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다는 건 전염병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에요. 어쨌든 존은 원주민들에게서 그런 미친 사고방식이 옳았을 거예요. 물론 존이 그들과 무척 오래 같이 지냈기 때문이겠죠. 그들이 항상 존한테 못된짓을 하고, 다른 소년들이 함께 놀아주질 않는데도 말이에요. 덕택에 내가 걔를 조금쯤 길들이는 것이 훨씬 용이했으니까 어떻게 보면 그건 잘된 일이기도 했어요. 존을 제대로 길들이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당신은 상상도 못 하겠지만요. 무엇을 알려고 한다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난 알지 못하는 게 굉장히 많았어요. 내 얘긴, 어린아이가 헬리콥터는 어떻게 작동하고 세상은 누가 만들었느냐는 따위를 물어볼 때를 의미하는데-글쎄요, 베타의 신분으로 항상 수정실에서만 근무한 사람이라면 그럴 때 무슨 대답을 할 수가 있겠어요? 어떻게 대답하겠느냐고요." - P195

그는 포페를 점점 더 미워하게 되었다. 인간이란 겉으로는 미소를짓고 또 지으면서도 흉악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고, 배반을 일삼고, 색욕적이고, 무자비하고, 흉악한 인간. 이런어휘들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일까? 그는 겨우 반쯤만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런 어휘들의 마력은 강렬했고, 계속해서 그의 머릿속에서 우르릉거렸다. 웬일인지 그는 여태껏 포페를 진심으로 미워한 적이 없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따지고보면 얼마나 포페를미워하는지 적절하게 표현할 길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그를미워하지 않은 셈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에게는 이런 어휘들이, 북소리와 노래와 마법 같은 어휘들이 생겨났다. 그가 알게 된 어휘들과, 그리고 바로 그런 어휘들로 엮어진 (그것들이 무엇인지 그로서는 알 길이 없었지만 여하튼 멋지고도 멋지며) 이상하고도 이상한이야기들은 포페를 증오해야 할 이유를 그에게 마련해주었다.  - P209

가족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이 티쿤, 즉 수리를 실천하는 수단이라고 데이비드가 말한다. 나는 크리스핀 수도사의 말을 떠올린다. "우리의 가족이 곧 우리의 사도"라는 말. 내가 다른 곳에서 영적인 영양분을 찾아다닌 것이 잘못임을 이제 알겠다. 나는 가족과 영성을 각각 다른 상자에 넣어두고 분리해서 생각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이 두 영혼은 말한다. 같은 상자에 넣어야 한다고. - P476

존이 얼른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문 바로 안쪽에서 잠깐 멈추었다가 주위를 둘러본 다음, 사슴 가죽신을 신은 발로 조심스럽고도빠른 걸음으로 방을 가로질러 건너가 국장 앞에 무릎을 꿇고 또렷한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란 아이를 낳는 현상에 관련된 도덕적으로 부정한 요소와 혐오감을 일차적으로 배제한 의미이기 때문에, 음탕하다기보다는 차라리 그냥 추악하고, 외설적이라기보다는 배설물처럼 더럽고야비함을 뜻하는 어휘여서 존이 외친 더럽고 우스꽝스러운 어휘는견디기 힘들 정도로 팽팽해졌던 긴장감을 크게 이완시켰다. 거의 발작적이라고 할 만큼 요란한 웃음이 터져 나오더니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아버지라니-그것도 국장님더러말이다! 아버지라니! 오포드 님이시여, 오포드 님 맙소사! 그것은정말로 너무나 믿어지지 않는 얘기였다. 환호성과 고함 소리가 다시금 요란해졌다. 요원들의 얼굴은 흐물흐물 일그러지기 직전이었고,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정충이 담긴 시험관이 여섯 개 더 엎어졌다. 아버지라니!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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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여성적인 측면, 즉 아니마는 중요한데도 흔히 간과되곤 한다. 창조주는 오로지 뜨거운 유황불과 남성적인 기적으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다. 부드러운 측면도 있다. 거의 문명이 처음 시작될때부터 인류는 여신을 숭배했으며, 거의 모든 종교가 섬기는 신에게도 여성적인 측면이 있다. 유대교에는 세키나가 있고, 힌두교에는샤크티가 있다. 루미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은 섬세한 베일을 통해빛나는 신이다." 그러니까 성별 바꾸기라는 이 라엘교의 행사도 그러한 신의 특징과 접촉하려는 시도인 것 같다. 혹시 내가 라엘교도들을 너무 높이 평가하고 있는 걸까? - P278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내 눈을 믿을 수가 없다. 근사한 모습이다. 정말로 근사하다. 풍성한 금발이 풍만한 가슴 위로 멋지게 늘어져 있다. 방금 면도한 얼굴은 매끄럽고 볼연지는 내 얼굴이 섬세하면서도 건강하게 빛나는 것처럼 만들어준다. 그래, 의심의 여지가없다. 거울을 보고 있으려니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나 자신에게 매력을 느끼다니. 적어도 나의 여성형인 이 모습에 마음이 끌린다. 나는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잠시 생각해보지만, 이 생각이 향하는 곳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생각을 그만두고 행사장으로 향한다. - P279

하지만 사람이 뭔가를 상대로 열심히 싸운다는 것은 그 상대에게 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다. 사실 싸우면 싸울수록 상대방과 더 얽히게 되어 있다. 증오는 우리를 집어삼키는 불꽃이라기보다는 겉으로 보기에 부정하고 거부하는 듯이 보이는 것과 우리를 묶어주는 아교와 같다. 터무니없는 아교. 중동은 이 현상의 살아 있는 증거이고, 라엘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가톨릭과의 죽음의 포옹 속에갇혀 있다. 사실 라엘교 자체가 가톨릭교회를 뒤집어놓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가톨릭에 세례가 있다면, 라엘교에는 ‘전이‘가 있다. 가톨릭에 수녀들이 있다면, 라엘교에는 라엘의 천사단이 있다. 라엘교도들은 정신과 의사들이 ‘반동형성‘(억압된 욕구와는 반대의 행동을 나타내는 것 - 옮긴이)이라고 부르는 행동을 하고 있다. 그들은 반(反)가톨릭 감정이 워낙 강한 나머지 자신이 가톨릭교회에 얼마나 단단히 얽매여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 P288

 종교와 우주는 이미 오래전부터 하나로 얽혀 있다. 아프리카에서부터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서 거의 모든 고대 다신교들에는 강력한 ‘하늘의 정령‘이나 ‘하늘 신‘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인간을 뜻하는 단어 안트로포스(anthropos)에는 ‘올려다보다‘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올려다본다. 천체들을, 하느님을. - P290

 존은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을 받아들이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즐거웠다. 어느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이번에도 나는 어쩌면 이것이 바로 가장 중요한 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UFO나 외계인이나 유전공학은물론이고 심지어 관능적인 여행 등에 관한 터무니없는 이야기들까지 죄다 상관없다. 라엘교는 다른 모든 종교와 마찬가지로 추종자들에게 공동체 의식, 소속감, 인간이 아름다운 존재라는 생각을 제공해준다. 그들이 실제로 무엇을 믿는지는 거의 중요하지 않다.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존이 라엘교를 지칭하는 말이 그들‘에서 ‘우리‘로 바뀌었음을 눈치챘다. 그러던 어느 날 존이 목에 라엘교 펜던트를 걸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는 진짜 라엘교도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 P296

좋은 종교는 우리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한다. 좋은 종교는 사람을힘들게 한다. 좋은 종교는 사람을 밀기도 하고 당기기도 하며 헤셸이 다급하게 던진 질문과 정면으로 씨름한다. "사람은 어떻게 해서 눈을 들어 자신보다 조금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가?"
라엘교도들은 외계인이나 비행접시 얘기를 계속 늘어놓으면서도가슴 높이 이상 시선을 들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그 높이로는 충분하지 않다. 충분한 높이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 P299

"그건 도교가 무정형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빌이 말한다. 의도적으로 모호한 종교라는 것이다. 《도덕경》은 모호함이라는 측면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빌은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가 상상하는것은 고사하고 이름조차 붙여줄 수 없는 어떤 것을 찬양하기 위해지어진 한 편의 시." 그 ‘어떤 것‘은 ‘도‘를 뜻한다. 도는 대개 ‘길‘로 번역되지만 우주, 자연, 신, 위대한 무, 위대한 신비 등으로도 번역된다. 단순히 "세상 이치로 번역될 때도 있다. 《도덕경》 또한 모든 구절들을 읽는 방법이 무한해 보인다. 그래서 그토록 수많은 번역본과 주석이 존재하는 것이다. 성경을 제외하면 그 어떤 경전보다도 많다. 다들 《도덕경>의 의미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도교의 초석을 하나 더 꼽는다면, 무위(無爲)라는 개념이 있다.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때 나는 수백 년 전 중국의 게으름뱅이가 게으름을 정당화할 구실을 잘도 만들어냈다고 생각했다. 빌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무위는 사실 ‘힘들이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게 만드는것과 어떤 일이 일어나게 내버려두는 것의 차이. 도교 추종자들에게 저항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어리석기도 하다. 불필요한 노력인 것이다. 무위란 삶을 전쟁으로 보기보다는 항해로 보는 것이다. 어쨌든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불교도들의 말처럼, 조금 조사가 필요하다. - P307

차분함뿐만 아니라 부드러움도 있다. "부드러운 기수가 날뛰는 말을 다스리듯이 세상에서도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노자는 이렇게 했다.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다. 우리는 부드러운 것보다 강한 것을 좋아하고, 우리가 쓰는 언어에도 이런 성향이 반영되어 있다. 우리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나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은물론이고 심지어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에게도 감탄한다. 부드러움은 약점, 성격상의 결함으로 여겨진다. "날 물렁하게 대하지 마." 우리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간청한다. 부드럽다는 말을 칭찬으로 쓸 때조차 거기에는 항상 약간의 경멸이 섞여 있다. 마음이 부드럽고 약한 사람은 멍청이라는 듯이.
생각해보면, 강한 것을 선호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 행동이다. 갓난아기는 부드럽고, 시체는 딱딱하다. 부드러운 것은 휘어지지만 강하고 딱딱한 것은 부러질 뿐이다. 도교는 부드러움 속에 숨어 있는힘을 본다. 예를 들어 물은 어느 물질 못지않게 부드럽고 잘 휘어지지만 수백 년 동안 강물이 흘러서 그랜드캐니언을 만들어놓았다. 부드러운 힘의 작용이다. - P326

"지금 말하는 신이 무슨 뜻인지 먼저 알아야겠어요. 우리가 ‘신‘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즉각 자기들이 생각하는 신의 이미지를 마음에 떠올려요. 나도 뭔가를 믿기는 하지만 그걸 정확히 설명해줄 수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초창기의 번역가들 중에는 ‘도‘를 ‘신‘으로 번역한 사람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건 옳지 않죠. 도는 신이 아니라 길이니까요. 이 둘은 달라요."
"좋아요. 하지만 지금껏 찾고 있던 해답을 도교가 제공해주던가요?"
"난 해답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에요. 그냥 경험을 바랄 뿐이에요."
나는 미끄러운 두부와 씨름하면서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동양 종교와 유대교-그리스도교를 구분 짓는 특징이 바로 이것이다.
믿음보다 경험을 강조하는 것. 도교, 불교, 힌두교,자이나교 등은
"무엇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이것은 서구의, 특히 그리스도교의 버릇이다. 동양의 특징은 행동, 경험, 결과다. -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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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져야 본전이잖아요. 역사가 오랜 종교들에 생명력을 주고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묶어두고 있는 뭔가가 그 종교들의 심장부에서 피와 허튼소리 밑에 묻혀 있다는 걸 알게 될지도모릅니다. 당신도 결국 신자들과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될지도몰라요."
목소리들이 조용해진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걸터앉는다. 그리고 합창하듯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 머리 위를 날아가는 비행기 소리, "죽여버릴 거야, 이 씹새끼야" 하고 외치는 소리를 모두 차단한 채 기도를 드린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화려하게 눈에 띄는 일은 아니다. 수백 년 동안 누구도 해보지 않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 이상은 말하고 싶지 않다. 그건 개인적인 경험이었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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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내가 차지하고 있는 이 공간적 지점에 시간 속의 이 정확한 순간에 자리잡고 있다. 나는 이 지점이 결정적이지 않은 것을 허락할수 없다.

야금야금 나눠 먹고 있는 책, 지상의 양식의 한 구절입니다. 이 말은 즉, 저는 현재 강남역 어느 세미나실에서 2012년 11월 7일 저녁 7시 30분이라는 순간을 삽니다. 이 순간 속에 있는 게 저고요. 만약 여기에서 마다가스카르나 그랜드 캐니언을 꿈꾼다는 건 내가 서 있는 이 공간에 대한 무시입니다. 이 지점이 결정적이지 않은 것을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은 결국 현재가 나한테 결정적이지 않은 것을 허락할 수 없다는것이죠. 앙드레 지드는 결국 삶은 ‘현재 순간들의 지속적인 일어남‘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매 순간 그대는 신을 송두리째 가질 수 있음을 잊지 말라‘고 못을 박죠. 매 순간 신은 바로 여기에 있고 전부 내차지가 될 수 있습니다. 앙드레 지드가 말한 ‘그대 온 행복을 순간 속에서 찾아라‘만 실천한다면요.
그가 지상의 양식」에서 말한 순간에 대한 현재에 대한 다른 이야기도 들어볼까요?

- 나는 나의 모든 재산을 내 몸속에 지녔다.
- 결코 미래 속에서 답을 찾으려 하지 말라. 모든 행복은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다.
- 우리는 순간에 찍히는 사진과 같은 생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 우리 생각순간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과 바뀔 수 없다.
- 때로는 오직 그 순간에만 마음을 쏟아야 한다.

사르트르의 이야기도 한마디 더 들어보죠.

인생은 잘 짜인 이야기보다는 그 하나하나가 관능적인 기쁨인, 내일없는 작은 조각들의 광채다.
ㅡ 사르트르 카뮈의 『이방인』에 대한 비평문 중에서 - P142

판사증후군, 대학증후군, 이 이야기는 우리 생각 저변에 ‘아, 저 학교간 사람은 다 똑똑해, 의사가 된 사람은 다 존경할만해‘라는 식의 생각이 깔려 있다는 거죠. 이런 단순 도식이 있을 수 있나요? 아니 인생이 이렇게 단순한가요? 인생은, 사람은 절대 단순하지 않아요. 판사 중에후진 판사는 정말 후져요. 의사 중에 무식한 의사도 많고요. 뉴스 사회면에 나오지 않습니까? 자신이 돈을 벌어다 주는데 아내가 집 열쇠, 차열쇠, 병원 열쇠 가져오지 않았다고 아내를 때리는 의사 이야기요. 이건 무식한 사람이잖아요. 법조계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살펴보세요. 떡검, 개인사찰 등의 뉴스 기사가 많습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정상적이고 올바른 사람들이 하는 걸까요? 이런 검사 판사보다 평범한 직업이라도 열심히,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훨씬 멋진 게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멋지고 말고의 문제는 직업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도이 정도는 다 알고 있어요.
제가 하고 있는 광고 일, 저 역시 사기꾼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잘‘ 하면 되는 겁니다. 의사도 판사도 아니고 사기꾼 소리나 듣는데 그냥 먹고살 정도로만 대충 해야지, 이런 수동적인 생각으로 일하고 싶지 않아요. 난 이 일을 가장 멋지게 하고 싶습니다.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니까요. 바깥의 권위에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 P155

이런 것들이 왜 동의가 되어야 하는 걸까요? 우리는 모두 완벽하게 불완전한 사람들인데요. 문턱증후군 때문에 문턱을 넘은 일부 사람들은 완전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믿지 마세요. 회장님이 전지전능하지 않아요. 물론 존경스러울 수도 있지만 모든 말이 옳고, 실수는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에요. 판사도, 의사도, 서울대생도, 회장도 나보다 낫지만 또 한편 나보다 못한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 P157

여러분도 동의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회는, 기득권 세력은 고분고분한 사람을 원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죠.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도발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될 테니까요. 때문에 권위를 보이면서 복종하고 따라오라고 무언의 협박을 하죠. 우리는 그런 가짜 권위들을 검증하는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 P163

인생을 멋지게 살고 싶다면, 강자한테 강하고 약자한테 약해져라.

강자한테 당당하게 고개 들고 약자한테 푹 숙이세요. 예전 故 노무현대통령 사진 중에 신문사 사주들을 만났을 때 눈을 보면서 악수하고, 농민을 만나 인사할 때는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있었어요. 저는 그런삶의 태도가 제대로 사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국기행』에는 이런 구절도 나옵니다.

영국인들은 외부의 법규는 모름지기 개인 내부의 입법자에게 비준을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오늘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바깥에 있는 권위는 내 안의 입법자로부터 비준을 받아야 합니다. 비준을 받지 않은 채 무조건 따라서는안 되죠. - P174

인생은 개인의 노력과 재능이라는 씨줄과, 시대의 흐름과 시대정신그리고 운이라는 날줄이 합쳐서 직조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의 의지와 노력과 재능이라는 씨줄만 놓고 미래를 기다립니다. 치고 들어오는 날줄의 모양새는 생각도 안 하고 말입니다. 이 씨줄과 날줄의비유는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인 이 책에 나온 ‘인생을 내 마음대로 계획하기에는 시대라는 날줄이 너무나 험했다‘라는 문장을 읽고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P219

그러니까 요즘처럼 날줄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시절에는 이런 삶의태도가 절실합니다. ‘급한 물에 떠내려가다 닿은 곳에 싹 틔우는 땅버들씨앗, 그렇게 시작해보거라‘라는 고은 시인의 시처럼 살아야 합니다. 땅버들 씨앗도 자기가 닿으면 좋을 장소가 있었을 겁니다. 양지바르고, 촉촉한 땅 위에 닿고 싶었겠죠. 하지만 바람에 흔들리고 물살에 떠밀려미처 다 가지 못하고 나뭇가지가 마구 엉켜 있는 바위 틈에 툭 하고 닿아버린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땅버들 씨앗이 원하던 곳으로 다시 갈수 있습니까? 아니지요. 땅버들 씨앗은 묵묵히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릴겁니다. 우리도 그렇게 시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P221

영화평론가 이동진 씨는 자신의 책 『밤은 책이다」에서 "하루하루는성실하게 살고 싶고,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 살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건 말 그대로 지혜입니다. 맞습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고, 인생은 되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성실하게 산 하루하루의 결과가 인생이되는 겁니다. 꿈꾸지 말라고 해서, 날줄이 험할 수 있다고 해서 그냥 놀고 먹으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중간중간 말씀드렸듯 무엇이 본질적인 것인지, 고전이 왜 중요한지, 발견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 생각하며 지혜롭게 하루하루를 쌓아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꽉 채워 살다가 돌아보면 펼쳐져 있는 게 인생이지, 단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를 허술하게 보내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 P226

‘해방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 그 자리를 해방의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것‘
여기에서 ‘해방‘을 ‘행복‘으로 바꿔보세요. 행복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아니라 내가 선이 자리를 행복의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여러분이 되길바랍니다.
묵묵히 자기를 존중하면서, 클래식을 궁금해 하면서, 본질을 추구하고 권위에 도전하고, 현재를 가치 있게 여기고, 깊이 봐가면서, 지혜롭게 소통하면서 각자의 전인미답의 길을 가자.
이게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었던 인생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모든것이었습니다. 마음이 움직이셨나요? 그렇다면 이제 자신을 믿고 씩씩하게 또 행복하게 자신의 인생 길을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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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나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을 워낙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내 내면이 사생활을 침해당했다고 불만을 제기하지않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그만 좀 들여다봐, 이 변태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반드시 머리가 먼저 맑아져야 한다는 생각에 행동을 미루고 머뭇거린 적이 많았다. 하지만 머리가 맑아지는 순간이 결코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 알겠다. 그동안 나는 너무나 많은 경험을 잃어버렸다. 그 경험들이 내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원하는, 머리가 맑은 상태를 만들어주었을지도 모르는데, 행동은 믿음에 선행한다. "일단 해봐 (Just Do It)"라는 말은 그저 영리한 광고 카피가 아니다. 이건 철학이다. - P227

지금까지 나는 수도사들의 청빈을 일종의 자기부정으로 보았다.
거의 마조히즘에 가깝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이런 식으로 살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간디의 말처럼 "스스로 삼가는것은 강요가 아니다." 수도사들에게 물질적 가난은 자유를 뜻한다. 물건을 전혀 소유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물건을 지켜야 할 부담으로부터 자유롭다. 남의 물건을 탐내는 것(또는 다른 사람이 이쪽의 물건을 탐내는 것)으로부터도 자유롭다. 항상 더 좋은 물건을 사야 한다는 부담에서도 자유롭고, 자기가 꼭 사야 할 물건을 제대로 샀는지 걱정하는 일에서도 자유롭고, 그 물건들을 놓아둘 장소를 찾아야 한다는 부담에서도 자유롭다. 물건뿐만이 아니다. 경험도 있다. 우리는 경험에도 애착을 갖는다. 나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 나는 경험을 수집한다. 완벽한 식사, 완벽한 여행………… 언제나 전보다 더 완벽한 경험을 찾아다닌다. 이 수집은 결코 끝나는 법이 없다. 내가 이슬람의 4대 칼리프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한은 "금욕이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어느 것에게도 소유당하지 않는 것이다." 경험도 물건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소유해버릴 수 있다. 벽장의 공간을 덜 차지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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