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것만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우리가 자살을 하지 못하게 막는 요소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요소는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로마가톨릭을 믿는 나라들은 자살을 금지하는 교리 때문에 대개 자살률이 아주 낮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나라들이 행복하다는 뜻은 아니다. 훌륭한 정부, 의미 있는 직업, 가족 간의 강한 유대감, 이 모든 것이 행복에 기여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불행에 지쳐 낙담한 사람의 자살을 막는데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
어쩌면 행복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이 때로 절망의 진짜 원인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스위스의 유명한 저술가인 프란츠홀러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만약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할 겁니다. 젠장, 주위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제대로 돌아가는데, 나는 도대체 왜 행복하지 않지? 내 어디가 잘못된 거야?"
- P70

나는 사랑에 빠졌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는 여자가 아니다. 사람도 아니다. 스위스 철도망이다. 정말 사랑스럽다. 기차가 속삭이듯조용히 달리는 것도 사랑스럽고, 차량 사이의 미닫이 유리문이 품위있게 열리고 닫히는 것도 사랑스럽다. 재킷을 입은 승무원들이 금방뽑은 커피와 크루아상을 들고 돌아다니는 것도 사랑스럽고, 진짜 도자기 그릇에 맛있는 음식을 담아 내놓는 식당차도 사랑스럽다. 화장실의 나무 장식도 사랑스럽고, 가죽 의자도 사랑스럽고, 차에서 내릴 때가 되면 자그마한 플랫폼이 발밑에서 기적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사랑스럽다. 사실 영원히 스위스 기차를 타고 제네바, 바젤, 취리히 등지를 돌아다니고 싶다는 충동 때문에 어쩔 줄을 모르겠다. 어떻든 상관없다. 나는 여기 스위스 기차에서 행복해질 수 있을 것같다.
- P72

참을성과 권태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권태 중에는 사실 성급함이라고 해야 옳은 것도 있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싫고, 세상이 재미없어서 지루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권태는 마음이 결정하는 것이다).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 "권태를 견디지 못하는 세대는 소인배의 세대, 서서히 움직이는 자연과 심히 유리된 사람들의 세대, 생기 넘치는 충동이 죄다 꽃병에 꽂아놓은 꽃처럼 서서히 시들어가는 세대가 될 것이다."
스위스인들이 사실은 지루하지 않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밖에서 보기에 지루하게 보일 뿐이다.
- P75

스위스인들의 행복을 표현할 새로운 단어가 필요하다. 단순한 만족감보다는 크고, 완전한 기쁨보다는 조금 덜한 표현, 혹시 ‘만족기쁨(conjoyment contentment + joy, 저자가 만들어낸 말 - 옮긴이)?‘ 그래, 스위스인들의 상태가 바로 이것이다. 완전한 만족기쁨, 즐겁지만 들뜨지 않은 상태를 표현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즐겁다고 말할 때, 사실은 지나치게 흥분한 경우가 아주 많다. 우리가 느끼는 기쁨에는 광적인 측면이 있다. 패닉과 약간 비슷하다. 우리는 그 순간이 갑자기 끝나버릴까 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든든한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 초월적인 순간이나 황홀경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 조금 덜한 것, 스위스 같은 것을 말하는 거다.
바닥 청소를 하거나, 쓰레기를 분류하거나, 밥 딜런의 CD를 오랜만에 듣는 것처럼 평범한 일을 하면서 만족기쁨을 경험할 수도 있다. 그래, 바로 이거다. 스위스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지는 몰라도, 만족기쁨을 느끼는 법은 분명히 알고 있다.
- P85

‘주의를 기울인다‘는 말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단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마땅한데도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는 사랑과 행복에 경의를 표한다. 세상에, 생산성에도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 대해 뭐든 좋은 말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 바쁘게 사는 모양이다. 하지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없으면, 우리 삶은 공허하고 무의미하다.
내가 이 원고를 컴퓨터로 쓰는 동안 이제 두 살인 우리 딸이 내 발치에서 수선을 피운다. 저 아이는 무엇을 원할까? 내 사랑? 그래, 어떤 의미에서는 그럴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정말로 원하는 건 내가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여주는 것이다. 순수하게 자신에게만 주의를 기울여주는 것, 아이들은 거짓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을 금방 알아낸다. 어쩌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사실은 사랑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 둘은 항상 같이 존재한다. 영국의 학자 애브너 오퍼는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행복의 보편적인 도구"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뜻이다.
- P96

나는 여기에 왜 온 걸까? 부탄은 내 행복 지도 어디쯤에 들어가야할까? 그래, 이 나라는 힐턴의 샹그릴라를 닮았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다. 그것만으로도 이곳이 엄청나게 매력적으로 보인다.
행복이라는 말은 심지어 이 나라 국가에도 나온다. "부처님의 법이 융성할 때, 평화와 행복의 태양이 백성들을 비추기를." 부탄이 공식적인 정책으로 채택한 국민행복지수도 있다. 간단히 말해서, 국민행복지수란 경제적인 대차대조표 대신 국민들의 행복도(또는 불행도)를 기준으로 나라의 발전도를 측정하려는 정책을 말한다. 이 개념은 돈과 만족감, 국민에 대한 정부의 의무 등에 관해 이 나라 사람들이 우리와 얼마나 다른 생각을 가졌는지를 보여준다.
- P99

나는 다음 생에 부탄의 개로 태어나고 싶다. 녀석들은 아주 잘 살고 있다. 이유는? 마음이 있는 모든 생물을 존중하는 불교의 교리가분명히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확실히 숭고한 교리이기는 해도 보기만큼 이타적이지는 않다. 환생을 믿는다면, 다음 생에 자신이 말이나 소로 태어날 수도 있음을 믿는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말이나 소로 태어나도 잘 대접받기를 원할 것이다. 바바라크로셋이 히말라야의 불교 왕국들에 관해 쓴 책에는 링진 도르지가 이런 현상을 설명한 말이 인용되어 있다. "지금 내 어머니는 인간인지 몰라도, 내가 죽어 개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 그럼 내 어머니는 암캐일 것이다. 따라서 모든 생명체가 내 부모라고 생각해야 한다.
내 부모는 무한히 많다. 내 부모가 고통을 겪게 하면 안 된다."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내 어머니는 암캐일 것‘이라는 수상쩍은 말뿐만 아니라, 우리 부모가 무한히 많다는 심오한 말도 감동적이었다. 이건 우리가 모두 혈연으로 연결되어있다는 뜻이다.
- P106

카르마는 또다시 잠깐 침묵하다가 대답 대신 제안을 내놓는다. 처방전처럼, "사람은 매일 5분씩 죽음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병을 치유하고, 균을 없애줄 겁니다."
"어떻게요?"
"문제는 죽음에 대한 공포입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도전에, 아이들이 자라는 걸 보지도 못하고 죽을까 봐 걱정하는 마음.
그것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겁니다."
"하지만 매일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니, 정말 우울할 것 같은데요.
왜 그런 짓을 해야 하죠?"
"서구의 부자들은 죽은 시체, 새로 난 상처, 썩은 물건에 손을 대지 않습니다. 그게 문제예요. 인간은 그런 것들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는 순간을 미리 대비해야 해요." - P113

이미 세상을 떠난 다른 백인 남자는 이걸 다르게 표현했다. "자신이 행복한지 자문하는 순간 행복이 사라진다." 이 남자는 존 스튜어트 밀이다. ‘게처럼‘ 옆으로 걸어 행복에 접근해야 한다고 믿었던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부탄은 게들의 나라일까? 아니면 국민행복지수라는것 자체가 영리한 마케팅 책략인 걸까? 몇 년 전 아루바섬이 생각해낸 슬로건처럼? "아루바로 오세요. 행복이 살고 있는 섬."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내가 사기를 당한 걸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먼저 부탄 사람들은 그렇게 닳아빠지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너무 진지해서 탈이다. 이건 훌륭한 마케팅에는 저주가 되는 특징이다. 부탄 사람들은 국민행복지수를 진지하게받아들이고 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의미는 미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품이 톡톡 터지는 스마일 상징 같은 행복과는 많이다르다. 부탄 사람들에게 행복은 집단적인 노력을 뜻한다.
‘개인적인 행복‘이라는 말은 그들에게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카르마 우라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로빈슨 크루소의 행복을믿지 않습니다. 모든 행복은 관계 속에 있어요."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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