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지금 행복했고, 그건 사실이었다. 제인 훌턴은 근사한검정 코트 속에서 몸을 조금 움직이며 생각했다. 누가 뭐래도 삶은 선물이라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수많은 순간이 그저 찰나가 아니라 선물임을 아는 것이라고. 게다가 사람들이 연중 이맘때를 이렇게 열심히 기념하는 것은 또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사람들의 삶이 어떻든(그들이 지금 지나치는 이 집들 가운데에는 근심스러운 고민도 있으리란 걸 제인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삶이란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축하할 일임을 알기에 그들은 이맘때를 축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밥은 깜빡이를 켜고 대로로 나섰다. "아, 정말 근사했어." 그녀가 뒤로 물러나 앉으며말했다. 두 사람은 요즈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정말로, 마치결혼생활이라는 복잡하고 기나긴 식사가 끝나고 이제야 근사한 디저트가 나온 것만 같았다. - P227

제인이 한 손을 흔들더니 한숨을 쉬었다가 좌석에 등을 기대고는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 "난 거기서 일하는 게 좋았어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제인은 특히 십대 소녀들을 좋아했다. 어리고 실수투성이에 피부가 반들반들하고 겁도 많은, 너무시끄럽게 떠들고, 껌을 딱딱 씹어대거나 고개를 푹 숙이고 가만가만 복도를 걸어다니는 십대 소녀들을 제인은 정말로 좋아했다. 그리고 아이들도 그걸 알았다. 심한 생리통으로 양호실에 온소녀들은, 아파서 입술이 바짝 말라버린 채 잿빛이 된 얼굴로 소파에 누워 있었다. "우리 아빠는 내가 엄살부리는 거래요." 이런말을 하는 소녀들이 적지 않았다. 그 말에 얼마나 가슴 아팠던가 소녀로 사는 것은 얼마나 쓸쓸한 일인가!  - P2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종교와 과학 논쟁의 기독교 쏠림 현상은 역사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서구에서 기독교와 과학은 비대칭적관계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히 기독교 담론과 과학 담론의관계도 비대칭적이고 때로는 일방적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서구 사회에서 기독교 담론은 독립 변수로, 과학 담론은 종속변수로 기능했습니다. 그런데 근대 이후 과학이 자율성을 획득하면서 이 관계가 요동을 치며 새롭게 정립됩니다. 근대 이전의 독립 - 종속 관계에서 근대의 독립-독립 관계로 바뀐 것은 물론이고, 이제는 역으로 종교가과학에 종속되는 종속-독립의 관계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변화 때문에 기독교는 과학과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하는 과제를안게 됩니다. 이 결과는 현재의 종교와 과학의 관계 지형도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 P127

인간이라는 존재는 무언가가 우연히 일어났다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 사건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 스토리를 알고 싶어 하는 거죠.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인과율로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설명할 수 있는 인간의 본능적 · 본성적 능력은 틀림없이 인류가 진화의 역사에서 살아남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사이비 과학이나 비과학적 믿음과 타협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는 잡지, <스켑틱스(Skeptics)》의 편집장인 마이클 셔머 (Michael BShermer)는 이 능력을 "믿음 엔진"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이 믿음 엔진은 자연과 초자연을 넘나들며 폭발합니다. 기도는 그나마 이 엔진의 정상적 출력에 해당되겠죠. 하지만 그 엔진이 과열되거나 오작동을 할 때도 많습니다. 가령, 극히 일부의 암환자만이 민간 요법의 효과를 보는데도 그 효력을 신봉한다든지, 출퇴근방향이 비슷해 마주칠 개연성이 높았을 뿐인데 그 만남을 운명으로착각한다든지, 본인의 부주의로 생긴 교통 사고를 신의 깊은 뜻으로돌린다든지, 장로 또는 불자가 대통령이 되어야 나라가 잘 된다고 믿는 것 등이 그런 예일 것입니다.
평소에 멀쩡한 사람들도 입시, 취직, 결혼, 건강, 자녀 등의 문제에직면하게 되면 엄습해 오는 불안감으로 인해 믿음 엔진을 폭발 직전까지 과열시킬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폭발을 막으려면 순정품냉각수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저는 믿음의 근거를 돌아보게 하고합리적 생각을 북돋아 주는 ‘회의주의 정신‘이야말로 그런 냉각수라고 생각합니다. - P148

우선, 진화론적 관점에서 종교의 본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크게 세 진영으로 나뉘는 것같습니다. 첫 번째는 종교를 인간 마음의 ‘적응(adaptation)‘으로 보는견해이고, 두 번째는 종교가 다른 인지 적응들의 ‘부산물(byproduct)‘
이라는 견해이죠. 적응과 부산물의 차이는 이런 것입니다. 가령, 온몸을 돌아다니며 산소를 운반해 주는 피는 적응의 사례이죠. 그런데피의 ‘붉은색‘은 산소 운반을 담당하는 헤모글로빈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부산물입니다. 즉 피는 붉기 때문에 자연 선택된 것이 아니라 산소를 운반하는 기능 때문에 선택되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견해에따르면 종교는 인류가 살아남는 데 꼭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두번째 견해에 따르면 어쩌다 가지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종교 현상을 ‘밈‘의 역학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여기서 ‘밈‘이란 도킨스가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 낸 용어인데요, 문화 전달의 단위, 혹은 모방의 단위를 뜻합니다. 유전자의gene과 운율이 맞도록 meme이라고 지었죠.  - P153

우선 종교가 적응이라는 견해부터 살펴보죠. 다음 달에 만나기로되어 있는 하버드 대학교의 사회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종교에대한 진화론적 이해의 가능성을 현대적 의미에서 거의 처음으로 제기한 학자입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신과 같은 초원자를믿게끔 진화했다는 겁니다. 예컨대 그는 동물 집단에서 나타나는 서열 행동(열위자가 우위자에게 복종하는 행동)이 종교와 권위에 순종하는 인간의 행동과 매우 유사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동물들이 서열행동을 통해 각자의 적응적 이득을 높이듯이, 인간도 종교적 행위들을 통해 자신의 번식 성공도를 높였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종교행동 자체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진화했다는 주장입니다.
윌슨처럼 종교의 적응적 이득을 주장하는 이들은 종교가 사람을기분 좋게 만들고 사후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 주며 불확실한 상황에서판단을 도와주기 때문에 진화했다고 말합니다. 즉 초월자를 믿는 것이그렇지 않는 것보다 개인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죠.
어떤 진화 생물학자들은 종교가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만 도움을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 집단의 생존과 유지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진화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진화 생물학자들을 ‘집단 선택론자‘라고 합니다. 집단 선택론은 어떤 형질들이 개체의 이익이 아니라 집단의 이익을 위해 진화하는 메커니즘을 강조하는 이론으로서 유전자 선택론이나 개체 선택론과 대비됩니다.  - P154

이 견해에 따르면, 종교는 그 자체로 진화적 기능을 가지고 있지는 않으며, 다른 목적 때문에 진화된 인지 체계의 일부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종교는 무엇(들)의 부산물이 요 스팬드럴이란 말입니까?
진화사의 관점에서 보면, 인류는 99퍼센트의 시기를 수렵·채집을 하며 매우 어렵게 보냈습니다. 이 시기에 인류를 계속 옥죄던 적응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인류는 포식자의 존재를 탐지하고 추하는 능력, 자연에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인과적 추론 능력과설명 능력,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진화시켜야 했습니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이것들을 차례로 ‘행위자 탐지 (agent detection)능력‘, ‘인과 추론(causal reasoning) 능력‘, 그리고 ‘마음 이론 (theory ofmind) 능력‘이라 부르죠. 종교가 부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종교가 이런 인지 능력들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스팬드럴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 종교는 더 중요한 이런 적응 장치들 때문에 생긴 부산물인 것이죠.

 하지만 우리 집 강아지가 갑자기 껑충껑충 뛰는 행동, 옆집 아기가 자지러지게 우는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자세가 필요해 보입니다. 물리 법칙 혹은 설계 원리만을 들이댄다고 해서 이해되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데닛은 바로 이 대목에서 ‘지향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마치 행위자가 어떤 믿음과 욕구를 가지며 그에 따라 행동한다고 보는 그린 자세 말입니다. 데닛의 용법으로는, 유전자와 밈은 ‘지향계(intentional system)‘이고 우리는 지향적 자세로 그것들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디 이상 유전자와 밈의 비유비적 요소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지향성 이론을 종교 현상을 이해하는데 사용해 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이런 접근에는 크게 두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종교를 ‘정신 바이러스(virus of mind)‘로 이해하는 도킨스의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를 ‘길들여진 밈(domesticated meme)‘으로 해석하는데닛의 견해입니다. - P1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과거 서구 문명의 상징이 하늘로 찌르는 듯한 고딕식 대성당이라고 한다면 현대 문명의 상징은 거대한 입자가속기나 전파 망원경이나 컴퓨터나 이동 전화가 될 것 같습니다. 문명의 상징이 바뀐다는것은 이미 다른 문명이라는 이야기죠. 설사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이제는 성당의 첨탑이 아니라 전파 망원경이나 이동 전화를 통해서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 P73

이야기가 길어졌기 때문에 아주 간략하게 말씀드리죠. 먼저, 신학자들은 20세기 후반부터 신학 역시 ‘구성적(constructive)‘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신학 역시 다른 사회적활동과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시대와 상호 작용하면서새롭게 만들어진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동안 경원시해 왔던 자연 과학에 익숙해질 필요가 생겼습니다. 생태문제와 관련한 생태 신학을 전개하는 데 자연 과학의 도움이 필요해졌고, 현대 과학 기술의 성취로부터 현대 신학이 해결해야 할 여러가지 문제들이 새롭게 제기된 탓입니다. 과학을 이해할 필요가 증가함에 따라 신학자들과 종교인들은 과학의 본질에 대한 과학 철학의 최근 논의들을 꼼꼼하게 살피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기반으로 과학의 객관성과 중립성 등에 문제 의식을 갖게 되고, 과학이 더 이상 만능 열쇠가 아니라는 인식을 하게 됩니다. 그 결과 과학을 무조건 피하던 태도를 바꾸게 됩니다. 자기 한계를 인식하게 된 것이 서로를보는 눈을 바꾸었으며, 오히려 대화를 촉진하게 한 것이지요.. - P78

이제 ‘왜 지금 종교와 과학을 논의하는가?‘에 대한 제 입장을 좀더 거시적 관점에서 이야기하면서 이 편지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저는 종교와 과학은 인류가 오랜 역사 과정에서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 낸 ‘메커니즘(mechanism)‘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술이나 정치나 경제도 일종의 메커니즘입니다. 메커니즘 대신 ‘생존을 위한 시스템(system)‘이나 ‘모듈(module)‘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인류나 특정 사회는 생존을 위한 메커니즘을 다양하게 가지고 있고 동시에 사용합니다. 각 메커니즘은 일정 부분 자기 영역과 자기 담론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메커니즘과는 서로 보완적일 때도 있고 경쟁적일 때도 있습니다. 인류는 이런 메커니즘 하나에만 독점적 지위를 주지 않고, 상황과 필요에 따라 다양한 메커니즘들 사이의 비중을 달리하면서 각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정합니다. 그런데 특정 메커니즘이 그 메커니즘이만들어진 기능이나 활동 영역을 벗어나서 지나치게 강한 영향력을행사하는 경우, 인류나 특정 사회는 자동적으로 비대해진 특정 메커니즘을 제어하려고 합니다. 즉 특정 메커니즘의 독주로 인해 인류나 특정 사회가 생존의 위협을 받거나 적응의 정도가 심하게 훼손될때, 다른 메커니즘을 사용해 그 메커니즘을 제어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종교가 사회의 생존을 위협할 지경에 이를 때, 종교는다른 메커니즘의 제어를 받았습니다. 그 제어 과정이 혁명처럼 과격하게 이루어진 경우도 있었고, 지속적이고 완만하게 이루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서구 역사에서 볼 수 있는 종교에서 과학으로의주도권 이행을, 비대해져 사회 자체의 생존을 위협하게 된 종교에 대한 자동적인 제어 과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 P80

사실 종교를 절대 진리에 대한 신앙의 문제로 여기고, 따라서 사람마다 종교가 있거나 없거나, 또 한 사람이 하나의 종교만 갖는다거나 하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근대 이후에 성립된 서구적 종교관에서나 통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극소수의 기독교인과 무신론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일본인들에게 때로 신사에 가서 축원을 올리거나 부적을 사고 때로 사찰에 가서 발을 기원하는 일이 드문 일은 아니죠. 그들에게 종교란 절대 진리의 문제라기보다는 그저 삶의 필요를 채워 주는일상의 일부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 우리나라의 경우도 일본과 아주 비슷합니다. 문화관광부가 2002년도에 각 종교별 집계 자료를 토대로 작성한 통계에 따르면, 불교 3749만 명, 개신교 1872만 명, 천주교 422만 명, 유교600만 명, 천도교 100만명, 원불교 133만 명, 대종교 47만 명, 기타종교 1286만 명으로 종교인 수가 무려 82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총인구의 1.5배나 되는 수치죠. - P86

 이렇게 중층적인 의미를 가진 ‘The Creation‘은 윌슨의 논의에서 종교와 과학이각자 세계관의 차이를 뛰어넘어 함께 활동하는 공동의 장(場)이자함께 보호해야 할 대상이 됩니다.
장 선생님께서 첫 편지에서 언급했다시피, 윌슨이 종교를 대화의상대로 인정했다는 자체가 놀랍습니다. 윌슨은 종교인들이 머물러있는 마당으로 살며시 건너와 미소를 지으면서 자연스레 인사를 건빕니다. 이어서 주변의 종교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지만 완곡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합니다. 신이 창조한 세계를 돌보자는 데, 윌슨의 호소에 반대할 기독교인이 얼마나 될까요? 굉장한 설득력입니다. 이 책만 보자면 윌슨은 더 이상 진화를 가르치는 완고한 훈장 선생님이 아니라 종교인들을 살살 달래는 실용주의적 외교관입니다. - P1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거실에서 데이지는 통통한 발목을 꼬며 소파에 앉았다. 담배를 한 대 더 불 붙였다. "하면, 요즘 어때요?" 데이지가 물었다.
"아이들은요?" 그가 슬픈 이유는 아들들 때문이라는 걸 아는 까닭이다. 그의 네 아들은 장성해서 흩어졌다. 이제 아이들은 다자란 성인으로 하먼을 ‘방문‘ 했다. 데이지는 지난 수십 년 동안하먼이 혼자 있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어린, 그다음엔 십대인 아들 한둘을 꼭 데리고 다녔다. 아이들은 토요일이면 철물섬 안에서 뛰어다니고, 주차장 건너편에서 소리를 지르고 공을던지며 하먼에게 빨리 가자고 채근했다.
"애들은 잘 있어. 잘 있는 거 같아." 하먼이 데이지 곁에 앉았다. 그는 결코 코퍼의 오래된, 편안한 의자에 앉는 법이 없었다.
- P142

하먼의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지 않았지만 성탄절이면 팝콘볼을 만들었다. 이 말을 하는데, 갑자기 뭔가를 되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측량할 수 없는 인생의 어떤 상실이 커다란 바윗덩이처럼 들어올려지고, 바위 밑에서 ㅡ 데이지의 푸른 눈이지켜보는 가운데 ㅡ 예전의 위안과 다정함을 발견한 듯이. - P162

"음, 그 사람이 말했어. 절대 절대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그 사람은 뚱뚱했잖아요." 니나가 말했다. "뚱뚱한 사람이 뭘알겠어요?" 그리고 덧붙였다. "내가 포기하고 싶어서 그런 게아니에요."
"물론 아니지." 올리브가 말했다. "하지만 자네 몸은 연료가없으면 곧 포기하고 말 거야. 이런 얘긴 전에도 많이 들어서 대도 하기 싫겠지만 이거 하나만 대답해봐. 자네, 어머니를 미워하나?"
"아뇨." 니나의 대답이었다. "뭐 우리 엄마는 한심한 데가 있지만 미워하진 않아요."
"그럼 됐어." 올리브가 그 큰 덩치를 부르르 떨며 말했다. "그럼 된 거야. 그게 시작이니까."
그 장면은 그후 언제나 하먼에게 창으로 구상 번개가 들어와 번쩍이던 날을 떠올리게 했다. 니나가 울기 시작하고, 데이지가 결국 니나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그날 오후에 찾아와 니나를 데려가 다시 입원시키지는 않기로 약속했던 그 순간 따스한 전기랄까, 눈부시고 초자연적인 어떤 분위기가 느껴졌던 까닭이다.  - P175

어떤 나이가 되면 어떤 것들을 예측하게 된다. 하먼도 그걸 알있다. 심장발작, 암, 대수롭지 않은 기침이 심한 폐렴이 되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것 등을 어쩌면 중년의 위기를 겪을지 모른다고도 예측하게 되지만 하먼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은 그 어떤말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이 땅 위로 솟아오른 투명한 플라스틱 캡슐에 넣어져 발사되어 날아간 다음, 캡슐이 호되게 흔들려 지나온 인생의 일상적인 기쁨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만 같았다. 그는 이것만은 결코 원치 않았다. 그리고 데이지의 집에서 니나가 울고 데이지가 전화를 걸어 니나의 부모가 딸을 데려가도록 했던 그날 아침 이후로, 보니만 보면 냉담해졌다.
집은 축축하고 볕이 들지 않는 동굴 같았다. 보니가 이제는 더이상 가게에서의 하루가 어땠느냐고 묻지도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 P1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우리는 종교와 과학이 함께 있는 것이 왠지 모르게 불편합니다.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종교와 과학은 각각 서로다른 영토를 지배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직자와 과학자는 다른땅을 다스리는 두 영주이고, 이 둘은 늘 긴장과 갈등 관계를 가지고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니 종교와 과학을 하나로 품으려는 시도는상당히 무모하게 여겨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모하다고 느끼는 이러한 시도, 즉 그리스도 안에서 종교와 과학을 함께 포용하려는 시도는 서구 기독교의 오랜 전통이었고 궁극적인 목표였습니다. - P64

서구 문명의 지성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랫동안 서구 지성인들의 거점은 대학과 수도원이었습니다. 게다가 유럽의 대학은 원래 성직자와 교회 관련 직무를 수행할 사람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기독교 성직자들이 지식의 중심에 있었던 거죠. 13세기 이슬람세계를 통해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것이었죠.)중세 유럽으로 들어왔을 때, 이를 가장 먼저 접한 사람들도 성직자였습니다. 이들이 종교적 지식은 물론이고, 철학, 수학, 수사학, 공학등 그야말로 ‘모든 지식의 보존과 재생산 그리고 전달을 담당했습니다. ‘신에 관한 탐구‘와 ‘자연에 대한 탐구‘는 이들의 활동 영역에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자연 과학(science)에 해당하는 자연 탐구는 당시 ‘자연 철학(natural philosophy)‘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죠.
중세 지성인들에게 자연 탐구는 기독교 신앙과 분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 P65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점차 바뀝니다. 18세기 후반 science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활용되고, 19세기 후반에는 이 분야의 작업을 전담하는 새로운 지식 계급이 등장해 ‘과학자(scientist)‘라고 불리기 시작합니다. ‘과학자‘ 집단이 등장하고 이들이 자연 탐구, 즉 과학을 전담하게 되면서 종교인들은 더이상 모든 지적 작업을 독점할 수 없게 됩니다. 특히 자연은 일정한법칙을 따르는 자율적인 물질 세계라는 기계론적 세계관과 진화론의 등장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가르침을 반박하고 도전하는 결과를가져왔지요. 이후 자연 과학의 발전과 기술의 진보에 따라, 과학과이를 응용하고 적용한 기술의 효율적 결과가 잘 확인되면서, 종교의영역은 축소되고 영향력은 약화됩니다. - P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