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지난 50년간 학위 논문과 학술 논문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사회학자 J. 로저스 홀링스워스가 『네이처』에서 썼듯 "사실 창의적인 연구는 비교적 일정하게 배출되었다". 우리는 전문성의, 심지어 재능의 홍수를 겪고있지만 창조적 도약의 급증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앞에서 말했듯 전문화다. 우리는 세상을 점점잘게 쪼갰다. 이 때문에 오늘날 각 분야마다 어마어마한 양의 지식이 쌓였다. 천재가 자기 분야에서 축적된 지식을 모두 습득한 뒤에야 나름대로 기여할 수 있다면, 엄두가 나겠는가? 물리학자나 생물학자는 평생 남의 연구를 공부해본들 간에 기별도 안 갈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열등생이었다. 그가 엘리트와 지성인의 언어인 라틴어를 그럭저럭 배운 것은 중년이 훌쩍 지나서였다.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통념을 견디지 못했다. 약 500년 뒤 심리학자 에드윈 보링이 "나쁜 지식에는 무지한 것이 상책이다"라고 말했는데, 레오나르도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피렌체에 대학이 없던 것은 축복이었다. 도시학자 피터 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덕에 피렌체는 ‘학문의 구속복‘에 갇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P201
다시 르네상스 여명기 피렌체의 상태를 떠올려보라. 교회는 재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취약했다. 수도사들은 덕을 독점할 수 없었다. 아무도 그럴 수 없었다. 아테네와 항저우에서 보았듯 모든황금기는 옛 질서가 무너졌으나 새 질서는 아직 확립되지 않은 공백기 무한 경쟁이 벌어진다. 농구의 점프볼처럼 누구나 모든 것을 잡을 수 있는 시기, 창조적 천재가 승승장구하는 시기다. 하지만 이런 이행기는 어떻게 찾아오는 걸까? - P204
물론 끔찍한 시기였지만 이런 게 르네상스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아주 많은 관계가 있다. 흑사병은 1348년에 발생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로부터 고작 두 세대 만에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만개했다. 두 사건의 발생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역병은 참화를 불러오긴 했지만 기존 질서를 뒤흔들었다. 신분제가 순식간에 와해되었다. 문 반대편에 있던 사람이 죽어버리자 닫힌 문이 갑자기 열렸다. 역병은 황금기의 필수 요소인 불안정을낳았다. 다시 한번 돈이 반짝이는 머리를 쳐든다. 역병은 ‘상속 효과‘도 만들어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졸지에 사라지면서 도시의 자본이 더 소수의 손에 들어왔다. 여윳돈으로 무언가를 해야 했다. 하지만 대체 무엇을? 그럴 만도 하지만 상인들은 새 사업에 투자하기를 꺼렸다. 왜였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지만 그들은 문화에 투자했다. 경제사가 로버트 로페즈에 따르면 위대한 예술품과 희귀본서적이 갑작스럽게 "개인이나 국가를 엘리트 집단에 들여보내는 마법의 암호"가 되었다. 문화는 이제 이길 수밖에 없는 내기였다. 미국 재무부 증권 못지않은 안전한 투자처였다. 이런 새로운 현실을 맞닥뜨린 후원자와 미술가는 수 세기 뒤까지도 여전히 우리의 숨을 멎게 하는 미술품을 의뢰하고 창작했다. 한편 역병의 창궐을 막지 못한 교회는 도덕적 정당성을 대부분 잃었으며, 세속적 인문주의자들이 그 공백을 메웠다. 이 사건들 중어느 것도 흑사병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P206
"미술사에서 <다비드>상과 같은 것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어요. 표현해야 할 것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한 작품이었으니까요. 피렌체인들은 이 작품을 보자마자 알았어요. <다비드> 상이야말로 고대작품을 능가한 첫 미술품이라는 사실을요. 그들은 고대의 정점을보았어요. 제2의 <다비드> 상은 결코 탄생하지 않을 거예요." 어쩌면 이게 천재적 작품의 가장 정확한 정의인지도 모르겠다. 업그레이드 시도가 헛되고 어리석은 작품. - P212
하지만 5분 이상 지난 아이디어를 철저히 경멸하는 실리콘밸리의 새것 집착 성향은 공유하지 않았다. 계몽된 스코틀랜드인들은 의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역사를 깊이 존중했다. 역사를 적어도 읽을 만한 역사를 발명한 것은 스코틀랜드인이다(투키디데스, 미안). 그들은 이 분야를 ‘추측한 역사‘라고 부르는데, 오늘날 데이비드 매컬로 같은 작가의 작품이나 역사소설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인에게 역사는 단순히 흥밋거리가 아니었다. 역사는유용했다. 스코틀랜드인이 과거를 공부한 것은 현재를 이해하고 당연히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고대 로마인과 고대 중국인처럼 그들은 예리한 역사 감각이 없는 자는 데이비드 흄 말마따나 "영원히 어린아이의 이해에 머물‘ 운명임을 알았다. 천재에게는 액셀뿐 아니라 백미러도 필요하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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