고 분노의 불길을 타오르게 하지. 병준아, 병민아. 사람은 화를 낼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할 때 그러지 못하는 것은 경멸받아 마땅한 노예로 전락하는 것이다. 다만 일정한 절제와 냉정한 판단을 동반하면서 그렇게 해야 하겠지. 그렇게 되면 큰힘이 거기서 솟아나게 마련이란다. 그럴 때 우리 삶 앞에 가로놓여 있는암초와 매복적 기습에 쓰러지지 않고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란다. 거기에 새로운 창조의 자리가 마련될 수 있는 것이란다.
쓰다 두었다가 며칠 후 다시 펜을 잡게 되었다. 그사이 어저께(27일) 엄마가 내려왔다 갔다. 그 편에 너희들이 흘렸던 눈물 얘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생각한다. 너희들이 흘렸던 눈물 속에는 슬픔과 절망도 있었겠지만 또한 분노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병민이의 눈물은 분함이었고병준이의 눈물은 가슴 아픔이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들은 너희들이 이미 부딪친 바 있던 어두움이었을 것이라고•••••
여기까지 내려왔던 너희들을 만나보지 못한 것이 가슴 쓰리고 또한 아쉽구나. 하지만 바로 저 담벼락 바깥에 여전히 남아 있을 너희들의 흔적과마음을 느끼고자 하며, 그로써 이 겨울 추위 속에서 가슴에 온기를 품고자 한다. - P212

멀고 험한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배에게 캄캄한 어둠 속에서 등대의 번쩍이는 불빛은 분명히 희망이겠지. 고난과 절망 속에서 한줄기 날카로운 희망일 게다. 그런데 그 희망의 불빛을 지켜주는 등대지기는 여간 외로운 것이 아니란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뚝 떨어져 참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란다.
그렇게 참으면서, 외롭게 살면서도 견뎌낼 수 있는 힘, 그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란다. 그래서 그만큼 훌륭한 일이지. 그러면 이러한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너희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사랑, 어두움 속에서 두려워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아름답고도 큰 마음에서 오는 것이지.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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