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사회혁명은 구체제가 스스로 무너진 뒤에 일어났다. 기존 권력보다 더 강력한 힘이 혁명을 일으킨 게 아니었다. 러시아는 강력한 군대와 행정조직을 보유한 제국이었다. 알렉산드르2세와 스톨리핀처럼 영민하고 유능한 권력자가 최소한의 개혁을 실시해 민중의 마음을 붙들었다면 그런 혁명은 없었을 것이다. 니콜라이 2세는 민중의 신뢰와 존경을 스스로 짓밟았고 병사들의 충성심을 자기 발로 걷어찼다. 2월혁명을 이끈 임시정부 수반케렌스키도 마찬가지였다. 레닌과 볼셰비키는 구체제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구체제는 스스로 무너졌고, 주인 없는 권력을 그들이 집어 들었을 뿐이다. 혁명의 적은 탄압이 아니라 개혁이다. 필요한 개혁을 제때 하면 혁명은 일어나지 않는다. - P99
둘째, 사회혁명은 구체제보다 더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낳았다. 프랑스대혁명, 러시아혁명, 중국혁명이 모두 그랬다.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차르보다 더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고 차르보다더한 개인숭배를 받았다. 소련의 정치체제는 제정러시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앙집권적이었다. 공산당은 행정·입법·사법을 장악하고 언론• 교육•문화•예술을 비롯한 사회의 모든 영역을 통제했다. 레닌이 창설한 ‘체카(Cheka)‘부터 1954년에 만든 국가보안위원회(KGB)까지, 소련의 비밀경찰 조직은 국민 전체를 감시하면서 공산당의 권력 독점을 비판하는 사람을 모조리 가두고 납치하고 죽였다. 노동조합을 공산당의 하위조직으로 전락시켰고 집단농장을 만들어 농민의 토지 소유권을 빼앗았다. 중화학공업과 군수산업을 발전시키려고 소비자인 노동자와 농민을 착취했다. 셋째, 사회혁명은 열병과 같아서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울정도로 잔혹한 행위를 했다. 혁명군은 차르 니콜라이 2세와 가족을 중앙아시아 변방 예카테린부르크의 민가 지하실에서 총살했고 외국으로 탈출하지 않은 귀족을 거의 다 죽였다 - P100
볼셰비키의 ‘위대한 실험‘은 끔찌ㄱ하고 허망하게 끝이 났다. 이유는 둘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공포정치였다. 그들의 이념적 스승이었던 마르크스는 서유럽 민주주의사회가 내세운 ‘개인의 자유‘를 냉소적으로 비판했지만 자유의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모든 이가 온전하게 자유를 누리는 사회에 대한 희망을 피력했다. 그런데 레닌이 기초를 닦고 스탈린이 건축한 소련 정치체제는 개인의 자유 그 자체를 말살했다. 둘째는 경제의 비효율이었다. 소련의 중앙통제 계획경제는 너무나 비효율적이어서 오래도록 지속할 수 없었다. - P102
대공황은 모든 나라를 사회적 갈등과 혼란에 빠뜨렸다. 노동자들은 급진적 사회주의혁명운동에 휩쓸렸고 민족해방투쟁을하던 식민지 · 종속국 혁명가들은 소련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유럽인이 자랑하던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제도는 그런대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그러나 대공황이 둘 사이에 깊은 골을 만들었다.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소중히 여긴 영국·프랑스·미국은 ‘정부의 보이는 주먹‘으로 자유방임 자본주의를 수정했지만, 후발 산업국인 독일·일본·이탈리아는 민주주의를 폐기하고 전체주의 또는 파시즘(fascism)으로 내달렸다. - P125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무너진 1990년 이후 자본주의는 ‘더 나은 대안이 없는‘ 경제체제가 됐다. 컴퓨터와 정보통신기술의 혁명,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사회의 생산력은 더욱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주기적으로 찾아드는 불황과 ‘승자독식‘으로 흐르는 양극화 현상에서 보듯, 인간은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임의로 통제하지 못한다. 대공황은 사람들이 더 많은 상품의 생산에 열광하고 물질적 부의 축적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던 시기에 세상을 덮쳤다. 인간은 자신이 요술램프에서 불러낸 거인을 다루지 못하는 소년과 같았다. 오늘 우리는 그때와 얼마나 다를까?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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