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보다 한대나 온대 지방의 사람들이 더 행복한 이유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론이 나와 있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이론에 나는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면 죽어 이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이론에 따르면, 따뜻한 곳에서는 삶이 너무 편안하다. 다음 끼니가 코코넛 나무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식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은 선택 사항이다. 하지만 추운 곳에서는 협력이 필수다. 풍성한수확을 거두거나 대구를 푸짐하게 잡으려면 모두 협력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모두가 죽는다. 다 같이.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인지는 몰라도, 상호의존성은 틀림없이 애정의 어머니다. 우리 인간은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협력한다.
처음에는 순전히 이기적인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흐르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부분은 흐릿해지고 협력만 남는다. 우리가 남을 돕는 건 그럴 만한 능력이 있거나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나중에 보답을 받으려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아니다. 이것을 가리키는 단어가 하나 있다. 사랑. - P236

이처럼 국민들이 서로 가깝고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정부의 활동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실업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정치가들은 자기 동생의 가장 친한 친구가 실직했을 때 더관심을 보인다. 미국에서 인플레이션율은 1~2퍼센트를 넘지 않는선에서 아주 낮게 유지되어야 하지만 실업률은 5~6퍼센트 정도라도 괜찮다는 암묵적인 이해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생각은 정반대다. 실업률이 5퍼센트 수준에이르면, 온 나라에 난리가 난다. 대통령이 쫓겨날 정도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인들은 비교적 높은 인플레이션율을 잘 참는 편이다. 왜 이렇게 생각이 다른 걸까?
두 나라가 고통, 특히 경제적인 고통을 바라보는 자세가 다르기때문이다. 인플레이션율이 높을 때는 모두가 고통을 겪는다. 모든사람이 식품점이나 주유소에서 물가가 높아진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다들 조금씩 고통을 겪지만, 유난히 심한 고통을 겪는 사람은 없다. 실업은 선택적인 고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을 전혀 겪지 않는 반면, 비교적 소수의 사람들이 커다란 고통을 겪는다.
아니, 정말로 그런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업률 상승이 물가 상승보다 훨씬 더 전체적인 행복도를 떨어뜨린다. 일자리를 잃을지도모른다는 두려움이 수면에 퍼지는 잔물결처럼 온 나라로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 P247

뉴욕이나 상하이와 달리 레이캬비크에는 웅장함을 보여주는 환상이 없다. 이 도시는 우주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잘 안다.
그 자리가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알고 아무런 불만 없이 받아들인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삶이란 원래 이처럼 덧없는 것이라는 생각 덕분에 번영을 누리고 있다. 그런 생각 덕분에 항상 조심하는 자세를 잃지 않고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런 생각 덕분에 삶이 연약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는 점이다. 대도시들은 불멸의 존재인척 허세를 떤다. 자기가 워낙 크기 때문에, 자연을 정복했기 때문에, 죽음을 이길 수 있을 거라는 망상에 빠져 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자연이 항상 최종적인 결정권을 지니고있기 때문에 불멸성이라는 것이 웃기는 소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 P252

오랜 세월 동안 세계는 몇 번의 황금시대를 목격했다.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장소에서 사람들이 엄청난 창의력을 발휘하며 번영을누린다. 5세기의 아테네,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런던,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 20세기 말의 시애틀, 황금시대는 결코 오래 지속되는법이 없다. 황금시대는 프랑슘처럼 순식간에 스치듯 사라져버린다.
"역사를 보면, 도시의 황금시대는 아주 드물다. 그들은 특수한 빛이 들어오는 창문처럼 안과 밖의 세상을 잠깐 밝힌 뒤 다시 닫혀버린다." 영국의 역사가 피터 홀은 놀라운 저서 《문명 속의 도시Cities of Civilization》에서 이렇게 썼다.
이 자그맣고 변덕스러운 레이캬비크가 그 보기 드문 특수 창문일까? 여기가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 같다고 할 수는 없다. 그건 지나친 과장이 될 것이다. 하지만 두 도시에 공통점이 몇 가지 있기는 하다. 인구가 대략 9만5000명이라는 점. 그리고 14세기의 피렌체처럼 레이캬비크에도 창의적인 엘리트가 없다는 점, 모든 사람이 예술을 창조하고 즐긴다. - P261

피터 홀은 시기심이 비교적 눈에 띄지 않는 것이 황금시대의 확실한 특징이라고 말한다. 이건 그가 19세기 말의 파리를 설명하면서한 말이지만, 21세기의 레이캬비크에도 아주 잘 들어맞는다. "그들은 항상 함께 살고 일했다. 모든 혁신, 새로운 트렌드는 즉시 널리 알려져서 다른 사람들의 작업에 자유로이 통합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1900년의 파리 예술가들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신봉했다는 뜻이다. 아이슬란드인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들도 경쟁을 한다. 하지만 그들의 경쟁은 경쟁이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 그대로다. 경쟁을 뜻하는 단어 ‘compete‘의 어원은 라틴어의 ‘competure‘인데, 이 단어는 ‘함께 구하다‘라는 뜻이다.
그래, 내가 퍼즐 한 조각을 더 찾아낸 것 같다. 최소한의 시기심.
그래도 여전히 뭔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파리똥처럼 자그마한 이 나라의 인구에서 예술가와 작가의 비율이 다른 나라보다 더 높은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실패 때문입니다." 라루스가 안경을 콧등 위로 세게 밀어 올리면서 말한다.
"실패라고요?"
"예, 아이슬란드에서는 실패가 낙인이 되지 않습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실패를 오히려 찬양하죠."
- P265

제러드는 땅에서 지열이 만들어낸 황금처럼 뜨거운 물이 솟아오르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이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커피나 마시러오라며 남을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특별한 화제가 없는데도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떠는 것도 좋아한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애정 담긴 목소리로 자기 나라를 ‘얼음 덩어리‘라고 부르는 모습도 좋아한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국회의원 세 명의 이름을 금방 외울 수 있다는 점도 좋아한다. 상쾌한 겨울날 발밑에 밟히는 눈이 천국에서만든 스티로폼처럼 사박사박 소리를 내는 것도 좋아한다. 12월에 시내 중심부의 쇼핑가에 늘어서는 성가대도 좋아한다. 강하고 눈부신 그들의 목소리가 밤을 돌려놓는다. 다섯 살짜리 아이들이 새까만 어둠 속에서 혼자 학교까지 걸어가도 안전하다는 사실도 좋아한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와중에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때의 마술 같고 초자연적인 느낌도 좋아한다. 차가 눈 속에 갇혀 꼼짝도 할 수 없게 됐을때 항상 누군가 차를 멈추고 도와준다는 사실도 좋아한다. 비행기가 케플라비크의 국제공항에 내려앉으면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그저 집에 돌아온 게 기뻐서 박수를 치는 것도 좋아한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하늘 같은 자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조금도 오만하지 않은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물론 어둠도 좋아한다. 그는 어둠을 그냥 견디는 수준이 아니라 진심으로 좋아한다. - P288

사회과학자들은 예전부터 이런 현상을 연구하고 있다. 그들이 ‘문화적 적합성cultural fit‘이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행복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문화에도 나름의 성격이 있다.
예를 들어, 집단적인 문화가 있는가 하면 개인적인 문화가 있는 식이다. 일본처럼 유교의 영향을 받은 여러 나라의 집단적인 문화는개인의 행복보다 사회적인 조화를 더 중시한다. 미국 같은 개인주의문화권은 집단의 조화보다 개인의 만족감을 더 중시한다. 그래서 일본에는 "튀어나온 말뚝이 얻어맞는다"라는 유명한 속담 (우리나라의"모난 돌이 정 맞는다"와 같은 뜻 - 옮긴이)이 있고, 미국에서는 튀어나온 말뚝이 승진을 하거나 <아메리칸 아이돌>에 출연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은 삐죽삐죽 튀어나온 말뚝들의 나라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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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안함은 원래 혁명가에게 최악의 적이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모두 그렇듯이, 카타르도 석유의 저주에 시달리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석유가격과 민주주의 사이에 반비례 관계가 성립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바있다. 석유 가격이 오르면 민주화 움직임이 줄어든다. 석유가 풍부한 나라의 지도자들은 권력을 움켜쥔 손에서 힘을 뺄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는다. 그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모두들 편안하고, 따라서 행복한데. - P212

19세기, 즉 카타르라는 나라가 생겨나기 100년 전에,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에밀 뒤르켕은 ‘아노미 자살‘이라는 말을 썼다. 이것은 사회의 도덕이 흔들릴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뒤르켕은 엄청난 재앙이나 행운이 도덕을 흔들어버릴 수 있다고 믿었다.
재앙에 대해서는 이해가 간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절망으로 곤두박질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복권 당첨자나 석유부국의 국민들이 낙담하는 건 뜻밖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일어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소식, 이를테면 승진이나 갑작스러운 횡재 소식을 들었을 때 뜻밖에도 불안감이 언뜻 스쳐 지나가는 기묘한 경험을 한다. 주위 사람들도 잘됐다고 축하해주고 본인도 기분이 좋아야 마땅하다는 걸 아는데, 기분이 좋지 않다. 본인도 그 이유를 모른다. - P212

나는 압둘아지즈에게 카타르 같은 나라의 부족적 본성은 어떻게된 거냐고 묻는다. 행복을 위해 가족이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 아는사실이다. 그런데 부족이라는 것도 사실은 확대가족에 불과한 것 아닌가. 따라서 카타르 같은 부족사회가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특히 이 나라가 아주 부자라서 편안한 생활이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더 그렇다.
부족적인 삶이 자양분이 된다는 데에는 압둘아지즈도 동의한다.
부족은 안전망이다. 그런데 이 안전망이 오히려 목을 조이고 있다.
"여기서는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항상 누군가의 감시를 받기 때문에, 행여 말이나 행동에서 실수를 하지 않게 조심해야 돼요."
"비밀경찰이라도 있는 건가요?"
"아뇨." 압둘아지즈가 나의 무지를 가볍게 비웃으며 말한다. "가족이 감시하는 겁니다."
그가 계속 말을 잇는다. "외국인과 결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아니, 다른 부족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 해도 마찬가집니다. 사는 게 힘들어질 테니까요. 결혼할 수는 있지만, 그러려면 일종의 정치적 캠페인을 벌여야 합니다. 잔치를 열어 사람들의 마음을 바꿔놓아야 하거든요."
카타르에서는 돈이나 교육 수준보다도 부족 내의 지위가 더 중요하다.  - P223

그녀는 답장에서 고맙지만 행복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바로 어제세 살짜리 아들이 희귀병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현실을 잘못 읽은 것이다. 힌두교도들의 말처럼, 모든 것이 마야, 즉 환상임을 이번에도 깨닫지 못하다니. 무엇이든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 우리 인간은 아무것도 모른다. 전혀 무서운 생각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를 해방시키는 생각이기도 하다. 우리가 기뻐하는 것, 우리가 성취한 일은 모두 진짜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패배, 우리의 무시칼라도 마찬가지다. 그것들도 진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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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린포체의 말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친다. 경험이 필요하다는 말, 맞는 말이다. 삶을 기록하는 건 실제로 삶을 경험하는 걸 대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20분 동안 나는 테라스에 앉아 강물의 포효에 귀를 기울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완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수첩도 카메라도, 녹음기도 없다. 그저 나와 삶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악스레 달려드는 부탄의 살인 모기 떼도 있다. 지금은 이 정도 경험이면 충분하다.
- P145

하지만 절처럼 생긴 공항에 앉아 자그마한 텔레비전으로 활쏘기경기를 보며 맛없는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다 보니 아주 낯선 느낌이나를 압도한다. 차분함, 마약이나 술에 취해 느끼는 차분함과 다른..
진짜 차분함이다. 나는 펜을 꺼내 커다란 글씨로 수첩에 다음과 같은 말을 적는다. 사람들이 비행기 잔해 속에서 내 시신을 찾아냈을때 발견하기 쉬우라고 페이지 전체에 걸쳐 큼직하게 글자를 쓴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지금과 똑같이 살 것이다.
내 생애의 모든 순간, 지금까지 만난 모든 사람, 지금까지 했던 여행, 내가 이룩한 성공, 내가 저지른 실수, 내가 겪은 불행이 모두 내게 딱 맞았다. 그것들이 전부 좋았다거나,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일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난 저속한 숙명론 따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겪은 일들은 모두 내게 딱 맞았다. 그러니까 괜찮았다. 깨달음이라고 하기에는 꽤나 맥 빠진 소리라는 사실은 나도 안다. 괜찮다는 말은 행복을 뜻하지 않는다. 새로운 종교나 자기계발 운동의 기반이 되지도 못한다. 이 정도로는 오프라 윈프리가 나를 초대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는 말은 출발점이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고맙다.
- P158

갑작스럽게 생긴 재산과 행복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실험은 고안할 생각이라면, 카타르 같은 곳을 하나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페르시아만의 사막에서 낙후되고 빈곤한 지역을 골라 아주 많은양의 석유와 천연가스 약간을 쉬어 잘 휘저어준다. 아니면 자신의집안 전체가 아주 부자라고 가정하거나, 제정신을 잃어버릴 정도로엄청난 부자. 그런데 그 재산에 2를 곱한 뒤, 자신의 집안이 아라비아 반도 어딘가에 나라를 하나 소유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러면대충 카타르의 지금 모습과 맞아떨어진다. 사실 카타르는 나라라기보다 가문에 가깝다. 깃발을 하나 내세운 부족인 것이다.
••••••
카타르는 대략 코네티컷만 한 크기다. 하지만 코네티컷과 달리 카타르에는 유서 깊은 부자가 없다. 번쩍거리는 졸부들만 있을 뿐이다. 50년 전 카타르인들은 바다 속에서 진주를 따고 육지에서 양을 길러서 간신히 먹고살았다. 하지만 지금 카타르인들에게 진주라고하면, 자기 목을 감싸고 있는 수백만 달러짜리 진주 목걸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양이라고 하면, 새로 산 메르세데스 벤츠의 좌석을감싼 양가죽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역사상 한 나라가 이렇게 짧은 시일 안에 이렇게 부유해진 적은 거의 없었다.
- P169

게다가 중국인들은 오래된 절과 주택은 귀하게 여기지 않을지라도, 죽은 자를 기리는 일만큼은 확실히 해낸다. 중국인들은 조상숭배를 통해 과거와의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니 죽은 사람을 섬기는것이 죽은 건물을 섬기는 것에 비해 더 좋다거나 나쁘다는 식의 판단을 우리가 어찌 감히 내릴 수 있겠는가?
어쨌든 좋은 삶, 항복한 삶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자기보다 큰 어떤 것에 유대감을 느끼며 자신이 우주라는 레이더 스크린의 작은 점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큰 어떤 것의 일부임을 깨닫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계단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고 몰딩이 변색된 빅토리아 시대의 건물을 보며 이런 유대감을 느낀다. 그런가 하면, 20년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가족의 일원인 삼촌에게 선물 포장을 한 새 휴대전화를 사주는 것에서 그런 유대감을 느끼는 사람도있다.
영국의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은<<행복의 정복>> 이라는 저서의말미에서 행복한 사람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우주시민임을 느끼며, 우주가 보여주는 장관과 우주가 주는 기쁨을 흔쾌히 즐긴다. 그는 자신이 후세에 태어날 사람들과 분리되어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하며 고민에 빠지지 않는다. 우리는 생명의 물길과 이처럼 심오하고 본능적으로 하나가 되는것에서 가장 커다란 기쁨을 얻을 수 있다."
- P184

 카타르에는 문화가 없다. 솔직히 카타르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다. 우리도 수천 년 동안 사막에서 근근이 살아가며, 수시로 침략해오는 수많은 부족은 물론이고 무서운 더위와도 싸움을 벌이다 보면 문화를 가꿀 시간이 없을 것이다. 예전에 카타르 사람들의 삶은 문화를 가꿀 수 없을 만큼 가혹했다. 지금은 문화를 가꾸기에는 삶이 너무 편안하다. "창조적인 도시들은 사회적으로나지적으로나 커다란 어려움과 소란을 겪은 곳이다. 결코 편안한 곳이아니다." 영국의 역사가 피터 홀의 말이다.
카타르 국왕, 이 땅의 통치자는 이 나라의 문화 결핍 상태를 어떻게든 개선해볼 생각이다. 그래서 진정한 카타르인답게 그는 문화를 사들일 계획을 세웠다. 하는 김에 역사도 조금 곁들일 것이다. 괜찮은 계획인 것 같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돈이 제일이라 해도 돈의 힘은 미래에나 발휘된다. 돈의 힘은 100퍼센트 잠재력이다. 돈으로 미래를 건설할 수는 있지만 과거는 안된다. - P194

좋아, 잡담은 이만하면 됐다. 나는 용기를 짜내서 불쑥 심각한 질문을 던진다.
"행복하세요?"
한참 동안 불편한 침묵이 흐른다. 마침내 한 남자가 말한다. 살짝 짜증이 밴 목소리다. "왜 그런 걸 묻는 겁니까?"
행복하냐는 질문, 우리 미국인들이 날마다, 시간마다 곱씹는 그 질문이 카타르 같은 이슬람 국가에서는 별로 적절하지 않다. 내가 이 질문을 던지면 사람들이 조금 움찔하면서 정중하게 화제를 바꾸려 하는 것을 전에도 본 적이 있다. 이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건, 행복이 알라의 손에 달렸기 때문이다. 그건 사람의 일이 아니다. 우리가 행복하다면 그건 신의 뜻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불행하다면 그것 역시 신의 뜻이다. 행복하세요? 차라리 다리털을 밀었느냐고 물어보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어디로 도망치고 싶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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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만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우리가 자살을 하지 못하게 막는 요소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요소는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로마가톨릭을 믿는 나라들은 자살을 금지하는 교리 때문에 대개 자살률이 아주 낮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나라들이 행복하다는 뜻은 아니다. 훌륭한 정부, 의미 있는 직업, 가족 간의 강한 유대감, 이 모든 것이 행복에 기여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불행에 지쳐 낙담한 사람의 자살을 막는데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
어쩌면 행복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이 때로 절망의 진짜 원인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스위스의 유명한 저술가인 프란츠홀러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만약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할 겁니다. 젠장, 주위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제대로 돌아가는데, 나는 도대체 왜 행복하지 않지? 내 어디가 잘못된 거야?"
- P70

나는 사랑에 빠졌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는 여자가 아니다. 사람도 아니다. 스위스 철도망이다. 정말 사랑스럽다. 기차가 속삭이듯조용히 달리는 것도 사랑스럽고, 차량 사이의 미닫이 유리문이 품위있게 열리고 닫히는 것도 사랑스럽다. 재킷을 입은 승무원들이 금방뽑은 커피와 크루아상을 들고 돌아다니는 것도 사랑스럽고, 진짜 도자기 그릇에 맛있는 음식을 담아 내놓는 식당차도 사랑스럽다. 화장실의 나무 장식도 사랑스럽고, 가죽 의자도 사랑스럽고, 차에서 내릴 때가 되면 자그마한 플랫폼이 발밑에서 기적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사랑스럽다. 사실 영원히 스위스 기차를 타고 제네바, 바젤, 취리히 등지를 돌아다니고 싶다는 충동 때문에 어쩔 줄을 모르겠다. 어떻든 상관없다. 나는 여기 스위스 기차에서 행복해질 수 있을 것같다.
- P72

참을성과 권태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권태 중에는 사실 성급함이라고 해야 옳은 것도 있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싫고, 세상이 재미없어서 지루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권태는 마음이 결정하는 것이다).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 "권태를 견디지 못하는 세대는 소인배의 세대, 서서히 움직이는 자연과 심히 유리된 사람들의 세대, 생기 넘치는 충동이 죄다 꽃병에 꽂아놓은 꽃처럼 서서히 시들어가는 세대가 될 것이다."
스위스인들이 사실은 지루하지 않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밖에서 보기에 지루하게 보일 뿐이다.
- P75

스위스인들의 행복을 표현할 새로운 단어가 필요하다. 단순한 만족감보다는 크고, 완전한 기쁨보다는 조금 덜한 표현, 혹시 ‘만족기쁨(conjoyment contentment + joy, 저자가 만들어낸 말 - 옮긴이)?‘ 그래, 스위스인들의 상태가 바로 이것이다. 완전한 만족기쁨, 즐겁지만 들뜨지 않은 상태를 표현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즐겁다고 말할 때, 사실은 지나치게 흥분한 경우가 아주 많다. 우리가 느끼는 기쁨에는 광적인 측면이 있다. 패닉과 약간 비슷하다. 우리는 그 순간이 갑자기 끝나버릴까 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든든한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 초월적인 순간이나 황홀경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 조금 덜한 것, 스위스 같은 것을 말하는 거다.
바닥 청소를 하거나, 쓰레기를 분류하거나, 밥 딜런의 CD를 오랜만에 듣는 것처럼 평범한 일을 하면서 만족기쁨을 경험할 수도 있다. 그래, 바로 이거다. 스위스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지는 몰라도, 만족기쁨을 느끼는 법은 분명히 알고 있다.
- P85

‘주의를 기울인다‘는 말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단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마땅한데도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는 사랑과 행복에 경의를 표한다. 세상에, 생산성에도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 대해 뭐든 좋은 말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 바쁘게 사는 모양이다. 하지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없으면, 우리 삶은 공허하고 무의미하다.
내가 이 원고를 컴퓨터로 쓰는 동안 이제 두 살인 우리 딸이 내 발치에서 수선을 피운다. 저 아이는 무엇을 원할까? 내 사랑? 그래, 어떤 의미에서는 그럴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정말로 원하는 건 내가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여주는 것이다. 순수하게 자신에게만 주의를 기울여주는 것, 아이들은 거짓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을 금방 알아낸다. 어쩌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사실은 사랑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 둘은 항상 같이 존재한다. 영국의 학자 애브너 오퍼는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행복의 보편적인 도구"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뜻이다.
- P96

나는 여기에 왜 온 걸까? 부탄은 내 행복 지도 어디쯤에 들어가야할까? 그래, 이 나라는 힐턴의 샹그릴라를 닮았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다. 그것만으로도 이곳이 엄청나게 매력적으로 보인다.
행복이라는 말은 심지어 이 나라 국가에도 나온다. "부처님의 법이 융성할 때, 평화와 행복의 태양이 백성들을 비추기를." 부탄이 공식적인 정책으로 채택한 국민행복지수도 있다. 간단히 말해서, 국민행복지수란 경제적인 대차대조표 대신 국민들의 행복도(또는 불행도)를 기준으로 나라의 발전도를 측정하려는 정책을 말한다. 이 개념은 돈과 만족감, 국민에 대한 정부의 의무 등에 관해 이 나라 사람들이 우리와 얼마나 다른 생각을 가졌는지를 보여준다.
- P99

나는 다음 생에 부탄의 개로 태어나고 싶다. 녀석들은 아주 잘 살고 있다. 이유는? 마음이 있는 모든 생물을 존중하는 불교의 교리가분명히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확실히 숭고한 교리이기는 해도 보기만큼 이타적이지는 않다. 환생을 믿는다면, 다음 생에 자신이 말이나 소로 태어날 수도 있음을 믿는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말이나 소로 태어나도 잘 대접받기를 원할 것이다. 바바라크로셋이 히말라야의 불교 왕국들에 관해 쓴 책에는 링진 도르지가 이런 현상을 설명한 말이 인용되어 있다. "지금 내 어머니는 인간인지 몰라도, 내가 죽어 개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 그럼 내 어머니는 암캐일 것이다. 따라서 모든 생명체가 내 부모라고 생각해야 한다.
내 부모는 무한히 많다. 내 부모가 고통을 겪게 하면 안 된다."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내 어머니는 암캐일 것‘이라는 수상쩍은 말뿐만 아니라, 우리 부모가 무한히 많다는 심오한 말도 감동적이었다. 이건 우리가 모두 혈연으로 연결되어있다는 뜻이다.
- P106

카르마는 또다시 잠깐 침묵하다가 대답 대신 제안을 내놓는다. 처방전처럼, "사람은 매일 5분씩 죽음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병을 치유하고, 균을 없애줄 겁니다."
"어떻게요?"
"문제는 죽음에 대한 공포입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도전에, 아이들이 자라는 걸 보지도 못하고 죽을까 봐 걱정하는 마음.
그것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겁니다."
"하지만 매일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니, 정말 우울할 것 같은데요.
왜 그런 짓을 해야 하죠?"
"서구의 부자들은 죽은 시체, 새로 난 상처, 썩은 물건에 손을 대지 않습니다. 그게 문제예요. 인간은 그런 것들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는 순간을 미리 대비해야 해요." - P113

이미 세상을 떠난 다른 백인 남자는 이걸 다르게 표현했다. "자신이 행복한지 자문하는 순간 행복이 사라진다." 이 남자는 존 스튜어트 밀이다. ‘게처럼‘ 옆으로 걸어 행복에 접근해야 한다고 믿었던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부탄은 게들의 나라일까? 아니면 국민행복지수라는것 자체가 영리한 마케팅 책략인 걸까? 몇 년 전 아루바섬이 생각해낸 슬로건처럼? "아루바로 오세요. 행복이 살고 있는 섬."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내가 사기를 당한 걸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먼저 부탄 사람들은 그렇게 닳아빠지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너무 진지해서 탈이다. 이건 훌륭한 마케팅에는 저주가 되는 특징이다. 부탄 사람들은 국민행복지수를 진지하게받아들이고 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의미는 미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품이 톡톡 터지는 스마일 상징 같은 행복과는 많이다르다. 부탄 사람들에게 행복은 집단적인 노력을 뜻한다.
‘개인적인 행복‘이라는 말은 그들에게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카르마 우라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로빈슨 크루소의 행복을믿지 않습니다. 모든 행복은 관계 속에 있어요."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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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상이 있고 생각이 많은 사람이군요. 어떤 환경에서라도 당신은 자신 속에서 평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인생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자유롭고 심오한 사유,
세상의 어리석은 소란을 아주 무시할 줄 아는 것, 이 두 가지는 사람이 알 수 있는 최상의 축복입니다. 당신은 비록 쇠창살 안에 갇혀 살지만, 이 두 가지를 모두 지닐 수 있습니다.
디오게네스도 나무통 속에서 살았지만, 지상의 어느 황제보다도 행복했습니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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