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종교에 대한 성찰과 비판은 주로 내부자들을통해 이뤄져 왔다. 주로 신학자나 종교학자가 여러 신앙 형태나 종교현상들을 진단하고 분석해 왔으며 때로는 개혁을 위해 노력해 왔다.
한때 한국 종교계를 뜨겁게 달궜던 ‘종교 다원주의‘ 논쟁이 좋은 예일 것이다. 그러나 이 논쟁은 종교계의 집안싸움일 뿐이었다. 우리는종교를 둘러싼 논의가 집안싸움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식 사회에 갇혀 있어서도 안 된다고 본다. 현실 세계에서 종교는 전쟁의 원인이 되고 자살 테러와 학살의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종언을 고한 지금, 종교는 인간을 추동하는 가장 큰 힘 중 하나이며, 합리적 비판으로부터 가장 쉽게 면죄부를 받아 온 성역이다. 지식인이라면 이 성역에 ‘전쟁‘에 가까운 시비를 걸어야 한다. 현대의 무신론자, 과학 철학자에게 필요한 것도 좋교에 대한 선전 포고인 것이다. 『종교 전쟁』이라는 이 책의 제목에는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 P20

사실 이런 주장은 그동안 무신론적 진화론자(진화론은 무신론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들의 단골 메뉴였죠. 그런데 제가 이번에 매우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 있죠. 그는 부모의 절대적 영향 아래 있는아이들에게 부모의 종교에 따라 ‘무슬림 아이들‘, ‘기독교 아이들‘과같은 꼬리표를 달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종교에 관해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을 더 큰 혼돈에 빠뜨리는 일종의 아동 학대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 아이들(Marxist children)‘이나 ‘자유주의 아이들(Liberal children)‘이 얼마나어색합니까?
도킨스가 재단까지 설립해 가며 이런 도발적인 주장들을 펼치는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가 지금 일종의 ‘운동 (movement)‘을 하고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종교는 감히 비판해서는 안 될 특별한 무엇‘이 절대 아니라는 점을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려는 것입니다.
- P47

도킨스와 윌슨의 경우처럼 진화론자들이라고 해서 종교에 대해똑같은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2002년에 작고한 하버드대학교의 진화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1941~2002년)"는 이들과도 다른 종교관을 가졌었죠. 그는 과학과 종교가 서로
"중첩되지 않는 교도권(Non-Overlapping Magisteria, NOMA)"에 있는 인간의 활동이라고 말합니다. 과학은 "사실의 언어"를, 종교는 "가치의언어"를 쓰기 때문에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이죠. 둘 간의 영원한 평화를 선언해 버린 것이죠.
그러고 보니 도킨스, 윌슨, 굴드가 종교에 관해 자신만의 독특한입장이 있는 듯합니다. 그 차이를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을까요? 과학이 종교를 제거할 것이라는 생각 (도킨스), 둘의 세계관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지만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는 서로 협력할 수 있다는생각 (윌슨), 둘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생각(굴드). - P51

솔직히 저는 요즘 도킨스의 외침이 진실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적인 정직성을 견지하다 보면 종교는 더 이상 인류에게 필요 없는 밈(meme) 같아 보입니다. 유효 기간이 지나버린 밈인데도 사람들이 거기에 뭐가 더 있을 줄 알고 계속 그 주위를 맴도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종교는 과학에 의해 대체되거나 아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하는 유물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신학과 종교학을 하시는 두 분 선생님께서 들으시면 좀 불쾌하게여기실지도 모르겠지만, 종교가 더 이상 세상을 걱정하는 시기는 지난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의 존립 근거를 걱정해야 할 때인거죠. 저는 과학이 종교의 주춧돌들을 야금야금 빼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전세계적으로 종교인의 수가 크게 줄어들지 않고있다는 것이 제게는 정말 수수께끼처럼 보입니다.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초자연적 세계를 상정한 종교들은 망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소위 ‘영적(靈的)인 세계‘를 갈구하는 이들은 더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종교는 점점 더 자신의세력을 불려 세계의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듯합니다. 지금 우리는 또다른 중세로 회귀하는 것일까요?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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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종교들, 예술들, 그리고 과학들은 같은 나무의 가지들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요한계시록] 21장 5절

"나는 남들처럼 아무런 증거도 없이 속 편하게 우리가 설계된 존재이고 은총 입은 존재라고믿을 수 없다. 내가 볼 때 세계에는 너무나 많은고통이 있는 듯하다."
찰스 다윈 - P5

과학의 입장에서는 초자연적인 세계를 거리낌 없이 넘나드는 유신론적 종교의 ‘멘탈리티 (mentality)‘는 낯설고 어색하며 불편하다. 더욱이 다른 종교적 전통이나 지적 전통과의 만남을 ‘영적 전투‘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개신교 주류의 신앙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들에게 뉴에이지 음악은 사탄의 것이고, 칸 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거머쥔 「밀양」과 같은 영화는 반기독교적인 몹쓸 영화이며,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인 제사는 우상 숭배다. 그리고 미국 공화당의 정책을 비판하는 행위는 신성 모독에 가깝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사는 부모요 형제요 친구지만 시공간적 자리만 공유할 뿐 실질적으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패러다임 이론을낸 과학 철학자 토머스 새뮤얼 쿤 (Thomas Samuel Kuhn, 1922~1996년)의표현을 빌리면, 그들은 "세계를 다르게 볼 뿐만 아니라 사실상 다른 세계에 산다." 도대체 그들의 멘탈리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종교 안이 아니라, 종교 밖에서, 그것도 자연 과학적 탐구를 통해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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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빼어난 문장가로 명성이 자자했다. 만일 그 명성이 그의 문학적 화려함을 인정하고, 불량한 사고 방식을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데서 나왔다면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이 그런 팬덤을 형성했더라도너그러이 봐넘길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사고 방식이 너무 많은사람과 너무 궁합이 잘 맞았다. 20세기에 놀라울 정도로 많은 수의 지식인과 예술가가 전체주의적 독재자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찬양한 나머지, 지적인 역사학자 마크 릴라 (Mark Lilla, 1956년~)는 그 증후군에 "전제 애호증(tyrannophilia)"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전제 애호증 환자 중 일부는 마르크스주의자로, "그는 개새끼일지 모르지만, 우리 개새끼다."라는 오래된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다수는 니체 철학자였다. 가장 악명 높은 두 사람, 마르틴 하이데거와 법학자 카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년)는 나치와 히틀러를 열렬히 추종했다. 실제로 20세기의 모든 독재자에게는 펜을 든 투사가 있었다.  - P674

왜 모든 사람 중에서 유독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잔인한 독재자들에게 아양을 떨었을까? 지식인은 누구보다 먼저 권력의 핑계를 해체하고, 예술가는 인간적 연민의 범위를 확장하는 사람이 아니던가? (정말 고맙게도 많은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그린 일을 해 왔다.) 경제학자 토머스 소웰(Thomas Sowell, 1930년~)과 사회학자 폴 홀랜더 (Paul Hallander, 1932~2019년)가제시한 설명은 전문가 나르시시즘(professional narcissism)이라는 것이다.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은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다.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은 시장과 시민 공동체에서 그들 자신의 욕구를 해결한다. 독재자들은 위에서 아래로 이론을 실천하고, 그과정에서 지식인들은 자신의 가치에 어울린다고 느껴지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전제 애호증은 또 한편으로는 니체 철학이 평민과 보통사람에게 느끼는 경멸과 초인이 불러일으키는 경탄을 먹고 자란다. 평민과 보통 사람은 짜증 나게도 순수 예술과 문화보다는 싸구려를 더 좋아하고, 초인은 민주주의의 번잡한 타협을 초월하고 좋은 사회의 비전을영웅적으로 실행하지 않는가? - P675

니체의 낭만적 영웅주의는 집단이 아닌 단 1명의 초인을 찬양하지만,니체의 "더 강한 종류의 사람"이 부족, 종족, 민족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이 치환을 통해 니체의 사상은 나치즘, 파시즘, 그밖의 낭만적 민족주의에 채택되었고, 지금도 정치라는 드라마에 주연으로 나온다. - P675

정치적 세일즈맨들이 신화와 도상으로 마케팅을 해서 사람들의 기본적인 정체성을 특정한 종교, 민족, 국가로 유도하는 것은 사실이다. 세뇌와 강제를 적절히 섞으면 사람을 총알받이로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민족주의가 인간 본성적 충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 본성의 어떤 요소도 사람들이 자랑스러운 프랑스인이자 유럽 인이자 세계 시민으로서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 P679

우리는 결코 완벽한 세계를 갖지 못할 테고, 그런 세계를 추구하는일은 위험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의 번영을 증진하는 일에 지식을 계속 사용한다면 세계를 개선할 방안에는 한계가 없을 것이다.
이 영웅적인 이야기는 또 하나의 신화가 아니다. 신화는 허구이지만이 이야기는 사실 - 우리가 가진 최고의 지식,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단하나의 진리에 비추어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그 진실을 믿는것은 그렇다고 믿을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알아 감에 따라 우리는 그 이야기의 어느 구절이 계속 참이고 어느 구절이 거짓인지를 밝혀낼 것이다. 어떤 구절도 거짓일 수 있고, 어떤 구절도 거짓이될 수 있다.
또한 그 이야기는 어느 한 부족의 것이 아니라 온 인류의 것, 이성의힘과 이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자 하는 지각력이 있는 모든 존재의것이다. 그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죽음보다 삶이 더 낫고, 병보다 건강이 더 낫고, 궁핍보다 풍요가 더 낫고, 압제보다 자유가 더 낫고, 고통보다 행복이 더 낫고, 미신과 무지보다 지식이 낫다는 확신만 있으면 되기때문이다. - P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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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제스처, 소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만져주던 모습, 수잔의 손이 사뿐한 동작으로 아이의 가느다란 머리칼과 가냘픈목을 쓰다듬던 모습은 올리브의 뇌리에 남았다. 배에서 다이빙하여 선창까지 수월하게 헤엄쳐 가는 여인을 지켜보는 것만 같았다. 어떤 이들은 하지 못하는 일을 다른 이들은 할 수 있다는걸 상기시켜주듯이.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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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Consciousness Explained)』의 대니얼 클레멘트 데닛(Daniel Clement Dennett, 1942년)과 몇몇 철학자는 의식이라는 난제는 없다고 주장한다. 머리뼈 안 극장에 호문쿨루스(homunculus, 플라스크 속 작은인간)가 앉아 있다고 상상하는 나쁜 습관 때문에 그런 혼동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내 육신에서 분리될 수 있는 이 작은 인간은 내 극장에서 잠시 까치발로 걸어 나와서는 당신의 극장에 들러서 당신의 빨간색이 내빨간색과 같은지 다른지 확인하거나, 박쥐의 극장에 들러서 거기서 상연되는 영화를 관람한다. 혹은 좀비에게서는 사라졌지만 로봇에게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며, 스타 트렉의 한 행성 자크(Zakdorn)으로 전송되는 빔을 타면 살아서 갈 수도 있고 일단 죽어서 갈 수도 있다. 나는 이따금 이 난제로 빚어진 해악(보수적인 지식인 디네시 조지프 디자(Dinesh Joseph D‘Souza, 1961년~)가 신의 존재에 관한 토론에서 나의 책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How the Mind Works), 한 권을 높이 들고 야단스레 흔들어댄 것을 포함해)을 볼때마다 그 용어가 없으면 우리 상황이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데닛의 말에 동의하고 싶어진다. 다양한 오해들이 있지만 이 난제는 천리안, 텔레파시, 시간 여행, 점, 원격 작용 같은 기이한 물리적 혹은 초과학적 현상이 아니고, 불가사의한 양자 물리학, 사이비 에너지 진동, 그밖의 황당한뉴에이지 이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금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이 난제가 비물질적인 영혼과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의식에대해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의식은 오로지 신경 활동에만 의존한다. - P644

우리의 가장 멋진 과학이 일러 주는 바에 따르면, 의식은 현재의 목표, 기억, 주변 환경이 표시된 일종의 총괄적 작업 공간이며, 앞앞이마엽ㅡ마루엽 신경 회로에서 점멸하는 동조 발화의 형태로 뇌에 장착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이 이론에서 마지막 조각ㅡ그런 회로이지만 주관적으로는 어떤 것처럼느껴진다는 것은 더 이상 설명을 할 수 없는 하나의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완전히 놀랍지는 않다. 앰브로즈귀넷 비어스(Ambrose Gwinnert Bierce, 1842~1914년)가 악마의 사전(The Devil‘sDictionary)」에서 지적했듯이, 마음이 그 자신을 알기 위해 쓸 수 있는 도구는 그 자신뿐이며, 따라서 자기 존재의 가장 깊은 측면, 즉 본래적 주관성을 이해한다는 만족감을 결코 맛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 P645

유신론적 윤리학자들은, 그리스 신화의 변덕스러운 신들과는 달리성서의 하느님은 본성상 부도덕한 계율을 내릴 수 없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성서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다. 구약의하느님은 무고한 사람 수백만 명을 살해했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차별강간과 대량 학살을 범하라고 명령했으며, 불경, 우상숭배, 동성애, 간음, 부모에게 말대꾸하는 행위, 안식일에 일하는 행위에 사형을 지시한반면, 노예제, 강간, 고문, 신체 절단, 대량 학살은 딱히 잘못된 것이라고하지는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청동기 및 칠기 시대에 끊이지 않고 벌어진행위들이다. 물론 오늘날 개화된 신자들은 인도적인 명령들만 골라 담고, 사악한 명령들은 우화적으로 해석하거나, 수정하거나, 무시한다. 그런데 그게 바로 요점이다. 계몽주의적 휴머니즘의 렌즈를 통해 성서를읽고 있는 것이다. - P647

 인간 본성의 모든 특징이 수시로 채워야 하는 항상적 충동은 아니다. 물론 사람들은 초자연적 믿음으로 이어지는 인지적 착각에 잘 빠지고, 공동체에 소속될 필요도 분명히 있다.역사 속에서 오래전부터 다양한 제도가 출현해서 그런 착각을 조장하고 그런 필요를 채워 주는 관습의 패키지를 제공해 왔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패키지가 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성적 욕망이 존재한다고 해서 플레이보이 클럽이 필요하지는 않은 것과 같다. 사회의 교육 수준과 안전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종교가 남긴 유산들 중에서 시대에 맞지 않게 된 것들은 패키지에서 빠질 수 있다. 보다 리버럴해진 종교는 초자연적 도그마나 철기 시대의 도덕을 빼고도 많은 사람이 즐기는 예술, 의례, 도상, 공동체적 온정은 계속 제공할 수 있다. - P651

우선, 의미의 원천으로서 종교를 대신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어류학이나 신장병학에 의지하는 게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의지해야 하는 것은 과학만이 아니라 인간의 지식, 이성, 휴머니즘적 가치(과학 포함)로 이루어진 총체적인 구조물이다. 그 구조물에성서의 말씀과 비유. 그리고 현자, 학자, 랍비의 글처럼 종교에서 나온 것들이 중요한 요소로서 포함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날 그구조물을 지배하는 것은 세속적인 내용으로, 그리스 철학과 계몽주의철학에서 비롯된 윤리학적 논쟁들, 셰익스피어, 낭만주의 시인, 19세기소설가, 그밖의 위대한 예술가 및 평론가의 작품에 들어 있는 사랑, 상실, 고독의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편적인 기준으로 판단할 때 삶의궁극적 질문들과 관련해 종교가 기여한 것 중 많은 부분은 심오하고 초시간적이라기보다는 얄팍하고 낡은 것들이다. 신성 모독자를 처벌하는
‘정의‘ 개념과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여성에게 강요하는 ‘사랑‘ 개념이 대표적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비물질적인 영혼의 존재에 의존하는 그 어떤 삶과 죽음의 개념도 사실적인 면에서 의심스럽고 도덕적인 면에서 위험하다. 또한 우주적 정의와 형이상학적 희망(인간적 정의와 세속적 희망의 반대)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것을 찾는 노력은 헛되고 무의미하다. 사람은 초자연적인 믿음에서 더 깊은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그런노력을 권장할 만한 실질적인 내용이 거의 없다. - P654

왜 종교는 세계에서 사라지고 있을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20세기의 공산주의 국가들은 종교를 법으로 금지하거나 규제했고, 다시 자유화되었을 때에는 시민들의 종교에 대한 취향은 느리게 회복되었다. 이소원함은 어느 정도 1960년대에 최고 수위를 찍었던, 모든 제도에 대한신뢰 감소의 탓이다." 두 번째 요인은 여권 신장, 출산의 자유, 동성애 용인 등 해방적 가치를 추구하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15장) 또한 삶이 경제 성장과 의료, 사회 보장 확대 덕분에 더 세속적으로 변함에 따라 사람들은 더 이상 신에게 구원을 빌지 않게 되었다. 실제로 다른 요인들이불변일 때 안전망이 강한 나라일수록 덜 종교적이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이유는 이성 그 자체일 것이다. 지적 호기심과 과학적 사고력을 갖추게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기적을 믿지 않는다. 종교를 버리는 이유로 미국인들이 말하는 가장 흔한 이유는 "종교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의 부족"이다.교육 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어떤 종교를 믿든 신자의 비율이낮고, 세계적으로 무신론은 플린 효과를 보인다. 나라들이 더 똑똑해질수록 그 국민들은 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이다. - P661

이슬람 세계를 괴롭히는 문제들에 유신론적 도덕관이 분명한 역할을하고 있음에도 많은 서양 지식인들 - 이들은 이슬람 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억압, 강한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 정치적 폭력이 심지어 100배 희석된 채로 자기들 나라에 존재한다면 기겁을 할 것이다. 은 그런 관습이 이슬람의 이름으로 행해질 때 이상하게도 옹호자로 돌변한다. 어떤 변명은 무슬림에 대한 편견을 막고자 하는 훌륭한 바람에서 나온다.
어떤 변명은 세계가 문명의 충돌에 빠졌다는 파괴적인(그리고 필시 자기 실현적인 이야기를 의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다. 또 어떤 변명은 자신의 사회를 통렬히 비난하고 적을 낭만적으로 그리는 서양 지식인들의오랜 역사와 일치한다. (잠시 후에 이 증후군을 살펴볼 것이다. 하지만 많은 변명이 유신론자, 신앙신론자, 제2문화의 지식인 사이에 은밀히 퍼져 있는종교에 대한 편애, 그리고 계몽주의적 휴머니즘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를꺼리는 태도에서 나온다. - P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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