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서 데이지는 통통한 발목을 꼬며 소파에 앉았다. 담배를 한 대 더 불 붙였다. "하면, 요즘 어때요?" 데이지가 물었다.
"아이들은요?" 그가 슬픈 이유는 아들들 때문이라는 걸 아는 까닭이다. 그의 네 아들은 장성해서 흩어졌다. 이제 아이들은 다자란 성인으로 하먼을 ‘방문‘ 했다. 데이지는 지난 수십 년 동안하먼이 혼자 있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어린, 그다음엔 십대인 아들 한둘을 꼭 데리고 다녔다. 아이들은 토요일이면 철물섬 안에서 뛰어다니고, 주차장 건너편에서 소리를 지르고 공을던지며 하먼에게 빨리 가자고 채근했다.
"애들은 잘 있어. 잘 있는 거 같아." 하먼이 데이지 곁에 앉았다. 그는 결코 코퍼의 오래된, 편안한 의자에 앉는 법이 없었다.
- P142

하먼의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지 않았지만 성탄절이면 팝콘볼을 만들었다. 이 말을 하는데, 갑자기 뭔가를 되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측량할 수 없는 인생의 어떤 상실이 커다란 바윗덩이처럼 들어올려지고, 바위 밑에서 ㅡ 데이지의 푸른 눈이지켜보는 가운데 ㅡ 예전의 위안과 다정함을 발견한 듯이. - P162

"음, 그 사람이 말했어. 절대 절대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그 사람은 뚱뚱했잖아요." 니나가 말했다. "뚱뚱한 사람이 뭘알겠어요?" 그리고 덧붙였다. "내가 포기하고 싶어서 그런 게아니에요."
"물론 아니지." 올리브가 말했다. "하지만 자네 몸은 연료가없으면 곧 포기하고 말 거야. 이런 얘긴 전에도 많이 들어서 대도 하기 싫겠지만 이거 하나만 대답해봐. 자네, 어머니를 미워하나?"
"아뇨." 니나의 대답이었다. "뭐 우리 엄마는 한심한 데가 있지만 미워하진 않아요."
"그럼 됐어." 올리브가 그 큰 덩치를 부르르 떨며 말했다. "그럼 된 거야. 그게 시작이니까."
그 장면은 그후 언제나 하먼에게 창으로 구상 번개가 들어와 번쩍이던 날을 떠올리게 했다. 니나가 울기 시작하고, 데이지가 결국 니나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그날 오후에 찾아와 니나를 데려가 다시 입원시키지는 않기로 약속했던 그 순간 따스한 전기랄까, 눈부시고 초자연적인 어떤 분위기가 느껴졌던 까닭이다.  - P175

어떤 나이가 되면 어떤 것들을 예측하게 된다. 하먼도 그걸 알있다. 심장발작, 암, 대수롭지 않은 기침이 심한 폐렴이 되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것 등을 어쩌면 중년의 위기를 겪을지 모른다고도 예측하게 되지만 하먼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은 그 어떤말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이 땅 위로 솟아오른 투명한 플라스틱 캡슐에 넣어져 발사되어 날아간 다음, 캡슐이 호되게 흔들려 지나온 인생의 일상적인 기쁨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만 같았다. 그는 이것만은 결코 원치 않았다. 그리고 데이지의 집에서 니나가 울고 데이지가 전화를 걸어 니나의 부모가 딸을 데려가도록 했던 그날 아침 이후로, 보니만 보면 냉담해졌다.
집은 축축하고 볕이 들지 않는 동굴 같았다. 보니가 이제는 더이상 가게에서의 하루가 어땠느냐고 묻지도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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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종교와 과학이 함께 있는 것이 왠지 모르게 불편합니다.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종교와 과학은 각각 서로다른 영토를 지배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직자와 과학자는 다른땅을 다스리는 두 영주이고, 이 둘은 늘 긴장과 갈등 관계를 가지고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니 종교와 과학을 하나로 품으려는 시도는상당히 무모하게 여겨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모하다고 느끼는 이러한 시도, 즉 그리스도 안에서 종교와 과학을 함께 포용하려는 시도는 서구 기독교의 오랜 전통이었고 궁극적인 목표였습니다. - P64

서구 문명의 지성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랫동안 서구 지성인들의 거점은 대학과 수도원이었습니다. 게다가 유럽의 대학은 원래 성직자와 교회 관련 직무를 수행할 사람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기독교 성직자들이 지식의 중심에 있었던 거죠. 13세기 이슬람세계를 통해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것이었죠.)중세 유럽으로 들어왔을 때, 이를 가장 먼저 접한 사람들도 성직자였습니다. 이들이 종교적 지식은 물론이고, 철학, 수학, 수사학, 공학등 그야말로 ‘모든 지식의 보존과 재생산 그리고 전달을 담당했습니다. ‘신에 관한 탐구‘와 ‘자연에 대한 탐구‘는 이들의 활동 영역에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자연 과학(science)에 해당하는 자연 탐구는 당시 ‘자연 철학(natural philosophy)‘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죠.
중세 지성인들에게 자연 탐구는 기독교 신앙과 분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 P65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점차 바뀝니다. 18세기 후반 science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활용되고, 19세기 후반에는 이 분야의 작업을 전담하는 새로운 지식 계급이 등장해 ‘과학자(scientist)‘라고 불리기 시작합니다. ‘과학자‘ 집단이 등장하고 이들이 자연 탐구, 즉 과학을 전담하게 되면서 종교인들은 더이상 모든 지적 작업을 독점할 수 없게 됩니다. 특히 자연은 일정한법칙을 따르는 자율적인 물질 세계라는 기계론적 세계관과 진화론의 등장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가르침을 반박하고 도전하는 결과를가져왔지요. 이후 자연 과학의 발전과 기술의 진보에 따라, 과학과이를 응용하고 적용한 기술의 효율적 결과가 잘 확인되면서, 종교의영역은 축소되고 영향력은 약화됩니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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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종교에 대한 성찰과 비판은 주로 내부자들을통해 이뤄져 왔다. 주로 신학자나 종교학자가 여러 신앙 형태나 종교현상들을 진단하고 분석해 왔으며 때로는 개혁을 위해 노력해 왔다.
한때 한국 종교계를 뜨겁게 달궜던 ‘종교 다원주의‘ 논쟁이 좋은 예일 것이다. 그러나 이 논쟁은 종교계의 집안싸움일 뿐이었다. 우리는종교를 둘러싼 논의가 집안싸움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식 사회에 갇혀 있어서도 안 된다고 본다. 현실 세계에서 종교는 전쟁의 원인이 되고 자살 테러와 학살의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종언을 고한 지금, 종교는 인간을 추동하는 가장 큰 힘 중 하나이며, 합리적 비판으로부터 가장 쉽게 면죄부를 받아 온 성역이다. 지식인이라면 이 성역에 ‘전쟁‘에 가까운 시비를 걸어야 한다. 현대의 무신론자, 과학 철학자에게 필요한 것도 좋교에 대한 선전 포고인 것이다. 『종교 전쟁』이라는 이 책의 제목에는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 P20

사실 이런 주장은 그동안 무신론적 진화론자(진화론은 무신론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들의 단골 메뉴였죠. 그런데 제가 이번에 매우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 있죠. 그는 부모의 절대적 영향 아래 있는아이들에게 부모의 종교에 따라 ‘무슬림 아이들‘, ‘기독교 아이들‘과같은 꼬리표를 달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종교에 관해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을 더 큰 혼돈에 빠뜨리는 일종의 아동 학대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 아이들(Marxist children)‘이나 ‘자유주의 아이들(Liberal children)‘이 얼마나어색합니까?
도킨스가 재단까지 설립해 가며 이런 도발적인 주장들을 펼치는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가 지금 일종의 ‘운동 (movement)‘을 하고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종교는 감히 비판해서는 안 될 특별한 무엇‘이 절대 아니라는 점을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려는 것입니다.
- P47

도킨스와 윌슨의 경우처럼 진화론자들이라고 해서 종교에 대해똑같은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2002년에 작고한 하버드대학교의 진화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1941~2002년)"는 이들과도 다른 종교관을 가졌었죠. 그는 과학과 종교가 서로
"중첩되지 않는 교도권(Non-Overlapping Magisteria, NOMA)"에 있는 인간의 활동이라고 말합니다. 과학은 "사실의 언어"를, 종교는 "가치의언어"를 쓰기 때문에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이죠. 둘 간의 영원한 평화를 선언해 버린 것이죠.
그러고 보니 도킨스, 윌슨, 굴드가 종교에 관해 자신만의 독특한입장이 있는 듯합니다. 그 차이를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을까요? 과학이 종교를 제거할 것이라는 생각 (도킨스), 둘의 세계관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지만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는 서로 협력할 수 있다는생각 (윌슨), 둘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생각(굴드). - P51

솔직히 저는 요즘 도킨스의 외침이 진실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적인 정직성을 견지하다 보면 종교는 더 이상 인류에게 필요 없는 밈(meme) 같아 보입니다. 유효 기간이 지나버린 밈인데도 사람들이 거기에 뭐가 더 있을 줄 알고 계속 그 주위를 맴도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종교는 과학에 의해 대체되거나 아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하는 유물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신학과 종교학을 하시는 두 분 선생님께서 들으시면 좀 불쾌하게여기실지도 모르겠지만, 종교가 더 이상 세상을 걱정하는 시기는 지난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의 존립 근거를 걱정해야 할 때인거죠. 저는 과학이 종교의 주춧돌들을 야금야금 빼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전세계적으로 종교인의 수가 크게 줄어들지 않고있다는 것이 제게는 정말 수수께끼처럼 보입니다.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초자연적 세계를 상정한 종교들은 망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소위 ‘영적(靈的)인 세계‘를 갈구하는 이들은 더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종교는 점점 더 자신의세력을 불려 세계의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듯합니다. 지금 우리는 또다른 중세로 회귀하는 것일까요?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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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종교들, 예술들, 그리고 과학들은 같은 나무의 가지들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요한계시록] 21장 5절

"나는 남들처럼 아무런 증거도 없이 속 편하게 우리가 설계된 존재이고 은총 입은 존재라고믿을 수 없다. 내가 볼 때 세계에는 너무나 많은고통이 있는 듯하다."
찰스 다윈 - P5

과학의 입장에서는 초자연적인 세계를 거리낌 없이 넘나드는 유신론적 종교의 ‘멘탈리티 (mentality)‘는 낯설고 어색하며 불편하다. 더욱이 다른 종교적 전통이나 지적 전통과의 만남을 ‘영적 전투‘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개신교 주류의 신앙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들에게 뉴에이지 음악은 사탄의 것이고, 칸 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거머쥔 「밀양」과 같은 영화는 반기독교적인 몹쓸 영화이며,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인 제사는 우상 숭배다. 그리고 미국 공화당의 정책을 비판하는 행위는 신성 모독에 가깝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사는 부모요 형제요 친구지만 시공간적 자리만 공유할 뿐 실질적으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패러다임 이론을낸 과학 철학자 토머스 새뮤얼 쿤 (Thomas Samuel Kuhn, 1922~1996년)의표현을 빌리면, 그들은 "세계를 다르게 볼 뿐만 아니라 사실상 다른 세계에 산다." 도대체 그들의 멘탈리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종교 안이 아니라, 종교 밖에서, 그것도 자연 과학적 탐구를 통해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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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빼어난 문장가로 명성이 자자했다. 만일 그 명성이 그의 문학적 화려함을 인정하고, 불량한 사고 방식을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데서 나왔다면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이 그런 팬덤을 형성했더라도너그러이 봐넘길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사고 방식이 너무 많은사람과 너무 궁합이 잘 맞았다. 20세기에 놀라울 정도로 많은 수의 지식인과 예술가가 전체주의적 독재자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찬양한 나머지, 지적인 역사학자 마크 릴라 (Mark Lilla, 1956년~)는 그 증후군에 "전제 애호증(tyrannophilia)"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전제 애호증 환자 중 일부는 마르크스주의자로, "그는 개새끼일지 모르지만, 우리 개새끼다."라는 오래된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다수는 니체 철학자였다. 가장 악명 높은 두 사람, 마르틴 하이데거와 법학자 카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년)는 나치와 히틀러를 열렬히 추종했다. 실제로 20세기의 모든 독재자에게는 펜을 든 투사가 있었다.  - P674

왜 모든 사람 중에서 유독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잔인한 독재자들에게 아양을 떨었을까? 지식인은 누구보다 먼저 권력의 핑계를 해체하고, 예술가는 인간적 연민의 범위를 확장하는 사람이 아니던가? (정말 고맙게도 많은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그린 일을 해 왔다.) 경제학자 토머스 소웰(Thomas Sowell, 1930년~)과 사회학자 폴 홀랜더 (Paul Hallander, 1932~2019년)가제시한 설명은 전문가 나르시시즘(professional narcissism)이라는 것이다.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은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다.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은 시장과 시민 공동체에서 그들 자신의 욕구를 해결한다. 독재자들은 위에서 아래로 이론을 실천하고, 그과정에서 지식인들은 자신의 가치에 어울린다고 느껴지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전제 애호증은 또 한편으로는 니체 철학이 평민과 보통사람에게 느끼는 경멸과 초인이 불러일으키는 경탄을 먹고 자란다. 평민과 보통 사람은 짜증 나게도 순수 예술과 문화보다는 싸구려를 더 좋아하고, 초인은 민주주의의 번잡한 타협을 초월하고 좋은 사회의 비전을영웅적으로 실행하지 않는가? - P675

니체의 낭만적 영웅주의는 집단이 아닌 단 1명의 초인을 찬양하지만,니체의 "더 강한 종류의 사람"이 부족, 종족, 민족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이 치환을 통해 니체의 사상은 나치즘, 파시즘, 그밖의 낭만적 민족주의에 채택되었고, 지금도 정치라는 드라마에 주연으로 나온다. - P675

정치적 세일즈맨들이 신화와 도상으로 마케팅을 해서 사람들의 기본적인 정체성을 특정한 종교, 민족, 국가로 유도하는 것은 사실이다. 세뇌와 강제를 적절히 섞으면 사람을 총알받이로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민족주의가 인간 본성적 충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 본성의 어떤 요소도 사람들이 자랑스러운 프랑스인이자 유럽 인이자 세계 시민으로서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 P679

우리는 결코 완벽한 세계를 갖지 못할 테고, 그런 세계를 추구하는일은 위험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의 번영을 증진하는 일에 지식을 계속 사용한다면 세계를 개선할 방안에는 한계가 없을 것이다.
이 영웅적인 이야기는 또 하나의 신화가 아니다. 신화는 허구이지만이 이야기는 사실 - 우리가 가진 최고의 지식,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단하나의 진리에 비추어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그 진실을 믿는것은 그렇다고 믿을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알아 감에 따라 우리는 그 이야기의 어느 구절이 계속 참이고 어느 구절이 거짓인지를 밝혀낼 것이다. 어떤 구절도 거짓일 수 있고, 어떤 구절도 거짓이될 수 있다.
또한 그 이야기는 어느 한 부족의 것이 아니라 온 인류의 것, 이성의힘과 이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자 하는 지각력이 있는 모든 존재의것이다. 그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죽음보다 삶이 더 낫고, 병보다 건강이 더 낫고, 궁핍보다 풍요가 더 낫고, 압제보다 자유가 더 낫고, 고통보다 행복이 더 낫고, 미신과 무지보다 지식이 낫다는 확신만 있으면 되기때문이다. - P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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