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몇 시든 누가 신경 써요?" 내가 말했다. "조금만 더 있다가 가요. 커튼 치고 침대에 같이 누워 있으면 당신이 여기 있는 줄아무도 모를걸. 멍청한 규칙 같은 건 그냥 무시해요."
"잠깐만 수잔 그린이 지금 ‘멍청한 규칙‘ 이라고 한 겁니까? 살면서 당신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또 몰랐는데."
"아휴, 그냥 좀 닥치고 올라와."
"그냥 닥치고 올라와?"
"닥치고 올라와요, 제발."
"그렇게 친절하게 부탁하면 거절을 못 하는데."
가방을 내려놓은 그가 재킷을 벗어 의자 등받이에 던졌다. 천천히 우리 주변에 커튼이 닫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침대 베개를 두드려 등을 기댔다. - P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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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골턴 상자와 함께 떠나는 무모한 모험

아직 어렸던 시절, 사람들은 나의 특별함을 눈치챘다. 열살 때,
물리법칙에 호기심이 동했던 나는 아빠의 아파트 15층 베란다에서커다란 물풍선을 던지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다. 그래서 뉴턴과 다윈 그리고 전 세계의 위대한 과학자들을 본받아 실험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잘했어, 아인슈타인!" 물풍선의 놀라운 위력 때문에 자동차 앞유리창이 박살난 차 주인이 말했다. 내 실험이 인상 깊었던 게 틀림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당시 나는 ‘과학의 진보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야‘라며 자기합리화를 했다. 몇해 뒤에는 벽난로, 막힌 연통, 동네 소방서와 엮인 또다른 사건이 있었다. 소방수가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너 뭐냐, 천재라도 되냐?" - P11

가족은 씨족, 부족, "자연의 걸작" (조지 산타야나), "비정한 세상에서의 피난처" (크리스토퍼 래시)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가족은이 모든 것이지만, 무엇보다 직접적이면서도 심오하게 우리를 빚어내는 소집단 문화이기도 하다. 여느 문화와 마찬가지로 가족 문화는 창의성을 북돋을 수도 있고 억누를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이는 크나큰 책무다. 지금껏 우리가 이 문제를 회피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창의성은 관대함이 그런 것처럼 가정에서 시작된다. 대륙과 세기를 가로지르는 여정을 시작하면서 이 중요한 진리를 마음에 새기겠노라 다짐한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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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사회혁명은 구체제가 스스로 무너진 뒤에 일어났다.
기존 권력보다 더 강력한 힘이 혁명을 일으킨 게 아니었다. 러시아는 강력한 군대와 행정조직을 보유한 제국이었다. 알렉산드르2세와 스톨리핀처럼 영민하고 유능한 권력자가 최소한의 개혁을 실시해 민중의 마음을 붙들었다면 그런 혁명은 없었을 것이다.
니콜라이 2세는 민중의 신뢰와 존경을 스스로 짓밟았고 병사들의 충성심을 자기 발로 걷어찼다. 2월혁명을 이끈 임시정부 수반케렌스키도 마찬가지였다. 레닌과 볼셰비키는 구체제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구체제는 스스로 무너졌고, 주인 없는 권력을 그들이 집어 들었을 뿐이다. 혁명의 적은 탄압이 아니라 개혁이다. 필요한 개혁을 제때 하면 혁명은 일어나지 않는다. - P99

둘째, 사회혁명은 구체제보다 더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낳았다. 프랑스대혁명, 러시아혁명, 중국혁명이 모두 그랬다.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차르보다 더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고 차르보다더한 개인숭배를 받았다. 소련의 정치체제는 제정러시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앙집권적이었다. 공산당은 행정·입법·사법을 장악하고 언론• 교육•문화•예술을 비롯한 사회의 모든 영역을 통제했다. 레닌이 창설한 ‘체카(Cheka)‘부터 1954년에 만든 국가보안위원회(KGB)까지, 소련의 비밀경찰 조직은 국민 전체를 감시하면서 공산당의 권력 독점을 비판하는 사람을 모조리 가두고 납치하고 죽였다. 노동조합을 공산당의 하위조직으로 전락시켰고 집단농장을 만들어 농민의 토지 소유권을 빼앗았다. 중화학공업과 군수산업을 발전시키려고 소비자인 노동자와 농민을 착취했다.
셋째, 사회혁명은 열병과 같아서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울정도로 잔혹한 행위를 했다. 혁명군은 차르 니콜라이 2세와 가족을 중앙아시아 변방 예카테린부르크의 민가 지하실에서 총살했고 외국으로 탈출하지 않은 귀족을 거의 다 죽였다 - P100

볼셰비키의 ‘위대한 실험‘은 끔찌ㄱ하고 허망하게 끝이 났다. 이유는 둘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공포정치였다. 그들의 이념적 스승이었던 마르크스는 서유럽 민주주의사회가 내세운
‘개인의 자유‘를 냉소적으로 비판했지만 자유의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모든 이가 온전하게 자유를 누리는 사회에 대한 희망을 피력했다. 그런데 레닌이 기초를 닦고 스탈린이 건축한 소련 정치체제는 개인의 자유 그 자체를 말살했다. 둘째는 경제의 비효율이었다. 소련의 중앙통제 계획경제는 너무나 비효율적이어서 오래도록 지속할 수 없었다. - P102

대공황은 모든 나라를 사회적 갈등과 혼란에 빠뜨렸다. 노동자들은 급진적 사회주의혁명운동에 휩쓸렸고 민족해방투쟁을하던 식민지 · 종속국 혁명가들은 소련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유럽인이 자랑하던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제도는 그런대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그러나 대공황이 둘 사이에 깊은 골을 만들었다.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소중히 여긴 영국·프랑스·미국은 ‘정부의 보이는 주먹‘으로 자유방임 자본주의를 수정했지만, 후발 산업국인 독일·일본·이탈리아는 민주주의를 폐기하고 전체주의 또는 파시즘(fascism)으로 내달렸다. - P125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무너진 1990년 이후 자본주의는 ‘더 나은 대안이 없는‘ 경제체제가 됐다. 컴퓨터와 정보통신기술의 혁명,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사회의 생산력은 더욱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주기적으로 찾아드는 불황과 ‘승자독식‘으로 흐르는 양극화 현상에서 보듯, 인간은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임의로 통제하지 못한다. 대공황은 사람들이 더 많은 상품의 생산에 열광하고 물질적 부의 축적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던 시기에 세상을 덮쳤다. 인간은 자신이 요술램프에서 불러낸 거인을 다루지 못하는 소년과 같았다. 오늘 우리는 그때와 얼마나 다를까?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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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미국이 오늘날처럼 총기 소유를 허용하게 된 데에는 나름의 역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이나 영국에 비해 시카고에 거주하는 젊은이가 훨씬 높은 확률로 살인자가 되고, 또 그만큼 높은 확률로 누군가는 죽게 된다면, 그 공동체는 책임을 피할수 없습니다. 미국총기협회가 말하듯 개개인이 무장을 해서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사회적 원인을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해결책이 필요하니까요. - P276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충분한 숫자의 피해자가 나와 규제를 위한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해야 할까요?
이것은 21세기 이 사회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에 대한생존의 문제입니다. 크리벨 교수는 위험을 바라보는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며 ‘사전주의 원칙‘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언제 올지 모르는 ‘충분한 근거‘를 기다리는 대신, 이제 불확실성 속에서 행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핵심 원칙 중 하나는 새로운 물질을 사용하고자 할 때 그것을 사용하려는 기업과 사람들이 그 유해성에 대한 데이터를 제시하고 사회를 설득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로 인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대중이 관련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 P283

간혹 신문기사를 통해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앞서 언급한 화학물질 규제를 느슨하게 만들기 위해 여러 단체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접하곤 합니다. 현장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반영하지 못한 법이 적절히 수정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런 논의를 볼 때마다 한국사회에서 만병통치약처럼 통용되는 ‘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위한 최소한의 규제를 포기하는 것은 아닐지 두렵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진행되는 경제 활성화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원인 미상 간질성 폐질환‘이라는 낯설고 무력했던 진단명으로 사라져간 수많은 갓난아이와 임산부들의 죽음으로부터도 우리가 배우지 못한다면, 한국사회에서 이 참사는 또 다른 형태로 반복될 것입니다. - P285

 공동체와 깊숙이 결합된 개인들이 꾸려가는 상호부조의 문화는 실제로 힘이 되었지요. 로세토에 사는 한 여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다면, 그때는 당신도 당신의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어요."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를 보호해줄 수 있다는 확신,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함께해줄 것이라는 확신은 기꺼이 힘겨운 삶을 꾸려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 P292

얼굴을 한 번도 본적없지만, ‘다리‘의 후배님들 항상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프로이트를 인용하면서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은 결국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기심을 채우는 일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결국에는 이기심을 뛰어넘는 삶을 살아보도록 해요. 저도 열심히 노력할게요.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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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과에서 간병일을 돕던 재소자도 여호와의 증인 신자였습니다. 어느 날, 매일같이 허리가 아프다고 의무과에서 약을 타가던 한 재소자가 자신이 원하는 다른 약을 주지 않겠다는 제 말에 돌변했습니다. 책상을 주먹으로 치고 제게 큰 소리로 욕을 했습니다. 착잡한 마음으로 그날 오전 진료를 마치고 창문을 바라보며 서 있었습니다. 그때 간병일을 돕는 재소자가 제게 다가오더니 이야기했습니다.
"선생님, 그 녀석들 열여섯 살에 교도소 들어와서 마음이 아직도 열여섯 살입니다. 사회생활도 하고 사람도 만나야 변하는데, 그 아이들은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 거였구나.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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