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보다 한대나 온대 지방의 사람들이 더 행복한 이유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론이 나와 있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이론에 나는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면 죽어 이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이론에 따르면, 따뜻한 곳에서는 삶이 너무 편안하다. 다음 끼니가 코코넛 나무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식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은 선택 사항이다. 하지만 추운 곳에서는 협력이 필수다. 풍성한수확을 거두거나 대구를 푸짐하게 잡으려면 모두 협력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모두가 죽는다. 다 같이.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인지는 몰라도, 상호의존성은 틀림없이 애정의 어머니다. 우리 인간은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협력한다. 처음에는 순전히 이기적인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흐르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부분은 흐릿해지고 협력만 남는다. 우리가 남을 돕는 건 그럴 만한 능력이 있거나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나중에 보답을 받으려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아니다. 이것을 가리키는 단어가 하나 있다. 사랑. - P236
이처럼 국민들이 서로 가깝고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정부의 활동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실업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정치가들은 자기 동생의 가장 친한 친구가 실직했을 때 더관심을 보인다. 미국에서 인플레이션율은 1~2퍼센트를 넘지 않는선에서 아주 낮게 유지되어야 하지만 실업률은 5~6퍼센트 정도라도 괜찮다는 암묵적인 이해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생각은 정반대다. 실업률이 5퍼센트 수준에이르면, 온 나라에 난리가 난다. 대통령이 쫓겨날 정도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인들은 비교적 높은 인플레이션율을 잘 참는 편이다. 왜 이렇게 생각이 다른 걸까? 두 나라가 고통, 특히 경제적인 고통을 바라보는 자세가 다르기때문이다. 인플레이션율이 높을 때는 모두가 고통을 겪는다. 모든사람이 식품점이나 주유소에서 물가가 높아진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다들 조금씩 고통을 겪지만, 유난히 심한 고통을 겪는 사람은 없다. 실업은 선택적인 고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을 전혀 겪지 않는 반면, 비교적 소수의 사람들이 커다란 고통을 겪는다. 아니, 정말로 그런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업률 상승이 물가 상승보다 훨씬 더 전체적인 행복도를 떨어뜨린다. 일자리를 잃을지도모른다는 두려움이 수면에 퍼지는 잔물결처럼 온 나라로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 P247
뉴욕이나 상하이와 달리 레이캬비크에는 웅장함을 보여주는 환상이 없다. 이 도시는 우주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잘 안다. 그 자리가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알고 아무런 불만 없이 받아들인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삶이란 원래 이처럼 덧없는 것이라는 생각 덕분에 번영을 누리고 있다. 그런 생각 덕분에 항상 조심하는 자세를 잃지 않고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런 생각 덕분에 삶이 연약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는 점이다. 대도시들은 불멸의 존재인척 허세를 떤다. 자기가 워낙 크기 때문에, 자연을 정복했기 때문에, 죽음을 이길 수 있을 거라는 망상에 빠져 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자연이 항상 최종적인 결정권을 지니고있기 때문에 불멸성이라는 것이 웃기는 소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 P252
오랜 세월 동안 세계는 몇 번의 황금시대를 목격했다.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장소에서 사람들이 엄청난 창의력을 발휘하며 번영을누린다. 5세기의 아테네,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런던,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 20세기 말의 시애틀, 황금시대는 결코 오래 지속되는법이 없다. 황금시대는 프랑슘처럼 순식간에 스치듯 사라져버린다. "역사를 보면, 도시의 황금시대는 아주 드물다. 그들은 특수한 빛이 들어오는 창문처럼 안과 밖의 세상을 잠깐 밝힌 뒤 다시 닫혀버린다." 영국의 역사가 피터 홀은 놀라운 저서 《문명 속의 도시Cities of Civilization》에서 이렇게 썼다. 이 자그맣고 변덕스러운 레이캬비크가 그 보기 드문 특수 창문일까? 여기가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 같다고 할 수는 없다. 그건 지나친 과장이 될 것이다. 하지만 두 도시에 공통점이 몇 가지 있기는 하다. 인구가 대략 9만5000명이라는 점. 그리고 14세기의 피렌체처럼 레이캬비크에도 창의적인 엘리트가 없다는 점, 모든 사람이 예술을 창조하고 즐긴다. - P261
피터 홀은 시기심이 비교적 눈에 띄지 않는 것이 황금시대의 확실한 특징이라고 말한다. 이건 그가 19세기 말의 파리를 설명하면서한 말이지만, 21세기의 레이캬비크에도 아주 잘 들어맞는다. "그들은 항상 함께 살고 일했다. 모든 혁신, 새로운 트렌드는 즉시 널리 알려져서 다른 사람들의 작업에 자유로이 통합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1900년의 파리 예술가들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신봉했다는 뜻이다. 아이슬란드인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들도 경쟁을 한다. 하지만 그들의 경쟁은 경쟁이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 그대로다. 경쟁을 뜻하는 단어 ‘compete‘의 어원은 라틴어의 ‘competure‘인데, 이 단어는 ‘함께 구하다‘라는 뜻이다. 그래, 내가 퍼즐 한 조각을 더 찾아낸 것 같다. 최소한의 시기심. 그래도 여전히 뭔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파리똥처럼 자그마한 이 나라의 인구에서 예술가와 작가의 비율이 다른 나라보다 더 높은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실패 때문입니다." 라루스가 안경을 콧등 위로 세게 밀어 올리면서 말한다. "실패라고요?" "예, 아이슬란드에서는 실패가 낙인이 되지 않습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실패를 오히려 찬양하죠." - P265
제러드는 땅에서 지열이 만들어낸 황금처럼 뜨거운 물이 솟아오르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이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커피나 마시러오라며 남을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특별한 화제가 없는데도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떠는 것도 좋아한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애정 담긴 목소리로 자기 나라를 ‘얼음 덩어리‘라고 부르는 모습도 좋아한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국회의원 세 명의 이름을 금방 외울 수 있다는 점도 좋아한다. 상쾌한 겨울날 발밑에 밟히는 눈이 천국에서만든 스티로폼처럼 사박사박 소리를 내는 것도 좋아한다. 12월에 시내 중심부의 쇼핑가에 늘어서는 성가대도 좋아한다. 강하고 눈부신 그들의 목소리가 밤을 돌려놓는다. 다섯 살짜리 아이들이 새까만 어둠 속에서 혼자 학교까지 걸어가도 안전하다는 사실도 좋아한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와중에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때의 마술 같고 초자연적인 느낌도 좋아한다. 차가 눈 속에 갇혀 꼼짝도 할 수 없게 됐을때 항상 누군가 차를 멈추고 도와준다는 사실도 좋아한다. 비행기가 케플라비크의 국제공항에 내려앉으면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그저 집에 돌아온 게 기뻐서 박수를 치는 것도 좋아한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하늘 같은 자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조금도 오만하지 않은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물론 어둠도 좋아한다. 그는 어둠을 그냥 견디는 수준이 아니라 진심으로 좋아한다. - P288
사회과학자들은 예전부터 이런 현상을 연구하고 있다. 그들이 ‘문화적 적합성cultural fit‘이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행복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문화에도 나름의 성격이 있다. 예를 들어, 집단적인 문화가 있는가 하면 개인적인 문화가 있는 식이다. 일본처럼 유교의 영향을 받은 여러 나라의 집단적인 문화는개인의 행복보다 사회적인 조화를 더 중시한다. 미국 같은 개인주의문화권은 집단의 조화보다 개인의 만족감을 더 중시한다. 그래서 일본에는 "튀어나온 말뚝이 얻어맞는다"라는 유명한 속담 (우리나라의"모난 돌이 정 맞는다"와 같은 뜻 - 옮긴이)이 있고, 미국에서는 튀어나온 말뚝이 승진을 하거나 <아메리칸 아이돌>에 출연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은 삐죽삐죽 튀어나온 말뚝들의 나라다. - P2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