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의 협박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연구서 죽음과 죽어감』(1971)에서 불치병이라는 진단에 반응하는 다섯단계라는 유명한 모델을 선보였다. 첫번째 단계는 부정이다.
부정은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는 태도다("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어). 두 번째 단계는 사실을 더는 부정할 수 없어 터지는 분노다(‘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세 번째 단계는 사실을 어떻게든 미루거나 축소시키려는 타협의 태도다(‘적어도 애들이 학교 마치는 것은 보게해줘‘), 네 번째 단계는 우울증이다(성적 관심의 급감, 공허한감정, ‘어차피 죽을 텐데 그런 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는 체념과 수용이다(‘어차피 내가 바꿀 수있는 게 없구나. 준비라도 잘 해두자‘). - P7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물밀 듯 몰려오는 난민 행렬을 바라보는 서구 여론과 각국 정부의 반응도 이 다섯 단계 감정이 혼재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정. 한사코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보인다(갈수록 줄어드는 태도이기는하다). ‘뭐 별일 아니네, 그냥 무시해버려‘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난민은 우리 생활방식을 심각하게 위협해. 그들중에는 이슬람 과격분자도 숨어 있다고,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반드시 막아야 해!‘ 타협을 해보려는 안간힘도 나타난다. ‘좋아, 난민을 몇 명이나 받아들일지 할당량을 정해 나누자고.
그들 나라에 난민 수용시설을 세워 지원해주는 것은 어때! 우울증 반응이 나타난다. ‘우린 망했어. 유럽은 우리 눈앞에서 유로파스탄Europastan이 되고 말 거야!‘ 끝내 없는 것은 난민을 수용하려는 자세다. 다시 말해 난민 문제를 범유럽적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일관된 계획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 P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