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내가 그녀들의 이야기를 쓰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생각은커녕 냉정하고도 극렬한 저항이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할머니 이야기로 신춘문예에 당선해 데뷔 작가라는 직함을 얻었고, 지금은 번역에 매달려 겨우 작가로서 명맥을 이어가는 처지지만 그녀들의 이야기만은 사절이었다. 엄마가수없이 미끼를 던지며 나를 자극해도 난 끄떡하지 않았다. 그녀들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도, 그걸 핑계로그녀들과 얽히고 싶은 호감도 없었다. - P9

엄마가 영원 이모에게 달려들어 다짜고짜 머리채를 쥐어잡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놀라 모여 있던 사람들이우르르 달려들어 겨우 엄마를 떼어놓았다. 이제 한숨 돌리려나 싶었던 순간, 영원 이모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머리채를 잡혔다. 우리 할머니 쌍분 여사였다. - P55

"여기 오다 미국에서 온 전화 받았어. 작은애가 아파 병원에 간대. 집에서 전화 기다렸다 결과가 어떤지 전해 듣고싶어. 시끄러운 길거리가 아니라."
선배의 진지한 설명에 아차 싶은 마음이 든다. - P76

그랬다. 엄마는 늘 누구에게나 후순위였다. 할아버지에겐 늘 관심 밖이었고, 할머니에겐 마흔 넘어 어렵게 낳은 장남이며 전기기술자 일을 하다 전봇대에서 떨어져 장애를 갖고있는, 나보다 어린 삼촌이 언제나 일 순위였다. 아빠에게는 숙희란 여자가 있었고, 나는 엄마를 너무도 사랑하지만...
제발 나랑은 상관없이 혼자 알아서 행복해주었으면 좋겠으니까. - P82

 자신들의 영정사진을 찍으며 지금 이 순간 한껏 살아 있음을 뿜어대는 그녀들의 멋진 웃음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처음으로 엄마의 늙은 친구들에게 호기심이 갔다. 자신들의 영정사진을 재미삼아 찍는 사람들. 저승 바다에 발목을 담그고 살아도 오늘 할 밭일은 해야 한다는 내 할머니. 우리는 모두 시한부다. 정말 영원할 것 같은 이 순간이 끝나는 날이 올까? 아직은 믿기지 않는 일이다. - P130

사실 순영이 울며 석균에게 소리쳤던 그날, 그는 그 사장
‘아들을 찾아가 흠씬 두들겨 패주었다. ‘싫다는데 왜 만져!
싫다는데 왜 만져!‘ 그러다 직장에서 잘린다고 동료들이 말렸지만 그는 귀한 내 딸을 왜 만지냐고 소리치며 주먹을 휘둘렀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나중에 어느 날 술 취한 석균 아저씨가 나에게 털어놓은 얘기였다. 그때 나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그렇게 직장까지 잘렸으면서, 아버지로서 도리를 다했으면서, 왜 딸에게 미안하다고 말 한마디 못했느냐고. 그리고 그때 그 진실을 왜 말 안 했느냐고.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자신은 그 시대 남자들이 다 그랬듯, 미안하단 말을 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고, 그리고 진실이고 뭐고 무슨 말을할 게 있냐고. 딸을 성추행한 놈보다 자신의 가난이 더 미웠는데.
바보 같은 그가 죽고 나서 나는 순영에게 그 사실을 전했다. 순영이 아버지 영정사진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모습을보면서 나는 알았다. 인생이란 죽어서도 끝나지 않는다는걸, 죽어서도 뜨거운 화해는 가능하다는 걸 말이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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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두 사람에게 박수를 보냈다. 특히윤석열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특별수사팀장은 2013년 10월 21일 국정감사에서 조영곤 전 서울중앙지검장 등 윗선의 수사 축소 압력을 폭로했고, 이 자리에서 그가 한 말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크게 회자되었다. 그런데 이 유명한 말 앞에 이루어진 문답은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즉, "조직을 사랑합니까?"라는 당시여당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의 질문에 윤 검사는 "네, 대단히 사랑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의 답변을 종합하면,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검찰 조직에 충성한다"는 뜻이었다.
박근혜 정권에 의해 인사불이익을 받은 윤석열 검사는 2016년 ‘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을 수사하는 박영수 특별검사에 의해 수사팀장으로 발탁된다. 수사팀장으로 내정된 윤 검사가 한 말도 인기를 끈다.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가 그것이었다. 윤석열 검사는 이러한 두 번의 특별수사 과정 속에서 국민적 스타가 되었다. 당시 시대 상황에서국민들은 "사람에 충성하지도 않고, 수사권으로 보복하지도 않는검사"를 원했고, 윤 검사는 국민들이 듣고 싶어 한 말을 들려줬다.
이러한 배경에서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대통령후보는 공약 1호로 윤석열 검찰총장으로 임명하겠다고 발언하게 된다. 이 시점에 윤석열, 이재명 두 사람은 2022년 제20대 대선에서 경쟁 후보로 만나게 될 것을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한편, 권은희 과장은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광주광역시 광산구(을)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그런데 권 의원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안철수가 이끄는 국민의당에 입당했고, 이후 바른미래당, 국민의힘으로 차례로 당적을 변경했다. 최근에는 국민의힘 안에서 소수파가되어 국민의힘 당론에 반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변화무쌍한 정치지형과 그에 따른 정치인의 당적 변경을 보여주는 실례다. - P36

반면, 수사권조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윤석열 서울중앙지점장은 공수처 신설과 검경수사권 조정합의안에 모두 동의한다는 의사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을 통해 전해왔다. 윤 지검장은 검찰총장 후보 당시 청와대의 검증 인터뷰에서도 같은 뜻을 표명했다. 경찰에 대한 검사의 수사지휘권도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할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검찰총장 후보 청문회에서는 수사와 기소의 ‘분리‘에 대해서도 장기적으로 옳은 방향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윤석열 검사장이 검찰총장으로 임명된 후 검찰개혁에대한 이러한 입장이 180도 바뀌었음은 확인된 사실이다. 2022년2월 12일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오마이TV와의 인터뷰에서 "검찰총장 면접 당시엔 윤 후보가 4명의 후보 중에서 공수처의 필요성 등 검찰개혁에 가장 강력하게 찬성했는데 총장이 된 후부터 태도가 바뀌었다"면서, "그때 거짓말을 했다",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러한 ‘거짓말‘과 관련해 유시민 작가는2023년 7월 19일 ‘매불쇼‘에 출연해, 윤석열의 행동양식을 침팬지의 행동양식에 비유해 설명했다. 집단 우두머리가 되고자 하는 수컷 침팬지는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하고, 우두머리가되면 서열 밑에 있는 침팬지를 괴롭히고 그 위에 군림한다. 유 작가는 윤석열은 "말의 내용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우두머리가되기 위해서는 무슨 말이든 다 하고 "출제자의 의도"에 맞추어 답을 할 뿐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반해 침팬지와 달리 수평적 관계를 중시하는 다른 유인원 보노보에 가까운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의말을 믿었다고 보았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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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렇게 할 수 없었어. 아빠를 미워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내영웅으로 만든 거야. 아빠가 갱스터나 술주정뱅이, 나쁜 남편이나 못난 아빠가 아닌 척했어. 그래서 더스터를 수리했지. 그걸 타고 돌아다니면서, 아빠는 날 사랑했기 때문에 무슨 짓을 했어도 상관없다고 스스로를 속였어. 하지만 아빠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상관있어. 만약 내 아빠가 차로 사람을 밀어버리거나 얼굴에 총질을 하는인간이라면, 상관있어. 그리고 그건 아빠가 날 얼만큼 사랑했는지와 상관없어. 어떤 크기의 사랑으로도 바꿀 수 없는 문제야." 보러가드가 말했다. - P387

조금 뒤, 키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야, 그렇지, 버그" 키아가 말했다.
그녀의 말은 질문의 형태였지만 평서문처럼 단조롭고 힘없이 들렸다. 누군가는 절망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으리라.
보러가드는 눈을 감았다. 어둠 속으로 몇 개의 얼굴이 지나갔다.
레드 네이블리와 그 형제들.
로니와 레지.
레이지.
버닝맨.
에릭.
켈빈.
그리고 또 다른 얼굴 몇몇이 기억의 저편에서 떠올랐다. 입은 벌리고 눈은 게슴츠레한 채로, 자비를 구하던 그들의 마지막 말은 묵살되고, 마지막 숨은 단말마의 비명이 되었다. 또 다른 얼굴들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타이어 마찰음, 총알 소리와 함께 그는 그로 인해 생긴 남편 잃은 여자들도 생각했다. 아들이 집에돌아오기만을 바랐을 어머니들도. 다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할 아이들도. 그 모든 얼굴과 삶이 흙과 재가 되어버렸다.
마침내 보러가드가 말했다.
"나도 그럴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 - 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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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괭이(Finless porpoise/Neophocaena asiaeorientalis)는 고래연구를 시작하고 첫 목시조사에서 처음으로 본 고래류였다. 등지느러미가 없고 등의 유연한 곡선으로 다른 종과 쉽게 구분되지만, 처음으로 고래를 접한 이로서는 상괭이인지 너울인지 구분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체장은 갓 태어났을 때 70~80cm 정도이며, 1.8m 가까이 성장한다. 체색은 어린 개체일수록 검은색에 가까우며, 성장할수록 점점옅어져 밝은 회색으로 된다. 상괭이는 아시아에만 분포하는데, 주로 연안의 수심이 얕은 지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며, 우리나라에서는서해와 남해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동해에서도 발견은 되지만 서해와 남해만큼 자주 발견되진 않는다. 상괭이는 등지느러미가 없는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수면으로 부상할 때는분기공(噴氣孔, 분기가 뿜어져 나오는 구멍분수공)과 등의 일부만 순간적으로 내보이기때문에 상괭이의 목시조사가 처음이라면 발견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더구나 바람과 너울이 조금이라고 있다면 초심자에겐 어려운조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날씨가 좋아서 해수면이 거울과 같이 매우 잔잔하다면 상괭이 발견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수면으로 상팽이가모습을 드러낼 때 분기공도 뚜렷이 볼 수 있으며 분기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기와 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이는 탄탄한 등 근육도 선명히 관찰할 수 있다. 그뿐이겠는가. 분기공에 가득 찬 물을 뿜으면서 나오는 거친 숨소리도 크게 들을 수 있다. 상괭이는 연안에서 매우가까운 곳까지 분포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밀접하게 사람들과 지내고 있다. - P16

향고래는 이빨고래류 중에서 가장 큰 종으로 머리가 체장의 1/4~1/3에 이를 정도로 매우 크다. 향고래의 머리 부분에는 특수한 지방조직을 가지고 있는데, 이빨고래류의 이마 부분에 멜론(melon)이라고 불리는 지방조직과같이 음파를 증폭시키는 음향렌즈 역할을 한다. 향고래의 이 특수한 지방조직은 ‘경랍(鯨蠟)기관‘이라고도 하며, 물체 탐지, 위치추정, 이동, 방향 지향 역할뿐만 아니라 깊은 수심으로의 잠수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경랍 기관 안에는 향고래가 소리를 내는 데 활용하는 밀랍같은 액체가 들어 있다. 이런 신체적 특징으로 인해 과거 상업 포경 시대에 다양한 용도로 쓰인 고래 기름을 얻기 위해 향고래가 주요 포경대상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 P19

또한 우영우 변호사는 대왕고래도 좋아한다. 대왕고래의 체장은보통 21~26m이고 체중은 83~130톤, 많게는 150톤에서 190톤에 달하며, 암컷이 수컷보다 더 크다. 대왕고래라는 이름은 국명이며, 지구에 현존하는 가장 큰 동물이기에 붙여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왕고래는 크릴을 주식으로 하는데, 하루 먹이량이 평균 4~6.5톤 정도이며, 취향에 맞지 않은 먹이를 먹으면 다시 뱉어내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렇게 많은 양의 먹이를 먹는 대왕고래도 열대지방에서는 먹이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열대지방에서는 주 먹이생물인 크릴이 적고 암컷의 경우 번식 활동에 많은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먹이활동에 드는 에너지를 줄여 번식 활동에 사용한다. 그리고 육아 기간에도 먹이를 먹지 않고 극지방에서 축적한 지방을 젖으로 바꾸어 새끼에게 먹이며, 이 젖을 먹고자란 새끼는 하루에 체중이 약 90kg씩 늘며 성장하여 6개월이 지나면 약 17톤을 기록하므로말 그대로 대왕고래가 되어간다.
대왕고래의 대변은 붉은색으로 알려져 있다. 대변의 색은 먹이생물, 즉 무엇을 먹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먹이생물인크릴의 색이 붉은색에 가까워 대왕고래의 대변이 붉다는 뜻이다. 하지만 2019년에 노란색 배설물을 뿜어내는 대왕고래가 처음 발견됐다는보고도 있다. 또한 대왕고래의 대변은 해양에 영양을 공급하는 역할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변에 다량의 철분이 함유되어 있어 식물성플랑크톤을 빠르게 번식하게 돕기 때문이다. 사실 고래는 영양물질을바다 깊은 곳에서 표층으로 품어 올리는 펌프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는미국 버몬트대와 하버드대의 공동연구진이 2010년에 보고한 내용이다. - P21

고래를 발견할 때는 여러 가지 징후가있다. 분기를 본다든지, 신체 일부를 본다든지, 또는 주변의 새떼나 잔너울, 백파나 물보라를 관찰한다면 고래를 발견할 수 있다. 대형고래류의 분기는 2~3마일 밖에서도 관찰된다. 분기는 고래 종류마다 각각의 특징을가지는데, 수염고래류의 분기는 대체로 가늘고 높은 편이다. 대왕고래의 분기는 9m까지 치솟으며, 긴수염고래의 분기는 두 갈래로 뚜렷이 나뉘어 4~8m의 높이로 솟아오른다. 이빨고래의 분기는 낮은 높이로 처음부터 옆으로 퍼진 형태를 띤다. - P23

고래는 넓은 범위의 해역을 회유하기도 하지만 깊은 곳까지 잠수하기도 한다. 주로 먹이를 찾기 위한 목적이다. 향고래는 3200m까지 잠수한다고 한다. 바닷속은 여러 생물이 살고 있으며, 빛이 도달하는 곳은 다채로운 물색을 이루며 신비롭고 예쁘기까지 하다. 그러나 빛이 도달하지 않은 깊은 바닷속은 매우 깜깜하여 바로 앞에 있는 물질도 알아보기 어렵다. 물속은 수심 6m 이내에서 투과된 빛의 75% 정도가 사라지며, 약 400m의 수심부터는 완전한 암흑 상태가 된다. 이러한 깊은 수심과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 고래는 시각과 더불어 음파를 사용했으며, 특히 시각보다는 청각을 선택하여 더욱 발달시켰다. 소리를 통해 먹이를 찾고 장애물을 인식하며 무리 간의 신호를 주고받는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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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환경이 경제사회 구조에 미치는 영향
중국의 자연 환경은 대체로 평탄한 농지, 낮은 산들, 항해가 가능한 강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농경에 적합하였고, 중앙집권적 권력구조에 유리하였다. 농경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서로간의 화목한생활이었다. 특히 쌀농사의 경우에는 공동 작업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사람들 간의 화목은 관개 공사의 경우에 특별히 더 중요하다. 관개 공사가 절실히 필요했던 지역 중 하나가 바로 중국 북부의 황하 골짜기 지역이었다. 관개 공사는 이웃과의 화목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는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를 유도하게는데, 중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작농들은 자신들의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야 했고, 자기 부락의 연장자들이나 권력자들의 지배를받아야 했다. 그리고 지역의 권력자들은 다시 왕(통일 중국 이후는 황제)의 지배하에 있었다. 이처럼 중국인들은 그들의 생태 환경으로인해 매우 복잡한 사회적 제약 속에 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의 자연 환경은 그와 대조적이었다. 그리스는 해안까지 연결되는 산으로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에 농업보다는 사냥, 수렵, 목축, 그리고 무역(정확히는 해적)에 적합했다. 이런 일들은 농업에 비해 다른 사람과의 협동을 덜 필요로 한다. 실제로 무역을 제외하고는 굳이 안정적인 공동체가 필요없다고 할 수 있다. 농경정착 생활이 그리스에 도입된 것은 중국보다 거의 2,000년이나 뒤였으며, 도입된 이후에도 사람들의 일상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기보다는 상업적인 대규모 농경으로 빠르게 변화되었다. 실제로 기원전 6세기경에 이르렀을 때 많은 농부들은 사업가적 성격을지닌 개인 단위의 농장주였으며, 중국에서처럼 소작농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리스의 토양과 기후는 농경보다는 포도주와 올리브유 생산에 더 유리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고대 그리스인들은 고대 중국인들과는 달리 모든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남들과의 화목을 유지할 필요가 없었고, 따라서 보다 더 많은 영역에서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시장이나 공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게 논쟁하는 습관도 기를 수 있었다. - P190

앞에서는 사회적 행위(관계 중심적 사회 행위와 자율 중심적 사회 행위)가 형이상학적 신념에 영향을 주고 이 형이상학적 신념이 인식론적 사고에 영향을 주는 과정을 기술했다. 그러나 사회적 행위들이 곧바로 인식론적 사고 습관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고대 중국의 변증법적 사고와 고대 그리스의 논리학은 사회적 갈등의 해결을 위해 개발된 인지적 도구들이다. 조화와 화목을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논쟁이나 대결의 전통이 생겨나기 어렵기 때문에 어떤 관점의 차이가 발견되면, 모순을 뛰어넘는 중용의 도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자유로운 논쟁이 장려되는 사회에서는 ‘비모순율‘이나 ‘형식 논리‘ 같은 절차들이 자연스럽게 개발된다. 논리학이 발달되면그것은 자연스럽게 과학의 발달로 이어진다. 물리학자이자 과학사가인 앨런 크로머 (Alan Cromer)는 이 점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다.
과학은 어떻게 보면 수사학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유일하게 그리스에서만 발달되었는데, 그 까닭은 그리스의 공회가 논쟁의 기술을 매우 중시했기 때문이다. 기하학적인 증명은 궁극적으로 수사학적 형태를 띠고 있다. - P194

20세기의 심리학자들은 경제·사회적 요인들이 사람들의 지각습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경험적으로 보여주었다. 심리학자인 허먼 윗킨스(Herman Witkins)와 그 연구팀은 ‘장의존성 (field-dependence)‘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는데, 이는 어떤 사물을 지각할때 주변 맥락의 영향을 받는 정도를 지칭한다. 장의존성은 다양한방법으로 측정되는데 그중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법이 ‘숨은그림찾기 검사(Embedded Figures Test)‘이다. 이 검사는 복잡한 배경에숨겨진 사물들을 찾아내는 것으로서, 장의존적인 사람은 주변 배경에 주의를 너무 기울여 숨겨진 사물을 쉽게 찾지 못하지만, 장독립적(field-independent)인 사람은 주변 배경에 영향을 덜 받고 쉽게 사물을 찾아낸다.
만일 지금까지 내가 주장한 내용이 타당하다면, 즉 경제적인 요인들이 사람들의 인지 습관에 영향을 미친다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한 농경 사회의 사람들은 수렵이나 사냥 사회 같은 그렇지 않은 사회의 사람들보다 더 장의존적이고, 전통적인 농경 사회 사람들이 현대 산업 사회의 사람들보다 더 장의존적일 것이다. 연구 결과, 이러한 예측은 모두 사실로 밝혀졌다. 흥미롭게도 수렵과 사냥을 하는 사람들과 현대 산업 사회의 사람들은 거의 비슷한 정도로 장독립적이다. - P198

과학에서의 동서양 차이
미국은 1990년대에 들어서만 4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지만, 일본은 겨우 1명만을 배출했다. 일본의 과학 예산이 미국 과학예산의 절반에 달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차이는 가히 충격적이다. 서독은 일본 과학 예산의 절반밖에 책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기에 5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서독보다도 과학 예산을 훨씬 적게 지출하는 프랑스조차 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본의 이러한 초라한 성과에 대하여 혹자는 연장자를 존경하는 유교 전통을 그 원인으로 본다. 젊고 유능한 학자보다는 실력은 없으나 나이 든 학자를 지원하는 사회 풍토를 지적한 말이다. 그러나 일본내 상당수의 과학자들은 논쟁과 지적 토론의 부재를 원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동료들끼리 서로 비판하고 심사하는 것을 무례하게 생각하며, 논쟁과 지적 토론이 과학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인식도 부족하다. 한 일본 과학자는 미국에서의 경험을 이렇게 기술했다.

워싱턴의 카네기 연구소에서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다. 거기서아주 유명한 두 명의 과학자를 알게 되었는데, 그들은 서로 매우절친한 친구 사이였지만 연구에 있어서만큼은 극심한 논쟁을 벌였고 심지어 저널을 통하여 공개적으로 서로를 비판하기까지 했다. 미국이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가능한 것이지 일본에서는 감히 꿈도 못 꿀 일이다. - P206

인권 문제를 바라보는 동서양의 차이
서양인들은 개인과 국가 간에는 오직 하나의 바람직한 관계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즉, 각 개인은 독립적인 존재로서 다른 사람들과그리고 국가와 사회적 계약을 맺으며, 그 계약에는 개인의 권리, 자유, 그리고 의무가 포함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국가를 개인들의 단순한 집합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생각하기 때문에 한 개인의 고유한 권리라는 개념은 그들에게는 자연스럽지 못하며 그보다는 부분-전체, 개인-사회라는 관계적 측면에서의 권리가 훨씬 더 의미가 있다. 서양인들은 동양인들이 그들의 사회에서 마치 아무런 권리도 없는 것처럼 대우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근거로 동양인들의 도덕관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옳지 않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도덕관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근본적으로 개인을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반대로 동양인들이 서양인의 행동을 보고 그들의 도덕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 유학 온 동양 학생들은 영어에 익숙해지고나면, 미국의 미디어에 폭력, 섹스, 범죄들이 난무하는데 어떻게 자유라는 명목으로 그런 것들을 용인할 수 있느냐고 지적하곤 한다. 그들은 그런 것들이 개개인의 권리를 보장한다고는 하지만 크게 보면 사회 전체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동양인들은 권리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존재한다고 믿는다. - P211

나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서로의 문화를 수용하여 중간쯤에서수렴될 것이라는 이 세 번째 견해가 ‘문화 차의 미래‘에 대한 가장타당한 견해라고 믿는다. 동양과 서양은 서로의 장점을 수용하여두 문화의 특성이 함께 공존하는 문화 형태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마치 요리의 재료들이 각각의 속성은 그대로 지니면서도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듯이, 두 문화는 새로운 통합을 맞이할 것이다. 그 통합이 두 문화의 가장 좋은 특성들만을모아놓은 걸작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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