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은연중에 토론이 진실을 중재한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그러나 토론은 종종 최고의 주장이 아니라 가장 기만적인 웅변가에게 보상해왔다. 양측 주장이 대립하는 상황에서는명확성과 이성보다는 수사학적 말재주나 청중을 격앙시키는 능력이 자주 승리를 가져왔다. 다양한 범위의 의견을 대립적인 두개의 주장으로 깎아내면서 과정 자체가 가끔은 거짓 이분법으로바뀌기도 했고, 진실은 더 복잡한 저기 어딘가에 있는데도 우리에게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고 강요했다. 토론의 본질은 양극단의 대립이며, 마음을 바꾸거나 숙고 끝에 타협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토론은 너무 자주 우리를 분열시키면서 정보는 주지 못한다. - P506

우리가 마주한 문제들은 기후변화부터 항생제 내성, 지정학적 불안정성까지 진실로 벅찬 문제다. 이 문제들을 마주하고 견뎌내려면 과학자처럼 생각하고, 반응하기 전에 숙고하며, 감정보다는 증거를 따라가고, 항상 자신을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 모두를 위한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분투에는 지적 능력만큼이나 용기와 연민도 필요하다. 인간의 시작은 한낱 어리석은 유인원이었을지 몰라도 그보다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능력을 부여받았다.
낡은 생각은 버리고 새로운 생각을 포용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오류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오류도 용서해야 한다. 결국 인간이 번영할지 소멸할지는 우리가 실수를 통해 배우느냐 실수에 굴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 P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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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이지는 뱀 기름을 용납하지 않았다. 사망 직전의 인터뷰를 보면 그는 자신에게 접근했던 사기꾼들에게 짜증을 드러냈다. "많은 사람이 내게 맹세한 것처럼 정말 치료법을 알고 있다면, 둘 중 하나다. 대단한 부자가 되었거나굉장히 유명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입 좀 다물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스웨이지에게 환호해야 한다. - P400

어떤 결과를 신뢰할지 구분할 수 없을것 같지만, 과학의 아름다움은 방법론만 신뢰할 수 있으면 된다는 점에 있다. 독립적인 연구는 그저 하나의 자료에 불과하다. 이상적이라면 연구 결과는 정확해야 하지만 다양한 이유로 결함이 있을 수 있다. 정말중요한 것은 완벽한 그림이며, 결과와 분석이 모였을 때 나타나는 경향성이다. 바로 이것이 인간이 유도한 기후변화 혹은 백신의 안전성에 관한 증거가 그토록 압도적인 이유다. 수천 건의 논문과 이론 모형에서 나온 자료가 모두 같은 결론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반대로 단 하나의 연구나 결함 있는 논문을 붙들고 있는기후변화 부정론자나 백신 반대 운동가들은 아는 것도 모르는척하는 중이다. 독립적인 연구지만 체리피킹한 논문은 압도적인증거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과학은 불변의 사실이나 신성한 정설의 집합체가 아니라 체계적인 탐구 방법이다. 과학자들은 신비로운 지식을 선언하는사제가 아니다. 권위나 명예는 근본적으로 과학과 무관하며, 가장 유명한 노벨상 수상자의 이론도 이름 없는 학생의 실험 하나로 바로 뒤집힐 수 있다. 현실은 우리의 편견과 자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과학 지식은 항상 잠정적이며 발견의 수용은 제시한 증거의 신뢰도에 비례한다. 새로운 발견은 우리의 지식을끊임없이 발전시키고, 이론적인 통찰은 발견을 가리키는 나침반역할을 하면서 궁극적으로 과학이 스스로 교정하도록 돕는다. - P425

 아인슈타인의 가설은 구체적이고 검증할 수 있는 예측을 내놓았지만, 프로이트의 주장은 확실한 형태가 없고 나중에 사실 뒤에 숨은 진실이라는 식의 해석으로 조작할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가설은 검증할 취약점이 있지만, 프로이트의 가설은 비판에서 보호되었다. 포퍼는 반증가능성 falsifiability 이 과학과 유사과학을 가르는 경계선이라고 보았다. 즉 가설을 반박할 결과가 나올 실험을 하나라도 설계할 수 있다면 이 가설은 과학적인추측이다.
과학적 가설은 반드시 검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예측을 할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가설은 과학적이라고 할 수 없다. 반증가능성은 가설이 거짓이라는 뜻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도록 한다. 그저 원칙적으로 그 가설이 틀렸다면 틀렸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화요일에는 뉴욕에 비가 내리겠습니다."라는 주장은 반증가능성이 있으며, 만약 비가 오지 않으면 주장은 버려진다. 보이지 않는 영혼이 속삭인다는 영매의 주장은 거짓말처럼 보이지만 반증가능성이 없다. 과학적 가설은무너질 때까지 검증되며, 만약 증거의 무게가 가설을 반박한다면 이를 수정하거나 버려야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 어떤 가설도 절대로 ‘증명‘할 수 없다. 대신 가설에 부합하는 증거는 시간이 흐르면서 쌓인다. 비판적인 정밀 조사를 견뎌낸 가설은 결국 이론이 된다. 그러나 모순되는 증거가 나오면 이론도 수정해야 한다. - P435

반증가능성은 과학적 방법의 핵심이다. 가설을 입증하는 결과만 찾지 말고, 극도로 정밀한 조사를 통해 가설을 적극적으로검증해야 한다. 이것이 점성술이 과학이 아닌 이유다. 점성술이내놓는 주장은 모호하고 흐릿해서 검증할 수 없다. 프로이트의정신분석처럼, 점성술도 사실을 확인한 뒤 재해석할 수 있다. 반면 천문학은 매우 구체적이며 검증할 수 있는 예측을 하는 과학이다. 기 치료는 치유력이 있는 우주 에너지를 활용한다고 주장하지만 증거를 내놓지 못하며 핵심인 기에 대한 정의도 내리지않는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기 치료는 검증할 수 있으며, 현재까지 임상 시험은 효능이 있다는 증거가 없었다. 따라서 기치료는 곧바로 반박되었다. 반면 방사선 치료는 이론과 실험의 방대한 자료로 뒷받침된다. - P436

반박힐 수 없는 가설은 과학이 아니며 검증을 버텨내지못한 가설은 폐기해야 한다. 그러나 유사 과학 지지자들은 일방적인 진술과 일화로 자신들이 가진 신념의 약점과 실패를 덮으려한다. 믿음은 여기에 확실히 일조한다. 예를 들어 진화는 과학이며, 검증할 수 있는 주장은 빗발치는 반박을 견뎌냈다. 창조론은과학이 아니며, 반박할 수 있는 예측이 없고 ‘그냥 그렇게 된‘ 종교 이야기 그 이상은 아니다. 이것이 과학과 믿음의 중대한 차이점이다. 과학에서는 가설이 얼마나 우아하든 간에 아주 약간의반박 자료로도 가설을 폐기할 수 있다. 반면 믿음은 조사의 영역을 넘어서는 자명한 이치를 세우며, 믿음을 보존하기 위해 증거를 폐기하는 일을 종종 미덕으로 여긴다. 믿음이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아니면 그 외의 것이든 다르지 않다. - P437

과학을 사칭하는 것을 마주했을 때 고려할 중요한 사항은 다음과 같다.
•증거의 질 -과학적 주장은 뒷받침하는 자료와 사용한 방법론을 명확하게 서술한다. 만약 주장이 일화와 증언에 크게 기대고 있다면 의심해봐야 한다.
•권위 -과학적 주장은 과학자의 권위에 기대지 않는다. 과학적주장의 수용 여부는 주장을 지지하는 증거의 무게로 결정된다. 반면 유사 과학적 주장은 증거보다는 그럴싸한 전문가나권위자에게 더 자주 초점을 맞춘다.
•논리 -주장을 구성하는 사슬은 그저 몇몇 개가 아니라 모두 연결되어야 한다. 불합리한 추론은 미심쩍은 결론으로 이어진다. 복잡한 상황이나 질병에 단 하나의 원인이나 치료법을 제시하는 지나치게 환원주의적인 주장은 회의적으로 다루어야한다.
•반박할 수 있는 주장 -반증가능성은 주장의 타당성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잘못되었다고 반박할 수 없다면 과학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과학은 재현성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독립적인 실험으로 재현할 수 없는 주장은 유사 과학일 가능성이 크다.
•증거의 전체성 -가설은 모든 증거를 고려해야만 하며 부합하는 증거만 체리피킹해서는 안 된다. 주장이 일관성 있고 지금까지 밝혀진 모든 증거와 양립한다면 그 주장은 잠정적으로수용한다. 그러나 이전의 수많은 자료와 충돌한다면 이 단절성을 반박할 근거를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
•오컴의 면도날 -주장이 다수의 부가적인 주장에 의존하는가? - P438

대안 가설이 축적한 자료를 더 적절하게 설명한다면 부가적인 추정을 정당화할 강력한 증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입증할 책임 -언제든 반박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지하는 사람에게 주장을 입증할 책임이 있다. 이 책임을 떠넘기는 시도는 나쁜 과학이라는 경고신호다. 증거 부족을 정당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변명이 핵심인 주장(음모론을 포함해서)은 유사 과학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원칙적으로 탐구 정신에서 나온 주장은 정당화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주장보다 과학일 가능성이더 크다. - P439

엄청난 사망자 수 추정치는 나쁜 과학과 터무니없는 외삽법外挿法(어떤 변역 안에서 몇 개의 변숫값에 대한 함숫값이 알려져 있을 때 이 변역 외의 변숫값에 대한 함숫값을추정하는 방법. 옮긴이) 마술이었고, 이를 두고 세계보건기구 대변인 그레고리 하틀Gregory Hartl은 "사람들이 왜 그런 추론을 하는지 그 이유를 항상 명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념의 제단 위에사실을 희생물로 바치는 것은 맑은 물을 흙탕물로 더럽힐 뿐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들의 정신 건강을 적극적으로 손상하는 행태다. 2006년 세계보건기구는 보고서를 통해 "피해당한 사람들을‘생존자‘가 아닌 ‘희생자‘로 부르면 이들은 스스로를 무력하고 약한 존재라고 여기며, 자신의 미래를 통제할 수 없다고 인식하게된다. 이는 (•••)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행동이나 과장된 건강 우려, 무모한 행동으로 이어진다"라고 경고했다. - P472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회의주의와 싸구려 냉소주의를 헷갈려서는 안 된다. 냉소주의는 무조건 반사처럼 튀어나오는 "의심스러운데"가 아니라 "왜 그걸 생각해야 하지?"에 가깝다. 회의주의는 토의와 이해를 격려하는 열린과정이지 이를 차단하는 수단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부정론자면서도 자신들이 기후변화나 백신 접종 같은 주제에 ‘회의주의적‘‘관점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작가와 방송인도 많다. 이들은 부적절한 명칭을 의도적으로 차용한다. 회의주의는 모든 주장이 확인되거나 위조되었다고 밝혀지기 전까지는 입증되지 않은 주장으로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부정론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모든 증거를 고집스럽게 인정하지 않는다. 스스로 ‘회의주의자‘라고 선언하면서도 압도적인 과학적 합의를 거부하는 사람은 부정론자 중에서도 특히 계급이 높으며 자신들의 주장을 옹호하지않고 반박의 여지가 없는 증거를 의도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 P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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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매스컴이 저지른 실수는 전형적인 기계적 중립이다. 서로 다른대상을 똑같이 증거로 뒷받침하려 할 때 일어난다. 두 대상이 공유한 특성을 동등하다고 오판할 때 자주 발생한다. 같은 고양잇과 동물이므로 반려동물로 고양이와 호랑이는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한쪽 주장이 풍부한 증거를 내놓을 때 다른 쪽은지지할 증거가 전무하다면, 상반된 입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양측을 동일시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태도다. 대립 자체가 양측을 공평하게 다룰 가치를 저절로 부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우리는 너무 자주 이 미묘함을 간과하며 어리석은 사람이나 범죄자가 바로 악용하려 드는 공허한 논리를 들이민다.
이는 논쟁적인 문제와 논란을 보도할 때 가장 명백하게 드러난다. 자부심 있는 매스컴은 편향이나 당파에 동조하지 않는다며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는 감탄할 만한 태도이며 건강한 사회에 활발한 논쟁은 꼭 필요하다. 인간은 모두 근본적으로 편파적인 성향이 있으며, 정보를 갖춘 토의는 우리가 해로운반향실에서 벗어나게 도울 수 있다. 양심적인 편집자와 방송사,
작가가 추구해야 할 이상은 객관성이다. 그러나 공명정대가 곧기계적 중립을 뜻하지는 않는다. 증거의 무게가 반박의 여지없이 한 방향을 가리킬 때도 완강하게 양쪽을 똑같이 가치 있다고보도하면 끔찍한 생각과 허튼소리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게 된다. 기계적 중립은 증거를 고려하지 않고 상반된 관점을 그저 공평하게만 나타내려는 태도다. 그러나 만약 한쪽의 증거가 사실상 이론의 여지가 없다면, 충돌하는 관점을 똑같이 타당하게 고려할 가치가 있는 대상으로 다루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판단이다. - P336

의도가 얼마나 좋든 간에 과학과 유사 과학을 서로 대립하는 형식으로 동등하게 취급하면 해당 주제에 과학적인 논란이 있다는거짓 인상을 준다는 교훈이다. 확실히 자리 잡은 이론의 타당성에 무의미한 주장이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과학적 의견으로 가장하도록 돕고, 냉소자들이 순진한 사람들을 조종하게 한다. - P339

그러나 가능한 한 가장 넓게 볼때, 제일 큰 오류는 자신들의 공동체 목소리가 보편적인 상황을대표한다고 가정한 데 있다. 이런 관점에서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의 실패는 일종의 경고다. 우연이든 의도적이든, 나와 비슷한생각만 들려오고 우리의 편안한 인식을 무너뜨리는 사실을 외면하게 하는 반향실에 안주하기는 너무 쉽고, 때로는 비극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 P356

 듀스버그와 그의 동류들이 심은 의심의 씨앗은 대체의학 집단에서 신뢰를 얻었다. 분명 아지도티미딘이 에이즈를 일으킨다는 그의 주장은 비도덕적인 제약회사들이 혐오스러운 계책을 써서 돈을 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종소리처럼 들렸을 것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들을 제거하기 위해 에이즈가 만들어졌다는소문으로 증폭된 불신도 한몫했다.
이런 이야기는 가장 큰 피해자 공동체의 호응을 얻었고 이들의 생각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지금도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절반은 HIV가 인간이 개발한 무기이며 빈곤층, 흑인, 동성애자, 히스패닉계를 억압하려 만들어졌다고 믿는다. 이들의 인식은오랫동안 조직적인 불평등의 희생자였으며 새로운 HIV 감염자수가 너무나 많았던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에이즈로 황폐해진 공동체에서 이런 믿음은 때로 널리 퍼졌다. 이런 관점의 부정적인 측면은 추상적인 인식론의 우려에 그치지 않고 치료와 예방에 방어벽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환자는어떤 조치를 해도 자신이 희생자가 되리라고 생각하면서 예방조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게 된다. - P368

위 사례는 반향실이 불러올 최악의 위험을 보여준다. 집단의 동의는 현실을 회피할 수 없다. 반향실은 그저 거대화한 체리피킹과 뚜렷한 확증편향이지만, 우리는 모두 스스로 속한 집단에서 이를 계속 경계해야 한다. 사회적 통념이라면 비판적인 시험을 피해서는 안 되며, 진실한 지혜라면 어떤 시험이든 이겨낼것이다. 반향실은 언제나 골칫거리였지만,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이 위협은 더 심각해졌으며, 정보 단편화가 늘어나면서 현대세계의 양극화가 뒤따르고 있다. 우리는 개인의 믿음이 얼마나충격적이고 구식이며 위험하든 간에, 개인적 세계관을 정확하게반향하는 공동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비슷한 믿음을 가진 집단은 사회적 소속감을 부여하겠지만, 구성원이 상반된 증거를 듣지 못하게 막는다면 모두 무익하다. 물론 정보는 외부와 단절된채 얻을 수는 없으며, 우리가 마주하는 도전을 제대로 인식하려면 정보 자체가 어떻게 전파되는지, 그리고 얼마나 쉽게 왜곡되는지 탐색해야 한다. - P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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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정보 자체만으로는 다른 확률에 좌우되는 문제의 결론을 끌어내기에 부족하다는 사실을 베이즈 정리가 보여준다는 점이다. 확률에는 종종 조건이 있으며맥락 없이 숫자만 있을 때는 분석에 주의해야 한다. 확률과 통계가 겉보기에는 직관적이지만, 그 단순함 뒤에는오해하기 쉬운 복잡성이 여러 겹 숨어 있다. 이런 오해는 우리를 완전히 잘못된 결론으로 몰아갈 수 있으며, 수상쩍은 추론과 통계적 오해는 너무 자주 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오해 뒤에 숨은 근거는 학문적인 사소한 문제도, 교묘한 수학적 수완도 아니다. 우리는 통계 정보가 과학, 정치, 경제, 그 외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의 정책을 결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삶에서 통계와 확률이 매우 흔하다는 것은 이것들이 의학 치료든 정부 조치든 생사의 문제를 자주 결정한다는 뜻이다.
이럴 경우, 우리의 삶은 확률 정보에서 올바른 결론을 끌어내는 데 달려 있다. 실수라도 하면, 특히 결정권자들이 실수하면 많은 인명이 희생될 수도 있다. 

흥미롭게도 자연요법은 자신들의 치료법이 환자에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효과가 있다는 과학적 증거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자연요법에 그럴듯한 매커니즘이나 임상 효과가 정말로없다면 어떻게 이런 상호배타적인 주장이 공존할까? 답은 통계적 유의도의 미묘한 본질에 있다. 통계적인 접근은 품질 좋은 자료를 상황에 맞게 분석하면 큰 깨달음을 준다. 그러나 무턱대고활용하면 결과는 무의미해진다. 자연요법이 애지중지하는 한 줌의 긍정적 연구는 언제나 연구 수준이 낮고 소규모 집단을 표본으로 삼는다. 표본이 작으면 단 하나의 이상치가 전체 분석을 왜곡할 수 있기에 이 사실은 중요하며, 표본 집단이 작을수록 여기서 나오는 결론 역시 굳건하지 못하다. 대규모 표본 집단을 분석할수록, 그리고 임상 시험 수준이 높아질수록 명확했던 자연요법의 치료 효과는 사라지며, 이는 충분히 예상한 바다. 널리 알려진 자연요법 치료 효과의 유의도는 전적으로 환상에 불과하다.
자연요법의 치료 효능은 모두 플라세보 효과였으며, 더 정확하게는 평균으로의 회귀regression towards the mean의 결과일 것이다." 평균으로의 회귀란 변수를 측정할 때 처음에 극단적인 측정값이 - P319

나오면 다음 측정값은 평균에 가까워지는 경향이다. 사람들은대개 질병 증상이 절정에 달했을 때 도움을 청한다. 이는 극단적인 상태이며 시간이 흐르면 정상적인 기준치까지 증상은 약해진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여전히 경이로운 면역계 덕분이 아니라오래전에 엉터리라고 밝혀진 민간요법 덕분에 몸이 회복되었다고 생각한다. 노벨상 수상자 피터 메더워 Peter Medawa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 아파서 ⓑ 치료를 받았는데 ⓒ몸이 나으면, 의과학계가 아는 그 어떤 추론으로도 환자에게 회복 치료 덕분이 아닐 수도 있다고 설득할 수 없다." - P320

통계에는 직관적인 호소력이 있지만, 동시에 수많은 복잡미묘함을 가려서 우리는 어리둥절한 채로 허둥거리며 거짓으로 향하게 된다. 실제 맥락에서 숫자들을 재해석하는 단계를 우리는 너무 자주 건너뛰어버린다. 의심스럽다면 인상적인 통계가 실제로무엇을 뜻하는지, 거기서 무엇을 추론할 수 있는지 더 깊은 질문을 던져야 마땅하다. 엄격하게 검증하지 않으면 숫자 때문에 혼란에 빠지거나 이념적으로 비뚤어진 채 길을 잃을 위험이 있다.
아무런 경고 없이 숫자만 있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숫자는 너무 자주 선정성에 불을 지른다. 하지만 통계 자체만이 아니라 통계의 출처에 대한 신뢰 역시 우리를 오도할 수 있다. 통계가 전달되는 이야기는 종종 우리의 인식을 형성한다. 우리가 소비하는 언론은 매일 마주치는 수많은 숫자의 주요 출처이며, 이들의 영향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오도되는지 인정하고 이를 막으려면 우리가 주변 세상을 이해하도록 돕는 전통 미디어와 새로운 미디어의 역할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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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3월 18일 토요일, 나는 포트로더데일 공항의 극심하게붐비는 커피숍에 앉아서, 크루즈선에서 내린 시각과 시카고행 비행기가 출발할 시각 사이에 뜬 네 시간을 죽이면서 방금 끝난 취재과제에서 보고 듣고 했던 일들을 무슨 최면적이고 감각적인 콜라주처럼 떠올려보고 있다. - P19

틈새시장에 맞춘 몇 가지 사소한 변화를 차치한다면, 모든7NC 호화 크루즈는 기본적으로 다 같다. 모든 메가라인 회사들이기본적으로 다 같은 상품을 판매한다. 그 상품이란 하나의 서비스도, 여러 서비스의 집합도 아니다. 심지어 즐거운 시간이라고도 딱히 말할 수 없다(크루즈 감독과 스태프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확인시키는 일이라는 것은 금세 알 수 있지만 말이다). 그것은 오히려 어떤 느낌에 가깝다. 그래도 진정한 상품이기는 하다. 그 느낌이라는 것이 우리 안에서 만들어질 것이라고 약속하니까. 여유와 자극의 혼합, 스트레스없는 방종과 광적인 관광의 혼합, 굽실거리는 태도와 얕보는 태도가 특수하게 혼합된 느낌이. 그리고 이 느낌은 ‘만족시키다pamper‘
라는 동사를 통해서 마케팅된다. 모든 메가라인의 이런저런 홍보물에는 이 단어가 반드시 박혀 있다. "...평생 경험해본 적 없는 수준으로 당신을 만족시키는" "...자쿠지와 사우나에서 자신을 만족시키세요" "우리가 당신을 만족시키도록 해주십시오" "바하마 제도의 훈훈한 미풍을 맞으며 자신을 만족시키세요."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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