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에 대한 가치관에서도 차이점이 보인다. 서양 문화에서는 선악의 가치관이 절대적이다. 예를 들어서 십계명 같은 법은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같은 명확한 독립적인 명제로 선을 규정한다.
반면에 동양에서는 선악의 결정을 관계에 의해서 설명한다. 동양에서는 절대적인 선을 믿지 않는다. 동양 철학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중용‘을 살펴보자. 중용은 공자의 생각을 공자의 손자인 자사평가 정리하고 발전시킨 것을 훗날 송나라 때 주자朱구가 정리하여 4서로 만들면서 알려졌다. 중용의 개념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다.
쉽게 말해서 눈치 봐서 가운데에 서라는 말인데, 벼농사 사회의 공동체내에서 튀지 않게 행동하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나라 사회는 요즘도 이런 덕목을 최고로 내세운다. 우리 사회는 ‘뛰어나지만 튀는 것보다는 ‘무능하더라도 무난한‘ 것을 더 좋게 보는 사회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중용이 되려면 좌와 우의 거리를 잴 필요가 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중간쯤에 ‘선‘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좌와 우의 관계 속에서 선을 찾는 것이다. 이는 동양 사회가 상대적인 가치와관계를 중요시했음을 보여 준다. 동양에서 최고의 덕으로 이야기되는 ‘중용‘은 절대적 선의 개념이 아니라, 주변의 상황과 관계에 따라서 변화하는 선의 개념이다. 또 다른 예를 찾아보자. 동양에서 도덕의 가장 근본이라고 생각하는 ‘효孝‘는 부모와 자녀라는 두 사람 간의 상대적인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충忠‘은 임금과 신하라는 관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선이다. 동양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선을 찾으려 했다. 부모자식의 관계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생기는 피할 수 없는 관계다. 사람들은 존재하는 즉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게 되는데, 동양에서는 그 관계 속에서 가치를 찾으려고 했다. 이는 집단 노동 방식으로 벼농사를 지으면서 만들어진 가치관이다.
반면 서양 근대 철학의 시작을 연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리를 찾았는데, 사고의 근저를 계속 파내려 가다 ‘생각하는 나‘에 다다른 것이다. 이는 서양 철학은 독립적인 자아에 기초를 두고 있음을 보여 준다. 혼자서 씨뿌리고 일하는, 밀을 경작하는 사람다운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이다. - P97

동서양은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죽으면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고 생각했던 서양과는 달리, 동양은 특이하게도 사후 세계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공자는 어느 날 제자 계로가 "사람이 죽으면어디로 가나요?"라고 질문하자, "사는 것도 모르는데 죽은 뒤를 어떻게알겠는가?"라고 답했다고 한다. 「세계 종교의 역사』의 저자 리처드 할러웨이에 의하면 사후 세계에 대해서 무관심 혹은 의식적으로 무시하려는 경향은 전 세계의 종교 역사를 통틀어서 중국 등 일부 나라에만 나타나는 특이한 특징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이집트나 힌두 쪽 문명은사후 세계에 상당한 관심을 갖는데 반해, 중국은 상대적으로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집단으로 농사를 지어야 하는 벼농사 사회의구성원으로서 갖는 생각답다. 당장에 내 눈앞에 닥친 집단 노동 속에서만들어지는 사회적 문제가 더 급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절대적인서양의 사고 체계에 반해서 동양의 상대주의 사고 체계의 가장 확실한예제는 중국 고대 철학인 ‘음양설‘에서 찾을 수 있다. 음과 양 두 개의 반대되는 ‘기‘는 서로 상충되는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둘이 상호 의존적이면서 하나가 되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고 있다. 상충되는 것을 오히려 상호 의존적이며 하나가 되기 위한 것으로 보려는 시각은 갈등이 있더라도 함께 집단 노동을 해야했던 벼농사 사회의 시각이다. - P100

다시 말해서 한자는 자유로운 성장 패턴을 띠게 되는데, 이와 같은 성격은 동양의 건축 평면에서도 나타난다. 서양의 종교 건축이나 왕궁 등을 보면 좌우 대칭성을 가지고서 한 방향의 축을 따라 배치되는 경향이 있다. ‘판테온‘, ‘하기아소피아 성당‘, ‘성 베드로 대성당‘, ‘노트르담 대성당‘, ‘베르사유 궁전‘ 모두 좌우대칭에 가운데 축이 있다. 반면 동양에서는 많은 경우 주변 환경에 맞추어서 좌우 비대칭성을 가지고 자연 발생적인 형태로 증식하듯 평면이 구성된다. ‘경복궁‘과 일본의 각종성들이 그렇다. 이렇듯 일방향성과 다방향성은 두 건축 문화가 각기 가지고 있는 다른 특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서양 문화는 세상을 절대자가 만든 ‘수학적 규칙의 조합‘으로 보고, 동양은 세상을 ‘관계의 집합‘으로 보는 시각 차이에서 나온 것이라 여겨진다. 이 같은 관점의 차이는 체스와 바둑이라는 게임에서도 나타난다. - P110

이같이 로마의 ‘판테온‘에서 이스탄불의 ‘하기아소피아‘로 이어지는 건축 디자인에서 보이는 수학적인 진화는 콘스탄티노플(현 터키의이스탄불)의 지리적인 위치 때문이다. 로마에 비해서 콘스탄티노플은그리스에 가깝고, 그리스는 로마보다 수학적으로 앞서서 발전한 문화였기 때문이다. 그리스 멸망 이후 그리스의 많은 학자가 동로마 제국으로 들어오게 되고 따라서 문화 전반적으로 좀 더 발전한 수학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렇듯 수학적으로나 건축적으로 아름다운 ‘하기아소피아성당‘은 당시 유목 민족으로서 제대로 된 건축을 해 본 적이 없던 중동의 유목민들에게는 문화 충격이었다. 이후 이슬람 종교가 만들어진 후에 그들만의 종교 건축을 지을 때에 모든 이슬람 성전은 ‘하기아소피아성당‘ 디자인에 기반을 두고 발전시키게 된다. 중동에서 동서양의 중계무역으로 수학에 강했던 이슬람인들은 ‘하기아 소피아 성당‘에서 이미 시작된 프랙털 분열 방식을 더 복잡한 형태로 발전시키고, 훗날 훨씬 더 복잡한 기하학적 프랙털 패턴을 가진 아라베스크 문양도 건축에 적용시키게 된다.
서기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 유럽은 당시 번성하고 있던이슬람 제국에 대항할 만큼 조직적이지 못했다. 반면, 이슬람은 스페인과 북아프리카로 영토를 확장해 나가고 있었고, 이와 함께 고도로 복잡한 기하학적인 형태의 이슬람 건축이 유럽에 영향을 미치면서 서양 건축 문화의 수학적인 성향이 증폭된다. 스페인 지역은 이때 하이브리드적인 건축 양식을 만들어 냈는데, ‘알람브라 궁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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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의미 없이 라이터를 던지는 것처럼 우리는 별 기대 없이 아람에게로 향했다. 새 술집을 찾아내지 못했더라도 아람은 들뜬 목소리로 우리를 불러냈을 것이다. 소주병 뚜껑마다 다른 숫자가 적힌 걸 발견했다며 아이들을 불러냈고, 술집의 의자가 바뀌었다며 아이들을 불러냈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날에는 이전에 발견한 무언가를 처음 발견한 것처럼 말하며 아이들을 불러냈다. 아람은 발견한 모든 것을 좋다고 말했다. 아람은 좋아하는 것을 쉽게 늘려갔다. 소각장에 버려진 귀가 너덜너덜한 곰인형이라든가, 길가에서 주운 유리구슬 같은 것. 하찮아 보이는 것들을 줍고 아람은 쉽게 좋다고 했다. 아람의 들뜬 목소리에 아이들도 쉽게 호응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아무것도 아니게 모이는것. 아람은 그런 자리를 주선하는 유일한 아이였다. 우리가 각자아무것도 아닐 때에, 아무것도 아닌 것들로 우리를 뭉치게 했다. - P28

외제 사탕 통을 가지고 있는 소영이라면, 영어 교과서를 유창한 발음으로 읽어나가는 소영이라면, 지하철 정도는 타보았을 것이라고 여겼다. 소영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가만히 서있었다.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행인들만주시하면서 딴청을 부렸다. 대전을 벗어나고서야 전민동 아이 또한 충청도 아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소영의 크림색 정장바지가 촌스러워 보였다. 서울 아이들은 이런 바지를 입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서울 아이 또한 한국을 벗어난다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변방의 사람들이었다. - P38

"너는 개 닮았다야."
어려서부터 ‘강아지‘ ‘똥개‘ ‘개코‘ 같은 별명을 갖고 있었다. 강아지를 부르듯 혀를 차고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나를 부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에게는 개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고 사람들은말했다. 친구를 따라 화장실에 갈 때,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을때, 밥을 먹고 운동장을 산책할 때, 친구들은 내게 ‘개 같다‘고 했다. 왜냐는 반발에 친구들은 말했다.
"졸졸 따라다니잖아."
"먹자고 할 때까지 밥만 보면서 기다리잖아."
"산책만 하면 킁킁대며 좋아하잖아."
남들은 내가 사람에게 충성을 다한다고 했다. 매번 집을 나가는 것도 친구에 빠져 충성하느라 그러는 것이라고 했다. 엄마는내가 아람을 졸졸 따라다니다가 ‘나쁜 물‘이 들었다고 했다.
"그게 아니야."
"그럼 왜 나갔는데. 네가 개처럼 엄마가 없어, 뭐가 없어."
할말이 없어졌다. 나는 내가 개를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의리가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같이 잡혀오면 잡혀왔지친구를 길거리에 두고 혼자 집에 돌아올 수는 없었다. 학교에서외부인 취급을 받는 친구들만이 내 유일한 내부인이었고, 누구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았기 때문에 외부인끼리 의리를 지켜주어야 한다고 여겼다. 의리를 지켜갈수록 나는 더욱 개 취급을 받았다. 아저씨들에게서 ‘개‘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아람과 소영은 비어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나는 모든 것이 머리 스타일 때문이라고 투덜거렸다. 소영은 생머리 때문에 배우처럼 보이는 것같았고, 아람은 하늘색 머리 때문에 아이돌 가수처럼 보이는 것같았다. 하지만 생머리를 한다고 해서 내가 배우처럼 보이지는않을 것이고 염색을 한다고 해서 가수처럼 보일 리도 만무했다. - P45

난간을 꼭 쥐고 아래쪽을 내려다보다가, 가방에 있는 것을 모조리 꺼내 하나씩 던져버리기 시작했다. 유리구슬을 던지고 교과서들을 던지고 필통을 열어 색연필을 던지고 샤프펜슬을 던지고 샤프심 통에서 샤프심을 꺼내 던졌다. 그리고 옥상을 내려왔다. 화단에는 내가 던져버린 것들이 깨어지거나 구겨지거나 부러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눈앞이 새하얘질 때까지 서 있었다. 사물의 윤곽이 사라졌을 때, 검게 다가오는 선 하나를 이명처럼 보았다. 주워들었다. 또각 부러졌다. 샤프심만이 하늘을가볍게 날아 무사하게 착지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목격했다.
가출 청소년은 샤프심처럼 힘이 없었다. 쉽게 부서질 수 있기때문에,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한 대, 두 대, 아저씨가 손을 올리고 고개가 돌아갈 때 땅이 휙휙 돌아가는 횟수를 셌다. 땅이 마구 흔들려 보이기 시작할 때쯤이면 누군가가 우리를 구해주었다. 아저씨에게서 우리를 구해주는 사람 역시 길거리의 모르는 아저씨였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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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대 대선도 과거 선거처럼 집권 세력에 의한 각종 용공음해와 불법·탈법 선거운동이 자행되었다. 특히 김대중 후보에 대한 극심한 매카시즘 공세가 전개되어 선거전을 정책 대결이 아닌 색깔론으로 몰아갔다. 보수 언론사는 기사와 논평을 통해 노골적으로 특정인을 지지하거나 배척하면서 정치문제로까지 비화시키는 등 낯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김대중 후보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대규모 청중동원 연설회 대신 몇 차례에 걸친 TV 토론회를 통해 유권자들이 후보를 직접 검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제위기를 맞아 이를 극복할 대안으로 김대중의 역량이 높이 평가되었다. 여기에 DJP 연합과 여당의분열이 작용해 정부 수립 이래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그동안 이 땅에서는 창업과 쿠데타 · 혁명 · 정변 · 반정 등 여러 가지형태의 권력 변환이 있었지만, 피지배 계층이 평화적 방법으로 권력을 교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1960년 민주당의 집권은 4월혁명 이후 ‘혁명 과정의 선거‘로 취득한 정권교체이고, 1992년 김영삼의 문민정부 출범은 3당 야합으로 얻어진, 군사정권의 모태에서 발생한 것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 P282

하지만 김대중 정부는 약체였다. 국회는 여전히 한나라당(대선 과정에서 신한국당이 이미지 쇄신을 위해 바꾼 당명)이 지배하고 지난 반세기 이상군사정권과 유착하면서 성장해온 거대 족벌신문과 지식인 그룹, 그리고 "정권을 빼앗겼다"고 앙앙불락하는 특정 지역의 기득권 세력이 버티면서 사사건건 새 정부를 헐뜯었다.

‘국민의 정부‘의 권력은 탄생 때부터 많은 고민을 안고 출발했다. 김 대통령은 유효 투표의 40.3퍼센트의 지지로 당선되었다. 이회창 후보보다 겨우 39만표 앞선 것이었다. 승부를 가른 이 39만 표는 김종필 총리의 지지기반인 충청권에서 나타난 김대중- 이회창 후보 간 표차와 정확히 일치하는 수치다. 김 총리가 공동정권 탄생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점이드러나는 부분이다.
이회창 총재가 이끄는 한나라당은 야당으로 입장이 바뀌었지만 여전히원내 제1당으로 막강한 국회 권력을 갖고 있었다. 39만 표의 격차에서 짐작되듯 표의 동서 양분 현상은 과거와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지난해 6월의 지방선거와 두 차례의 재·보궐선거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강화되었다. 말하자면 김대중 대통령의 권력은 소수정권인데다 그나마 권력이나뉜 연합정권의 구조적 취약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것이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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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선조들은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처마에 예쁘게 색칠한단청을 만든 것이다. 창문 밖으로 경치를 보았을 때 시야에서 윗부분을 프레임하는 것이 서까래와 처마다. 처마 부분은 외부 자연 경관을 담는 액자의 프레임이니, 장식이 들어간다면 이 부분에 했어야 했던 것이다. 재미난 것은 단청을 구성하는 색깔이다. 우리나라는 특이하게 대부분이 녹색 계통이고 강하게 보색이 되는 자줏빛을 사용한다. 이 색깔은일본이나 중국과는 다르다. 그 이유는 자연을 더 확장돼 보이게 하려는의도로 추측된다. 여름철에 처마에 서서 주변 산을 바라보면 자줏빛은 나뭇가지처럼 보이고, 녹색은 나뭇잎으로 보여서 주변 풍경이 연속되어 건축물의 일부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우리나라 단청이 왜 그렇게 명도가 높은 색상으로 된 것인지도 이해가된다. 처음에 서양인의 시점으로 건물을 밖에서 바라보면 단청의 채도가 너무 눈에 띄게 높아서 거슬린다. 그러나 안에서 밖을 바라보게 되면 이해가 된다. 어두운 실내에서 밖을 보면 자연은 밝고 처마 부분은그림자가 져서 어둡게 된다. 이때 녹색과 자줏빛을 채도가 낮은 차분한톤으로 칠하면 그림자 진 상태에서 칙칙해 보이고 자연과 건축의 경계가 명확해진다. 하지만 우리나라 단청 색깔처럼 채도가 높은 밝고 선명한 톤으로 칠하면 단청이 그림자에 들어가 있어도 밝은 바깥 경치와 연결돼 보인다. 나는 이런 경험을 불국사의 어느 처마 밑에서 할 수 있었다. 단청의 색깔만 보더라도 우리 선조들은 자연과 건축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건축물이 자연에 흡수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것은 건물 외부에 있는 객관적인 제3자의 시각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사람의 1인칭 시점에서 디자인적 판단을 내렸음을 알 수 있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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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강이가 죽을 것 같아."
나의 귀가시간이 늦어질 때마다 엄마는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거짓말인 걸 알면서도 허겁지겁 집에 달려갔다. 강이는 현관까지 뛰어와 엉덩이가 실룩거릴 정도로 꼬리를 흔들었다. 엄마의 말이 거짓말이어서 좋았다. - P9

꺼진 텔레비전 앞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있었다. 나의 미래처럼 캄캄했다. 나는 미래를 예측해본 적이 없었다. 미래를 다짐해볼 때는 많았다. 언젠가 먼 곳까지 가볼 것이다. 먼 곳에서 더 먼 곳을 향해 가며 살 것이다. 이불속에서 얌전하게 죽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종류의 다짐이었다. 다짐으로 점철된 미래를 펼쳐놓았다. 미래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예언이 내게는 다짐뿐이었다.
엄마는 크기가 다른 냄비를 써도 라면 물의 양을 정확히 예측했다. 반장은 중간고사에 어떤 문제가 나올지 정확히 예측했다.
선생은 무슨 말을 해야 아이들이 웃을지 예측했고, 아이들은 어떤 말을 해야 선생이 화를 낼지 예측했다. 그렇지만 나는 예측할수 있는 게 없었다. 읍내동에서 쌓아왔던 예측의 기술은 전민중학교에서 번번이 빗나갔다. 읍내동 중학교의 영어시간에는 유창한 발음으로 영어 교과서를 읽는 아이가 놀림의 대상이 되었지만, 전민중학교의 영어시간에는 모두가 원어민이 되었다. 내가읍내동에서 선행학습반에 뽑혀 한 학년 위의 수학 문제를 풀고있을 때, 전민동 아이들은 미분이니 적분이니 하는 두세 학년 위의 수학 문제를 풀었다. 이해받을 거라는 예측으로 던진 말에 선생들은 화를 냈고, 화낼 거라는 예측으로 던진 말에 친구들은 옷음을 터뜨렸다. 읍내동에서 그나마 똑똑한 아이로 취급받던 나는 전민동에 오자 멍청한 아이가 되었다. 달라지는 상황 앞에서도 예측이 정확한 사람은 대단한 사람처럼 보였다. 얼마나 많은냄비를 써봐야 어느 냄비를 쓰든 라면 물을 정확히 맞출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이 문제를 풀어봐야 어떤 선생이든 무슨 문제를 낼지 알아맞힐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이 꽃을 키워봐야 얼마나 많이 꽃을 죽여봐야 다짐을 더 자주 다지는 것밖에는 내가 나의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다짐에 골몰했다.
소영의 예측 방식은 달랐다. 내 방식이 먼 곳에 놓인 돌멩이를보려는 거라면, 다른 사람들의 방식이 쥐고 있는 돌멩이를 꾸준히 쥐고 있는 거라면, 소영은 돌멩이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바둑을 두는 방식이었다. 현실에 두는 돌 하나로 미래의 돌의 위치를바꿔놓았다. 소영의 곁에서 나는 까마득하게 느껴졌던 미래가 현실을 향해 마구 달려오는 것을 보고는 했다. 막연한 단어로만 꺼내보았던 미래가 현실 속에서 펼쳐지는 것을 목격했다. 소영은 현실이라는 그물로 미래를 포획하는 유일한 아이였다. 제 마음대로 꽃을 피우고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아이였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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