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기본적인 요소로서의 문화 단위의 개념은 지난 30년 동안 여기저기에서 제시되었다. 학자들에 따라서 그것은 기억소형(記億素形, memotype), 아이디어(idea), 개념자(idene), 모방자 (meme), 사회유전자(sociogene), 개념(concept), 문화유전자(culturgen) 그리고 문화형 (culture type) 등으로 다양하게 명명되었다. 이중에서 리처드 도킨스 (Richard Dawkins)가 그의 영향력 있는저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1976년)에서 처음 도입한 "모방자"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내가 제시한 모방자의 정의는 좀 더 제한되어 있으며 도킨스의 정의와 다소 다르다. 그것은 이론 생물학자 찰스 럼스(CharlesJ. Lumsden)과 내가 1981년에 유전자·문화 공진화에 관한 최초의 완전한 이론을 주창하면서 제시한 정의이다. 우리는 문화의 단위 (지금은 모방자라고 불리는)가 의미 기억의 연결점과 그것의 뇌 활동 상응물이라고 주장했다. 연결점은 개념 인식 가능한 가장 단순한 단위), 명제, 도식의 여러 수준들에서 존재할 수 있으며 아이디어나 행동, 인공물의 복잡성을 결정한다. 그리고 문화 속에서 이런 복잡성들이 유지되는것을 돕는다. - P247
물론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유전자 · 문화 공진화를포괄하기 위해서 상호작용에 관해 더 많은 사실들을 알아야 한다. 상호 작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반응 양태(norm of reaction)개념을 알아야 한다. 이 개념은 다음과 같이 쉽게 이해된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아니면 미생물이든 한 종을 선택하라. 그리고 그것의 특정형질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 혹은 유전자 집단을 고르라. 그런 후에 그종이 생존할 수 있는 모든 환경을 열거해라. 이때 서로 다른 환경에서선택된 유전자나 유전자 집단에 따라 규정된 그 형질이 변이를 일으킬수도 있다. 생존 가능한 모든 환경에서 그 형질의 전체 변이가 그 종의 그 유전자 혹은 그 유전자 집단의 반응 양태이다. - P249
상호작용을 특정하는 방법 중에 통용되고 있는 것은 유전도(heritability)이다. 유전도는 형질의 변이 중에 유전에 따라 생겨난 것들이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척도로서 일차적으로 개체군에 적용된다. 따라서 예를 들어 "이 마라톤 선수의 경기 능력 중 20퍼센트는 유전에 의해서 80퍼센트는 환경에 의해서 결정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고, "케냐의 마라톤 선수들의 능력 차이 중 20퍼센트는 유전에 기인한 것이고 80퍼센트는 환경에 기인한 것이다."라고 해야 옳다. 유전도와 분산(통계학자들과 유전학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변이 측정값)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정의를 원하는 독자들을 위해 여기서 다음과 같이 덧붙이려 한다.
수학적인 세부 사항을 생략하면 유전도는 다음과 같이 측정된다. 개체군 내의 개체 표본에서 표준화된 방식으로 형질을 측정하라. 물론 이런 일은 인내력을 시험할 정도로 엄청나게 단조로운 작업이다. 그 표본속의 개체들 사이에서 변이를 측정하고 유전에 기인한 변이량을 측정하라. 그 부분이 유전도이다. 이때 사용된 변이 측정값이 분산이다. 이것을 얻으려면 우선 그 표본의 개체들로부터 평균값을 낸 다음에 그 평균으로부터 각 개체의 값을 빼서 그 차이값을 차례로 제곱하라. 분산은 이렇게 제곱된 모든 값들의 평균이다. - P250
유전도의 또 다른 특징은 그것이 가진 유연성이다. 단지 환경이변화되기만 하면 유전에 의해 생긴 변이의 비율이 증가하거나 감소할 수 있다. 편의상 미국 백인들의 IQ를 비롯한 여러 성질들을 해로들어 보자. 이것은 표본을 좀 더 균일하게 만들어 통계적 신뢰성을높이기 위해 든 예이기도 하다. 이 형질들의 유전도는 대부분 50퍼센트 언저리에 위치하며 이나 100퍼센트 근처로 가지는 않는다. 이 값을 변화시키기를 바라는가? 나는 그런 변화를 우선적 목표로삼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 사회가 진정으로 평등주의 사회가 되어서 모든 아이들이 거의 똑같은 환경에서 양육되고 자신의 능력 내에서 자율적으로 직업을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고 해 보자. 그렇게 되면 환경의 차이는 극도로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원래의 타고난 능력과 성격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유전도의 증가는 당연한 일이며 영속적인 사회 · 경제적 계층 구분에 유전적 요소가 크게 반영될 것이다. 반면 모든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시험을 쳐서 그 점수에 해당되는 교육 기관에 들어가게 되고 자신들의 천부적 재능에 가장 적합한 직업을 갖게끔 되어 있다고 해보자. 그러면 이런 멋진 신세계에서는 환경 변이가 증가할 것이고 선천적 능력은 동일하게 유지될 것이다. 만일 시험 점수와 그에 상응하는 환경이 유전자를 반영한다면 유전도 자체는 증가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와는 반대의 정책을 쓰는 사회를 상상해보자. 그 사회에서는 결과의 균일성이 최고의 덕목이 될것이다. 예컨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 오히려 홀대받고 지체아들이 개별적으로 집중적인 훈련을 받는 상황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모든 아이들을 능력과 성취 면에서 동일한 수준으로 맞추기위함이다. 이런 경우에는 목표 달성을 위해 환경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절해 줘야 하기 때문에 유전도는 감소할 것이다. - P255
보편적 현상들이 이렇게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유전자와 문화의 연관을 보여 주는 증거로 이용하기에는 여전히 무리가 있다. 열거된 목록들이 상당히 일관적이어서 우연히 생겼다고 보기에는 힘들기는 하지만 세부 사항으로 들어가 보면 사회마다 상당히 다르다. 게다가 문명화의 징표들은 너무 산발적이며 유전적으로 진화하기에는 너무 최근의 사건들이어서 수렵·채집인들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것들을 전달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농사. 기록, 성직 그리고 기념비적인 무덤을 규정하는 특정 유전자들을 운운하는 일은 지혜롭지 못하다. 나는 인간 본성에 대하여 (On Human Nature)』(1978년)의 발문에서 문화의 인과학(因果學, etiology)이 유전자에서 뇌와 감각을 통해 학습과 사회 행동으로 우회하고 있다고 논증했다.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은 세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보게 만들고 특정 행동들을 상대적으로 더 잘 배우게 만드는 신경 형질들이다. 유전적으로 대물림되는 형질은 모방자, 즉 문화의 단위가 아니다. 오히려 특정한 종류의 기억 요소들을 고안해 내고 전달하는 성향이다. - P268
정신 활동의 최고 수준에서 복잡한 이차 후성 규칙들은 이른바 구상화(具象化, reification) 과정에서 따라 나온다. 여기서 구상화는 아이디어와 복잡한 현상을 친숙한 대상과 활동에 비유하여 좀 더 단순한 개념으로 압축하는 절차를 지칭한다. 가령 보르네오 섬의 두순 족(Dusun)은 집을 팔, 머리, 배, 다리 등과 같이 다양한 신체 부위로 구성된 하나의 "몸"으로 구상화한다. 그래서 특정 방향으로 정렬되어있어야 집이 서 있다." 라고 믿고 언덕의 경사면에 집이 지어졌을 때에는 집이 "거꾸로 서 있다."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차원에서 그들은 집을 뚱뚱함/피골이 상접함, 젊음/늙어빠짐 등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집 내부의 구조물, 예컨대 방과 가구는 절기에 따른 의식, 마술적 믿음 그리고 사회적 믿음과 연관되어 있다. 구상화는 세상에 질서를 창조하는 빠르고 쉬운 정신 알고리듬이다. 그런 것이 없다면 세상은 온통 지엽적이고 가변적이 되어 버릴것이다. 구상화의 사례들 중 하나는 양분 본성(本性, dyadic instinct), 즉 사회적으로 중요한 것들을 양분하고자 하는 성향이다. 예컨대, 어딜 가나 사회는 사람들을 내부인/외부인, 어린이/어른, 친족/비친족, 기혼/미혼, 성스러운 행동/불경한 행동, 착함/악함 등으로 구별한다. 사회는 각 구분의 경계를 금기와 의식으로 확고히 한다.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변화하려면 개시 의식, 혼인, 축복, 성직 수임식 그리고 여러 유형의 통과 의례를 요구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모든 문화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 P274
유전자의 규정을 받는 후성 규칙들은 문화적 습득과 전달을 가능케 하는 감각지각과 정신 발달의 규칙성이다. 문화는 어떤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달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을 돕는다. 성공적인 새 유전자는 개체군의 후성 규칙을 변화시킨다. 변화된 후성 규칙은 문화적 습득이 이뤄지는 경로의 방향과 효율성을 변화시킨다. 이런 일련의 단계에서 마지막 단계는 가장 중요함과 동시에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다. 그것은 유전적 속박에 관한 문제이다. 선사 시대에, 특히 현대 호모 사피엔스의 뇌가 진화했던 10만 년 전쯤까지는 유전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는 서로 밀접하게 짝지워져 있었다. 하지만 신석기 시대의 시작, 특히 문명의 발흥으로 문화적 진화는 유전적 진화를 뒤로 한 채 앞으로 훨씬 더 빨리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문화의 이런 폭발적 진화 과정에서 후성 규칙은 문화들이 서로 달라지는 것을 얼마나 허용했는가? 유전적 속박은 얼마나꽉 죄여 있는가? 이것이 열쇠가 되는 물음이며 현재로서는 이 물음에 대해 부분적인 답만 할 수 있다. - P280
뇌는 대상과 속성 간의 정확한 연결을 위하여 계속해서 의미를 찾는다. 이때 속성은 의미들을 가로지르며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우리는 후성 규칙이라는 제약의 현관을 지나 그 세계로 들어간다. 준언어와 색깔 어휘의 예에서 드러났듯이, 문화는 유전자로부터 발흥하며 유전자의 검인을 영원히 간직한다. 한편으로 문화는 은유와 새로운 의미를 창조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획득했다. 인간 조건을 이해하려면 유전자와 문화를 모두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과학과 인문학을 분리한 채 이해하려 한다면 부질없는 짓이 된다. 인간 진화의 실재성을 인식하면서 이 둘을 함께 묶어 이해해야 한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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