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그림자를 판 사나이

독자들은 [그림자를 판사나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원작의 이 소설은 1824년에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Peter Schlemihls wundersame Geschichte‘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샤미소는 프랑스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프랑스대혁명 당시 아홉 살의 나이로 독일에 망명하여, 그 후 계속 독일에서 살면서 독일어로 글을 썼다. 이런 개인적 이력은 이 소설의 주제와도 무관하지 않은것 같다. - P7

보드리야르는 이 소설이 우화로서 일관성을 가지려면, 그림자가 영혼의 알레고리여야 한다고 믿는 듯하다. 소외란 결국 영혼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일 샤미소가 그림자와 영혼을 굳이 구분하지 않았다면 그러한 해석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샤미소는 둘을 나눈다. 그에 따라 악마와의 거래도 두 차례로 나뉜다. 주인공은 첫번째 거래에서손실을 입은 뒤에도 다음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프라하의 학생의경우에는 두번째 거래가 없고, 첫번째 거래의 논리적 귀결로서 냉혹한 죽음을 어쩔 수 없이 당하게 된다. 이 차이에서 알 수 있듯이 샤미소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그림자를 팔아도, 즉 개개의 행동에 있어서는 소외되었어도 혼을 구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강조는 원문). 하지만 개개의 행동에서 소외된 인간이 어떻게 혼을 구할 수 있겠는가? "개개의 행동에서 소외되었지만, 아직 혼을 잃지는 않았다‘는 것은 소외된 인간 자신의 착각(또는 주관적이고 관념적인 "소외의 극복")이 아니겠는가? "소외를 관념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좌절될 수밖에 없다. 소외의 극복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소외는 악마와의 거래의 구조 그 자체,
상품 사회의 구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강조는 원문). 다시 말해  상품사회에서 인간은 영혼 상실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보드리야르의 주장이다. - P14

라스칼은 "하인이란 본래 충실하지만, 그림자 없는 주인을 섬기지는 않는법"이라면서 자기를 해고해달라고 말한다. 만일 그림자가 영혼의 알레고리라면, 슐레밀은 돈보다 영혼을 더 중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소설에서 그림자는 영혼처럼 고상한 무엇이 아니다. 오히려그것은 지극히 세속적인 어떤 것,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특수한 성격의 재산처럼 그려진다. 이는 딸의 혼사를 두고 미나의양친이 주고받는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미나의 어머니가 라스칼은 하인출신이라서 사윗감으로 부적당하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이렇게 대꾸한다. "하지만 그 녀석은 아무도 탓할 수 없는 그림자를 갖고 있잖아." 라스칼처럼 비천하고 사악한 인간도 그림자가 멀쩡하다는 이유로 사위의 자격을 얻는 것이다. 이 대화는 그림자의 소유 여부가 신분이나 계급과는 별개라는 것도 알려준다. 실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주인공을 제외하면 다들 그림자를 갖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림자가 조금 희미하거나 남보다 작을 수는 있겠지만(휴양지에서 만난 한 상인에 대해 슐레밀은 이렇게 회고한다. "한 번 파산한 적이 있지만 다시 재산을 모은 그남자는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약간 희미하지만 커다란 그림자를 갖고있는 이였다"). - P16

나는 슐레밀에게 그림자의 상실이 일종의 스티그마stigma" 로 작용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그림자가 없는 그의 모습은 어디서나 남들의 시선을 끌며, 이어서 외면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더럽고 역겨운 것을보았을 때처럼 그를 멀리한다. 슐레밀의 행동 역시 스티그마를 지닌 사람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하루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내고, 밤과 그늘의 도움을 빌려서만 남들과 교제한다. 이는 그림자가 사람의 수행(또는 사람 연기performing person)과 관련 있는 어떤 것임을 시사한다. 스티그마란 어떤 사람의 사람자격personhood에 가해진손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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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 안에 든 돌은 밤톨만 하다. 이렇게 야심한 시간에도, 농가에서 비치는 빛만 받고도 위풍당당한 파란빛으로 타오른다. 묘하게 차가운 빛이다. 관장은 미끼가 세 개 있을 거라고 말했다. 진짜다이아몬드까지 합치면 돌이 네 개 있는 것이다. 하나는 박물관 뒤쪽에 남아 있을 것이다. 나머지 세 개는 각기 다른 세 곳으로 보내질 것이다. 하나는 젊은 지질학자가 가지고 남쪽으로 갈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보안 과장이 가지고 북쪽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하나는여기, 베르사유 서쪽 들판에, 자연사 박물관의 일급 자물쇠 장인인 다니엘 르블랑의 연장통 안에 있다.
모조품 셋. 진품 하나. 관장은 셋 중 누구도 자기가 진짜 다이아몬드를 가져가는 건지 모조품을 가져가는 건지 모르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근엄한 표정으로 모두에게, 진품을 가지고 간다는 마음으로 행동하라고 말했다.
자물쇠 장인은 그가 지닌 다이아몬드는 가짜라고 혼잣말한다. 관장이 일개 장인에게 133 캐럿 다이아몬드를 줘서 파리 밖으로 내보낼 결심을 할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니,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이게 진짜 아닐까?
그는 들판을 자세히 살펴본다. 나무, 하늘, 건초, 벨벳처럼 내려오는 어둠, 이르게 뜬 희미한 별 몇 개, 마리로르는 잠들어 고른 숨을 쉰다. 셋 모두 진품을 가지고 간다는 마음으로 행동해야만 한다. 자물쇠장인은 돌을 다시 주머니에 넣어 끈을 맨 다음 배낭에 집어넣는다. 그는 자기 마음속에 밀어 넣기라도 한 것처럼 가방 속 그 앙증맞은무게를 감지한다. 그것은 하나의 매듭이다. - P142

 비행기는 머리 위를 지나가면서 부드럽게 찢어지는 소리를 낸다. 비행기가 사라지기 무섭게땅이 우르르 진동한다.
밤하늘 한편, 벽처럼 늘어선 나무 너머로 붉은 기운이 피어오르다. 현란하게 번뜩이는 빛 속에서 그는 비행기가 한 대만이 아니라, 무리 지어 하늘에 떠 있는 것을 본다. 비행기 열두 대가 이리저리 급강하하다가 모든 방향으로 치닫는다. 일순 혼미해진 가운데, 그는 위가 아니라 마치 아래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 마치 스포트라이트가 핏빛 물속을 환하게 비추며 가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늘은 바다가 되어 있고, 비행기들은 굶주린 물고기가 되어 어둠 속에서 먹잇감을 괴롭히고 있는 것처럼. - P144

 그녀는 뿌듯하다고 말했다. 베르너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도 했다. "넌 영리한 아이니까." 그녀는 말했다. "넌 잘해 낼 거야." 그녀는 끊임없이 그의 옷깃을 바로 잡고 또 바로 잡았다. "일주일만 있으면 오는데요." 그가 이렇게 말했을 때 마치 몸속에서 일어난 홍수가 서서히 그녀를 잠식하기라도 하듯, 그녀 눈에 눈물이 서서히 고이는 것이었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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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이 구름에서 지붕으로 지붕에서 처마로 졸졸 흐른다. 베르너는 그의 이마를 지붕창에 지그시 누르면서, 떨어지는 빗방울 사이를, 코크스 제조 가마와 용광로와 가스 공장의 거대한 벽에 에워싸인 채 다닥다닥 붙어 있는 옥상들 중 딱 한 옥상 바로 아래 지붕을 하늘을 배경으로 실루엣이 드러난 구불구불한 탑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탄광과 공장을, 수천 제곱미터에 달하는 땅을, 그의 시야 너머 마을과 도시들까지, 계속 빠르게 팽창해 나가는 독일이라는 기계를 응시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자기 삶을 내려놓을 준비가 된 100만 명의 남자들을 응시한다.
안녕하세요. 그는 마음속으로 말한다. 아니면 하일 히틀러라고할까요. 모두가 후자를 택한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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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맞닥뜨린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진다. 눈이 아파? 잘 땐 눈을 감고 자? 몇 시인지는 어떻게 알아?
그녀는 설명해 준다. 아프지 않아. 그리고 그들이 상상하는 것 같은 어둠은 없다. 모든 건 거미집, 격자, 그리고 소리와 결의 대변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녀는 대 전시관 주변을 돌면서 삐꺽거리는마루청 사이를 빠져나간다. 박물관 층계참을 킁킁대며 오르내리는발소리를, 막 걸음마를 뗀 아이가 깍깍거리는 소리를 지친 할머니가 벤치에 앉으면서 내는 신음 소리를 듣는다.
색깔? 그녀에게 있어 색은 사람들이 예상 못 하는 어떤 것이다. 그녀의 상상 속에서, 꿈속에서, 모든 것엔 색이 있다. 박물관 건물은 베이지색, 밤색, 개암색이다. 그곳 과학자들은 라일락색, 레몬 같은 노란색, 여우 같은 밤색이다. 경비실 무선 스피커에서 피아노 화음이 축 늘어져 내려와 짙은 검은색과 복잡한 파란색을 열쇠 보관실로 향하는 복도에 비춘다. 교회 좋은 창밖으로 청동빛 아치를 기울인다. 꿀벌은 은색이다. 비둘기는 적갈색과 황갈색이며 이따금씩 황금색도 있다. 그녀와 그녀 아버지가 아침 산책 때 지나치는 거대한 삼나무들은 은은히 반짝이는 만화경이며, 바늘잎 하나하나가 다각형 빛이다.

어린이 여러분, 집 난로 속에서 석탄 한 조각이 빨갛게 타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어떤가요? 석탄 한 덩어리는 한때는 초록빛 풀 한 포기였고, 100만 년 전에 살았던 양치류나 갈대예요. 아니, 어쩌면 200만 년 전, 아니면 1억 년 전에 살았던 건지도 몰라요. 1억 년이라니, 상상이 가나요? 풀잎들은 평생토록 여름이 되면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빛을 받아들인 다음, 그 태양 에너지를 자기 안으로 흡수해요. 나무껍질, 잔가지, 줄기로 바꾸죠. 풀들은빛을 먹고 살아요. 우리가 밥을 먹는 것과 비슷하죠. 하지만 풀이 죽어 땅에떨어지고, 어쩌면 물속으로 떨어져 썩어서 토탄이 되면, 그 토탄은 몇 년을 거치면서 흙 속에 켜켜이 쌓인답니다. 한 달, 십 년, 심지어는 사람의 한평생이담긴 그런 영겁의 시간이 그냥 바람 한 번 훅 분 것처럼, 손가락 두 개를 딱 부딪치는 순간처럼 지나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토탄은 말라서 돌처럼 되고, 그걸 누군가 땅에서 캐낸 다음, 광부가 여러분 집까지 배달해 준답니다. 그걸어린이 여러분이 직접 난로까지 가져갈 수도 있겠죠. 그렇게 태양빛 ••• 1억 년이 된 태양빛이 오늘 밤 여러분의 집을 따뜻하게 해 준답니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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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5월 13일과 6월 4일, 윈스턴 처칠은 하원의사당에서 연설했다.
이 두 번의 영어 연설은 20세기 가장 자주 인용되고 가장 인상적인 연설로 여겨진다. 특히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피와 땀과 눈물밖에 달리 드릴 것이 없습니다. •••) 여러분은 묻습니다. 우리 정책이 무엇이냐고?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바다와 육지와 하늘에서 우리의 모든 능력을 다하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하여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어둡고 한탄스러운 인류의 범죄사에서 유례가 없던극악무도한 폭압과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 우리는 결코 약해지거나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싸울 것이고, 바다와 대양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더욱 자신있게, 더욱 강한 힘으로 하늘에서 싸울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 섬을 지켜낼 것입니다. 우리는 해변에서도 싸울 것이고, 상륙지에서도 싸울 것이고, 들판에서도 싸울 것이고, 길에서도 싸울 것이고, 언덕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영국은 결코 항복하지 않았다. 히틀러와 타협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집요하게 싸웠고 1년 후에는 러시아와 미국을 차례로 동맹군에 끌어들였다. 그리고 5년 후에는 히틀러를 물리쳤다. 그러나 그런 결과는 운명지워진 것이 아니었다. 만약 1940년에 유럽에서 큰 언어들이 작은언어들을 완전히 흡수해서 영국을 비롯해 유럽의 모든 국가가 서유럽에서 가장 큰 언어, 즉 독일어를 공용어로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래서 처칠이 하원의사당에서 영어가 아닌 독일어로 연설을 했다면 1940년 6월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 P596

세계인의 일일 평균 엄분 섭취량은 대략 9~12그램이며, 주로 6~20그램 사이에 분포돼 있지만아시아가 다른 지역보다 섭취량이 많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우리는 소금을 소금에서 구한 게 아니라 자연환경에서 채취해야 했다. 소금이 식탁마다 어김없이 놓이기 전에 세계는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해보자. 과거에는 소금을 배출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소금을 섭취하는 게 문제였다. 대부분의 식물은 나트륨을 거의 함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물의 세포외액에는 고농축 나트륨이 필요하다. 따라서 육식동물은 세포외액에 나트륨을 지닌 초식동물을 잡아먹음으로써 필요한 나트륨을 쉽게 얻지만, 초식동물은 나트륨을 섭취해야 하는 문제에 부딪친다. 이런 이유에서, 소금을 핥을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동물은 사슴과 영양이 사자와 호랑이는 아니다. 또한 이누이트족과 산족처럼 육고기를 많이 먹는 수렵채집인들은 염분 요구랑을 쉽게충족했지만, 사냥한 동물을 도살하고 조리하는 과정에서 나트륨이 풍부한 피와 세포외액을 상당히 상실했기 때문에 그들의 총염분 섭취량도 하루에 1~2그램에 불과했다. 주로 채식하며 육고기를 제한적으로 섭취한전통적인 수렵채집인과 농경인 중에서도 해변이나 내해에 소금이 퇴적된 곳 근처에 살았던 사람들은 소금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예컨대 솔로몬 제도의 라우족은 해변가에 살며 조리할 때도 소금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또 이란의 유목 목축인인 카슈카이족은 본거지에 자연 소금광산이있기 때문에 그들의 일일 평균 염분 섭취량은 약 10그램에 달한다. - P608

충분한 세대를 두고 고려할 때, 생존을 크게 방해하는유전자들이 전체적인 순효과에서 생존과 번식의 가능성을 어떻게든 높이지 않는 한 확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금까지 의학계는 표면적으로 결함이 있어 보이는 유전자들이 그 결함을 상쇄하는 이익을 제공함으로써 확산되는 좋은 사례들을 제공해왔다. 예컨대 겸상적혈구 헤모글로빈은 빈혈을 초래하는 경향을 띤 돌연변이 유전자이다. 따라서 해로운유전자인 게 분명하다. 그러나 이 유전자는 말라리아를 억제하는 기능을하므로, 아프리카와 지중해의 말라리아가 유행하는 지역에서 이 유전자의 전체적인 순효과는 이익이다. 따라서 치료받지 않는 고혈압인 사람이 신장에 축적된 염분 때문에 사망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염분을 축적하는 신장으로부터 어떤 조건에서 이익을 얻었던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어야 한다.
그 답은 간단하다. 인류의 역사에서 소금이 등장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인간이 소금을 얻기 힘든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에, 신장에 염분을 효과적으로 보유하는 사람이 땀의 발산이나 설사로 염분을 잃는 경우를 이겨낼 수 있다. 그러나 소금을 언제든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런 기능을 지닌 신장은 유해물이 되고 말았고, 결국 치명적인결과를 낳는 과도한 염분 축적과 고혈압으로 이어졌다. 이런 이유에서, 또 많은 사람이 소금을 구하기 힘들던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버리고 슈퍼마켓의 소중한 고객이 되는 삶을 택한 때문에 고혈압이 세계 전역에서유행하게 됐다.  - P621

기아와 폭식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전통 사회의 생존 조건에서는 절약 유전자형을 지닌 사람들이 유리했을 것이다. 풍요의 시기에 많은 지방을 저장해두었다가 빈곤의 시기에 칼로리를 상대적으로 덜 태우면  굶주림을 더 잘 견뎌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비만과 감량이란 두려움은 얼토당토않은 사치로 여겨졌을 것이다. 하기야 전통 사회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터무니없는 두려움이었다. 오늘날 우리를 당뇨병으로 유도하는 유전자들이 과거에는 우리가 기아를 견디는데 도움을 주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당뇨병과 고혈압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소금이나 달콤한 음식과 기름진 음식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그런 음식들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그런 음식들이 지닌 맛 때문에 우리는 소중한 영양분을 적게나마 보충할 수있었다. 고혈압의 경우에서도 보았듯이, 당뇨병의 경우도 진화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수만 년 전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굶주림의 문제를 너끈하게 견뎌낸 조상들의 후손인 우리가 이제는 풍요로운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당뇨병으로 죽어가는 심각한 위험에 처한 사람이 되었으니말이다. - P650

다른 지역들처럼 유럽을 오랫동안 주기적으로 유린하던 기아가 1650년부터 1900년 사이에 차근차근 사라졌다.
1600년대 말 영국과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1800년대 말에는 남프랑스와남이탈리아를 마지막으로 유럽에서 기아가 자취를 감추었다. 유명한 예외적인 사태가 있었지만, 네 가지 요인이 복합된 결과로 유럽에서는 기아가 종식됐다. 1) 잉여식량을 기근 지역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재분배한 국가 정부의 개입, 2) 육로와 해로를 통한 효과적인 식량 운송, 3)1492년 콜럼버스의 대항해 이후로 신세계에서 많은 농작물(대표적인 예는 감자와 옥수수)을 가져온 항해자들 덕분에 다각화된 농업, 4) 관개시설에 의존하지 않고 천수(天水)에 의존한 까닭에 유럽 내에서 식량 운송으로도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지역에서 흉작이 닥칠 위험이 없었다.
유럽의 기근 종식에 오점을 남긴 유명한 예외적인 사태는 1840년대 아일랜드에 닥친 감자기근이었다. 아일랜드 사태는 예외적이지만, 유럽의다른 지역들에서는 기근을 종식시킨 처음 세 요인들이 제대로 작동하지않을 때 닥칠 수밖에 없는 불행을 여실히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위의 원칙들을 입증해준 사태였다. 아일랜드 감자 기근은 유럽에서는 예외적으로 감자라는 하나의 작물에 의존했고, 감자의 질병이 확산된 때문이었다. 다른 섬(그레이트브리튼)이 민족지학적으로 다른 정부가 지배하며, 아일랜드의 기근에 비효율적이고 시큰둥하게 대응한 결과로 아일랜드 섬에 기근이 닥쳤던 것이다. - P655

나우루 사람들처럼 식량을 확실히 공급받게 되면서 유럽인들에게 당뇨병이 전염병처럼 번졌을 것이고, 절약 유전자형을 지닌 사람들이 당뇨병에 걸려 죽어갔을 것이다. 당뇨병에 걸린 산모가 낳은 많은 아기는 태어나면서 죽고, 당뇨병에 걸린성인은 다른 성인보다 일찍 죽고, 당뇨병에 걸린 성인의 자식과 손자는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거나 영양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죽어갔을 것이다. 이런 현상이 수세기 동안 계속된 결과로 절약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은 유럽에서 조금씩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초창기에 유럽에서 수수께끼처럼 확산됐을 것이라 추정되는 당뇨병과 오늘날 나우루 섬사람들과다른 개체군들에게 확산되고 입증된 당뇨병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요즘 당뇨병 유병률이 높은 개체군들은 풍족한 식량을 급작스레 그러나안정되게 공급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예컨대 나우루 섬사람들은 10여년 동안, 예멘계 유대인은 단 한 달 동안 풍족한 식량을 안정되게 공급받은 결과로, 당뇨병 유병률이 20~50퍼센트까지 치솟았다. 현대 당뇨병전문가들의 눈에는 이런 현상이 당연하게 보였을 것이다. 나우루 섬사람들에게서 이미 확인됐듯이 절약 유전자를 지닌 사람이 한 세대나 두 세대만에 자연선택으로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이런 상승은 조만간 줄어들것이라 추정된다. 반면에 유럽에서는 식량 생산이 수세기 동안 꾸준히증가했다. 따라서 유럽에서는 1400년대부터 1700년대까지, 즉 전문가들이 당뇨병에 주목하기 훨씬 전에 당뇨병 유병률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서서히 증가했을 것이다. 엄격히 말하면, 피마족과 나우루 섬사람들, 와니겔라족, 교육받은 인도 도시인들과 아랍의 부유한 산유국 시민들이 생활방식을 바꾼 것은 이제 한 세대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당뇨병 유병률의 급격한 변화는 유럽에서 수세기 동안 진행된 변화가 압축돼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 P656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가 속해 있는 사회는 다양한 인간 문화에서 극히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 작은 조각에 불과한 사회들이 세계를지배하게 된 이유는, 그 사회들이 다른 사회에 비해 모든 면에서 우월했기 때문이 아니다. 농업을 생각해내고 야생동물과 야생식물을 길들인 덕분에 테크놀로지와 정치력과 군사력에서 우위를 차지한 때문이었다. 이런 특별한 이점에도 불구하고, 현대산업사회들은 아이들을 양육하고, 노인을 대우하며, 분쟁을 해결하고, 비전염성 질병과 그 밖의 사회적 문제를 억제하는 데는 우월한 방법을 개발해내지 못했다. 수많은 전통 사회가 이런 문제들에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하며 해결 방법들을 고안해냈다. 전통 사회들, 특히 뉴기니의 전통 사회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덕분인지 나 자신의 인생관이 달라졌고 한층 풍요로워졌다. 이 책을 통해서 개별 독자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 전체가 전통 사회의 모습을 즐겁게 읽고 거기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교훈들을 찾아내기를 바란다. - P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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