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주의적 목표를 통해 확고해진 많은 인류학자들의 본능은 생물학에 대한 그들의 반대입장을 좀 더 공고히 하면서 문화상대주의에 대한 지지를 더욱 강화시켜나갔다.
물론 생물학은 거기에 없었다. 이런 결과를 가져온 추론은 결과적으로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또 다른 상황을 연출한다. 문화상대주의는 인종 집단들 간의 유전적인 행동 차이가 있다는 믿음 - 물론 이런 믿음은 증명되지 않았으며 이념적으로도 위험한 발상이다.- 을 부정하면서 시작되었는데 결국에는 유전에 기초한 통합된인간 본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반대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이렇게 해서 인간 조건에 대한 커다란 수수께끼가 생겨났다. 문화나 유전이 아니라면 도대체 인간성을 통합해 주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만일 윤리 기준들이 문화를 통해서 형성되는데 문화는 끝없이 다양하고 동등하다면 도대체 무슨 근거로 신정(神政, theocracy)이나 식민주의, 아동 착취, 고문, 노예 제도를 반대할 수 있겠는가? - P323

후성설(epigenesis)은 개체가 유전과 환경의 공동 영향 아래에서 어떻게 발달하는지에 관한 개념으로서 원래 생물학에서 처음 나왔다.
그렇다면 후성 규칙들은 무엇인가? 내가 앞의 두 장에서 길게 한 설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감각 체계와 뇌의 선천적 작용들의 집합체인 후성 규칙은 개체가 환경에서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빠른 해결책을 찾도록 만드는 일종의 어림법 (rules of thumb)이다.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보게끔 선천적으로 규정하고 자동적으로 특정한 선택을 하게 한다. 우리는 이 후성 규칙들 때문에 무지개를 파장의 연속체가 아니라 네 가지 기본색으로 본다. 우리는 근친상간을 피하고 문법적으로 정합적인 문장으로 말하고 친구에게미소를 지으며 혼자일 때에는 낯선 이에게서 공포를 느낀다. 후성 규칙들은 대개 감정을 통해서 작동되는데 모든 행동 범주에서 개인으로 하여금 상대적으로 빠르고 정확한 반응을 하도록 하여 결국 생존과 번식에 더 성공적이도록 만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 규칙들은 문화적 변이들과 조합들이 발생할 수 있도록 열려 있다. 예컨대, 특히 복잡한 사회에서는 그 규칙들이 건강과 복지에 더 이상 기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 규칙들이 지시하는 행동이 굴절되어 결국 개인과 사회의 이득에 반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 P336

이런 목표를 위해 과학자들은 이론, 특히 수학적 모형이 지녀야할 네 가지 덕목을 추구한다. 첫째는 검약성(parsimony)이다. 즉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단위와 과정이 적으면 적을수록 더 좋은 이론이라는 기준이다. 물리과학이 보여 준 검약성의 승리 덕분에 우리는 이제 장작이 불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플로지스톤이라고 불리는 상상의 물질을 상정하거나 진공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에테르를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 두 번째 덕목은 일반성(generality)이다. 즉 모형으로 포괄되는 현상의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그 모형이 참일 개연성이 더 높다는 기준이다. 화학에서 주기율표는 각 원소와 화합물에 대한 개별 이론을 배제한다. 한 이론이 모든 것들을 정확하게 포괄한다.
그 다음은 통섭(consilience)이다. 다른 분야에서 탄탄하게 검증된 지식에 순응하는 어떤 분야의 단위와 과정은 이론과 실천에 있어서그렇지 않는 경우보다 일관성의 측면에서 더 우월하다고 입증되었다. DNA의 화학에서부터 화석의 연대 측정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의 모든 수준에서 얻는 모든 자료들에서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론이 창조론을 물리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신은 존재할 수도 있고 우리가 이 작은 행성 위에서 꾀하고 있는 일에 대해 기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물권을 설명할 때에는 신의 정교한 손을 빌릴 필요가없다. 이제 마지막 덕목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그것은 예측성(predictiveness)으로서 이미 다른 덕목들로부터 유도된 덕목이다. 많은 현상에 대해 예측할 수 있고 그 예측을 관찰과 실험을 통해 검증하기 쉬우면 그 이론은 좋은 이론이 된다. - P343

유성 생식을 동전 던지기로 그리고 각 세대를 새롭게 동전을 한번 던지는 경우로 비유해보자. 유전적 부동에 따른 진화는 세대를거치며 우연히 유전자의 빈도에 변화가 생기는 과정을 뜻한다. 만일 한 개체군의 개체 수가 100 이하일 때 유전적 부동은 효능을 발휘할수 있다. 유전적 부동에 따른 유전자 빈도의 변화 속도는 동일 크기의 표본이 통계적으로 어떤 변화를 겪는지를 통해 정확하게 기술될 수 있다. 이런 통계치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유전적 부동으로 인해 개체군의 몇몇 유전자 형태가 제거됨으로써 결국 그 개체군 내의 변이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무작위적인 측면을 함께 고려하면 창조성의 측면에서 유전적 부동이 자연선택보다 훨씬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연선택이 이 모형에 추가되면 그것은 예측 가능한 속도로 유전자 빈도를 한 방향으로 추동하면서 유전적 부동의 효과를 감소시킨다. - P347

인문학 쪽의 학자들은 환원주의에 드리워진 저주를 걷어 내야 한다. 과학자들은 잉카 제국의 황금을 약탈하러 온 신대륙 정복자들이아니다. 과학도 자유롭고 예술도 자유롭다. 하지만 내가 마음에 관해앞서 주장했듯이 과학과 예술이라는 두 영역은 모두 창조적 정신을 요구한다는 면에서 유사하기는 하지만 그 목표와 방법에 있어서는 근원적으로 다르다. 예술과 과학 간 상호 교류의 핵심은 혼성화(hybridization), 즉 ‘과학적 예술‘이나 ‘예술적 과학‘과 같은 떨떠름한 혼합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과학 지식과 미래에 대한 그 지식의 독점적 감각으로 예술에 대한 해석을 되살리는 데 있다. 해석은 과학과 예술 간의 통섭적 설명이 가질 수 있는 논리적 통로이다. - P365

정도는 다를지라도 모든 사람은 공통적으로 예술적 영감을 가지고 있다. 이 예술적 영감은 인간 본성의 분수에서 솟구쳐 올라온다. 예술적 영감에 따른 창조는 분석적 설명이 없다 해도 보는 사람의 감수성을 직접적으로 자극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창조성은 절대적으로인본주의적(humanistic)이다. 지속적인 가치를 지니는 작품들은 이와같은 인본주의적 근원을 가장 충실히 따르는 것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들은 그것들을 이끌어 낸 후성 규칙들을 탐구함으로써 근본적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후성 규칙들은 인류 진화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 P369

•보편적이거나 준보편적인 것들이 문화가 진화하는 동안에 출현한다. 기본적인 후성 규칙들 사이에 강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특정 생각과 행동은 그것이 야기하는 감정적 반응에 있어서 그리고 그것이 몽상이나창조적 사고를 방해하는 빈도에 있어서 다른 생각과 행동에 비해 더효과적이다. 그것은 예술의 지배적 테마를 이루는 핵심 내러티브이자 반복되는 개념인 원형을 창안하는 방향으로 문화의 진화를 편향시킨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원형의 사례로는 웨스터마크 효과를 위반했던 오이디푸스의 비극과 신화 및 종교에 등장하는 뱀의 이미지들을 들 수있다.
• 예술은 원래 특정 형식과 주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는 하지만 다른 점에서는 자유롭게 구축된다. 원형들은 예술뿐만 아니라 평범한 의사소통을 구성하기도 하는 수많은 은유를 생산한다. 뇌가 학습하는 동안 뇌의 여러 영역이 폭넓게 활성화되어 나타난 결과로 볼 수 있는 은유는 창조적 사고를 구축하는 벽돌 역할을 한다. 은유는 서로 다른 영역의 기억들을 연관시키고 함께 강화시킨다. - P376

프로그램화된 뇌는 예술과 과학에서 모두 우아함을 추구한다. 여기서 우아함은 뒤죽박죽 뒤섞여 있는 세부 사실들로부터 군더더기없이 어떤 패턴을 끄집어내 기술하는 것을 뜻한다. 수학과 음악을 다잘 아는 비평가 에드워드 로드스타인(Edward Rothstein)은 이 두 영역(수학과 음악)에서 일어나는 창조적 과정을 다음과 같이 비교한다.

우리는 외견상 서로 달라 보이는 대상들을 가지고 시작한다. 서로 비교하여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유비해 봄으로써 어떤 패턴을찾는다. 우리는 스스로를 멀찍이 떼어 놓고 변형, 사상(寫象), 은유를 이용하여 추상적 개념과 법칙 그리고 체계 등을 창조해 낸다. 이렇게 하여수학은 더욱 추상적이고 강력해진다. 이것은 또한 음악이 작은 부분들을통해 거대한 하나의 구조를 이루면서 힘을 얻어 가는 방식이다. 이런 식의 이해 방법은 대부분의 서구적 사고의 바탕에 놓여 있다. 우리는 보편적 지식을 추구하지만 그것의 힘은 개별적인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는 공통 원리들을 사용하지만 뚜렷하게 구별되는 세부 사실들을 드러낸다. -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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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 본성을 규정하는 유전자도 아니고 인간 본성의 궁극적 산물인 문화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지금 막 그것에 대한 정확한 표현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후성 규칙들이다. 즉 문화의 진화를 한쪽으로 편향시켜 유전자와 문화를 연결해 주는 정신 발달의 유전적 규칙성이다. - P291

 뇌는 환경 자극의 범람 속에서 작동하면서 보고 듣고 배우며 자기 자신의 미래를 계획한다. 진화 과정에서 수많은 뇌의 집합적 선택은 인간의 모든 것-유전자, 후성 규칙, 의사소통적 마음 그리고 문화의 진화적 운명 (Darwinian fate)을 결정한다.
지혜로운 선택을 한 뇌는 더 높은 진화적 적응도(Darwinian fitness)를 가지게 되는데 이것은 그 뇌가 잘못 선택한 뇌들보다 통계적으로더 오래 살고 더 많은 자손을 남기게 됨을 뜻한다.  - P293

유전자 결정론은 유전자가 특정한 형태의 문화를 이끌어 낸다는 견해로서 신뢰를 받지 못하는 이론이다. 나는 그들의 정당한 우려가 다음과 같은 논증으로 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유전자들은 토템 신앙, 원로 회의, 종교 의식과 같은 정교한 규약들을 결정하지 않는다. 내가 알기로는 그 어느 진지한 과학자나 인문학자도 그러한 이론을 제안한 적이 없다. 오히려 유전자에 기반을 두고있는 후성 규칙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러한 규약들을 창조하고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후성 규칙들이 충분히 강력하다면 그것에 따른 특정 행동들이 다양한 사회 속에서도 수렴적으로 진화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후성 규칙들에 따라 편향된 문화에서 진화된 그 규약들은 문화적 보편자로 간주된다. 소수 문화의 경우에도 동일한 시나리오가 적용될 수 있다. 발생유전학의 입장에서는 이런 전체 구도를 유전들의 반응 양태가 문화적 보편자의 경우에는 대단히 협소하다는 식로 표현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문화적 규약들이 생겨나지 않는 인간 환경은 거의 없다. 반면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여 다양한 군소약들을 산출하는 유전자, 다시 말해 문화의 다양성을 늘리는 유전자는 더 넓은 범위의 반응 양태를 보인다는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 P295

유전적 적응도 가설 문화에 가장 널리 퍼진 형질들은 그것들을 있게끔 해준 유전자들에게 진화적 이득을 안겨 준다. ―은 많은 증거들을 통해서 합당하게 잘 입증되어 왔다. 널리 분포된 형질들은 대개적응적이고 그것들의 존재는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의 기본 원리에잘 부합한다. 게다가 사람들이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간에 대체로 이 기본 원리를 따르는 것처럼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도 사실이다.
유전적 적응도 가설의 가치는 그것이 인간 본성에 던져 주는 통찰에있다. 또한 학계에 참신하고 생산적인 연구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는것도 중요한 점이다. - P303

근친상간 금기는 우리를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간의 경계 지역으로 다시 한 번 인도한다. 그 금기가 제기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생물학적인 웨스터마크 효과와 문화적인 근친상간 금기는 도대체 어떤 관련이 있는가?
이 쟁점은 인간의 근친상간 회피 행동에 관한 두 가지 경합 가설을 구분하는 과정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첫 번째 가설은 지금까지 언급된 웨스터마크 가설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사람들은 인간 본성의유전적 후성 규칙 때문에 근친상간을 피하고 그 규칙을 금기라는 형태로 번역해 냈다. 이에 대한 경합 가설은 프로이트의 가설이다. 이대단한 이론가는 웨스트마크 효과가 무엇인지를 들었을 때 그런 효과는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오히려 정반대의 주장을 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친족 이성 간의 욕정은 근본적이고 강제적인 것으로서 그 어떤 억제 본능보다 강하다. 그러한 근친상간과 그로 인해 가정을 풍비박산 나게 하는 재앙을 막기 위해 사회는 금기라는 것을 고안해 냈다. - P312

인간을 제외한 모든영장류 동물에서 이것은 두 층으로 되어 있다. 첫째, 19종의 사회성종에서 젊은 개체들은 인간의 족외혼(exogamy)을 연상케 하는 짝짓기 패턴을 보인다. 예를 들어 몸이 어른 크기가 되기 전에 그들은 자신이 속해 있던 집단을 떠나 다른 집단에 합류한다. 마다가스카르 섬의 여우원숭이와 대다수의 구대륙, 신대륙 원숭이의 경우에 자신의 집단을 떠나는 쪽은 수컷이다. 반면 아프리카의 붉은콜로부스원숭이, 망토원숭이, 고릴라, 침팬지의 경우에는 암컷이 떠난다. 또한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고함원숭이의 경우처럼 두 성이 모두 떠날 때도 있다. 이런 다양한 영장류 종들에서 젊은 개체들이 떠나는이유는 공격적인 어른 개체 때문이 아니다. 전적으로 자발적으로 떠나는 것처럼 보인다.
젊은 영장류의 이런 특이한 행동은 그것의 궁극적인 진화적 기원이 무엇이건 간에 그리고 그 행동이 그 개체의 번식 성공에 어떤 영향을 주든지 간에 근친교배의 발생 가능성을 줄여 준다. 그러나 근친 교배에 대한 거부는 두 번째 단계의 저항으로 더욱 강화된다. 그것은 번식 집단에 남아 있는 이성 개체들이 성적 행동마저도 피하는행위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남아메리카의 마모셋과 비단원숭이, 아시아의 마카크원숭이, 비비 그리고 침팬지처럼 성적 발달에 관한 연구가 잘 된 모든 사회성 영장류인간은 제외하고)의 경우, 어른 수컷과암컷은 모두 이른바 웨스터마크 효과(Westermarck effect)‘를 보인다.
즉 어렸을 때 자신들과 가깝게 지냈던 개체들이 성적으로 접근해 오면 거부한다. 가령, 어머니와 아들이 짝짓기를 하는 일은 거의 없으며 형제자매 간의 짝짓기는 비친족 개체와의 짝짓기보다 훨씬 덜 일어난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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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0월 3일, 수요일 아침 10시 30분. 나는 여덟 번째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타자기로 쳤다. 비평가들은 이 소설이 그들이 칭하는바 <그렌즐러 8부작>을 완결하는 소설이라고말하겠지만, 사실 나는 처음부터 동일한 주제를 놓고 여덟권의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어떻게 하다 보니까 정말 그렇게 된 것뿐이었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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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시카와 그 또래 친구들은 패티나 패티 세대 사람들과 정말 어느 정도 달랐기 때문이다. 요즘 세대에게 세상은 더 두려운 존재고, 어른이 되는 길은 더 험난하고, 어른이 된다는 게 왜 좋은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 P695

월터의 과격한 성향 때문에 불안해서라기보다는 그의 은둔자적 삶이 슬픔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느낌이 강렬하게 묻어났기 때문이다. 그 곁에 다가가지 않는 게 안전한 그런 끔찍한 슬픔이 느껴졌다. 다른 모든 형태의 광기와 마찬가지로 가시지 않는 슬픔은 위협적으로 느껴지고 전염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 P708

버글런드 부부가 빌린 커다란 트럭에 이삿짐을 싣고 월터는 경적을 울리고 패티는 손을 흔들며 작별을 하고 떠난지 며칠 되지 않아, 전문 회사가와서 월터의 소유지 주위에 고양이의 침입을 막는 높은 울타리를 설치했다. (이제 패티가 떠나고 없으니 린다 호프바우어는 담장이 흉측하다고 대놓고 말했다.) 그리고 곧 인부들이 와서 버글런드의 아담한 집을 헐고 부엉이나 제비들이 안식처로 삼을 수 있도록 껍데기만 남겨두었다. 오늘날까지보존 구역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대상은 새들과 캔터브리지 단지 주민들뿐이다. 보존 구역의 출입문에는 젊고 예쁘고, 가무잡잡한 피부의 여자 사진이 들어 있는 작은 세라믹 표지판에 사진 속 여자의 이름을 딴 보존구역 이름이 적혀 있고, 그 아래에는 비밀번호로 여는 자물쇠로 문이 잠겨있는데 캔터브리지 주민들은 이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 - P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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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본적인 요소로서의 문화 단위의 개념은 지난 30년 동안 여기저기에서 제시되었다. 학자들에 따라서 그것은 기억소형(記億素形, memotype), 아이디어(idea), 개념자(idene), 모방자 (meme), 사회유전자(sociogene), 개념(concept), 문화유전자(culturgen) 그리고 문화형 (culture type) 등으로 다양하게 명명되었다. 이중에서 리처드 도킨스 (Richard Dawkins)가 그의 영향력 있는저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1976년)에서 처음 도입한 "모방자"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내가 제시한 모방자의 정의는 좀 더 제한되어 있으며 도킨스의 정의와 다소 다르다. 그것은 이론 생물학자 찰스 럼스(CharlesJ. Lumsden)과 내가 1981년에 유전자·문화 공진화에 관한 최초의 완전한 이론을 주창하면서 제시한 정의이다. 우리는 문화의 단위 (지금은 모방자라고 불리는)가 의미 기억의 연결점과 그것의 뇌 활동 상응물이라고 주장했다. 연결점은 개념 인식 가능한 가장 단순한 단위), 명제, 도식의 여러 수준들에서 존재할 수 있으며 아이디어나 행동, 인공물의 복잡성을 결정한다. 그리고 문화 속에서 이런 복잡성들이 유지되는것을 돕는다. - P247

물론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유전자 · 문화 공진화를포괄하기 위해서 상호작용에 관해 더 많은 사실들을 알아야 한다. 상호 작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반응 양태(norm of reaction)개념을 알아야 한다. 이 개념은 다음과 같이 쉽게 이해된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아니면 미생물이든 한 종을 선택하라. 그리고 그것의 특정형질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 혹은 유전자 집단을 고르라. 그런 후에 그종이 생존할 수 있는 모든 환경을 열거해라. 이때 서로 다른 환경에서선택된 유전자나 유전자 집단에 따라 규정된 그 형질이 변이를 일으킬수도 있다. 생존 가능한 모든 환경에서 그 형질의 전체 변이가 그 종의 그 유전자 혹은 그 유전자 집단의 반응 양태이다. - P249

상호작용을 특정하는 방법 중에 통용되고 있는 것은 유전도(heritability)이다. 유전도는 형질의 변이 중에 유전에 따라 생겨난 것들이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척도로서 일차적으로 개체군에 적용된다. 따라서 예를 들어 "이 마라톤 선수의 경기 능력 중 20퍼센트는 유전에 의해서 80퍼센트는 환경에 의해서 결정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고, "케냐의 마라톤 선수들의 능력 차이 중 20퍼센트는 유전에 기인한 것이고 80퍼센트는 환경에 기인한 것이다."라고 해야 옳다. 유전도와 분산(통계학자들과 유전학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변이 측정값)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정의를 원하는 독자들을 위해 여기서 다음과 같이 덧붙이려 한다.

수학적인 세부 사항을 생략하면 유전도는 다음과 같이 측정된다. 개체군 내의 개체 표본에서 표준화된 방식으로 형질을 측정하라. 물론 이런 일은 인내력을 시험할 정도로 엄청나게 단조로운 작업이다. 그 표본속의 개체들 사이에서 변이를 측정하고 유전에 기인한 변이량을 측정하라. 그 부분이 유전도이다. 이때 사용된 변이 측정값이 분산이다. 이것을 얻으려면 우선 그 표본의 개체들로부터 평균값을 낸 다음에 그 평균으로부터 각 개체의 값을 빼서 그 차이값을 차례로 제곱하라. 분산은 이렇게 제곱된 모든 값들의 평균이다. - P250

유전도의 또 다른 특징은 그것이 가진 유연성이다. 단지 환경이변화되기만 하면 유전에 의해 생긴 변이의 비율이 증가하거나 감소할 수 있다. 편의상 미국 백인들의 IQ를 비롯한 여러 성질들을 해로들어 보자. 이것은 표본을 좀 더 균일하게 만들어 통계적 신뢰성을높이기 위해 든 예이기도 하다. 이 형질들의 유전도는 대부분 50퍼센트 언저리에 위치하며 이나 100퍼센트 근처로 가지는 않는다.
이 값을 변화시키기를 바라는가? 나는 그런 변화를 우선적 목표로삼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 사회가 진정으로 평등주의 사회가 되어서 모든 아이들이 거의 똑같은 환경에서 양육되고 자신의 능력 내에서 자율적으로 직업을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고 해 보자. 그렇게 되면 환경의 차이는 극도로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원래의 타고난 능력과 성격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유전도의 증가는 당연한 일이며 영속적인 사회 · 경제적 계층 구분에 유전적 요소가 크게 반영될 것이다.
반면 모든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시험을 쳐서 그 점수에 해당되는 교육 기관에 들어가게 되고 자신들의 천부적 재능에 가장 적합한 직업을 갖게끔 되어 있다고 해보자. 그러면 이런 멋진 신세계에서는 환경 변이가 증가할 것이고 선천적 능력은 동일하게 유지될 것이다.
만일 시험 점수와 그에 상응하는 환경이 유전자를 반영한다면 유전도 자체는 증가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와는 반대의 정책을 쓰는 사회를 상상해보자. 그 사회에서는 결과의 균일성이 최고의 덕목이 될것이다. 예컨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 오히려 홀대받고 지체아들이 개별적으로 집중적인 훈련을 받는 상황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모든 아이들을 능력과 성취 면에서 동일한 수준으로 맞추기위함이다. 이런 경우에는 목표 달성을 위해 환경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절해 줘야 하기 때문에 유전도는 감소할 것이다. - P255

보편적 현상들이 이렇게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유전자와 문화의 연관을 보여 주는 증거로 이용하기에는 여전히 무리가 있다. 열거된 목록들이 상당히 일관적이어서 우연히 생겼다고 보기에는 힘들기는 하지만 세부 사항으로 들어가 보면 사회마다 상당히 다르다. 게다가 문명화의 징표들은 너무 산발적이며 유전적으로 진화하기에는 너무 최근의 사건들이어서 수렵·채집인들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것들을 전달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농사. 기록, 성직 그리고 기념비적인 무덤을 규정하는 특정 유전자들을 운운하는 일은 지혜롭지 못하다.
나는 인간 본성에 대하여 (On Human Nature)』(1978년)의 발문에서 문화의 인과학(因果學, etiology)이 유전자에서 뇌와 감각을 통해 학습과 사회 행동으로 우회하고 있다고 논증했다.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은 세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보게 만들고 특정 행동들을 상대적으로 더 잘 배우게 만드는 신경 형질들이다. 유전적으로 대물림되는 형질은 모방자, 즉 문화의 단위가 아니다. 오히려 특정한 종류의 기억 요소들을 고안해 내고 전달하는 성향이다. - P268

정신 활동의 최고 수준에서 복잡한 이차 후성 규칙들은 이른바 구상화(具象化, reification) 과정에서 따라 나온다. 여기서 구상화는 아이디어와 복잡한 현상을 친숙한 대상과 활동에 비유하여 좀 더 단순한 개념으로 압축하는 절차를 지칭한다. 가령 보르네오 섬의 두순 족(Dusun)은 집을 팔, 머리, 배, 다리 등과 같이 다양한 신체 부위로 구성된 하나의 "몸"으로 구상화한다. 그래서 특정 방향으로 정렬되어있어야 집이 서 있다." 라고 믿고 언덕의 경사면에 집이 지어졌을 때에는 집이 "거꾸로 서 있다."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차원에서 그들은 집을 뚱뚱함/피골이 상접함, 젊음/늙어빠짐 등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집 내부의 구조물, 예컨대 방과 가구는 절기에 따른 의식, 마술적 믿음 그리고 사회적 믿음과 연관되어 있다.
구상화는 세상에 질서를 창조하는 빠르고 쉬운 정신 알고리듬이다. 그런 것이 없다면 세상은 온통 지엽적이고 가변적이 되어 버릴것이다. 구상화의 사례들 중 하나는 양분 본성(本性, dyadic instinct),
즉 사회적으로 중요한 것들을 양분하고자 하는 성향이다. 예컨대, 어딜 가나 사회는 사람들을 내부인/외부인, 어린이/어른, 친족/비친족, 기혼/미혼, 성스러운 행동/불경한 행동, 착함/악함 등으로 구별한다.
사회는 각 구분의 경계를 금기와 의식으로 확고히 한다.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변화하려면 개시 의식, 혼인, 축복, 성직 수임식 그리고 여러 유형의 통과 의례를 요구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모든 문화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 P274

유전자의 규정을 받는 후성 규칙들은 문화적 습득과 전달을 가능케 하는 감각지각과 정신 발달의 규칙성이다.
문화는 어떤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달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을 돕는다.
성공적인 새 유전자는 개체군의 후성 규칙을 변화시킨다.
변화된 후성 규칙은 문화적 습득이 이뤄지는 경로의 방향과 효율성을 변화시킨다.
이런 일련의 단계에서 마지막 단계는 가장 중요함과 동시에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다. 그것은 유전적 속박에 관한 문제이다. 선사 시대에, 특히 현대 호모 사피엔스의 뇌가 진화했던 10만 년 전쯤까지는 유전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는 서로 밀접하게 짝지워져 있었다. 하지만 신석기 시대의 시작, 특히 문명의 발흥으로 문화적 진화는 유전적 진화를 뒤로 한 채 앞으로 훨씬 더 빨리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문화의 이런 폭발적 진화 과정에서 후성 규칙은 문화들이 서로 달라지는 것을 얼마나 허용했는가? 유전적 속박은 얼마나꽉 죄여 있는가? 이것이 열쇠가 되는 물음이며 현재로서는 이 물음에 대해 부분적인 답만 할 수 있다. - P280

뇌는 대상과 속성 간의 정확한 연결을 위하여 계속해서 의미를 찾는다. 이때 속성은 의미들을 가로지르며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우리는 후성 규칙이라는 제약의 현관을 지나 그 세계로 들어간다. 준언어와 색깔 어휘의 예에서 드러났듯이, 문화는 유전자로부터 발흥하며 유전자의 검인을 영원히 간직한다. 한편으로 문화는 은유와 새로운 의미를 창조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획득했다. 인간 조건을 이해하려면 유전자와 문화를 모두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과학과 인문학을 분리한 채 이해하려 한다면 부질없는 짓이 된다. 인간 진화의 실재성을 인식하면서 이 둘을 함께 묶어 이해해야 한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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