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의 협박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연구서 죽음과 죽어감』(1971)에서 불치병이라는 진단에 반응하는 다섯단계라는 유명한 모델을 선보였다. 첫번째 단계는 부정이다.
부정은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는 태도다("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어). 두 번째 단계는 사실을 더는 부정할 수 없어 터지는 분노다(‘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세 번째 단계는 사실을 어떻게든 미루거나 축소시키려는 타협의 태도다(‘적어도 애들이 학교 마치는 것은 보게해줘‘), 네 번째 단계는 우울증이다(성적 관심의 급감, 공허한감정, ‘어차피 죽을 텐데 그런 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는 체념과 수용이다(‘어차피 내가 바꿀 수있는 게 없구나. 준비라도 잘 해두자‘). - P7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물밀 듯 몰려오는 난민 행렬을 바라보는 서구 여론과 각국 정부의 반응도 이 다섯 단계 감정이 혼재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정. 한사코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보인다(갈수록 줄어드는 태도이기는하다). ‘뭐 별일 아니네, 그냥 무시해버려‘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난민은 우리 생활방식을 심각하게 위협해. 그들중에는 이슬람 과격분자도 숨어 있다고,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반드시 막아야 해!‘ 타협을 해보려는 안간힘도 나타난다. ‘좋아, 난민을 몇 명이나 받아들일지 할당량을 정해 나누자고.
그들 나라에 난민 수용시설을 세워 지원해주는 것은 어때! 우울증 반응이 나타난다. ‘우린 망했어. 유럽은 우리 눈앞에서 유로파스탄Europastan이 되고 말 거야!‘ 끝내 없는 것은 난민을 수용하려는 자세다. 다시 말해 난민 문제를 범유럽적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일관된 계획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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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지난 50년간 학위 논문과 학술 논문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사회학자 J. 로저스 홀링스워스가 『네이처』에서 썼듯 "사실 창의적인 연구는 비교적 일정하게 배출되었다". 우리는 전문성의, 심지어 재능의 홍수를 겪고있지만 창조적 도약의 급증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앞에서 말했듯 전문화다. 우리는 세상을 점점잘게 쪼갰다. 이 때문에 오늘날 각 분야마다 어마어마한 양의 지식이 쌓였다. 천재가 자기 분야에서 축적된 지식을 모두 습득한 뒤에야 나름대로 기여할 수 있다면, 엄두가 나겠는가? 물리학자나 생물학자는 평생 남의 연구를 공부해본들 간에 기별도 안 갈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열등생이었다. 그가 엘리트와 지성인의 언어인 라틴어를 그럭저럭 배운 것은 중년이 훌쩍 지나서였다.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통념을 견디지 못했다. 약 500년 뒤 심리학자 에드윈 보링이 "나쁜 지식에는 무지한 것이 상책이다"라고 말했는데, 레오나르도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피렌체에 대학이 없던 것은 축복이었다. 도시학자 피터 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덕에 피렌체는 ‘학문의 구속복‘에 갇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P201

다시 르네상스 여명기 피렌체의 상태를 떠올려보라. 교회는 재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취약했다. 수도사들은 덕을 독점할 수 없었다. 아무도 그럴 수 없었다. 아테네와 항저우에서 보았듯 모든황금기는 옛 질서가 무너졌으나 새 질서는 아직 확립되지 않은 공백기 무한 경쟁이 벌어진다. 농구의 점프볼처럼 누구나 모든 것을 잡을 수 있는 시기, 창조적 천재가 승승장구하는 시기다. 하지만 이런 이행기는 어떻게 찾아오는 걸까? - P204

물론 끔찍한 시기였지만 이런 게 르네상스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아주 많은 관계가 있다. 흑사병은 1348년에 발생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로부터 고작 두 세대 만에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만개했다. 두 사건의 발생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역병은 참화를 불러오긴 했지만 기존 질서를 뒤흔들었다. 신분제가 순식간에 와해되었다. 문 반대편에 있던 사람이 죽어버리자 닫힌 문이 갑자기 열렸다. 역병은 황금기의 필수 요소인 불안정을낳았다.
다시 한번 돈이 반짝이는 머리를 쳐든다. 역병은 ‘상속 효과‘도 만들어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졸지에 사라지면서 도시의 자본이 더 소수의 손에 들어왔다. 여윳돈으로 무언가를 해야 했다. 하지만 대체 무엇을? 그럴 만도 하지만 상인들은 새 사업에 투자하기를 꺼렸다. 왜였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지만 그들은 문화에 투자했다. 경제사가 로버트 로페즈에 따르면 위대한 예술품과 희귀본서적이 갑작스럽게 "개인이나 국가를 엘리트 집단에 들여보내는 마법의 암호"가 되었다. 문화는 이제 이길 수밖에 없는 내기였다.
미국 재무부 증권 못지않은 안전한 투자처였다.
이런 새로운 현실을 맞닥뜨린 후원자와 미술가는 수 세기 뒤까지도 여전히 우리의 숨을 멎게 하는 미술품을 의뢰하고 창작했다.
한편 역병의 창궐을 막지 못한 교회는 도덕적 정당성을 대부분 잃었으며, 세속적 인문주의자들이 그 공백을 메웠다. 이 사건들 중어느 것도 흑사병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P206

"미술사에서 <다비드>상과 같은 것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어요. 표현해야 할 것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한 작품이었으니까요. 피렌체인들은 이 작품을 보자마자 알았어요. <다비드> 상이야말로 고대작품을 능가한 첫 미술품이라는 사실을요. 그들은 고대의 정점을보았어요. 제2의 <다비드> 상은 결코 탄생하지 않을 거예요."
어쩌면 이게 천재적 작품의 가장 정확한 정의인지도 모르겠다.
업그레이드 시도가 헛되고 어리석은 작품. - P212

하지만 5분 이상 지난 아이디어를 철저히 경멸하는 실리콘밸리의 새것 집착 성향은 공유하지 않았다. 계몽된 스코틀랜드인들은 의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역사를 깊이 존중했다. 역사를 적어도 읽을 만한 역사를 발명한 것은 스코틀랜드인이다(투키디데스, 미안). 그들은 이 분야를 ‘추측한 역사‘라고 부르는데, 오늘날 데이비드 매컬로 같은 작가의 작품이나 역사소설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인에게 역사는 단순히 흥밋거리가 아니었다. 역사는유용했다. 스코틀랜드인이 과거를 공부한 것은 현재를 이해하고 당연히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고대 로마인과 고대 중국인처럼 그들은 예리한 역사 감각이 없는 자는 데이비드 흄 말마따나 "영원히 어린아이의 이해에 머물‘ 운명임을 알았다. 천재에게는 액셀뿐 아니라 백미러도 필요하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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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키오 같은 멘토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들은 창의성의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요소다. 아무리 명석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어도 거인의 어깨에 올라설 수 있도록 역할 모델은 있어야 한다. 사회학자 해리엇 저커먼은 노벨상 수상자 아흔네 명을 대상으로 방대한 연구를 진행해 이들이 살아가면서 핵심 멘토를 만났기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런데 멘토와의 관계에서 정확히 어떤 도움을 얻었는지 묻자 학문적 지식은 맨 꼴찌였다. 그렇다면 그들은 멘토에게서 무엇을 배웠을까?
그 답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은 사고방식일 것이다. 대답이 아니라 물음을 던지는 방법. 일종의 응용 창의성, 우리는 대개 창의성을 문제 해결이라는 좁은 범주에서 생각한다. 어려운 수수께끼를 제시받고서 ‘창의력‘을 발휘하여 주어진 문제를 해결한다는 식이다. 이것도 대견하기는 하지만,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를 모르는 상황이라면?
그땐 ‘문제 찾기‘에 착수하면 된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질문에 대답한다. 문제를 찾는 사람은 새로운 질문을 발견한 다음 그질문에 대답한다. 천재를 구별하는 특징은 정답이 아니라 이런 새로운 질문이다. 그래서 피카소는 이런 재담을 남겼다. "컴퓨터는 멍청하다. 정답밖에 못 내놓으니까."
문제를 찾는 사람의 가장 적절한 예는 다윈일 것이다. 아무도 그에게 다가가 "찰스, 진화론을 고안해주게"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서로 다른 종 사이의 설명되지 않은 유사성이라는 문제를 발견한 뒤 종합적 이론으로 이를 해결했다. 이 모든 과정은 그가 선택한 분야인 생물학 안에서 이루어졌다. 창의적 사고를 독자적으로구사한 게 아니었다. - P177

르네상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한 팀의 결실이었다. 물론 몇몇 별이 찬란하게 빛나긴 했지만, 그들은 훨씬 큰 별자리의, 또한 너른 하늘의 일부였다. 예술은 집단의 사업이었으며 모두에게 속했다. 피렌체의 미술가 중에서-심지어 내향적인 미켈란젤로조차도 혼자 힘으로만 창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술가들은 도시나 교회를 위해, 또는 후손을 위해 작품을 만들었다. 참된 천재성은 결코 개인의 문제일 수 없다. 언제나 공동의 문제다.
언제나 그 자체보다 크다. - P181

"르네상스는 똥도 많이 쌌습니다"라는 그의 훨씬 불경한 단언이 무슨 뜻인지도 알겠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발끈했지만 유진은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는 르네상스 시대를 인간 창조성의 정점으로 여기지만, 이 시대는 형편없는 예술과 형편없는 아이디어의 주맥이기도 했다.
오늘날 천재로 추앙받는 수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에디슨이 보유한 1093개의 특허 중 상당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발명품이다. 피카소의 작품 2만점 중 상당수는 걸작과는 거리가 멀다.
문학 분야를 보자면 W. H. 오든 말마따나 "일류 시인은 일생 동안형편없는 시를 이류 시인보다 훨씬 많이 쓴다".
이유는 간단하다. 표적을 겨냥하여 화살을 많이 날릴수록 명중할 가능성이 커지지만 빗맞은 화살도 많아진다. 하지만 미술관과 도서관에는 빗맞은 화살이 아니라 명중한 화살만 보존된다.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일이다. 이 때문에 천재가 처음부터 옳고 실수하지 않는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생겨난다. 실은 천재 아닌 사람들보다 실수를 더 많이 저지르는데도 말이다. - P186

위험을 감수하는 전통은 예술계에도 흘러들었다. 부유한 후원자들은 승산이 낮은 말에 돈을 걸었다. 미켈란젤로와 시스티나 성당이 그 좋은 예다. 약 500년이 지난 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 프레스코화 작업의 적임자로 통한다. 하나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미켈란젤로는 화가가 아니라 조각가로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물론 그림을 그리기는 했지만 대부분 소품이었으며 프레스코화는거의 없었고 규모도 훨씬 작았다. 하지만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로 낙점했다. 교황은 메디치가의 후원 철학을 따랐다. 명백한 재능을 가진 사람을 골라 그에게 불가능한 임무를 맡기는 것.
그가 그 임무에 어울리지 않더라도, 그가 그 임무에 어울리지 않다면 더더욱.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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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튜링은 1948년 영국 국립물리학연구소에 제출한 보고서 「지능을 가진 기계 (Intelligent Machinery)」에 이렇게 썼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파괴한 ‘혁명선언‘이었다.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확실한 이유는 사람의 어떤부위에 대해서든 흉내 내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의 주 관심사는 신경계다. 전자 계산 기계에 쓰는 전기 회로는신경의 본질적 속성을 가진 듯하다. 전기 회로는 정보를 전송하고저장할 수 있다. 신경은 매우 작고 닳지 않으며 에너지 소비량이매우 적다. 전자 회로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매력은 속도인데,
그 이점이 하도 커서 신경의 이점을 덮고도 남을 것이다. 생각하는기계를 만들기 위해 ‘뇌‘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탐구할 것을 제안한다. 기계가 능력을 발휘하기에 알맞은 분야로는 체스와 포커 같은 게임, 언어 학습, 언어 번역, 암호학, 수학 등이 유망하다. - P377

인공지능은 새로운 산업 분야를 창출하고 전통산업을 혁신하며 생산방식과 경제의 구조를 바꾼다.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혁신하는지 아무도 조망하지 못하는 가운데 모든 것이 달라지고있다. 최근의 기술 발달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그 양상은 다음과 같다."

1차 산업혁명은 18세기 중반 영국의 섬유산업에서 시작해 공작기계, 증기기관, 철도, 통신, 선박운송 등의 산업을 혁신하고 제국주의와 환경 파괴를 낳으며 세계를 부유하게 만들었다. 1870년경 찾아든 2차 산업혁명은 라디오, 전화기, 텔레비전, 전기, 가전, 자동차, 도로, 항공기, 플라스틱, 비료, 보건 등의 산업을 창출해 현대적인 세계를 만들었다. 1950년대에 출발한 3차 산업혁명은 정보기술과 디지털 컴퓨팅을 통해 경제 사회 시스템과 일상의 삶을 극적으로 바꿨다. 막 시작된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생명공학, 첨단소재, 양자컴퓨터 등의 기술이 융합해 기존의 생산, 유통, 소통, 협력 시스템을 파괴적으로 바꾸는 기술혁명이다. 일상의 삶과 사회적 규범이 조정을 겪게 될 것이다. 세상은 초연결사회, 초지능사회로 진전한다. 사물인터넷과 클라우드 등 정보통신기술이 인간과 인간, 사물과 사물, 인간과 사물을 연결하며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세상을 주도하게 된다. - P382

사람들은 생산활동에 참여할 때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물질적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단계에 조응(照應)하는 생산관계에 편입된다. 이 생산관계의 총체가 사회의 경제적 토대를 이루고 그 위에 법적·정치적 상부구조가 조성되며, 또 거기에 여러 형태의 사회적의식이 만들어진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양식이 사회적·정치적·정신적 생활과정 전반을 제약한다.

자본주의체제가 내부 모순으로 무너지고 공산주의사회가 오리라고 한 마르크스의 주장은 오류로 드러났다. 그러나 생산력발전이 사회조직과 사상과 문화의 변화를 가져오는 동력이라는 견해는 하나의 이론으로 존재할 자격이 충분하다. 우리가 지금 그런 현상을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자본주의는 사회주의혁명이 아니라 과학혁명이 일으키는 물질적 생산력의 발전을 통해 다른체제로 이행할 것이다. - P384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지구의 주인이자 생태계 파괴자인 호모사피엔스가 신이 되려고 한다면서, 힘은 세지만 책임의식은 없는 신이 가장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인간이 당장 신이 된다면 틀림없이 그런 신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인간이 신이 되리라고 보지 않는다. 인류가 유전자를 조작해 생명을 창조하고 파괴하는 능력을 확보할 때까지 살아남을 확률이 핵전쟁이나 기후변화로 그 이전에 절멸할 확률보다 높다는 보장이 없다. 만약 절멸의 운명을 피하는 데 성공할 만큼 인류가 현명해진다면 어느 정도 책임의식을 지닌 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예상치 못한 결론에 이르렀다. 어떤 경우든 우리가 아는 ‘역사의 시간‘은 머지않아 끝난다. 논리적으로는! -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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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전쟁 막바지에 과학자와 엔지니어 5천여 명을 동원해 공군의 열세를 극복할 신무기를 개발했다. 세계 최초의 탄도미사일 V2 (보복병기 2호)였다. 고성능 폭약 1t을 탑재한 14t짜리 미사일 V2는 1944년 말부터 아무 예고 없이 런던 시내에만 1,150발이 날아와 1만 명 가까운 시민을 죽거나 다치게 했다. 미군은 독일을 점령하자마자 V2 조립공장을 찾아내 100발을 만들 수 있는부품을 실어갔다. 소련군은 한발 늦었지만 더 많은 부품을 확보했다. 그들은 탄도미사일이 폭탄의 날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P318

 과학자와 지식인 사회의 반핵 여론이 높아지고 대중이 반핵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1955년7월 9일, 아인슈타인과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이 런던에서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을 발표했다. ‘캐슬‘ 폭발 실험의 참상을 보고 세계 각국에서 핵무기 반대 강연을 하던 러셀의 주장에 아인슈타인이 동의해 작성한 선언문에는 여러 나라의 저명한 과학자 아홉명이 연대 서명을 했다. 군비축소와 전쟁 억제의 첫걸음으로 핵무기를 버릴 것을 요구하고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그들은 이렇게 호소했다.

우리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호소합니다. 인간성 이외의 모든 것을잊으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 앞에 놓인 길이 여러분을 새로운 낙원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 앞에 놓인 길은 지구의 종말로 치달을 것입니다. - P321

1939년 8월 2일,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과학 셀럽‘ 알베르트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미국에는 나치의 유대인 박해와 독재를 피해 유럽에서 망명한 과학자가 많았고 로버트 오펜하이머 (Robert Oppenheimer)처럼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천재 물리학자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핵폭탄제조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히틀러가 먼저 만들가능성을 걱정하다가 아인슈타인에게 편지 작성을 부탁했다. 편지의 핵심은 이랬다.

페르미와 실라르드의 연구를 통해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우라늄을이용해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당신의 관심과 즉각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대량의 우라늄으로 핵분열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으며, 그 연쇄반응은 엄청난 에너지와대량의 새로운 원소를 만들어냅니다. 이것은 엄청나게 강력한 폭탄 제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을지명해 행정부에 진전 상황을 알리고 적절한 대응책을 권고하게하며, 연구시설을 갖춘 기업과 협력을 촉진하고 예산을 지원해 실험을 독려하기 바랍니다. 독일이 최근 체코슬로바키아의 우라늄광석 판매를 중단시킨 것은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독일 국무부차관의 아들 폰 바이츠자커가 우리와 비슷한 우라늄 연구를 수행하는 베를린 소재 카이저-빌헬름 연구소에 배속됐기 때문입니다.
- P314

미국은 나치독일보다 먼저 핵무기를 확보해야 한다거나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군과 싸우던 미군의 희생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최초의 핵폭탄을 제작하고 사용했다. 소련은 ‘핵 균형‘을 이루어야 세계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냉전시대 내내 두 나라는 서로가 서로의 공격을 억제한다는 명분을 들먹여 핵전력을 강화했다. 그러나 역사에서 군비확장 경쟁은 언제나 전쟁으로 귀결됐다. 핵무기 경쟁이라고 해서 완전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두 나라 지배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핵무기 경쟁을 이용했다. 미국 국방부와 군부, 무기생산과 연구개발로 막대한 연방예산을 나눠 가진 군수산업 자본가, 핵 경쟁을 정당화하면서 국방부의 지원금을 챙긴 연구단체의 전문가, 그들을 대변한 정치인들, 군부와 산업계를 연결한 로비스트, 그 모두를 구성요소로 하는 군산복합체가 미국의 여론과 정치를 좌우했다. 그들은 고르바초프가 과감한 핵무기 감축을 제의했는데도 선뜻 응하지 못하게끔 레이건과 부시대통령에게 압력을 넣었다. - P326

사회주의 혁명정신으로 모든 사람을 오랫동안 열심히 일하게 하지는 못한다. 공산당이 모든 것을 결정했기 때문에 인민은 책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경제위기의 원인은 인민이 아니라 제도에 있었다. 중앙통제 계획경제에서는 정부가 모든 것을계획하고 실행한다. 공산당 간부와 경제 관료들은 어떤 재화와 서비스를 얼마만큼 생산할지 결정할 때 소비자인 인민의 욕구를 존중하지 않았다. 기업 경영자들은 할당받은 생산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았다. 인력과 비용을 절감하고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과학기술을 활용하거나 생산방식을 혁신하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고르바초프가 개탄한 것처럼 에너지와 철강과 곡물의 최대 생산국인데도 연료와 식량과 원자재가 늘 부족했고 세계 최고 수준의 항공우주기술을 보유했는데도 가전제품의 품질이 형편없었던 것이다. - P357

동독은 본래 발전한 산업국이었고 나치 전범을 철저하게 숙청했으며 나치와 싸운 전사들이 권력을 잡았으니 출발이 나쁘지않았다. 바이마르공화국 시절에는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경험하기도 했다. 문제는 동독공산당이 모든 면에서 소련을 모방했다는데 있었다. 1989년 민주화 시위 때 시민들이 슈타지 (국가보안부)본부를 습격해 탈취한 기밀문서는 정부가 시민의 일상을 얼마나치밀하게 감시했는지 증명했다. 마음을 트고 지낸 친구와 친척, 심지어는 배우자가 슈타지에 자신에 관한 정보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시민들은 당혹감을 추스르지 못했다.
고르바초프는 사회주의체제가 막다른 골목에 봉착했고 소련은 이등 국가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서방과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경제 시스템을 바꾸고 민주주의를 점진적으로 확대하려 했다. 그것이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전임자들이 몸을 사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철벽과도 같았던 사회주의체제는 한 귀퉁이가 무너지자 끝을 알 수 없는 혼돈 속으로 추락했다. ‘마지막 낭만적 공산주의자‘ 고르바초프는 세계를 바꿨지만 자기 조국을 잃고 공산주의 역사의 휴지통에 던져졌다. - P359

‘역사의 시간‘에는 부족본능을 없앨 수 없다. 그러나 지적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면 어느 정도라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다. 오늘의 시점에서는 지적 재능보다 부족본능의 힘이 더 센 듯해 전망이 밝지는 않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사례를 보면 희망이 아주 없다고 할 수도 없다. 1993년 유럽연합 창설은 20세기의 마지막 중대사건이었다. 열두 나라로 출범해 회원국을 27개로 늘린유럽연합은 영국이 탈퇴했지만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유럽연합이 부족본능에 대한 성찰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인은 두 번의 세계전쟁을 겪으면서 민족주의와 국민국가 체제가 세상을 멸망시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반세기 동안 끈질기게 노력해 유럽연합을 창설했다. 회원국들은 국민국가의 주권 일부를 포기했다. 유럽을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하려고 관세 징수권을 없앴다. 자국 화폐를 폐기하고 화폐발행권을 유럽중앙은행에 넘겼다.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하기 위해 국경통제권을 포기했다. 유럽연합 의회와 집행위원회를 설치해 경제·무역·보건·외교·안보정책을 조율한다. 중요한 정책은 만장일치로 결정하게 함으로써 회원국에 거부권을 부여했지만, 국민국가 체제를 넘어선 초국가 조직이 활동한다는 것 자체는 중대한 진전이다.
다른 지역을 보면 앞이 캄캄하다. 냉전이 끝난 뒤 무력분쟁의 발화점은 ‘문명 단층선"으로 옮아갔다. 특히 종교가 부족본능을 부추겼고 권력욕에 사로잡힌 정치가들이 불을 질렀다. - P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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