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의미 없이 라이터를 던지는 것처럼 우리는 별 기대 없이 아람에게로 향했다. 새 술집을 찾아내지 못했더라도 아람은 들뜬 목소리로 우리를 불러냈을 것이다. 소주병 뚜껑마다 다른 숫자가 적힌 걸 발견했다며 아이들을 불러냈고, 술집의 의자가 바뀌었다며 아이들을 불러냈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날에는 이전에 발견한 무언가를 처음 발견한 것처럼 말하며 아이들을 불러냈다. 아람은 발견한 모든 것을 좋다고 말했다. 아람은 좋아하는 것을 쉽게 늘려갔다. 소각장에 버려진 귀가 너덜너덜한 곰인형이라든가, 길가에서 주운 유리구슬 같은 것. 하찮아 보이는 것들을 줍고 아람은 쉽게 좋다고 했다. 아람의 들뜬 목소리에 아이들도 쉽게 호응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아무것도 아니게 모이는것. 아람은 그런 자리를 주선하는 유일한 아이였다. 우리가 각자아무것도 아닐 때에, 아무것도 아닌 것들로 우리를 뭉치게 했다. - P28
외제 사탕 통을 가지고 있는 소영이라면, 영어 교과서를 유창한 발음으로 읽어나가는 소영이라면, 지하철 정도는 타보았을 것이라고 여겼다. 소영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가만히 서있었다.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행인들만주시하면서 딴청을 부렸다. 대전을 벗어나고서야 전민동 아이 또한 충청도 아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소영의 크림색 정장바지가 촌스러워 보였다. 서울 아이들은 이런 바지를 입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서울 아이 또한 한국을 벗어난다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변방의 사람들이었다. - P38
"너는 개 닮았다야." 어려서부터 ‘강아지‘ ‘똥개‘ ‘개코‘ 같은 별명을 갖고 있었다. 강아지를 부르듯 혀를 차고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나를 부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에게는 개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고 사람들은말했다. 친구를 따라 화장실에 갈 때,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을때, 밥을 먹고 운동장을 산책할 때, 친구들은 내게 ‘개 같다‘고 했다. 왜냐는 반발에 친구들은 말했다. "졸졸 따라다니잖아." "먹자고 할 때까지 밥만 보면서 기다리잖아." "산책만 하면 킁킁대며 좋아하잖아." 남들은 내가 사람에게 충성을 다한다고 했다. 매번 집을 나가는 것도 친구에 빠져 충성하느라 그러는 것이라고 했다. 엄마는내가 아람을 졸졸 따라다니다가 ‘나쁜 물‘이 들었다고 했다. "그게 아니야." "그럼 왜 나갔는데. 네가 개처럼 엄마가 없어, 뭐가 없어." 할말이 없어졌다. 나는 내가 개를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의리가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같이 잡혀오면 잡혀왔지친구를 길거리에 두고 혼자 집에 돌아올 수는 없었다. 학교에서외부인 취급을 받는 친구들만이 내 유일한 내부인이었고, 누구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았기 때문에 외부인끼리 의리를 지켜주어야 한다고 여겼다. 의리를 지켜갈수록 나는 더욱 개 취급을 받았다. 아저씨들에게서 ‘개‘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아람과 소영은 비어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나는 모든 것이 머리 스타일 때문이라고 투덜거렸다. 소영은 생머리 때문에 배우처럼 보이는 것같았고, 아람은 하늘색 머리 때문에 아이돌 가수처럼 보이는 것같았다. 하지만 생머리를 한다고 해서 내가 배우처럼 보이지는않을 것이고 염색을 한다고 해서 가수처럼 보일 리도 만무했다. - P45
난간을 꼭 쥐고 아래쪽을 내려다보다가, 가방에 있는 것을 모조리 꺼내 하나씩 던져버리기 시작했다. 유리구슬을 던지고 교과서들을 던지고 필통을 열어 색연필을 던지고 샤프펜슬을 던지고 샤프심 통에서 샤프심을 꺼내 던졌다. 그리고 옥상을 내려왔다. 화단에는 내가 던져버린 것들이 깨어지거나 구겨지거나 부러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눈앞이 새하얘질 때까지 서 있었다. 사물의 윤곽이 사라졌을 때, 검게 다가오는 선 하나를 이명처럼 보았다. 주워들었다. 또각 부러졌다. 샤프심만이 하늘을가볍게 날아 무사하게 착지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목격했다. 가출 청소년은 샤프심처럼 힘이 없었다. 쉽게 부서질 수 있기때문에,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한 대, 두 대, 아저씨가 손을 올리고 고개가 돌아갈 때 땅이 휙휙 돌아가는 횟수를 셌다. 땅이 마구 흔들려 보이기 시작할 때쯤이면 누군가가 우리를 구해주었다. 아저씨에게서 우리를 구해주는 사람 역시 길거리의 모르는 아저씨였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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