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키오 같은 멘토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들은 창의성의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요소다. 아무리 명석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어도 거인의 어깨에 올라설 수 있도록 역할 모델은 있어야 한다. 사회학자 해리엇 저커먼은 노벨상 수상자 아흔네 명을 대상으로 방대한 연구를 진행해 이들이 살아가면서 핵심 멘토를 만났기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런데 멘토와의 관계에서 정확히 어떤 도움을 얻었는지 묻자 학문적 지식은 맨 꼴찌였다. 그렇다면 그들은 멘토에게서 무엇을 배웠을까?
그 답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은 사고방식일 것이다. 대답이 아니라 물음을 던지는 방법. 일종의 응용 창의성, 우리는 대개 창의성을 문제 해결이라는 좁은 범주에서 생각한다. 어려운 수수께끼를 제시받고서 ‘창의력‘을 발휘하여 주어진 문제를 해결한다는 식이다. 이것도 대견하기는 하지만,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를 모르는 상황이라면?
그땐 ‘문제 찾기‘에 착수하면 된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질문에 대답한다. 문제를 찾는 사람은 새로운 질문을 발견한 다음 그질문에 대답한다. 천재를 구별하는 특징은 정답이 아니라 이런 새로운 질문이다. 그래서 피카소는 이런 재담을 남겼다. "컴퓨터는 멍청하다. 정답밖에 못 내놓으니까."
문제를 찾는 사람의 가장 적절한 예는 다윈일 것이다. 아무도 그에게 다가가 "찰스, 진화론을 고안해주게"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서로 다른 종 사이의 설명되지 않은 유사성이라는 문제를 발견한 뒤 종합적 이론으로 이를 해결했다. 이 모든 과정은 그가 선택한 분야인 생물학 안에서 이루어졌다. 창의적 사고를 독자적으로구사한 게 아니었다. - P177

르네상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한 팀의 결실이었다. 물론 몇몇 별이 찬란하게 빛나긴 했지만, 그들은 훨씬 큰 별자리의, 또한 너른 하늘의 일부였다. 예술은 집단의 사업이었으며 모두에게 속했다. 피렌체의 미술가 중에서-심지어 내향적인 미켈란젤로조차도 혼자 힘으로만 창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술가들은 도시나 교회를 위해, 또는 후손을 위해 작품을 만들었다. 참된 천재성은 결코 개인의 문제일 수 없다. 언제나 공동의 문제다.
언제나 그 자체보다 크다. - P181

"르네상스는 똥도 많이 쌌습니다"라는 그의 훨씬 불경한 단언이 무슨 뜻인지도 알겠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발끈했지만 유진은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는 르네상스 시대를 인간 창조성의 정점으로 여기지만, 이 시대는 형편없는 예술과 형편없는 아이디어의 주맥이기도 했다.
오늘날 천재로 추앙받는 수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에디슨이 보유한 1093개의 특허 중 상당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발명품이다. 피카소의 작품 2만점 중 상당수는 걸작과는 거리가 멀다.
문학 분야를 보자면 W. H. 오든 말마따나 "일류 시인은 일생 동안형편없는 시를 이류 시인보다 훨씬 많이 쓴다".
이유는 간단하다. 표적을 겨냥하여 화살을 많이 날릴수록 명중할 가능성이 커지지만 빗맞은 화살도 많아진다. 하지만 미술관과 도서관에는 빗맞은 화살이 아니라 명중한 화살만 보존된다.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일이다. 이 때문에 천재가 처음부터 옳고 실수하지 않는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생겨난다. 실은 천재 아닌 사람들보다 실수를 더 많이 저지르는데도 말이다. - P186

위험을 감수하는 전통은 예술계에도 흘러들었다. 부유한 후원자들은 승산이 낮은 말에 돈을 걸었다. 미켈란젤로와 시스티나 성당이 그 좋은 예다. 약 500년이 지난 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 프레스코화 작업의 적임자로 통한다. 하나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미켈란젤로는 화가가 아니라 조각가로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물론 그림을 그리기는 했지만 대부분 소품이었으며 프레스코화는거의 없었고 규모도 훨씬 작았다. 하지만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로 낙점했다. 교황은 메디치가의 후원 철학을 따랐다. 명백한 재능을 가진 사람을 골라 그에게 불가능한 임무를 맡기는 것.
그가 그 임무에 어울리지 않더라도, 그가 그 임무에 어울리지 않다면 더더욱.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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