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서구 문명의 상징이 하늘로 찌르는 듯한 고딕식 대성당이라고 한다면 현대 문명의 상징은 거대한 입자가속기나 전파 망원경이나 컴퓨터나 이동 전화가 될 것 같습니다. 문명의 상징이 바뀐다는것은 이미 다른 문명이라는 이야기죠. 설사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이제는 성당의 첨탑이 아니라 전파 망원경이나 이동 전화를 통해서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 P73
이야기가 길어졌기 때문에 아주 간략하게 말씀드리죠. 먼저, 신학자들은 20세기 후반부터 신학 역시 ‘구성적(constructive)‘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신학 역시 다른 사회적활동과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시대와 상호 작용하면서새롭게 만들어진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동안 경원시해 왔던 자연 과학에 익숙해질 필요가 생겼습니다. 생태문제와 관련한 생태 신학을 전개하는 데 자연 과학의 도움이 필요해졌고, 현대 과학 기술의 성취로부터 현대 신학이 해결해야 할 여러가지 문제들이 새롭게 제기된 탓입니다. 과학을 이해할 필요가 증가함에 따라 신학자들과 종교인들은 과학의 본질에 대한 과학 철학의 최근 논의들을 꼼꼼하게 살피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기반으로 과학의 객관성과 중립성 등에 문제 의식을 갖게 되고, 과학이 더 이상 만능 열쇠가 아니라는 인식을 하게 됩니다. 그 결과 과학을 무조건 피하던 태도를 바꾸게 됩니다. 자기 한계를 인식하게 된 것이 서로를보는 눈을 바꾸었으며, 오히려 대화를 촉진하게 한 것이지요.. - P78
이제 ‘왜 지금 종교와 과학을 논의하는가?‘에 대한 제 입장을 좀더 거시적 관점에서 이야기하면서 이 편지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저는 종교와 과학은 인류가 오랜 역사 과정에서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 낸 ‘메커니즘(mechanism)‘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술이나 정치나 경제도 일종의 메커니즘입니다. 메커니즘 대신 ‘생존을 위한 시스템(system)‘이나 ‘모듈(module)‘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인류나 특정 사회는 생존을 위한 메커니즘을 다양하게 가지고 있고 동시에 사용합니다. 각 메커니즘은 일정 부분 자기 영역과 자기 담론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메커니즘과는 서로 보완적일 때도 있고 경쟁적일 때도 있습니다. 인류는 이런 메커니즘 하나에만 독점적 지위를 주지 않고, 상황과 필요에 따라 다양한 메커니즘들 사이의 비중을 달리하면서 각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정합니다. 그런데 특정 메커니즘이 그 메커니즘이만들어진 기능이나 활동 영역을 벗어나서 지나치게 강한 영향력을행사하는 경우, 인류나 특정 사회는 자동적으로 비대해진 특정 메커니즘을 제어하려고 합니다. 즉 특정 메커니즘의 독주로 인해 인류나 특정 사회가 생존의 위협을 받거나 적응의 정도가 심하게 훼손될때, 다른 메커니즘을 사용해 그 메커니즘을 제어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종교가 사회의 생존을 위협할 지경에 이를 때, 종교는다른 메커니즘의 제어를 받았습니다. 그 제어 과정이 혁명처럼 과격하게 이루어진 경우도 있었고, 지속적이고 완만하게 이루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서구 역사에서 볼 수 있는 종교에서 과학으로의주도권 이행을, 비대해져 사회 자체의 생존을 위협하게 된 종교에 대한 자동적인 제어 과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 P80
사실 종교를 절대 진리에 대한 신앙의 문제로 여기고, 따라서 사람마다 종교가 있거나 없거나, 또 한 사람이 하나의 종교만 갖는다거나 하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근대 이후에 성립된 서구적 종교관에서나 통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극소수의 기독교인과 무신론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일본인들에게 때로 신사에 가서 축원을 올리거나 부적을 사고 때로 사찰에 가서 발을 기원하는 일이 드문 일은 아니죠. 그들에게 종교란 절대 진리의 문제라기보다는 그저 삶의 필요를 채워 주는일상의 일부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 우리나라의 경우도 일본과 아주 비슷합니다. 문화관광부가 2002년도에 각 종교별 집계 자료를 토대로 작성한 통계에 따르면, 불교 3749만 명, 개신교 1872만 명, 천주교 422만 명, 유교600만 명, 천도교 100만명, 원불교 133만 명, 대종교 47만 명, 기타종교 1286만 명으로 종교인 수가 무려 82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총인구의 1.5배나 되는 수치죠. - P86
이렇게 중층적인 의미를 가진 ‘The Creation‘은 윌슨의 논의에서 종교와 과학이각자 세계관의 차이를 뛰어넘어 함께 활동하는 공동의 장(場)이자함께 보호해야 할 대상이 됩니다. 장 선생님께서 첫 편지에서 언급했다시피, 윌슨이 종교를 대화의상대로 인정했다는 자체가 놀랍습니다. 윌슨은 종교인들이 머물러있는 마당으로 살며시 건너와 미소를 지으면서 자연스레 인사를 건빕니다. 이어서 주변의 종교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지만 완곡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합니다. 신이 창조한 세계를 돌보자는 데, 윌슨의 호소에 반대할 기독교인이 얼마나 될까요? 굉장한 설득력입니다. 이 책만 보자면 윌슨은 더 이상 진화를 가르치는 완고한 훈장 선생님이 아니라 종교인들을 살살 달래는 실용주의적 외교관입니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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