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그림자를 판 사나이
독자들은 [그림자를 판사나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원작의 이 소설은 1824년에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Peter Schlemihls wundersame Geschichte‘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샤미소는 프랑스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프랑스대혁명 당시 아홉 살의 나이로 독일에 망명하여, 그 후 계속 독일에서 살면서 독일어로 글을 썼다. 이런 개인적 이력은 이 소설의 주제와도 무관하지 않은것 같다. - P7
보드리야르는 이 소설이 우화로서 일관성을 가지려면, 그림자가 영혼의 알레고리여야 한다고 믿는 듯하다. 소외란 결국 영혼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일 샤미소가 그림자와 영혼을 굳이 구분하지 않았다면 그러한 해석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샤미소는 둘을 나눈다. 그에 따라 악마와의 거래도 두 차례로 나뉜다. 주인공은 첫번째 거래에서손실을 입은 뒤에도 다음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프라하의 학생의경우에는 두번째 거래가 없고, 첫번째 거래의 논리적 귀결로서 냉혹한 죽음을 어쩔 수 없이 당하게 된다. 이 차이에서 알 수 있듯이 샤미소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그림자를 팔아도, 즉 개개의 행동에 있어서는 소외되었어도 혼을 구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강조는 원문). 하지만 개개의 행동에서 소외된 인간이 어떻게 혼을 구할 수 있겠는가? "개개의 행동에서 소외되었지만, 아직 혼을 잃지는 않았다‘는 것은 소외된 인간 자신의 착각(또는 주관적이고 관념적인 "소외의 극복")이 아니겠는가? "소외를 관념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좌절될 수밖에 없다. 소외의 극복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소외는 악마와의 거래의 구조 그 자체, 상품 사회의 구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강조는 원문). 다시 말해 상품사회에서 인간은 영혼 상실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보드리야르의 주장이다. - P14
라스칼은 "하인이란 본래 충실하지만, 그림자 없는 주인을 섬기지는 않는법"이라면서 자기를 해고해달라고 말한다. 만일 그림자가 영혼의 알레고리라면, 슐레밀은 돈보다 영혼을 더 중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소설에서 그림자는 영혼처럼 고상한 무엇이 아니다. 오히려그것은 지극히 세속적인 어떤 것,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특수한 성격의 재산처럼 그려진다. 이는 딸의 혼사를 두고 미나의양친이 주고받는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미나의 어머니가 라스칼은 하인출신이라서 사윗감으로 부적당하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이렇게 대꾸한다. "하지만 그 녀석은 아무도 탓할 수 없는 그림자를 갖고 있잖아." 라스칼처럼 비천하고 사악한 인간도 그림자가 멀쩡하다는 이유로 사위의 자격을 얻는 것이다. 이 대화는 그림자의 소유 여부가 신분이나 계급과는 별개라는 것도 알려준다. 실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주인공을 제외하면 다들 그림자를 갖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림자가 조금 희미하거나 남보다 작을 수는 있겠지만(휴양지에서 만난 한 상인에 대해 슐레밀은 이렇게 회고한다. "한 번 파산한 적이 있지만 다시 재산을 모은 그남자는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약간 희미하지만 커다란 그림자를 갖고있는 이였다"). - P16
나는 슐레밀에게 그림자의 상실이 일종의 스티그마stigma" 로 작용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그림자가 없는 그의 모습은 어디서나 남들의 시선을 끌며, 이어서 외면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더럽고 역겨운 것을보았을 때처럼 그를 멀리한다. 슐레밀의 행동 역시 스티그마를 지닌 사람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하루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내고, 밤과 그늘의 도움을 빌려서만 남들과 교제한다. 이는 그림자가 사람의 수행(또는 사람 연기performing person)과 관련 있는 어떤 것임을 시사한다. 스티그마란 어떤 사람의 사람자격personhood에 가해진손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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