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주의적 목표를 통해 확고해진 많은 인류학자들의 본능은 생물학에 대한 그들의 반대입장을 좀 더 공고히 하면서 문화상대주의에 대한 지지를 더욱 강화시켜나갔다. 물론 생물학은 거기에 없었다. 이런 결과를 가져온 추론은 결과적으로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또 다른 상황을 연출한다. 문화상대주의는 인종 집단들 간의 유전적인 행동 차이가 있다는 믿음 - 물론 이런 믿음은 증명되지 않았으며 이념적으로도 위험한 발상이다.- 을 부정하면서 시작되었는데 결국에는 유전에 기초한 통합된인간 본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반대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이렇게 해서 인간 조건에 대한 커다란 수수께끼가 생겨났다. 문화나 유전이 아니라면 도대체 인간성을 통합해 주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만일 윤리 기준들이 문화를 통해서 형성되는데 문화는 끝없이 다양하고 동등하다면 도대체 무슨 근거로 신정(神政, theocracy)이나 식민주의, 아동 착취, 고문, 노예 제도를 반대할 수 있겠는가? - P323
후성설(epigenesis)은 개체가 유전과 환경의 공동 영향 아래에서 어떻게 발달하는지에 관한 개념으로서 원래 생물학에서 처음 나왔다. 그렇다면 후성 규칙들은 무엇인가? 내가 앞의 두 장에서 길게 한 설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감각 체계와 뇌의 선천적 작용들의 집합체인 후성 규칙은 개체가 환경에서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빠른 해결책을 찾도록 만드는 일종의 어림법 (rules of thumb)이다.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보게끔 선천적으로 규정하고 자동적으로 특정한 선택을 하게 한다. 우리는 이 후성 규칙들 때문에 무지개를 파장의 연속체가 아니라 네 가지 기본색으로 본다. 우리는 근친상간을 피하고 문법적으로 정합적인 문장으로 말하고 친구에게미소를 지으며 혼자일 때에는 낯선 이에게서 공포를 느낀다. 후성 규칙들은 대개 감정을 통해서 작동되는데 모든 행동 범주에서 개인으로 하여금 상대적으로 빠르고 정확한 반응을 하도록 하여 결국 생존과 번식에 더 성공적이도록 만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 규칙들은 문화적 변이들과 조합들이 발생할 수 있도록 열려 있다. 예컨대, 특히 복잡한 사회에서는 그 규칙들이 건강과 복지에 더 이상 기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 규칙들이 지시하는 행동이 굴절되어 결국 개인과 사회의 이득에 반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 P336
이런 목표를 위해 과학자들은 이론, 특히 수학적 모형이 지녀야할 네 가지 덕목을 추구한다. 첫째는 검약성(parsimony)이다. 즉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단위와 과정이 적으면 적을수록 더 좋은 이론이라는 기준이다. 물리과학이 보여 준 검약성의 승리 덕분에 우리는 이제 장작이 불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플로지스톤이라고 불리는 상상의 물질을 상정하거나 진공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에테르를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 두 번째 덕목은 일반성(generality)이다. 즉 모형으로 포괄되는 현상의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그 모형이 참일 개연성이 더 높다는 기준이다. 화학에서 주기율표는 각 원소와 화합물에 대한 개별 이론을 배제한다. 한 이론이 모든 것들을 정확하게 포괄한다. 그 다음은 통섭(consilience)이다. 다른 분야에서 탄탄하게 검증된 지식에 순응하는 어떤 분야의 단위와 과정은 이론과 실천에 있어서그렇지 않는 경우보다 일관성의 측면에서 더 우월하다고 입증되었다. DNA의 화학에서부터 화석의 연대 측정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의 모든 수준에서 얻는 모든 자료들에서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론이 창조론을 물리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신은 존재할 수도 있고 우리가 이 작은 행성 위에서 꾀하고 있는 일에 대해 기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물권을 설명할 때에는 신의 정교한 손을 빌릴 필요가없다. 이제 마지막 덕목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그것은 예측성(predictiveness)으로서 이미 다른 덕목들로부터 유도된 덕목이다. 많은 현상에 대해 예측할 수 있고 그 예측을 관찰과 실험을 통해 검증하기 쉬우면 그 이론은 좋은 이론이 된다. - P343
유성 생식을 동전 던지기로 그리고 각 세대를 새롭게 동전을 한번 던지는 경우로 비유해보자. 유전적 부동에 따른 진화는 세대를거치며 우연히 유전자의 빈도에 변화가 생기는 과정을 뜻한다. 만일 한 개체군의 개체 수가 100 이하일 때 유전적 부동은 효능을 발휘할수 있다. 유전적 부동에 따른 유전자 빈도의 변화 속도는 동일 크기의 표본이 통계적으로 어떤 변화를 겪는지를 통해 정확하게 기술될 수 있다. 이런 통계치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유전적 부동으로 인해 개체군의 몇몇 유전자 형태가 제거됨으로써 결국 그 개체군 내의 변이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무작위적인 측면을 함께 고려하면 창조성의 측면에서 유전적 부동이 자연선택보다 훨씬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연선택이 이 모형에 추가되면 그것은 예측 가능한 속도로 유전자 빈도를 한 방향으로 추동하면서 유전적 부동의 효과를 감소시킨다. - P347
인문학 쪽의 학자들은 환원주의에 드리워진 저주를 걷어 내야 한다. 과학자들은 잉카 제국의 황금을 약탈하러 온 신대륙 정복자들이아니다. 과학도 자유롭고 예술도 자유롭다. 하지만 내가 마음에 관해앞서 주장했듯이 과학과 예술이라는 두 영역은 모두 창조적 정신을 요구한다는 면에서 유사하기는 하지만 그 목표와 방법에 있어서는 근원적으로 다르다. 예술과 과학 간 상호 교류의 핵심은 혼성화(hybridization), 즉 ‘과학적 예술‘이나 ‘예술적 과학‘과 같은 떨떠름한 혼합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과학 지식과 미래에 대한 그 지식의 독점적 감각으로 예술에 대한 해석을 되살리는 데 있다. 해석은 과학과 예술 간의 통섭적 설명이 가질 수 있는 논리적 통로이다. - P365
정도는 다를지라도 모든 사람은 공통적으로 예술적 영감을 가지고 있다. 이 예술적 영감은 인간 본성의 분수에서 솟구쳐 올라온다. 예술적 영감에 따른 창조는 분석적 설명이 없다 해도 보는 사람의 감수성을 직접적으로 자극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창조성은 절대적으로인본주의적(humanistic)이다. 지속적인 가치를 지니는 작품들은 이와같은 인본주의적 근원을 가장 충실히 따르는 것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들은 그것들을 이끌어 낸 후성 규칙들을 탐구함으로써 근본적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후성 규칙들은 인류 진화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 P369
•보편적이거나 준보편적인 것들이 문화가 진화하는 동안에 출현한다. 기본적인 후성 규칙들 사이에 강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특정 생각과 행동은 그것이 야기하는 감정적 반응에 있어서 그리고 그것이 몽상이나창조적 사고를 방해하는 빈도에 있어서 다른 생각과 행동에 비해 더효과적이다. 그것은 예술의 지배적 테마를 이루는 핵심 내러티브이자 반복되는 개념인 원형을 창안하는 방향으로 문화의 진화를 편향시킨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원형의 사례로는 웨스터마크 효과를 위반했던 오이디푸스의 비극과 신화 및 종교에 등장하는 뱀의 이미지들을 들 수있다. • 예술은 원래 특정 형식과 주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는 하지만 다른 점에서는 자유롭게 구축된다. 원형들은 예술뿐만 아니라 평범한 의사소통을 구성하기도 하는 수많은 은유를 생산한다. 뇌가 학습하는 동안 뇌의 여러 영역이 폭넓게 활성화되어 나타난 결과로 볼 수 있는 은유는 창조적 사고를 구축하는 벽돌 역할을 한다. 은유는 서로 다른 영역의 기억들을 연관시키고 함께 강화시킨다. - P376
프로그램화된 뇌는 예술과 과학에서 모두 우아함을 추구한다. 여기서 우아함은 뒤죽박죽 뒤섞여 있는 세부 사실들로부터 군더더기없이 어떤 패턴을 끄집어내 기술하는 것을 뜻한다. 수학과 음악을 다잘 아는 비평가 에드워드 로드스타인(Edward Rothstein)은 이 두 영역(수학과 음악)에서 일어나는 창조적 과정을 다음과 같이 비교한다.
우리는 외견상 서로 달라 보이는 대상들을 가지고 시작한다. 서로 비교하여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유비해 봄으로써 어떤 패턴을찾는다. 우리는 스스로를 멀찍이 떼어 놓고 변형, 사상(寫象), 은유를 이용하여 추상적 개념과 법칙 그리고 체계 등을 창조해 낸다. 이렇게 하여수학은 더욱 추상적이고 강력해진다. 이것은 또한 음악이 작은 부분들을통해 거대한 하나의 구조를 이루면서 힘을 얻어 가는 방식이다. 이런 식의 이해 방법은 대부분의 서구적 사고의 바탕에 놓여 있다. 우리는 보편적 지식을 추구하지만 그것의 힘은 개별적인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는 공통 원리들을 사용하지만 뚜렷하게 구별되는 세부 사실들을 드러낸다. -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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