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여성적인 측면, 즉 아니마는 중요한데도 흔히 간과되곤 한다. 창조주는 오로지 뜨거운 유황불과 남성적인 기적으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다. 부드러운 측면도 있다. 거의 문명이 처음 시작될때부터 인류는 여신을 숭배했으며, 거의 모든 종교가 섬기는 신에게도 여성적인 측면이 있다. 유대교에는 세키나가 있고, 힌두교에는샤크티가 있다. 루미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은 섬세한 베일을 통해빛나는 신이다." 그러니까 성별 바꾸기라는 이 라엘교의 행사도 그러한 신의 특징과 접촉하려는 시도인 것 같다. 혹시 내가 라엘교도들을 너무 높이 평가하고 있는 걸까? - P278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내 눈을 믿을 수가 없다. 근사한 모습이다. 정말로 근사하다. 풍성한 금발이 풍만한 가슴 위로 멋지게 늘어져 있다. 방금 면도한 얼굴은 매끄럽고 볼연지는 내 얼굴이 섬세하면서도 건강하게 빛나는 것처럼 만들어준다. 그래, 의심의 여지가없다. 거울을 보고 있으려니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나 자신에게 매력을 느끼다니. 적어도 나의 여성형인 이 모습에 마음이 끌린다. 나는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잠시 생각해보지만, 이 생각이 향하는 곳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생각을 그만두고 행사장으로 향한다. - P279

하지만 사람이 뭔가를 상대로 열심히 싸운다는 것은 그 상대에게 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다. 사실 싸우면 싸울수록 상대방과 더 얽히게 되어 있다. 증오는 우리를 집어삼키는 불꽃이라기보다는 겉으로 보기에 부정하고 거부하는 듯이 보이는 것과 우리를 묶어주는 아교와 같다. 터무니없는 아교. 중동은 이 현상의 살아 있는 증거이고, 라엘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가톨릭과의 죽음의 포옹 속에갇혀 있다. 사실 라엘교 자체가 가톨릭교회를 뒤집어놓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가톨릭에 세례가 있다면, 라엘교에는 ‘전이‘가 있다. 가톨릭에 수녀들이 있다면, 라엘교에는 라엘의 천사단이 있다. 라엘교도들은 정신과 의사들이 ‘반동형성‘(억압된 욕구와는 반대의 행동을 나타내는 것 - 옮긴이)이라고 부르는 행동을 하고 있다. 그들은 반(反)가톨릭 감정이 워낙 강한 나머지 자신이 가톨릭교회에 얼마나 단단히 얽매여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 P288

 종교와 우주는 이미 오래전부터 하나로 얽혀 있다. 아프리카에서부터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서 거의 모든 고대 다신교들에는 강력한 ‘하늘의 정령‘이나 ‘하늘 신‘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인간을 뜻하는 단어 안트로포스(anthropos)에는 ‘올려다보다‘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올려다본다. 천체들을, 하느님을. - P290

 존은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을 받아들이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즐거웠다. 어느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이번에도 나는 어쩌면 이것이 바로 가장 중요한 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UFO나 외계인이나 유전공학은물론이고 심지어 관능적인 여행 등에 관한 터무니없는 이야기들까지 죄다 상관없다. 라엘교는 다른 모든 종교와 마찬가지로 추종자들에게 공동체 의식, 소속감, 인간이 아름다운 존재라는 생각을 제공해준다. 그들이 실제로 무엇을 믿는지는 거의 중요하지 않다.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존이 라엘교를 지칭하는 말이 그들‘에서 ‘우리‘로 바뀌었음을 눈치챘다. 그러던 어느 날 존이 목에 라엘교 펜던트를 걸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는 진짜 라엘교도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 P296

좋은 종교는 우리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한다. 좋은 종교는 사람을힘들게 한다. 좋은 종교는 사람을 밀기도 하고 당기기도 하며 헤셸이 다급하게 던진 질문과 정면으로 씨름한다. "사람은 어떻게 해서 눈을 들어 자신보다 조금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가?"
라엘교도들은 외계인이나 비행접시 얘기를 계속 늘어놓으면서도가슴 높이 이상 시선을 들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그 높이로는 충분하지 않다. 충분한 높이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 P299

"그건 도교가 무정형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빌이 말한다. 의도적으로 모호한 종교라는 것이다. 《도덕경》은 모호함이라는 측면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빌은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가 상상하는것은 고사하고 이름조차 붙여줄 수 없는 어떤 것을 찬양하기 위해지어진 한 편의 시." 그 ‘어떤 것‘은 ‘도‘를 뜻한다. 도는 대개 ‘길‘로 번역되지만 우주, 자연, 신, 위대한 무, 위대한 신비 등으로도 번역된다. 단순히 "세상 이치로 번역될 때도 있다. 《도덕경》 또한 모든 구절들을 읽는 방법이 무한해 보인다. 그래서 그토록 수많은 번역본과 주석이 존재하는 것이다. 성경을 제외하면 그 어떤 경전보다도 많다. 다들 《도덕경>의 의미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도교의 초석을 하나 더 꼽는다면, 무위(無爲)라는 개념이 있다.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때 나는 수백 년 전 중국의 게으름뱅이가 게으름을 정당화할 구실을 잘도 만들어냈다고 생각했다. 빌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무위는 사실 ‘힘들이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게 만드는것과 어떤 일이 일어나게 내버려두는 것의 차이. 도교 추종자들에게 저항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어리석기도 하다. 불필요한 노력인 것이다. 무위란 삶을 전쟁으로 보기보다는 항해로 보는 것이다. 어쨌든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불교도들의 말처럼, 조금 조사가 필요하다. - P307

차분함뿐만 아니라 부드러움도 있다. "부드러운 기수가 날뛰는 말을 다스리듯이 세상에서도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노자는 이렇게 했다.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다. 우리는 부드러운 것보다 강한 것을 좋아하고, 우리가 쓰는 언어에도 이런 성향이 반영되어 있다. 우리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나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은물론이고 심지어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에게도 감탄한다. 부드러움은 약점, 성격상의 결함으로 여겨진다. "날 물렁하게 대하지 마." 우리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간청한다. 부드럽다는 말을 칭찬으로 쓸 때조차 거기에는 항상 약간의 경멸이 섞여 있다. 마음이 부드럽고 약한 사람은 멍청이라는 듯이.
생각해보면, 강한 것을 선호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 행동이다. 갓난아기는 부드럽고, 시체는 딱딱하다. 부드러운 것은 휘어지지만 강하고 딱딱한 것은 부러질 뿐이다. 도교는 부드러움 속에 숨어 있는힘을 본다. 예를 들어 물은 어느 물질 못지않게 부드럽고 잘 휘어지지만 수백 년 동안 강물이 흘러서 그랜드캐니언을 만들어놓았다. 부드러운 힘의 작용이다. - P326

"지금 말하는 신이 무슨 뜻인지 먼저 알아야겠어요. 우리가 ‘신‘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즉각 자기들이 생각하는 신의 이미지를 마음에 떠올려요. 나도 뭔가를 믿기는 하지만 그걸 정확히 설명해줄 수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초창기의 번역가들 중에는 ‘도‘를 ‘신‘으로 번역한 사람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건 옳지 않죠. 도는 신이 아니라 길이니까요. 이 둘은 달라요."
"좋아요. 하지만 지금껏 찾고 있던 해답을 도교가 제공해주던가요?"
"난 해답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에요. 그냥 경험을 바랄 뿐이에요."
나는 미끄러운 두부와 씨름하면서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동양 종교와 유대교-그리스도교를 구분 짓는 특징이 바로 이것이다.
믿음보다 경험을 강조하는 것. 도교, 불교, 힌두교,자이나교 등은
"무엇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이것은 서구의, 특히 그리스도교의 버릇이다. 동양의 특징은 행동, 경험, 결과다. -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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