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포체의 말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친다. 경험이 필요하다는 말, 맞는 말이다. 삶을 기록하는 건 실제로 삶을 경험하는 걸 대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20분 동안 나는 테라스에 앉아 강물의 포효에 귀를 기울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완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수첩도 카메라도, 녹음기도 없다. 그저 나와 삶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악스레 달려드는 부탄의 살인 모기 떼도 있다. 지금은 이 정도 경험이면 충분하다. - P145
하지만 절처럼 생긴 공항에 앉아 자그마한 텔레비전으로 활쏘기경기를 보며 맛없는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다 보니 아주 낯선 느낌이나를 압도한다. 차분함, 마약이나 술에 취해 느끼는 차분함과 다른.. 진짜 차분함이다. 나는 펜을 꺼내 커다란 글씨로 수첩에 다음과 같은 말을 적는다. 사람들이 비행기 잔해 속에서 내 시신을 찾아냈을때 발견하기 쉬우라고 페이지 전체에 걸쳐 큼직하게 글자를 쓴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지금과 똑같이 살 것이다. 내 생애의 모든 순간, 지금까지 만난 모든 사람, 지금까지 했던 여행, 내가 이룩한 성공, 내가 저지른 실수, 내가 겪은 불행이 모두 내게 딱 맞았다. 그것들이 전부 좋았다거나,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일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난 저속한 숙명론 따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겪은 일들은 모두 내게 딱 맞았다. 그러니까 괜찮았다. 깨달음이라고 하기에는 꽤나 맥 빠진 소리라는 사실은 나도 안다. 괜찮다는 말은 행복을 뜻하지 않는다. 새로운 종교나 자기계발 운동의 기반이 되지도 못한다. 이 정도로는 오프라 윈프리가 나를 초대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는 말은 출발점이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고맙다. - P158
갑작스럽게 생긴 재산과 행복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실험은 고안할 생각이라면, 카타르 같은 곳을 하나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페르시아만의 사막에서 낙후되고 빈곤한 지역을 골라 아주 많은양의 석유와 천연가스 약간을 쉬어 잘 휘저어준다. 아니면 자신의집안 전체가 아주 부자라고 가정하거나, 제정신을 잃어버릴 정도로엄청난 부자. 그런데 그 재산에 2를 곱한 뒤, 자신의 집안이 아라비아 반도 어딘가에 나라를 하나 소유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러면대충 카타르의 지금 모습과 맞아떨어진다. 사실 카타르는 나라라기보다 가문에 가깝다. 깃발을 하나 내세운 부족인 것이다. •••••• 카타르는 대략 코네티컷만 한 크기다. 하지만 코네티컷과 달리 카타르에는 유서 깊은 부자가 없다. 번쩍거리는 졸부들만 있을 뿐이다. 50년 전 카타르인들은 바다 속에서 진주를 따고 육지에서 양을 길러서 간신히 먹고살았다. 하지만 지금 카타르인들에게 진주라고하면, 자기 목을 감싸고 있는 수백만 달러짜리 진주 목걸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양이라고 하면, 새로 산 메르세데스 벤츠의 좌석을감싼 양가죽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역사상 한 나라가 이렇게 짧은 시일 안에 이렇게 부유해진 적은 거의 없었다. - P169
게다가 중국인들은 오래된 절과 주택은 귀하게 여기지 않을지라도, 죽은 자를 기리는 일만큼은 확실히 해낸다. 중국인들은 조상숭배를 통해 과거와의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니 죽은 사람을 섬기는것이 죽은 건물을 섬기는 것에 비해 더 좋다거나 나쁘다는 식의 판단을 우리가 어찌 감히 내릴 수 있겠는가? 어쨌든 좋은 삶, 항복한 삶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자기보다 큰 어떤 것에 유대감을 느끼며 자신이 우주라는 레이더 스크린의 작은 점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큰 어떤 것의 일부임을 깨닫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계단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고 몰딩이 변색된 빅토리아 시대의 건물을 보며 이런 유대감을 느낀다. 그런가 하면, 20년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가족의 일원인 삼촌에게 선물 포장을 한 새 휴대전화를 사주는 것에서 그런 유대감을 느끼는 사람도있다. 영국의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은<<행복의 정복>> 이라는 저서의말미에서 행복한 사람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우주시민임을 느끼며, 우주가 보여주는 장관과 우주가 주는 기쁨을 흔쾌히 즐긴다. 그는 자신이 후세에 태어날 사람들과 분리되어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하며 고민에 빠지지 않는다. 우리는 생명의 물길과 이처럼 심오하고 본능적으로 하나가 되는것에서 가장 커다란 기쁨을 얻을 수 있다." - P184
카타르에는 문화가 없다. 솔직히 카타르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다. 우리도 수천 년 동안 사막에서 근근이 살아가며, 수시로 침략해오는 수많은 부족은 물론이고 무서운 더위와도 싸움을 벌이다 보면 문화를 가꿀 시간이 없을 것이다. 예전에 카타르 사람들의 삶은 문화를 가꿀 수 없을 만큼 가혹했다. 지금은 문화를 가꾸기에는 삶이 너무 편안하다. "창조적인 도시들은 사회적으로나지적으로나 커다란 어려움과 소란을 겪은 곳이다. 결코 편안한 곳이아니다." 영국의 역사가 피터 홀의 말이다. 카타르 국왕, 이 땅의 통치자는 이 나라의 문화 결핍 상태를 어떻게든 개선해볼 생각이다. 그래서 진정한 카타르인답게 그는 문화를 사들일 계획을 세웠다. 하는 김에 역사도 조금 곁들일 것이다. 괜찮은 계획인 것 같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돈이 제일이라 해도 돈의 힘은 미래에나 발휘된다. 돈의 힘은 100퍼센트 잠재력이다. 돈으로 미래를 건설할 수는 있지만 과거는 안된다. - P194
좋아, 잡담은 이만하면 됐다. 나는 용기를 짜내서 불쑥 심각한 질문을 던진다. "행복하세요?" 한참 동안 불편한 침묵이 흐른다. 마침내 한 남자가 말한다. 살짝 짜증이 밴 목소리다. "왜 그런 걸 묻는 겁니까?" 행복하냐는 질문, 우리 미국인들이 날마다, 시간마다 곱씹는 그 질문이 카타르 같은 이슬람 국가에서는 별로 적절하지 않다. 내가 이 질문을 던지면 사람들이 조금 움찔하면서 정중하게 화제를 바꾸려 하는 것을 전에도 본 적이 있다. 이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건, 행복이 알라의 손에 달렸기 때문이다. 그건 사람의 일이 아니다. 우리가 행복하다면 그건 신의 뜻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불행하다면 그것 역시 신의 뜻이다. 행복하세요? 차라리 다리털을 밀었느냐고 물어보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어디로 도망치고 싶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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