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는 전쟁 막바지에 과학자와 엔지니어 5천여 명을 동원해 공군의 열세를 극복할 신무기를 개발했다. 세계 최초의 탄도미사일 V2 (보복병기 2호)였다. 고성능 폭약 1t을 탑재한 14t짜리 미사일 V2는 1944년 말부터 아무 예고 없이 런던 시내에만 1,150발이 날아와 1만 명 가까운 시민을 죽거나 다치게 했다. 미군은 독일을 점령하자마자 V2 조립공장을 찾아내 100발을 만들 수 있는부품을 실어갔다. 소련군은 한발 늦었지만 더 많은 부품을 확보했다. 그들은 탄도미사일이 폭탄의 날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P318
과학자와 지식인 사회의 반핵 여론이 높아지고 대중이 반핵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1955년7월 9일, 아인슈타인과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이 런던에서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을 발표했다. ‘캐슬‘ 폭발 실험의 참상을 보고 세계 각국에서 핵무기 반대 강연을 하던 러셀의 주장에 아인슈타인이 동의해 작성한 선언문에는 여러 나라의 저명한 과학자 아홉명이 연대 서명을 했다. 군비축소와 전쟁 억제의 첫걸음으로 핵무기를 버릴 것을 요구하고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그들은 이렇게 호소했다.
우리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호소합니다. 인간성 이외의 모든 것을잊으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 앞에 놓인 길이 여러분을 새로운 낙원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 앞에 놓인 길은 지구의 종말로 치달을 것입니다. - P321
1939년 8월 2일,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과학 셀럽‘ 알베르트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미국에는 나치의 유대인 박해와 독재를 피해 유럽에서 망명한 과학자가 많았고 로버트 오펜하이머 (Robert Oppenheimer)처럼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천재 물리학자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핵폭탄제조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히틀러가 먼저 만들가능성을 걱정하다가 아인슈타인에게 편지 작성을 부탁했다. 편지의 핵심은 이랬다.
페르미와 실라르드의 연구를 통해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우라늄을이용해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당신의 관심과 즉각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대량의 우라늄으로 핵분열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으며, 그 연쇄반응은 엄청난 에너지와대량의 새로운 원소를 만들어냅니다. 이것은 엄청나게 강력한 폭탄 제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을지명해 행정부에 진전 상황을 알리고 적절한 대응책을 권고하게하며, 연구시설을 갖춘 기업과 협력을 촉진하고 예산을 지원해 실험을 독려하기 바랍니다. 독일이 최근 체코슬로바키아의 우라늄광석 판매를 중단시킨 것은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독일 국무부차관의 아들 폰 바이츠자커가 우리와 비슷한 우라늄 연구를 수행하는 베를린 소재 카이저-빌헬름 연구소에 배속됐기 때문입니다. - P314
미국은 나치독일보다 먼저 핵무기를 확보해야 한다거나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군과 싸우던 미군의 희생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최초의 핵폭탄을 제작하고 사용했다. 소련은 ‘핵 균형‘을 이루어야 세계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냉전시대 내내 두 나라는 서로가 서로의 공격을 억제한다는 명분을 들먹여 핵전력을 강화했다. 그러나 역사에서 군비확장 경쟁은 언제나 전쟁으로 귀결됐다. 핵무기 경쟁이라고 해서 완전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두 나라 지배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핵무기 경쟁을 이용했다. 미국 국방부와 군부, 무기생산과 연구개발로 막대한 연방예산을 나눠 가진 군수산업 자본가, 핵 경쟁을 정당화하면서 국방부의 지원금을 챙긴 연구단체의 전문가, 그들을 대변한 정치인들, 군부와 산업계를 연결한 로비스트, 그 모두를 구성요소로 하는 군산복합체가 미국의 여론과 정치를 좌우했다. 그들은 고르바초프가 과감한 핵무기 감축을 제의했는데도 선뜻 응하지 못하게끔 레이건과 부시대통령에게 압력을 넣었다. - P326
사회주의 혁명정신으로 모든 사람을 오랫동안 열심히 일하게 하지는 못한다. 공산당이 모든 것을 결정했기 때문에 인민은 책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경제위기의 원인은 인민이 아니라 제도에 있었다. 중앙통제 계획경제에서는 정부가 모든 것을계획하고 실행한다. 공산당 간부와 경제 관료들은 어떤 재화와 서비스를 얼마만큼 생산할지 결정할 때 소비자인 인민의 욕구를 존중하지 않았다. 기업 경영자들은 할당받은 생산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았다. 인력과 비용을 절감하고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과학기술을 활용하거나 생산방식을 혁신하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고르바초프가 개탄한 것처럼 에너지와 철강과 곡물의 최대 생산국인데도 연료와 식량과 원자재가 늘 부족했고 세계 최고 수준의 항공우주기술을 보유했는데도 가전제품의 품질이 형편없었던 것이다. - P357
동독은 본래 발전한 산업국이었고 나치 전범을 철저하게 숙청했으며 나치와 싸운 전사들이 권력을 잡았으니 출발이 나쁘지않았다. 바이마르공화국 시절에는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경험하기도 했다. 문제는 동독공산당이 모든 면에서 소련을 모방했다는데 있었다. 1989년 민주화 시위 때 시민들이 슈타지 (국가보안부)본부를 습격해 탈취한 기밀문서는 정부가 시민의 일상을 얼마나치밀하게 감시했는지 증명했다. 마음을 트고 지낸 친구와 친척, 심지어는 배우자가 슈타지에 자신에 관한 정보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시민들은 당혹감을 추스르지 못했다. 고르바초프는 사회주의체제가 막다른 골목에 봉착했고 소련은 이등 국가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서방과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경제 시스템을 바꾸고 민주주의를 점진적으로 확대하려 했다. 그것이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전임자들이 몸을 사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철벽과도 같았던 사회주의체제는 한 귀퉁이가 무너지자 끝을 알 수 없는 혼돈 속으로 추락했다. ‘마지막 낭만적 공산주의자‘ 고르바초프는 세계를 바꿨지만 자기 조국을 잃고 공산주의 역사의 휴지통에 던져졌다. - P359
‘역사의 시간‘에는 부족본능을 없앨 수 없다. 그러나 지적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면 어느 정도라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다. 오늘의 시점에서는 지적 재능보다 부족본능의 힘이 더 센 듯해 전망이 밝지는 않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사례를 보면 희망이 아주 없다고 할 수도 없다. 1993년 유럽연합 창설은 20세기의 마지막 중대사건이었다. 열두 나라로 출범해 회원국을 27개로 늘린유럽연합은 영국이 탈퇴했지만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유럽연합이 부족본능에 대한 성찰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인은 두 번의 세계전쟁을 겪으면서 민족주의와 국민국가 체제가 세상을 멸망시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반세기 동안 끈질기게 노력해 유럽연합을 창설했다. 회원국들은 국민국가의 주권 일부를 포기했다. 유럽을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하려고 관세 징수권을 없앴다. 자국 화폐를 폐기하고 화폐발행권을 유럽중앙은행에 넘겼다.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하기 위해 국경통제권을 포기했다. 유럽연합 의회와 집행위원회를 설치해 경제·무역·보건·외교·안보정책을 조율한다. 중요한 정책은 만장일치로 결정하게 함으로써 회원국에 거부권을 부여했지만, 국민국가 체제를 넘어선 초국가 조직이 활동한다는 것 자체는 중대한 진전이다. 다른 지역을 보면 앞이 캄캄하다. 냉전이 끝난 뒤 무력분쟁의 발화점은 ‘문명 단층선"으로 옮아갔다. 특히 종교가 부족본능을 부추겼고 권력욕에 사로잡힌 정치가들이 불을 질렀다. - P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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